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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Sep 13. 2021

야은 길재의 숨결이 숨 쉬는 금오산을 가보다

금오산을 간다.

설렌다.

3년 전에 가보았는데 그때의 돌탑과 성안의 개울이 잘 보존되고 있고 그대로 흐르고 있을지 궁금하다. 3년 전 봄에 진달래가 피던  봄 시즌과 야생화가 피는 늦여름 시즌의 풍경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돌탑은 그대로 있거나 돌탑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해본다. 서울 근교 산행이나 서울에서 멀리 가는 것은 우리만 있는 벌초 문화에 따라 서울 근교에서 움직이는 것은 교통체증에 따라 움직이기에 어려움이 있는 가운데 근무지 근처에서 집에 토요일 늦게 가기로 하고 토요일 2시간 내외로 갈 수 있는 산을 찾아 가 보기로 하였다. 경북 서부지역의 대표 도시인 구미의 산인 금오산을 가본다.


금오산은 예전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는데, 삼국시대에도 중국의 유명산과 비교하여 중국의 오악 중 중악 숭산(崇山)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하여 남숭산(南崇山)이라고도 하였다고 있다. 지금의 금오산이라는 명칭은 이곳을 지나던 삼국시대의 승려 아도(阿道)가 저녁노을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 지은 것에 유래한다고 한다. 구미시 인동이라는 동네에서  금오산을 보면 능선이 흡사 사람 얼굴처럼 보이기 때문에 누워있는 부처에 빗대 금오산 와불(臥佛)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4명이 가기로 하였는데 1명이 집안일이 발생하여 못 가고 3명이 간다. 1명은 서울에서 내려오고 2명은 대전에서 출발한다. 대전에서 출발하여 서울에서 내려오는 1명을 KTX 김천구미역에서 픽업하기로 한다.  2명 이상이 움직일 경우 승용차가 유용하다. 기차역까지 가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현지에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김천구미역, 천안아산역 등은 지역명칭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KTX역이다. 지역이 우선이기도 하고 지역에 위치를 활용하기 때문에 사용된다. 김천구미역은 지역은 김천혁신도시에 위치하고 있다. 천안아산역은 아산에 위치하고 있어 천안지역 주민들이 많이 사용되고 역사 건설에 많이 부담하고 있어 천안아산역이라고 명명하였으나 김천구미역은 김천 구미 경계도 아니고 구미지역 사람들이 많이 사용한다는 것은 구미시에서 건설에 따른 분담금을 많이 내었다는 이유로 김천(구미)역으로 표기한다.


요즈음은 이른 시간은 고속도로를 비롯하여 안개 천국이다. 그래도 안개 시야가 1km 정도 되어서 문제는 없다. 산이 높은 곳은 안개가 10시 이후까지 안개가 있어 산의 형세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고속도로만 보이고 주변은 안개가 가득하다.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동차만 달린다.


김천구미역에서 서울에서 온 사람을 픽업하는데 주정차 단속이 무섭다. 1분 이상 주정차하면 단속이다. 무섭다. 구미 쪽에서 배웅이나 마중이 많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생각한다.  김천혁신 도시의 관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전에 이곳을 왔을 때 이렇게 번화하지 않았는데 유동성이 이곳을 번화가로 만들고 있다. 이곳에 비하여 오송은 유동성이 더 높은데 오송역 주변은 아직인데 이곳은 이제 제법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도시의 한 부분으로 김천구미역은 자리 잡고 있으나 오송역은 그냥 스치는 자리에 머물러 있다.


역에서 금오산 2 주차장까지 40여분을 이동한다. 우리가 공간에 대한 지각 능력이 탁월한데 이제는 도로에 대한 공간을 확인하지 않는다. 산길은 공간지각 능력으로 찾아가는데 도로는 문명의 이기를 최대한 이용할 뿐이다. 가는 길을 놓쳐도 아무 걱정이 없다. 다음 교차로에서 갈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그 지역에 대하여 많이 알았는데 요즈음은 모른다. 그냥 길만 보고 지나친다. 그리고 누가 물어보면 모른다. 전화번호도 머릿속에 있었으나 기계에 의존하여 본인의 전화번호 이외에는 거의 기억하지 않는다.


서둘러 금오산을 오를 준비를 한다. 금오산 2 주차장에서 도로가 아닌 공원으로 올라가는데 야은 길재 역사체험관이 있다. 야은 선생은 고려말 학자로 조선이 개국하자 낙향하여 이곳 금오산에 은거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구미에는 야은 선생과 관련하여 야은초등학교도 있다.


