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등산은 시원한 시간에 시작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등산이었다. 하지만, 멋진 경치는 잊을 수가 없다.
전남 고흥은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고흥의 역사는 슬픔의 역사였다. 우리나라에 한센인을 집단이주시켰던 곳이 고흥군 소륵도가 있는 곳이다. 최근에는 우주기지가 외나로도에 설치되어 있어 사람들은 소륵도의 슬픈 역사는 잊어버리고 이제는 우주로 다가서는 고흥을 생각한다. 그러한 고흥은 장흥, 해남, 강진 등과 같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고흥이 심하다고 할 수 있다. 고흥을 가기 위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순천이나 여수까지 KTX로 이동을 한 후 그곳에서 다시 시외버스를 이용하여야 하는데 그렇게 교통편이 많지 않다. 광주에서 접근하는 시외버스가 많으나, 여수나 순천에서 접근하는 것은 많지 않다.
광주에서도 2시간 정도 걸려야 고흥에 접근이 가능하다.
고흥의 팔영산을 간다고 하니 H가 그렇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 갈 필요가 있냐고 한다. 사실 아침 7시에 출발하여 팔영산 주차장에 도착하는 시간이 11시 30분이니 4시간 30분이 소요되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본다. 친구들이 동참을 하지 않으니 나 홀로 산행을 계획하고 안내산악회 버스를 탐색하였다. 안내산악회 버스를 탑승하면 나 홀로 산행이라도 문제없기 때문이다. 1년 만에 탑승하는 안내산악회 버스는 그동안 요금이 인상되었지만 팔영산 왕복에 53000원이라 대중교통요금보다 저렴하였다.
이렇게 고흥의 팔영산을 위한 계획을 확정하고 안내산악회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예약을 하였다. 사당역에서 출발하여 양재역, 죽전, 신갈을 거쳐서 고흥의 팔영산까지 이동한다. 여름이라 그런지 그렇게 많은 안내산악회 버스가 운영이 되지 않고 있다. 이름 있는 명산 이외에는 거의 없고 무박산행으로 아침에 산을 오르는 설악산, 지리산, 월출산 등의 안내산악회 버스는 움직이지만 10시 이후에 도착하여 산을 오르는 버스는 거의 모객이 되지 않고 있었다. 사당역을 출발한 팔영산을 가는 버스도 20명 정도만 탑승을 하고 출발을 하였다.
양재, 죽전을 거쳐서 버스는 달린다. 정안휴게소를 한숨을 돌리고 이제는 팔영산을 향해 달린다. 순천을 지나고 이제는 고흥으로 들어선다. 폭염이 있고 그 폭염 속에 산을 올라야 하는데 일기예보상에는 33도 내외로 보았는데 버스에 설치되어 있는 외부온도는 34도를 넘어서 35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 온도에 산을 오른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등산대장이 일어서서 안내하기를 팔영산은 나무그늘이 거의 없기에 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준비를 하여야 하고 탈진을 하지 않도록 물을 충분히 섭취할 것을 요청한다.
멀리 팔영산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 봉우리가 오묘하다. 지나가면서 슬쩍 사진으로 담았는데 마지막에 깃대봉을 가면서 사진을 담는 것이 보다 명확히 팔영산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버스는 능가사 주변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를 한다. 버스에 내려서서 얼마나 더울까 하였는데 생각보다 덜이다. 바닷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폭염처럼 느끼지는 못한다. 능가사는 내려오면서 한번 보기로 하고 팔영산을 바로 간다. 팔영산이라는 이름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고흥군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니 이렇다. 팔영산의 본디 이름은 팔전산(八顚山)이었다. 중국 위왕의 세숫대야에 그 봉우리가 비친 고사에서 그림자 영(影)을 쓴 팔영산이라고 주로 부르고 있으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신령할 령(靈)으로 표기되어 과거 신령한 산으로 팔령산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능가사를 지나고 자동차 야영장을 만나다. 이상하게 이곳의 자동차 야영장은 사찰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나는 물이 부족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편의점을 찾지만 자동차야영장 마지막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없었다. 마지막 지점에 무인점포와 카페가 있다. 그 무인점포는 재미있다. 우리 국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설치되어 있는 무인점포이다. 무인점포에서 생수를 구입하는 방법은 이렇다. 먼저, 생수를 선택하고 전화를 걸어서 물품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점포주인이 가격을 알려준다. 해당가격만큼 무통장 입금을 하면 된다. 나도 이러한 절차를 수행하고 생수를 구매하였다. 2L가 있었지만 1L를 추가 구매하였다.
