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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Oct 21. 2024

선암사에서 시작하여 조계산을 오른 후 송광사에서 끝내다

산속의 보리밥집은 별미였다

단풍 시즌이다.

매년 동일한 시즌에 꽃이 피고 단풍이 든다.

하지만, 매년 다르기에 그것을 즐기려 사람들이 다닌다.

고속도로는 단풍시즌이 되면 그 단풍을 근처에서 보기보다는 명소에 가서 보기 위하여 움직인다. 경제가 움직인다고 할 것이다. 전국의 다양한 곳에는 이러한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하여 다양하게 노력을 한다. 축제다. 음악회다. 전시회다


오늘도 나는 움직여 본다. 토요일 아침이 되면 사당역 사거리는 변화된다. 동일한 관광버스가 서 있지만, 주중에는 회사로 출근하는 전세버스가 자리를 자고 있다. 그러한 곳에서 목적지를 보고 버스를 탄다.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 버스가 너무 많으니 교통체증을 유발하여 사당역 1번 출구방향으로 길기 늘어서 있기를 바라면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천안까지 버스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용차로를 이용하는 버스도 그런데 일반자동차는 더할 것이다. 이번 목적지는 조계산이다. 전남의 끝 부분에 있는 조계산을 찾아간다. 조계산에는 유명한 사찰이 두 곳이 있다. 선암사와 송광사이다. 선암사에서 시작하여 조계산 정상을 오르고 송광사로 하산하거나 송광사에서 시작하여 조계산을 오른 후 선암사로 하산을 한다고 하였다. 예전에 송광사 스님들과 선암사 스님들이 고개를 넘어서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교류를 하였다고 한다. 그 길을 걷는 길도 있다.


버스는 황금들녘을 지나 남으로 남으로 가는데 하늘은 흐려지고 있다. 오늘 비가 온다는 예보가 없으니 비에 대한 걱정 없이 산으로 가는 것이지만 경관이 없을 것이다. 친구들하고 걸었으면 좋아했을 것이다. 1일 1 산 1사였는데 오늘을 1일 1 산 2 사이다. 선암사는 유흥준 선생이 작성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가 잘 되어 있다. 사찰이 예전 모습 그대로 보전되어 있는 곳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자동차가 승주 IC를 벗어나자 산행대장이 산행일정을 소개한다. 그 산행의 백미는 사찰을 둘러보고 산을 오른 후 송광사로 가면서 중간에 보리밭집에서 보리밥을 사 먹는 것이라고 하였다. 조계산을 오를 때에는 도시락을 가져올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산행시간은 넉넉하게 6시간이 주어졌다. 어떤 사람은 부족하고 어떤 사람은 남을 것이다. 그것을 잘 이용하여야 한다.

선암사에 도착하여 산으로 가는 사람들을 버스에서 내보낸다. 이제 자유다. 산으로 가던지 이곳에서 놀다가 송광사에 도착하던 자유다. 자유여행의 시작이다. 주차장에서 선암사까지는 1km이며 그 길이 너무 좋다. 그냥 신이 나서 천천히 걷는다.


 선암사에서 유명한 선암사 승선교를 만난다. 조선시대에 아치교를 만들어 놓았고 잘 보전되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건너 다니고 있다. 다리 중심석 아래의 조그맣게 돌출시킨 석재는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지켜준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무지개 아치를 그리고 석재로 만들어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별도로 만들어 놓아 걸어 다니는 사람만 건너고 그것의 운치를 느끼는 사람만 걷는다고 보면 될 것이다. 선암사는 해남대흥사, 충남 공주 마곡사, 충북 보은의 법주사, 경남 양산 통도사, 경북안동 봉정사, 경북 영주의 부석사와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현재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선암사에는 다양한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선암사를 두루 돌아보고 산으로 가야 하기에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문화재로서의 선암사를 돌아보는 것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재건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4백 년 이상은 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선암사는 태고종 본산이지만 조계종에서 재산의 소유권을 가지면서 1960년대 이후 양 측의 갈등이 심해졌다고 한다. 지금은 법원판결에 의하여 모두가 정리되었다. 이러한 곳이 예전에 양사찰이 서로 만남을 가졌다는 것은 현대의 재산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선암사를 돌아보고 이제 정상인 장군봉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특이한 건물이 있다. 그 건물 간판이 재미있다. 간판에 오른쪽에서 왼쪽을 읽어가는 방식으로 써서 'ㅅ간뒤(발음은 뒤깐)'로 쓰여 있다. 특이하여 한번 또 담았다. 정호승 시인은 이 해우소를 노래하였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선암사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현대식 해우소가 있다고 한다. 이제 장군봉으로 방향을 잡고 올라가야 한다. 그 방향이 갑자기 어디인지 궁금한데 스님이 있어 물어보니 친절하게 안내를 한다. 조금 오르니 마애입상불상이 있다. 큰 바위가 두 개 있는 그중에 하나에 조각하여 놓았다. 그런데 그 입상과 사찰이 관련 없는지 입상만 있다. 사찰에 속하였으며 앞에 무엇이라도 있는데 없었다.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는 표식은 있다.

