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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Jul 26. 2021

야생화 천국 만항재가 있는 함백산을 가다

함백 하면 탄광이 생각난다. 함백탄광이 유명한 결과이다. 대부분의 탄광이 폐광이 되어 있다. 석탄은 미래를 위하여 보전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유용할 때까지 그대로 땅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 후손들도 이를 사용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여름날 함백산으로 간다. 7월의 무더위가 이제는 산으로 가는 것도 고민하게 만든다. 해발이 높지 않은 서울 근교산은  새벽에 산행을 하지 않으면 그 열기에 온 몸이 땀으로 샤워를 해야 한다. 아내에게 간다고 하면 이 더운 날 집에 있으라고 핀잔이다. 중국에 가 있는 친구는 여름휴가를 차마고도 트래킹으로 보내고 있다. 해발 2000m가 넘는 고원지대를 걷고 있다. 부러을 뿐이다. 하지만, 속설이 있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부러움을 우리는 강원도의 1000m가 넘는 고산지대로 간다. 다른 나라에서 보면 웃긴다고 하겠지만 국뽕으로서 우리에게 만족이고 우리에게 적응해야 한다.


산을 찾는다. 그래도 강원도 고산지대로 가는 산악회 버스를 찾는다. 있다. 함백산이다. 두문동재에서 만항재까지 걷는 길이다. 해발 1268m에서 시작하여 해발 1572m까지 오르고 다시 1330m로 하산을 하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이른 아침 버스를 타기 위하여 전철역으로 이동하는데 벌써 27도라고 한다. 지하철은 한산하다. 한산한 지하철은 쾌적함을 주고 시원함을 만끽하게 한다. 집에서 사람들이 많으면 덥다. 아니 사람들의 체온에 의하여 그 열기를 배가 시킨다. 친구는 벌써 탑승하고 있다. 늦지 않았지만 지하철역에서 2계단씩 성큼성큼 걸어서 올라간다. 처음 접하는 산악회인데 우리가 익히 아는 산악회와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서로서로가 안다. 다음에 이를 다시 이용하여야 할지 고민에 쌓이게 만든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관계에 익숙하고 더 이상 접근을 허용하는 것에 부담이 발생할 뿐이다.

 

버스는 교대역에서 산객을 태우고 고속도로에서 또 태운다. 버스전용차로를 시원하게 달리면서 강원도로 가는 피서객들로 바라볼 뿐이다. 코로나19로 버스에서 말을 하지 못하게 하지만 쑥덕쑥덕한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있고 최근에 만난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려 치악산 휴게소에 한차례 숨을 고르기 위하여 잠시의 여유를 준다. 치악산 휴게소는 서울을 떠난 지 2시간이 지났지만 서울보다 시원하다. 자뭇 오늘이 기대된다.


산행대장이 여유로운 산행 계획을 공지하는데 우리에게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킨다. 산행 종료를 5시로 공지한다. 우리에게 9km를 무려 7시간을 주니 도전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산행 시작 후 4시간 이내에 만항재에 도착하면 우리가 가보지 못한 불교의 성지 적멸보궁을 가보자다. 만항재에서 적멸보궁이 있는 정암사까지는 3시간이면 족할 것 같다. 그런데 정암사를 어떻게 갈 것인지 찾아보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의 실수였다. 결과적으로 도로를 이용하여 정암사로 갔다. 산길로 갔으면 햇빛도 덜 보았을 것인데 그렇지 못하였다. 여유는 찾고 알고 하는 것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제천, 영월을 지나고 민둥산 입구를 구경시키고 사북의 강원랜드를 뒤로 하고 버스는 두문동재까지 힘겹게 엔진을 가동하면서 오른다,  주변 계곡의  맑은 물은 시원함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다. 저만치 고갯마루를 앞두고 등산객들이 두고 간 차들이. 주인을 기다리면서 햇빛을 그대로 받고 있다. 고산지대라고 하나 햇빛은 그대로 강한 것이 사실이다.