이제 산행을 시작한다. 야영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등산로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올라간다. 우리보다 앞서온 동네산악회 회원들이 있다. 언니, 누나, 오빠, 동생, 형 등 다양하 용어가 오가고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위치 안내도 등산로를 복잡하게 하고 있다. 12시 가까이 되어 등산을 시작하여서 그런지 등이 바람이 불어 시원하게 느끼지만 등은 땀으로 흥건하다. 흔들바위까지 사람들이 쉴세 없이 오른다. 시간이 촉박하지도 않은데 쉬어갈 수 있는 휴식터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바닷가에서 등산을 하는 것은 해발이 400m를 오르는 것도 힘들다. 그 400m가 10m 이내에서 출발하여 오롯이 400m를 오르기 때문이다. 흔들바위는 마당처럼 꼼짝하지 않는다고 하여 마당바위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른 몇 명이 지속적으로 흔들면 흔들린다고 하여 흔들바위 하고 한다고 하였다.
흔들바위에서부터 1봉 정상까지는 490m 정도이다. 그런데 정상을 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다고 느낄 수 없는데 흙산에서 암릉지대를 만난다. 암릉을 오르는 데크를 만나고 지그재그로 올라서는 것이다. 암릉을 올라서며 왼쪽이 1봉인 유영봉이고 오른쪽인 2봉인 성주봉이다. 1봉을 그대로 2봉을 갈 수 없기에 1봉을 오른다. 이제는 힘든 구간이 거의 지났다고 동네산악회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이곳이 고향인 사람이 있다. 그분은 이곳에 자주 왔는데 이곳까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1봉을 오르면 바로 앞에 2봉인 성주봉도 보이고 멀리 선녀봉도 보인다. 고흥 근처에 있는 분들은 선녀봉부터 올라서 2봉으로 올랐다가 1봉을 갔다가 다시 온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렇지 않으니 1봉을 바로 오른 것이다. 1봉은 유영봉이다.
유영봉에 대하여 국립공원공단은 "유달은 아니지만 공맹의 도 선비례라 유건은 썼지만 선비풍채 당당하여 서비의 그림자를 닮아 유영봉이 되었노라"라고 소개하고 있다. 유건모양의 봉우리란 것이다. 그 봉우리를 오르고 내려오면 다시 2봉인 성주봉을 가야 하지만 그늘에서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해발 1m 내외에서 490m 가까이 1시간 정도에 올라오면서 힘들었던 사람들이 1봉을 오르고 2봉으로 가기 전에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와같이 늦은 시간에 등산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허기진 배를 이곳에서 채우는 것이다. 그래야만 2봉부터 8봉까지 무사히 걸을 수 있는 것이다.
1봉에서 보면 2봉의 암릉을 오르는 데크가 보이고 그 데크를 오르면 되는 것이다. 안전펜스도 있고 그 펜스를 잡고 오르거나 데크를 걸으면 된다. 이곳에 오래전에 왔던 사람들은 도립공원시절에는 데크가 없었지만 국립공원이 된 후 데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2봉은 성주봉이다. 누군가가 옆으로 지나가면서 "성주신이 있는 봉우리를 간다"라고 하였다. 국립공원공단에서는 2봉인 성주봉을 "성스런 명산 주인 산을 지킨 군주봉아 팔봉 지켜 주는 부처 같은 성인바위 팔영산의 주인 되신 성주인 얘기로세"라고 소개하고 있다. 성주봉의 정상석 주변은 그늘이 없어서 지나친다. 그리고 경치가 잘 보이는 곳에서 1봉과 함께 선녀봉을 담고 가야 할 3봉부터 4봉 등을 담는다.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고이다. 동글동글한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는 것이 팔영산의 등산의 묘미라고 할 것이다. 팔영산의 8개의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는 것이다. 1봉을 올랐으면 내려가고 다시 1봉을 올라가는 것이다. 3봉인 생황봉을 가기 위하여 성주봉을 조심조심 내려가고 생황봉을 오른다. 생황봉은 "열아옵 대나무통 관악기 모양새로 소리는 없지만 바위모양 생황이라 바람결 들어보세 아름다운 생황소리"라고 국립공원공단은 설명하고 있다. 생황봉 정상석을 바라보고 4봉인 사자봉으로 방향을 잡는다. 3봉을 오르면 4봉에서부터 6봉에까지 보이는 암릉이 보인다.
