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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Jun 14. 2021

자연이 만들고 자연이 조각한 산 주왕산을 돌아보다

언제가 한번 가보리라 생각했지만 지 않았다. 경북에서 오지라고 할 수 있는 청송이다. 예전에는 청송은 무엇인가 주목되는 시설에 의하여 주목받았고 그것 때문에 우리들은 청송을 알았다. 최근에는 그 이름도 변경하여 청송은 사과가 대표하고 있다. 청송은 예전에는 오지였으나 이제 청주 영덕 간 고속도로가 개통이 된 후 접근성이 좋아 이제는 오지도 아니다. 서울에서 3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다.  주왕산은 국립공원으로 7번째 지정되었다.


청송은 우리나라에 있어 두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청송군 전체가 지질공원이다. 주왕산에는 지질공원의 명소로 기암단애, 용연폭포, 급수대(주상절리), 연화굴, 주방천 등이 있다.


주왕산은 주왕이 머물렀다 하여 이름이 이렇게 명명되었다고 한다. 주왕이 누구냐고 하면 주나라의 왕이다. 중국에 있었던 주나라 왕이 당의 수도인 장안을 공격하다가 실패한 후 이곳까지 도망하여 이렇게 이름이 붙여져 있는 것이다. 신라의 중심부 근처까지 와서 이곳에 머물렀으니 신라는 이를 공격하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하였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급수대도 있고 산성도 있어 웅거하고 있는 집단에게는 천혜의 요새에 머물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국립공원공단의 홈페이지에 좀더 찾아보니 "주왕산의 전설은 중국 진나라부터 시작됩니다. 복야상서 벼슬을 지낸 주의라는 사람의 9대손인 주도가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범상치 않아 왕후장상을 꿈꾸며 ‘황하강의 물을 들이마시고 태산을 갈아 뒤 엎겠다’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성인이 되자 주도는 혼란한 시대를 틈타 후주의 천왕임을 자청하며 반기를 들고,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쳐들어갔으나 곽자의 장군에게 대패하여 숨을 곳을 찾아 요동반도를 따라 관동(강원도)지역을 거쳐 진성(청송진보)에 다다르게 됩니다. 주도는 석병산이 매우 깊고 험준하다는 말을 듣고 이곳에 숨어들었으나, 식량이 없어 인근 주민들을 약탈하고 노략질을 하게 됩니다. 이에 신라에서 마장군 형제를 보내게 되고 주도는 마장군 형제의 화살에 맞아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전설에서 주도의 이름을 따서 주왕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됐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출처:국립공원공단 홈페이지)


학봉 김성일이 이것에 대하여 이렇게 글을 지었다.(대전사를 지나자 마자 있다)


주왕전의 옛터에서 / 학봉 김성일

풀숲 헤치며 주왕 궁궐 찾노라니

산마루 지는 해 낮게 드리웠네

계단은 무너져 이미 층계는 없어졌고

기와는 부서져 반 진흙 되었네

규모는 초라하여 높은 사람 집은 아닌 것 같고

숲은 깊어 산새들 서식지 되었네

흥망이 천고의 한이 되어

길게 휘파람 불며 서쪽 계곡을 지나네


披草尋行闕 피초심행궐

山椒落日低 산초낙일저

階平已無級 계평이무급

瓦解半成泥 와해반성니

制陋非堯殿 제루비요전

林深是鳥栖 임심시조서

興亡千古恨 흥망천고한

長嘯過溪西 장소과계서


주왕산은 청송 ic를 나와서 15분 정도면 주차장에 도착한다. 도로 옆은 대부분 사과 수원이다.  가을이면 저 과수원에 여름의 더위를 담고 가을의 햇살을 껍질에 담은 사과들이 우리들을 유혹할 것이다.