 두문동재는 해발 1,268m의 고개로, 싸리재라고도 하며 국도 제38호선  및 백두대간 이 통과한다. 1981년 국도 제38호선 정선-삼척 구간 개통 당시에는 2차선의 구불구불한 도로로 그대로 고개를 넘어갔으나, 2001년 11월 1일 두문동 터널이 개통이 되고 난 후부터는 등산객들이 주로 이용한다. 고갯마루에서 내리는 시원한 공기가 주변을 감싼다. 3시간 30분 버스에 있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두문동재에서 무엇을 볼 것인지는 의미가 없다. 다만,  두문동재를 표시하는 이정표와 사람들의 부산함이 있을 뿐이다. 친구는 서두른다. 나는 항상 처음 시작 지점에서 두리번거리는데 친구는 미리 준비하고 저만치 가 있다.

이제 시작이다. 길은 좋다. 이곳으로부터 은대봉,  중함백,  함백산 정상으로 가는데 오르내림이 300m 남짓이다. 길 주변에는 야생호가 날 보러 오셨어요 하고 방끗 미소 지을 뿐이다. 은대봉을 오르면서 본 야생화가 함백에도 있고 만항재 야생화 단지에도 있다. 다만. 그 야생화가 어느 정도 군락을 이루었냐의 차이일 뿐이다.


이렇게 많은 야생화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 곳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다만. 전망은 없다. 야생화를 사진기에 주어 담을 뿐이다. 전날 공단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사전에 공부하였다는 친구도 처음에는 이 꽃 저 꽃 하다가 범위를 벗어난다. 동자꽃,  모시대, 노루오줌, 나리꽃,  취나물,  한계령풀, 자주꽃방망이, 석잠풀 등 이름도 다양하다. 나는 그 이름을 조금 알다가도 어느 정도 지나면 잊어버린다.

은대봉까지 야생화를 담다 보니 그냥 올라왔다고 해야 될 것이다. 은대봉의 정상석이 예쁘다. 그 아름답다고 해야 될 것이다.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올라온다. 산중이 시끄럽다고 할 수 없으나 고요한 중에 사람이 온 것이니 새들도 놀랐을 것이다.

은대봉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멋있다. 그냥 정상에 있는 야생화가 아름다음을 뽐내고 있다, 이곳에서부터 중함백까지 야생화를 보고 길을 보고 걸을 뿐이다. 길은 고원지대 즉,  능선길을 걷는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약간의 오르내림은 그저 신문의 가십거리와 같다고 해야 될 것이다. 가다가 멈추면 야생화를 담는다고 해야 될 것이다. 상해에 가 있는 친구가 같이 하였으면 더욱더 많이 담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우리 나름으로 야생화를 담고 기록해보려고 애쓴다.


은대봉을 오를  때 본 야생화는 제외하고 담는다. 우리는 속도를 낸다. 볼 것은 야생화이고 주변은 볼 것이 없다. 야생화를 보고 담고 걷고 연속이다. 이제는 일산 일사를 해보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정암사까지 가보자로 결론이 난 것이다.

한 분의 산객이 우리의 뒤를 따라온다. 평상시 다른 산악회를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번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 산악회를 이용한 것이다. 함백에 가까우면서 함백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친구는 정상석이 없고 이정표만 있다 하고 동행을 하는 산객은 있다고 한다. 결론은 친구 말이 맞았다. 함백을 오르면서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에서 바라다본다. 운탄고도도 보인다. 함백산 정상도 살짝 보인다.


중국에는 차와 말을 교역하던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 ‘차마고도(茶馬古道)’가 있고 차마고도는 현재 관광, 트레킹 코스로 유명하다고 한다. 중국에 있는 친구가 소식을 전하기를 이 길을 걷고 있다고 하였다. 차마고도가 중국에 있다면 한국에는 운타고도라고 한다. 과거 석탄을 나르던 길이 ‘운탄고도(運炭高道)’다. 운탄고도는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는 고원의 길’이란 의미도 있다. 정암사를 갈 때 저길 을 걸을 것이다 했는데 야생화에 유혹되어 길어 놓쳐 다른 길로 걸었다. 다음에 걸어볼 것이다.