4봉인 사자봉은 "동물의 왕처럼 사자바위 군림하며 으르렁 소리치면 백수들이 엎드리듯 기묘한 절경 속에 사자모양 가췄구려"라고 설명되어 있다. 사자봉 자체를 오르고 나면 바로 옆에 있는 5봉인 오로봉이 있다. 4봉과 5봉 사이는 다른 봉우리에 비하여 거리가 가깝다. 사자봉의 다양한 바위를 보고 3봉까지의 암릉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봉우리인 것이다. 그래도 햇빛이 강하게 때리지 않으니 좋다. 내려서는 데크에서 한낮의 햇빛이 안전펜스의 기둥을 뜨겁게 달구고 있어 회피한다. 내려오자마자 바로 오르니 5봉인 오로봉이다. "닷서명의 늙은 신선 별유천지 비인간 도원이 어디이뇨 무릉이 애기로세 5 신선 놀이터가 5로봉 아니 더야"라고 소개되어 있다.
6봉인 두류봉은 좀 세다. 4봉에서 5봉을 갈 때에는 1분도 걸리지 않지만 내려가는 길은 한참이다. 6봉으로 가기 위하여 5봉을 내려서고 6봉으로 올라가는 길을 본다. 6봉을 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힘겹게 오르는 것이 보인다. 그 사람을 중간쯤에서 만났지만 만나기 전 우리는 그 중턱에서 3,4,5봉을 동시에 담는다. 멋있는 경치가 그대로 보인다. 다도해의 아름다운 섬들이 그대로 보인다. 중턱에 만난 사람은 여름날 산을 오르면서 열사병이 온 것처럼 보인다. 같이 걷던 산행대장이 얼음물을 조금 주고 난 다음 힘들면 6봉을 내려간 다음 탈출할 것을 권고한다. 그 사람은 그곳에서 10분 이상 쉬면서 휴식을 취하였다. 우리는 6봉을 올랐다. 두류봉을 오르니 전체가 다시 보인다. 두류봉은 "건곤 맞닿은 곳 하늘문이 열렸으니 하늘길 어디메뇨 통천문이 얘기로다. 두류봉 오르면 천국으로 통한다" 하지만, 통천문은 6봉에 있는 것이 아니고 7봉에 있었다.
7봉은 칠성봉이다. 6봉을 내려가서 그늘을 안고 조금 걸으면 통천문이 나타난다. 그 통천문을 지나서 오르면 7봉 정상이다. 7봉 정상을 가기 전 뒤를 돌아보면 6봉이 보이고 그 옆에 있는 암릉도 보인다. 칠성봉에 대한 설명을 보면 "북극성 축을 삼아 하루도 열두때를 북두칠성 자루 돌아 천만년을 한결같이 일곱 개 별자리를 돌고 도는 칠성방위"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이곳에서 8봉과 깃대봉을 동시에 담을 수 있고 다도해의 다양한 섬이 같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제 8봉까지 걸어간다. 8봉 적취봉이다. 산악대장은 이 적취봉이 제일 좋다고 한다. 같이 산행을 하는 산행 친구가 있다. 안내산악회의 버스의 산악대장이 있고 그 뒤를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같이 한다. 걸어가면서 한 번씩 뒤를 돌아보고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면서 산의 정취를 느낀다. 6봉까지 같이 한 사람이 6봉에서 힘들어하면서 천천히 따라온다. 그리고 산악대장은 8봉이 제일 멋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나도 돌아보니 8봉인 적취봉이 360도를 파노라마처럼 전체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적취봉에 대하여 " 물총새 파란색 병풍처럼 초목의 그림자 푸르름이 겹쳐쌓여 꽃나무 가지 역어 산봉우리 푸르구나"라고 소개되어 있다. 적취봉 아래는 삼거리다. 깃대봉을 가는 거리와 하산하는 거리가 있다. 하산하여 야영장까지 가는 길이 있다. 깃대봉을 갔다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6봉에서 지친 등산친구가 이제는 지쳤다 하면서 깃대봉을 같이 걷는다.
깃대봉이 20m 정도 더 오르지만 그것이 힘들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8봉을 지나서 정상인 깃대봉으로 간다. 깃대봉 정상에 도착하기 전 약간 솟은 곳 그곳이 팔영산 전체를 볼 수 있는 맛집이다. 이곳에서 전체를 돌아본다. 1봉을 제외하고 모두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제 깃대봉이다. 그 깃대봉을 보고서 돌아서서 가는데 순천에서 오신 분이 있어 사진을 담아준다. 그리고 내려간다. 적취봉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한 순간 휴식을 취하고 하산을 할 것이다. 이제는 지친 몸을 쉬고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야영장에 도착할 것이다. 하산 등산로는 너무 좋다. 산행대장은 깃대봉을 가지 않고 바로 하산을 하였다. 나와 지친 등산친구 한 명이 천천히 하산을 한다. 임도와 등산로 수시로 교차하면서 하산길은 편안하다. 원주의 감악산을 걸을 때와 유사하다고 느낄 수 있다. 힘들게 걸어서 올라간 후 천천히 하산을 하는 것이다.