야은 선생은 이곳에 은거하면서 후학들을 위하여 성리학을 연구하고 이를 전파하였다고 한다. 야은 선생은 이곳에서 나중에 사림의 거두가 된 김종직의 부친 김수남을 제자로 두었다고 한다,  김종직은 아버지로부터 길재의 영향을 받았고 김종직의 문하생이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이다.


야은 선생의 회고가(懷古歌)는 고등학교 때 배운 기억이 있다. 길재가 훈민정음 반포전에 생을 마감하였으므로 한시를  청구영언에 요렇게 수정한 것이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야은 선생 역사 체험관을 뒤로하고 금오산 입구에 있는 도로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메타세쿼이아 길을 만났다. 숲, 도로 그리고 공원이 어우러져 있다. 위에 있는 1 주차장과 호텔로 차량 통행을 막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외래 식물인 메타세쿼이아와 소나무, 참나무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잘 관리된 도로 등이 저절로 사진기를 꺼내어 그 풍경을 담고 싶게 하였다.


금오산 관광호텔 앞을 지나는데 호텔로 들어가는 자동차를 관리하는 아저씨가 다봉이 멋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칼다봉으로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일행들이 궁금해할 것 같아서 우리는 그리로 하산할 것이라고 귀띔하고 지나간다.

구미의 산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그런지 등산객이 이른 시간임에도 많다. 금오산 도립공원을 알리는 조각이 있다. 조각은 남녀로 조형물에서 금오산 정상을 바라다보고 있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조각 작품에 설명을 깃들이면 이해가 가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상상의 날개를 펼쳐야 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친구들이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금오산에도 케이블카가 있다. 케이불카는 호텔 근처에서 출발하여 폭포 근처까지 간다. 명소를 많은 사람들이 찾도록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금오산성 성문을 지나서 올라가다 보면 약수터가 있다. 약수터는 관정을 뚫어서 사용하게 만들었는데 전기를 절약하고 물이 계속 나와서 낭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접근하면 물이 나오게 만들어 놓았다. 해운사를 스치듯 지나고 대혜폭포를 바로 앞에 두고 폭포 감상을 잠시 뒤로 미루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도선굴로 간다. 도선굴은 도선 대사가 수도한 곳이며 야은 길재 선생이 이곳에서 공부를 하였고 임진왜란 시에는 민초들이 이곳에서 전란을 피한 곳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도선굴로 가는 길은 지금은 안전을 위한 다양한 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어려움이 없지만 예전에 칡넝쿨을 이용하여 접근할 수 없었기에 천혜의 수도터이면서 피난처가 되었을 것이다. 3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위에서 떨어지는 물이 있어 더욱 신비하였는데 오늘은 아니다. 다만, 도선굴에서 보이는 곳에 있는 하트 모양의 바위틈으로 물이 신비롭게 떨어지고 있다. 이것이 석간수이다.


다시 폭포로 돌아온다. 조심조심 걸어서 폭포 쪽으로 길을 잡을 뿐이다.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으면 서로가 피하면서 바위 밑을 볼뿐이다. 대혜폭포다. 폭포의 수량이 사시사철 거의 일정하다. 이유는 폭포 상류에서 일정한 수량이 배출되는 구조가 있기에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금오산 하나에서 이렇게 많은 수량의 물이 나오는 것이 신비하다. 그래서 금오산성을 조성해서 대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해발 400m 지점에서 27m의 높이다. 금오산 안쪽의 성안마을이 있었고 그곳은 분지다. 그곳은 군사 1만 명이 주둔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물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금오산은 한국의 자연보호 운동의 발상지라고 한다.  70년대 대통령이 이곳에 자연보호를 실천하였고 그것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자연보호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금오산은 도립공원으로 1호라고도 한다.


그것을 기념하는 기념석도 있고 대통령이 방문하여 이렇게 되었다는 표지판도 있다.


대혜폭포를 지나자마자 이제 가파름이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할딱 고개라고 명기되어 있다. 다른 곳에서는 깔딱 고개라고 할 것인데 이 지역명칭을 사용하였다.


할딱 고개를 올라가면 반대편을 볼 수 있는 바위봉이 있고 반대편을 보니 절경이다. 그 절경을 반대편에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그 절경 위의 능선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오늘도 그것을 느꼈다.