함박산 정상위의 구름이 나래를 펴고 있다. 함백에 도착하니 정상석은 없고 이정표에 누군가가 함백이라고 써놓았다.  해발은 1509m다. 정상에 평평한 바위가 있다. 부처를 올려놓은 지주석처럼 보인다.  친구가 올라가서 가부좌를 틀어본다. 함백산을 가기 위하여 내려갔다가 올라간다. 봉우리에서 다음 봉우리로 갈 때 가파르게 오르고 가파르게 내려가기도 한다. 가파르게 올라가고 편안하게 내려가기도 한다. 오르면 내리고 내려가면 올라간다.

함백산과 함백의 경계에 주목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이 휴식할 수 있도록 고로쇠나무 밑에 자리 잡고 휴식할 수 있도록 돌들을 정리하여 놓았다. 주목이 서식하는 1300m 지점은 언제나 더위보다는 시원함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름밤은 긴팔의 건 옷이 필요하다. 만항재 올라가는 길에 캠핑하는 사람들이 자리 잡은 이유를 알 것 같다. 

함백산 정상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여기의 야생화는 1500m가 넘어서 새로운 것을 보여준다. 주목과 야생화와 잡목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상에 첨성대 모형을 만들어 놓은 이유를 모르겠지만 정상에 있다.


함백산은 아내와 딸과 함께 3년 전에 만항재에서 출발하여 오른 곳이다. 당시 산을 가지 않았던 아내가 가장 높이 오른 산이다. 해발 1572m다. 평일 휴가를 내어 이동하면서 올라 사람이 없었지만 산객이 있어 우리 가족을 산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주었던 곳이다. 나는 한 번만 갔다 오면 그곳의 등산로를 이상하게 기억을 잘한다.


정상에서 만항재까지 가는 길은 내려가는 길이 가파르다. 이를 우회하는 길이 있는데 도로다. 이 여름날 햇빛을 받으면서 이를 무시하고 걷는다면 도전해봄직 하지만 우리들은 그 길을 무시하고 내려간다.

정상 바로 밑에 함백산에 대한 안내가 있다. 이를 소개하면 함백산은 우리나라 즉,  남한에서 6번째로 높은 산이라고 한다. 순서를 보면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계방산 다음일 것이다. 조선시대 영조 때의 산경표에 태백산으로 기록되어 있고 언제 함백으로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또 새로운 자료에 따르면 『삼국유사』 척주부에 "근대봉 남쪽에 상함백산(지금의 은대봉) 중함백산(본적산)  하함백산(지금의 함백산)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허목의 미수기언에 보면 "태백산은 신라 때 북악인데 문수, 대박의 두 봉우리가 있고 우보산, 우검산, 마읍산, 백산 등이 다 태백산이다."라고 하였으니 함백산은 현재 태백산보다 높지만 태백산의 한 봉우리였던 것이다.