주차장에  승용차들은 가득 하나 버스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웃한 도시에서 이곳을 많이 찾을 것이다.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이웃한 도시에서도 1시간 이상이 소요되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상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철시하거나 폐업한 음식점들이 거의 없는 것을 보아 고속도로가 개통이 된 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버스에서 문화재 관람료 때문에 에피소드가 발생했다. 개별로 움직이고 있는 우리들은 단체 입장이 될 수 없음에도 30명 이상 입장하니 누가 대표로 돈을 모아 입장하기로 하고 돈을 모으는데 몇 명이 개별 입장한다고 하여 돈을 모았다가 다시 돌려준다. 우리들은 꼼수를 생각했는데 몇 명은  개별 행동을 계속하기로 하였기에 무산된 것이다. 그런데 웃긴 게 통상 20명이면 단체 입장이 되고 단체 입장은 절반 정도 가격인데 이곳은 30명이고 500원밖에 할인을 안 해주니 그렇게 그렇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통상, 산으로 들어가면서 산세가 보이는데 주왕산 은주 차장에 도착하여야 보인다는 차이가 있다. 주왕산에 처음 접하는 것은 기암이다. 어떻게 보면 주왕산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이는 지점마다 다르다. 시야가 다르고 보이는 지점이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기암은 대전사 경내에서 보는 것이 가장 많이 보이고 경이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전사는 오래된 고찰이다. 신라시대에 창건한 사찰인데 창건 당시 수도였던 서라벌,  지금의 경주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기에 규모가 제법 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중심이 개성,  한양으로 옮겨지고 나서는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람이 있는 곳과 배치는 산중에 있는 사찰이 아니기에 넓게 퍼져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속리산 법주사,  설악산의 백담사 등과 유사하게 배치되어 있다. 35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주왕굴이 있는 주왕암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가치가 슬쩍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주왕굴에는 산신각을 배치하고 있는데 절문을 닫아걸면 볼 수 없다.

이제 산으로 간다. 주왕산은 크다. 하루 동안 다 돌아볼 수 없다. 오늘은 시간이 제약된 안내 산악회 버스를 타고 왔으므로 이를 준수하여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더 크게 돌고 싶지만 오늘은 주왕산의 왼쪽 주봉까지 갔다가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주왕산의 속을 들여다볼 것이다.


주봉으로 가기 위하여 대전사를 지나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주봉은 700m 남짓이지만 시작 지점도 200m 남짓이니 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 2km를 오르면 오늘 다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왕굴을 오를 때 조금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너도나도 오른다. 전망은 하나도 없다. 나무터널이다. 여름에 등산하면서 산을 오르면 덥지 않냐고 얘기하는데 오를 때 더위만 참으면 된다. 그 땀을 흘리고 나면 시원할 뿐이다.


한차례 땀을 흘리고 나니 전망대이다.

기암을 바위산들이 경호하고 있다. 산의 높이에 따라 보이는 것이 차이가 있다. 산세가 보인다. 장군봉과 그 아래의 봉들이 즐비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에서 평탄하게 아니 가파르지 않게 고도를 높인다. 이곳도 볼 수 없고 저곳도 볼 수 없다. 다만 살짝살짝 오른다. 그것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다시 전망대이다.

고도를 달리하면서 사진에 담으니 재미있다. 이제는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주봉 정상이 보이는 능선까지 가파르다. 오르고 오른다.  산을 오른 만큼 맞은편 저 바위산들이 이제는 발아래에 있다. 주봉도 보이고 한숨을 쉬면서 발아래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볼뿐이다.

한가족이 산을 오르고 있다. 가족이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면 서로를 가다리고 서로를 챙겨준다. 이곳에는 가장의 책임이 항상 있다. 배낭이 제일 무거워 보인다. 가족의 식량과 필요한 많은 것이 들어 있을 것이다. 평상시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다가도 산행할 때는 무엇인가 책임을 지고 있는 모습이다. 엄마는 걱정이다. 잔소리가 여기도 있다. 조심하라고 어린 친구가 겁도 없이 잘 걷고 있는데 약간의 낭떠러지가 있으면 근처에 접근을 시키지 않는다. 이것이 엄마의 마음일 것이다.