이곳이 할딱봉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성안으로 갈 수도 있고 정상으로 갈 수도 있다고 한다. 성안에서 계곡으로 하산하면 계곡의 풍부한 수량을 확인하고 이끼계곡도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이제는 산을 오르면서 전망이 없다. 오형탑이 있는 곳까지 오직 야생화만이 친구가 되고 우리가 힘들면 쉬어갈 수 있는 볼거리가 되었다.


처음으로 본 진범이란 꽃이 발길을 한 번씩 붙잡았다. 오리모양의 꽃이 서로를 보고 있다. 연인이듯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 야생화가 이렇게 유혹을 하니 야생화를 관찰하려고 산을 다니는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다.

마애석불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잡기 전까지 가파름이 계속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멀리서 보는 산세도 그렇다.

우리가 야생화를 즐기면서 가는데 내려오시는 할머니가 마애석불 근처에 꽃이 예쁘다고 한다. 그분은 야간 다리를 절면서 이곳까지 올라왔고 마애석불을 갔다 온 것이다. 종교의 힘이 무섭다.

할머니들이 설악산 봉정암을 가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이곳도 있다.


 정상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가파르다가 마애석불 가는 길은 옆으로 간다. 산의 9부 능선에서 평탄하게 간다. 오형탑이 있는 곳으로 간다. 금오산에는 돌탑이 곳곳에 있다. 오형탑과 다른 돌탑은 차이가 있지만 정상 부근에도 있고 입구 근처에도 있고 칼다봉 근처에도 있다. 일반적인 돌탑은 층이 없으나 오형탑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오형탑은 금오산의 오자와 손자의 형을 합친 것으로 손자가 먼저 생을 마감하여서 그것을 기리기 위하여 돌탑을 쌓았다고 한다.


돌탑은 3년 전보다 많다. 한국지도도 만들어 놓는 등 다양한 돌탑들이 만들어져 있다.

손자를 생각해서 이렇게 공을 쌓고 있다.

돌탑을 지나 마애석불로 간다. 돌탑이 있는 곳은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칼다봉 근처에서도 이곳이 보인다. 산 밑에서도 보인다.


마애석불이 있다.  금오산마래여상입상이며 보물 제490호이다.  문화재에 정통한 지인이 바위의 모서리를 이용하여 입상을 조각한 것이 특색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 3년 전에 왔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석불은 그대로다. 할머니가 그렇게 예쁘게 꽃을 피웠다는 것은 야생화가 아니고 불당화였다. 어떻게 보면 그분이 보았을 때는 그것이 예뻤다고 보면 될 것이다.

마애석불에서 불교신자들은 합장을 하고 소원을 빈다. 고려시대에 저 석불을 조성하였다고 하는데 1000년의 풍화를 잘 견디었다. 음각이라면 벌써 풍화되어 보이지 않을 것인데 양각되어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애석불을 지나서 바위에 떨어지는 샘이 석간수가 있다. 누가 그곳에 물그릇과 국자를 갖다 놓았다.  그 국자를 사용하고 제 위치에 놓아주기를 부탁하는 글을 적어 놓았다.

정상을 향하여 가파르게 오른다. 약사암을 거쳐서 올라간다. 산을 올라가면서 정상은 항상 가파르게 오른다. 오르면서. 철계단을 오르고 진범 군락지가 우리를 기다린다. 야생화가 지천을 이루고 있고 습기가 많아서 그런지 이끼도 많다.


산을 오르면서 투구꽃이 있는데 투구가 2개인 것과 4개인 것의 차이를 알지 못하여 다른 꽃으로 인식하였는데 투구꽃이라 한다.

가장 힘든 구간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야생화를 담으면서 숨을 고르고 올라서니 약사암이다. 관악산의 연주암도 바위틈에 암자를 지었고 이곳도 비슷하다. 특히,  종각은 구름다리를 거네야 한다. 새벽에 종을 치려 가는 스님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다.

약사암은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당시의 유물은 발견된 바 없으며 1618년(광해군 10) 간행된 <일선지 一善誌>, 1799년(정조 23) 간행된 <범우고 梵宇攷>에 고찰(古刹)이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동행한 지인이 신발을 벗고 약사전에 들려 참배하고 나온다. 현월봉을 가기 위하여 가파른 철계단을 오른다.

금오산 정상인 현월봉이다.

현월봉 정상석 2곳에 있다. 예전에 이곳에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어서 접근할 수 있는 정상에 정상석을 두었으나 이를 2014년 반환받고 정상석을 하나 더 설치하였다고 한다. 전쟁을 겪은 후 우리나라의 중요한 산 정상은 군부대가 오랫동안 주둔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인공위성 등의 발달로 산 정상에서 적을 탐지할 필요성이 낮아져 북과 가까운 곳을 제외하고 하나둘 주둔지가 줄어들고 있다. 그 혜택이 금오산을 간 나에게도 주어진 것이다.