산을 내려간다. 한가족이 올라오고 있다. 아들이 건강해 보인다. 땀이 머리에서 얼굴에 그득하다. 그 건강을 보완하기 위해 400m 남짓의 길을 오르고 있다. 가파른 숨을 들이키지만 힘들어하는 것은 매냥 힘들 것이다. 저렇게 해야 건강을 유지할 것이다. 부모는 자식이 잘되기를 바란다. 남들에게 놀림당하는 것도 싫다. 뛰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변화되고 있다. 그냥 평범하게 무난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정상을 지나면 도로를 만나는데 만항재를 가기 위하여 도로로 가거나 산으로 갈 수 있다. 뜨거운 아스팔트보다는 산으로 그렇게 오르내림도 없고 그냥 산책로를 걷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함백산의 기원단을 만난다. 조선시대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곳이나 최근에는 석탄 탄광에 일하는 사람들의 무사안전을 기원을 기도했던 곳이라 한다. 탄광사고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한 만큼 이러한 행위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근대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태백산의 천제단에서 제를 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웃한 산에서 제를 올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만항재이다. 만항재는 해발이 1300m가 넘는다. 주차장에서 만항재까지 아스팔트로 걷는다. 해발고도는 1330  한국에서 차량을 이용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이기도 하다. 강원도민일보에 따르면 이곳에는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가 있고 고려말 또는 조선 초기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에 위치한 광덕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두문동에서 살던 주민 일부가 정선으로 옮겨와 살면서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이곳에서 가장 높은 곳인 만항에서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이곳은 야생화의 천국이다. 고려 민초들의 마음을 한 사람 한 사람 대변하듯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로 만항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곳은 해발고도가 높아 야생화가 늦게 피지만 화려하기로는 다른 어떤 군락지보다 더 빼어나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정암사로 가야 하는데 가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고 야생화에 유혹되어 야생화 단지로 들어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만항재에서 이맘때쯤이면 항상 야생화 축제를 하는데 코로나 19로 취소되었다. 그렇지만 야생화를 구경한다.

친구가 다시 꽃에 대한 지식을 풀어 놓는다. 꽃모양이 같다고 같은 꽃이 아니며 꽃이 같고 있는 특성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반복학습이 중요하다고 한다. 야생화 이름을 듣고도 20분만 있으면 머리에서 사라지는데 같은 꽃을 계속 보면서 이름을 반복하면 그 이름이 남아 있기는 하다. 노루오줌,  동자꽂, 술패랭이꽃, 마타리, 참취,  모시대, 하늘나리가 오늘 되새긴 이름이다.

 

산을 넘어오면서 궁금하였던 야생화에 대한 표지판이 있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정암사 가는 길이 만항마을에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그곳에 가서도 몰랐다. 야생화 단지에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야생화공원으로 내려간다. 거리는 1km 남짓이다.

야생화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운탄고도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야생화공원에서 야생화를 만끽할 뿐이다.

이제 정암사로 가기 위하여 공원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저 꽃 이름이 무엇이에요 물어보니 답이 걸작이다. 야생화입니다. 정암사는 어떻게 가요 물으니 이 또한 원론적이다. 도로를 따라가면 됩니다. 자장율사 순례길이 있다는 사실을 이분들이 알리 없다. 무관심한 것에 대하여 관심을 유도할 수가 없다.


도로에서 정암사까지 3km라는 이정표가 우리는 반가울 뿐이다. 정암사까지 아스팔트로 걸어가지만 3km는 도로 위를 걷기에 40분 이면 충분하다.

도로를 걸으면서 못내 아쉬워 도로 주변의 야생화도 담는다. 개울에 더위를 식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개울 속으로 들어오라고 하나 정암사를 가야 한다. 정암사를 갔다 온 후 개울에 들어가기로 한다. 걷는다. 걸으면서 염수 자동 분사장치도 본다. 이곳은 겨울에 눈이 많다. 제설작업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니 염수를 자동으로 분사하여서 제설을 하는 것이다.


개울에 있는 사람들이 또 있다. 시원하다고 하면서  들어오라고 한다. 하지만,  다음을 기약한다. 곳곳에 캠핑 온 사람들이 텐트를 설치하고 있고 카박족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다음에 이곳에 텐트를 갖고 오거나 캠핑카를 갖고 와 보리


아스팔트로 걸어서 내려오다 보니 정암사가 바로이다. 정암사는 한국에 있는 적멸보궁이 5개 있는데 그중의 하나다. 오대산 상원사, 영축산 통도사,  백덕 사자산의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의 정암사이다. 이곳은 태백산이 아니지만 태백산의 정암사라고 한다. 이곳을 지나면 산행을 하면서 불교의 성지를 다 돌아보는 것이다.