정상을 앞에 두고 계단의 연속이다. 그래도 얼마 되지 않은 만큼 힘차게 오를 뿐이다.

이곳에는 6-70년대 우리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이겨내기 위하여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국립공원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면 궁금할 것이며  이것을 알고자 노력하는 것을 최소화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복원이 될 수도 없고 나무는 100년 이상 갈 것이기에 필요하다고 본다.


정상 부근에서 초등학교 동창모임에서 등산을 온 것 같다. 그들이 떠들썩하게 이야기한다. 본인들의 예전 모습을 이야기한다. 나도 그럴 것이다. 어느 시점이 되면 내 모습을 잃어버리고 옛 모습이 그리워질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 모습을 우리는 갖고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제는 계곡으로 하산을 한다. 하산 시간이 너무 빠르고 약속시간보다 일찍 끝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면서 하산할 계획을 세운다.


삼거리다. 가메봉을 거쳐서 하산을 하면 시간상 빠듯하다. 내가 모르는 길이고 약속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아니면 서두르면 가능할 것 같은 고민에 쌓인다. 산을 두려워하자 모르는 길을 서두르다가 다칠 수도 있다는 내 지론에 따라 포기하고 처음 계획한 방향으로 이동한다.

주왕산은 어느 산에 비하여 소나무가 많다. 남쪽산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최근에 주로 다닌 산을 생각하니 동해안이 가까운 산일수록 소나무가 많다. 두타산도 그렇다.

동해안 쪽 산들에서 금강송을 볼 수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이제 계곡에 도착하였다. 입구까지는 4km 정도다. 중간중간에 폭포도 있어 이를 감상하면서 지나가면 될 것이다. 주봉을 오르면서 흘린 땀을 세수하고 천천히 계곡을 즐기면서 걷는다. 누가 나를 쫓아 오는 것도 아니고 시간도 여유가 있다. 여름 산은 계곡이 있는 산이라는 친구의 얘기가 귓가를 때린다. 오늘은 동행이 없다.

친구 한 명은 상해에 가 있고,  한 명은 오늘 근무 중이다. 다음에는 같이 하고픈 산이다


후레메기 삼거리다. 후레메기란 뜻은 모르겠다. 이곳을 지나면 가메봉으로 갈 수 있고 내려온 주봉으로 갈 수 있으며 나가려는 대전사로 간다. 폭포가 3개 있다고 하니 다 보고 갈 수 있는 시간이다. 5시간이면 넉넉하게 감상할 수 있다.

후레메기 삼거리를 지나 후레메기 입구에서 갑자기 방향이 이상하다 내려왔는데 왼쪽으로 갈 것 같았는데 오른쪽으로 간다. 계곡이 둘이 있는데 그 중 하나의 계곡이 있는 곳에 폭포가 있다.  폭포는 위로 올라가야 한다. 용연폭포는 장군봉에서 내려오는 계곡의 물이 이렇게 폭포를 이룬 것이다. 주왕산의 3개 폭포 중에는 가장 크다. 2단 폭포이다. 첫 번째 폭포에는 하식동굴이 있다. 그리고 침식작용으로 폭포가 뒤로 가고 있다고 한다. 1000년쯤 뒤에는 2단 폭포가 2개의 폭포가 되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용연 폭포를 볼 수 있도록 데크가 만들어져 있으며 일반인들도 충분히 올 수 있도록 길이 만들어져 일방통행으로 운영하고 있다. 산책길을 걸어서 감상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응회암에 폭포가 잘 만들어지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응회암은 세로로 틈이 만들어지며 그 틈 사이로 물이 들어가면서 침식이 일어나 가파른 절벽을 만들어지고 물이 흐르면서 크고 작은 폭포가 만들어지게 된다고 한다. 그 결과 응회암 지역인 주왕산에 폭포가 많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용연폭포를 보기 위하여 상류로 갔다고 오는 것이다. 그 길은 주봉이나 가메봉을 가는 길이 아니고 장군봉을 가는 길이다. 용연폭포에서 대전사 방향으로 내려오다 다시 길을 잡고 철구폭포로 간다. 주봉이나 가메봉에서 내려오는 물이 흘러내리는 폭포라고 보면 될 것이다. 철구폭포는 응회암의 틈을 비집고 폭포가 된 것이라고 한다.