정상은 2014년 반환된 후 복원 과정에 있어 아직 그렇게 큰 나무가 없고 잡목이 자리 잡고 있다. 10년 후가 되면 이곳도 제법 나무들이 자리 잡을 것이다.


이제는 하산이다. 이곳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갈 수 있지만 가파르게 올라온 것도 있고 칼다봉도 보고 싶고 폭포의 물의 근원도 알고 싶어서 이정표가 성안을 가리키고 있는 방향으로 하산한다. 나는 하산할 때 가파른 것은 싫다. 가파르게 떨어지는 것은 폭포수 이외에는 좋아하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


성안으로 내려가는데 현월봉 정상에 있었던 미군부대 등을 위하여 만들어 놓은 시설을 현재는 통신사, 방송국 등에서 사용하면서 필요한 물탱크에서 넘치는 물이 호수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어 시원하게 세수를 해본다.


이곳에서 음각한 공적비를 보았다. 조선 고종 때 이곳의 금오산성을 잘 수리하였다는 송공비다. 20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 비석의 글자들이 이제는 풍화에 알아보지 못할 정도다. 옆에 있는 표지판에 그 내용을 정리하여 두어 이를 알아볼 수 있다. 마애석불은 양각이 되어 그 자체가 부서지지 않는 이상 그대로 보전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돈을 내어서 이 석불에 집을 짓는다면 더욱더 오랜 기간 보전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성안에 도착하니 개울이 있고 개울에 봄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던 물풀이 자리 잡고 있어 그렇게 맑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연못도 있고 연못 주변에 산책로도 있다. 성안을 소개하는 표지판이 이를 설명하고 있다.


이곳은 천연 분지로 화전민 철거 정책에 따라 화전민들을 철거시키기 전까지 8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이곳은 9정 7택이라 하여 물이 무척이나 많았다고 한다. 이 물이 폭포로 가서 폭포수가 된 것이다.


이 마을 주변으로 산성을 쌓았다고 하여 성안마을이 된 것이며 지금은 마을이 없어져 성안이 된 것이다. 강원도 구곡폭포 위의 문배마을이나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문배마을은 이곳보다 넓고 가구수가 많아서 지금도 유지가 된다.


성안 개울을 건너 맞은편 산으로 올라간다. 산 정상이 성안전위봉이다. 성안과 연결되어 있다. 산성의 흔적이 계속된다. 천혜의 산성에 또 성을 추가로 쌓아 놓았다. 누가 저 암릉을 올라오겠는가.

봉우리를 명명하면서 올라오는 것을 생각한다. 하산할 때에는 높은 곳에서 내려가는 것인 만큼 봉우리라는 의미를 그렇게 느끼지 못하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현월봉에서 시작하여 내려가는 것이기에 봉을 오르는 것은 100m 이내고 내려가는 것은 수백 m가 된다. 그래서 힘든 줄 모르고 내려간다. 칼다봉이 멋있다고 하는데 위에서 보면 암릉이 보이지 않기에 그렇게 의미가 없다.


이제 맞은편 현월봉을 본다. 멀리 오형탑이 있는 암릉도 보인다. 현월봉을 오를 때 솟아나 있는 봉우리가 힘들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습기가 많아서 그런지 곳곳에 버섯이 나 보라고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냥 얼굴이 예쁘다고 칭찬하고 지나갈 뿐이다. 지역 사람이 예쁜 버섯을 사진기에 담고 있다. 우리는 야생화를 담았는데 이분은 버섯을 채취하지 않고 사진으로 담고 있다. 우리가 버섯이 정말 많다고 하니 이분이 지역 사투리로 '빛깔 나게 많다'라고 한다.  그것이 매우 많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말았다.


산을 내려오면서 칼다봉을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괜히 이곳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금오지'로 내려가서  주변을 둘러보고 주차장에 자동차를 쉽게 회수를 하였다.


공원에서 물이 내려오는 곳에 발을 담그고 노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도 발을 담가 본다.


이렇게 한 바퀴 도는 것이 13 km내외다. 여유롭게 걸어서 6시간이다.


이번 등산은 일거양득이다. 등산을 하면서 문화를 탐방하였다. 이곳에 있는 돌탑 등의 다양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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