하산을 하면서 편백숲을 보았다. 장성의 축령산의 편백림이 있지만, 이곳도 만만치 않았다. 고흥에서 편백림을 활용한 최적의 산림 치유공간을 제공하고 웰빙·힐링 시대 국민건강증진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팔영산 자락에 조성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그 숲을 걸었다. 여름날 피톤치튼으로 내 피로를 해소한다. 천천히 하산을 하면서 피로를 해소하여 더욱 좋았다.
하산을 하면서 자동차 야영장에 도착하기 전에 산신제를 지네는 제단이 있다. 그 제단 바로 전에 계곡에 앉아서 더운 여름을 산에서 보내고 내려오면 만나는 계곡이 반가운데 폭염이 계속되고 비가 한동안 오지 않았는지 계곡은 완전히 건천이었다. 야영장에 도착하기 바로직전에 물이 있어 그곳에서 세수하고 밤을 담근다.
그리고 야영장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무인점포에서 무엇인가를 구매하고 능가사로 방향을 잡고 걷는다. 능가사는 417년 아도화상(阿道)께서 창건하여 ‘보현사(普賢寺)’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탄 뒤 조선 인조 22년(1644년)에 벽천(碧川) 정현대사(正玄大師)가 중창하고 능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한 보물 제1307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응진당·종각·천왕문(天王門)·요사채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350여 년 전에 나무로 만든 뒤 개금한 불상 8위와 나무로 만든 뒤 도분(塗粉)한 불상 22위, 보물 제1557호로 지정된 높이 157㎝의 범종(梵鐘)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4호인 4.5m의 목조사천왕상(木造四天王像), 귀부(龜趺) 위에 세워진 높이 5.1m의 사적비(事蹟碑)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적비는 1726년(영조 2)에 건립한 것으로 불교의 유래와 절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귀중한 자료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비석은 원래 탑 앞에 있었는데, 덕목이 도술을 부려 절 뒤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이 밖에도 절의 경내에는 광희(廣熙)·사영당(泗影堂)·추계당(秋溪堂) 등의 부도(浮屠) 8기가 있다.(출처: https://www.neunggasa.org/5 [고흥팔영산 능가사:티스토리])
현재, 능가사 주변은 온통 공사장이다. 대루를 세로 만들고 절마당을 새로 정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웅진각 앞에 5층석탑이 있고 화엄일승법계도가 있다. 예전에 김천의 직지사를 갔을 때 본 기억이 있다. 그곳을 일부러 보러 온 사람들을 보았다. 오늘은 더위가 있어서 아무도 없을 뿐이다. 온통 공사장인 능가사를 뒤로 하고 주차장으로 간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산길을 잘못 들어 휴양림 쪽으로 내려간 사람이 있어 늦을지 모른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잘못 길을 들면 어려움이 닫치고 그 길을 바로 잡기 위하여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길을 잘못 들은 사람은 택시를 이용하여 이곳으로 돌아와서 서울로 돌아오는 시간은 늦지 않았다.
버스는 전용차선을 위하여 달렸고 그 시간에 맞추어 서울에 도착하였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버스들은 전용차선을 이용하기 위하여 그 시간 안에 도착하기 위하여 남쪽에서도 바로바로 서울로 향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도착시간이 너무 늦어지기 때문이다. 1시간 정도 늦추어주면 버스들의 과속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또 그것에 맞추기 위하여 과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팔영산 전체를 정리하면 해발 400m 이상의 정상부는 암석이 노출되어 절벽을 형성하고 있으며, 북쪽 사면으로는 8개의 암석 봉우리가 있다. 이 8개의 봉우리는 해발고도가 낮은 곳에서부터 제1봉으로 간주하여 가장 높은 곳에 제7봉이 위치하고 제8봉은 고도가 조금 낮은 곳에 있다.1봉을 오르는 것이 가장 힘들고 제 6봉을 오르면 가장 높다고 느낀다. 여름산으로는 아침일찍 산으로 가는 것이 해답이다. 늦은 시간에 올라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전망은 가히 일품이다. 그 전망을 보기 위하여 가을 날 갈 것을 권고한다. 봄에는 우리의 하늘이 중국산 미세먼지롤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