여기도 2단 폭포이다. 1단 폭포 아래는 선녀탕이라 하는 돌개구멍이 있고 2단 폭포 아래는 폭호가 있고 협곡 속에 위치하여 이끼류가 많이 자란다.

더위가 없다. 그래서 발을 담그고 놀 수 있다.

협곡의 응회암에 사람들이 돌을 올려놓고 돌탑을 조그맣게 쌓아놓은 것이 이채롭다. 계곡에 자라나는 나무들이 주산지와  같이 냇가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다.

주왕산의 많은 볼 걸이가 있는 용추폭포다. 용추협곡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화산활동에 따라 날아온 돌들이 협곡을 이루고 있다. 이곳을 보고 또 본다.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사진 찍기 바쁘다. 협곡 자체가 아름답다. 거기에 협곡을 흐르는 물은 최근에 내린 비로 수량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더. 신비로움을 자아내고 있다.


백악기 회류 응회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왕산 국립공원은 한반도 화산 폭발 활동(운동)의 특징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지질학습장으로 지질 특성을 관찰할 수 있는 지질명소이고 용추협곡에서 이를 좀 더 확인할 수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용추 협곡은 주왕산 주방계곡의 자하성부터 용추폭포까지 1km의 구간의 협곡을 말한다. 용추(龍湫)란 용이 하늘로 승천한 웅덩이를 뜻하고, 협곡은 급경사를 이루며 암석이 양쪽으로 높이 서 있는 좁고 깊은 골짜기를 말한다.


이곳은 예로부터 청학동이라 불리며 선비들이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협곡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신선 세계에 발을 딛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응회암에 발달하는 수직절리를 따라 침식이 일어나면서 첩첩산중의 보배를 만들게 되었다고 안내서에 설명이 되어 있다.

용추협곡을 이루어진 과정을 설명하는 자료를 찾아보니 암석의 틈으로 스며든 물이 겨울에 얼면서 쐐기처럼 틈을 벌리고 이러한 동작들이 세월이라는 작품에 의하여 반복된 후 틈은 점점 크게 되고 벌어진 틈을 따라 크고 작은 암석들이 떨어져 나오면서 침식이 일어난 후 그 침식된 사이에 물이 흐른 것이 용추협곡이라고 한다.


학소대와 시루봉가 주변 협곡이다. 화산이 만들고 바람과 비가 조각한 것이다. 저 협곡은 누구에게도 접근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학소대는 옛날 청학과 백학이 둥지를 틀고 지냈는데 사냥꾼이 청학을 잡아 백학이 슬프게 울다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시루봉은 떡시루를 닮았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져 있으나 사람의 옆모습과도 같다고 한다.

나는 잘 모르겠다.

학소대에서 이제 자연 탐방로를 따라가든가 좋은 길을 따라가면 되는데 자연탕 방로를 따라가다. 중간에 건너편도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으며 주왕굴도 가고 무장굴도 간다.

주왕굴까지 가는 길에 왼쪽에 주상절리가 있다. 그 명칭이 급수대가 있고 관음암이 있다고 한다. 

가면서 전망대에 올라 맞은편 산을 본다.

연화봉이 바로 앞이고 그 오른쪽이 병풍바위다

이곳에서 주상절리를 본다. 관음봉과 급수대이다. 급수대에 설명을 보니 신라시대 김주원이 왕으로 추대를 받았으나 왕이 되지 못하여 급수대 위에 집을 짓고 살았으며,  물을 길어 왔기에 급수대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주왕암에 도착하니 주왕굴, 무장굴 갈림길이 있고 주왕암이 있다. 주왕암을 들어가야만 주왕굴을 볼 수 있다. 주왕암에서 산신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주왕암에는 산신각이 2개다. 정연에 보이는 산신각도 있고 암자를 옆으로 협곡 속으로 들어가서 100m 올라야 하는 산신각이 있다.