정암사는 그렇게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적멸보궁이 수리 중이다. 이곳의 적멸보궁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적멸보궁이 있는 경우 대웅전에 주불이 없고 적멸보궁을 볼 수 있도록 창이 있다. 봉정암에도 사리탑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정암사는 적멸보궁을 수마노탑에 모시고 있다고 한다. 대웅전에서 수마노탑을 볼 수도 없는 곳에 있는데 의문이 들뿐이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창건한 사찰이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가사 한벌과 진신사리를 받아 창건한 것이다.

진신사리가 있는 수마노탑은 고려시대 탑인데 어떻게 신리 시대의 탑인지 모르겠다.  이곳에 있는 수마노탑이 있는 곳으로 다시 올라간다. 수마노탑은 최근까지 보물이었으나 2020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급경사를 이룬 산비탈에 축대를 쌓아 평평한 대지를 만들고서 석탑을 세웠다. 벽돌처럼 돌을 다듬어 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석탑은 오래전부터 각 층의 돌이 없어지거나 파손되어, 1964년부터 보수 문제가 논의되다가, 1972년에 해체 복원하였다고 한다. 석탑 앞의 배례석이나 정암사에 전하는 여러 유물을 비교하면, 이 석탑이 처음 건립된 시기는 늦어도 고려시대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정암사 적멸보궁 앞에서 동행한 산객이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고 기뻐한다. 자기 생에 거의 처음 찾은 네 잎 클로버라고 한다.


산행을 마치기 전 수마노탑을 가기 전 자장율사 순례길을 보고 우리는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자장율사 순례길을  알았더라면 아스팔트로 걸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자장율사 순례길은 정암사에서 열목어 서식지, 적조암터(자장율사의 열반지로 전하는 암자), 뾰족바위(자장율사의 유골을 안치한 바위로 전해지는 곳)를 거쳐 만항마을까지 이어져 있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편도로 4.2km 거리다.


자장율사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다시 한번 자료를 찾아보니 매일경제신문 등의 자료에 "그는 만년에 문수보살을 다시 친견하기 위해 태백산 석남원(지금의 정암사)에 머물렀다. 하지만 자장은 위엄이 높아질수록 계율을 엄격히 하며 수행정하던 예전 모습이 아닌 거만한 승려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비렁뱅이 노인이 삼태기에 죽은 개를 거꾸로 메고 와서 자장을 만나고자 하였다. 하지만 제자들은 비렁뱅이를 내쫓았고 자장 역시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순간 비렁뱅이는 "돌아가겠다 돌아가겠다! 아상(我相)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알아보겠느냐?" 하고 삼태기를 거꾸로 터니 개가 변하여 사자가 되어 빛을 발한 후 사라졌다. 그 비렁뱅이가 바로 문수보살이었던 것이다. 이에 자장율사는 자신의 오만함으로 문수보살을 알아보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과 충격으로 그만 쓰러져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이 들어 있는 길이 자장율사 순례길이다. 서양에서 예수가 현신하는 톨스토이 소설이나 동양의 부처가 현신하는 전설이 비슷하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을 홀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가 이제는 너무나 부자가 되어 가고 있다.

만항마을에서 이것을 찾아야 되는데 못 찾은 우리의 잘못이지만 정암사에서도 그곳 어딘가에 이를 설치하여야 했다고 본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장율사 순례길을 조금 걸어서 올라간 개울에서 발을 담그고 함백산을 등산하고 정암사까지 온 땀을 씻는다. 7월 말인데 발이 시리다. 차디찬 물에 10분 이상 발 담그고 세수하고 머리 감고 마음을 씻는다.

만항재에서 5시에 출발한다는 버스가 4시 30분에 내려온다고 한다. 정암사 주차장에 주차하고 세수하고 서울로 간다고 한다. 우리는 기다릴 뿐이다. 동행한 모든 분들이 시원함을 만끽하고 서울로 서울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개울속에 발을 담그지 못한 아쉬움이 그들에게 있지만 그래도 만항재의 개울, 정암사 앞의 개울에서 마음을 씻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죽전 휴게소에서 잠시 내린 버스 입구에서 뜨거운 공기가 우리에게 오늘 하루가 얼마나 즐거웠는지를 증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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