주왕암 건물 뒤편 계곡에 있는 동굴. 협곡 사이 암벽에 자리한 자연동굴로 주왕이 마장군의 공격을 피하여 이곳에 은거했다가 마장군이 쏜 화살에 맞아 후주천왕(後周天王)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애절하게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굴이라고 하여 10m 이상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깊지 않게 들어가며 습기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고 여름에는 위에서 폭포처럼 물이 떨어지지만 겨울에는 얼음이 위에서 떨어진다고 한다.

주왕암을 나와서 무장굴로 간다. 무장굴은 군사들의 무기를 숨겨 두었던 곳이라 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져 있다. 입구에서 약간 더 들어갈 수 있는데 여름철에는 풍혈이 있어 올라올 때 땀을 식힐 수 있다. 공단 홈페이지에 이에 대한 설명이 있다.

"주왕이 마장군 형제들과의 전쟁에 패하면서 숨기 좋은 곳으로 피하던 중 찾아낸 곳이 무장굴입니다.

이 곳은 주왕산에서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이며 이 동굴에 보초를 세우면 주왕산 입구까지 보일 정도로 탁 트인 공간입니다. 한 마디로 아래에서는 무장굴이 보이지 않지만 굴에서는 적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왕은 이 곳에 무기를 은닉하고 군사를 배치 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출처 : 국립공원공단 홈페이지)

무장굴을 나와 다시 주왕암의 삼거리로 간다. 자연관찰로 가 아닌 용추협곡에서 내려오는 길로 간다.


이제는 대전사로 간다. 사람들은 제 나름의 체력을 갖고 있고 그것에 따라 움직인다. 등산을 하면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체력이 회복된다. 어려운 가운데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면서 예전 가평의 용추계곡을 지날 때 물을 건널 때 신발을 벗고 건너면서 발의 피로를 회복한 기억이 새롭다. 어떤 분들이 발을 담그고 가자고 하는데 그냥 가자고  하는 사람이 있어 오지랖 떨어 본다. 그분들은 개울에 발 담그려 가고 나는 대전사로 간다.


아들바위가 있다. 남존여비가 여기에도 있다. 바위 위에 돌을 그득하다. 돌아서서 돌을 던져 저위에 돌을 올라가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그저 웃자고 한 얘기가 아닌 것 같다. 경북 북부 지방의 보수적인 문화가 보인다.

경북 북부지방은 유교문화가 매우 강한 곳이다. 결과는 남아선호 사상이 매우 강하다.


여기에 돌을 올리신 분들이 우리들 엄마일 것이다. 돌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로마의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로마를 다시 온다는 속설이 있는데 나도 던졌는데 10년 이상 되었지만 로마를 다시 방문을 하지 못하였다. 속설은 속설일 것이다.

기암단애가 보이는 곳에 도착하였다.

쌍둥이 기암이 보이지만 사진으로 담을 수가 없는데 보이는 곳마다 다르다. 기암단애에 대한 설명을 보니 주왕산 일대는 9번 이상의 화산 폭발이 있었으며 뜨거운 화산재가 끈적끈적하게 엉겨 붙으면서 응결된 것이 용결 응회암이며 기암단애는 용결응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용결응회암이 급격히 냉각될 때 수축이 되면서 세로로 틈이 생겼고 이것이 풍화로 지금과 같은 단애를 이루었다고 한다.

단애는 수직이나 급격사를 이룬 암석의 절벽을 말하며 기암은 주왕의 군사들이 정상에 깃발 꽂아다는 전설에 따라 기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기자가 기이할 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다음에는 백련암을 거쳐 장군봉을 거쳐 가메봉을 거쳐 주봉을 환종주 해보고 싶다. 아침 일찍 시작하면 저녁이면 내려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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