암자를 지나 이제 장군봉으로 올라간다. 올라가면서 경관은 없다. 암릉이 없기 때무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여름산으로 제격이다. 혹! 누군가가 가을 단풍시즌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단지 우거지 숲을 지나 올라가는 것이다. 너덜지대를 암자터에 도착하면 이제 정상이 400m를 남겨두었다. 향로암 터 옆에 조그마한 샘이 자리 잡고 물이 흐르고 있다. 샘이라는 표시도 없이 그냥 흘러내리는 물을 보면서 이곳이 진짜로 암자 터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사찰이 있는 곳은 무조건 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정상까지 400m 남았다고 하지만 그것보다 더 되는 기분이다. 이제 정상이 가까웠다는 기분이 더 멀게 느껴진다고 보면 될 것이다. 날씨가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잘 보이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진한곰탕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바람이 분다.

정상에 도착하였는데 주변은 곰탕 속에 들어가 버리고 정상석이 자리 잡고 있다. 정상은 888m이다. 이곳에서 이정표를 보면 재미있다. 작은 굴목재, 송광사, 보리밥집 장박골 등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작은 굴목재이기에 이정표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송광사는 6km이지만 작은 굴목재로 방향을 잡고 하산을 한다. 오를 때는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작은 굴목재에서 오른 사람들이 많아서 정상은 붐빈다.

하산을 하면서 배바위가 있어서 올라보지만 이곳도 동일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 곰탕 속에서 보이는 것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장군봉에는 장군봉에 대하여 설명이 있다. 이 산이름이 청량산과 조계산으로 수시로 바뀌다가 1825년에 조계산으로 바뀐 이 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장군이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듯 잔주름 없이 우렁차게 소아 좌우로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곳도 배바위 전설이 있다. 배바위라는 것이 배모양의 바위가 아니라 대홍수시절 배를 바위에 묶어 두어서 배바위라고 하는 것이다. 남부지방에는 이러한 전설이 연결된다. 곡성의 동악산에서 배너머재가 있고 고창 선운산에는 배맨바위가 있으며, 창녕의 화왕산에도 배바위가 있다. 이상하게 대홍수가 있었다는 사실은 같다. 재미있는 사실이다. 이 전설을 모두 연결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창녕, 곡성, 고창, 순천 모두 남부지방이다. 홍수가 있었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연결하면 예전의 간빙기의 역사가 담길 것 같다.

작은 굴목재에 도착하여 인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호남정맥의 인증지점이라고 한다. 그곳이 그곳인데 발도장 찍기를 하는 것도 재미있다.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보리밥집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큰 굴목재,  장박골삼거리, 연산봉 사거리로 가는 길이 있지만  보리밥집으로 많은 사람들이 방향을 잡고 내려간다. 산행을 시작할 때 산행기와 산행대장이 이야기한 보리밥집이다.

계곡을 만나고 다리를 하나하나 건넌다. 장박 1교, 장박 2교, 장박 3교다 옛날 삼국지에 장비가 장박교에서 조조의 대군을 방어한 것은 아니지만 모두들 하나하나 건너서 내려간다. 선암사 방향으로 가는 계곡을 따라 내려 걷다가 어느 순간 갈림길에서 송광사 방향으로 길을 잡고 걷다 보면 보리밥집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나고 윗 보리밥집이라는 집이 있고 원조 보리밥집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어 길을 따라나선다. 제일 윗집은 영업을 하지 않고 있어 삼거리에서 보리밥집으로 방향을 잡고 마음에 드는 보리밥집에 자리를 잡고 보리밥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보리밥집은 월요일, 화요일은 휴무라고 한다. 공휴일은 영업을 한다고 한다. 산행을 하면서 이렇게 보리밥을 먹는 경우도 드물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윗집은 허영만의 식객에 나오고 아랫집은 백종원의 맛집에 나왔다고 한다. 자동차를 이용하여 접근도 가능하다고 하니 맛집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보리밥을 한 그릇하고 이제는 다시 송광사로 가기 위하여 굴목재를 오른다. 예전에 선암사와 송광사 스님들이 교류를 위하여 오갔던 길이라고 한다. 중간에 대피소가 있다. 1969년 당시 이곳의 폭설로 학생들이 조난을 당하여 사망사고가 발생한 후 대피소를 만들었으며, 배도사라는 사람이 이곳에 와서 기거하여  대피소는 배도사 대피소라고 하였으며 그와 관련된 설명이 있다. 예전에 이곳에 그분이 살았다고 한다. 대피소는 필요한 곳에 설치하였고 그 대피소를 정처 없는 자연인이 자리를 잡았다가 떠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굴목재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송광사로 내려간다. 송광사로 내려가는 길의 단풍이 서서히 물들기 시작한다. 해발 720m에서 200m까지 내려가야 한다. 처음에는 가파르게 어느 정도 내려선 후에는 편안하게 하산을 한다. 스님들의 수행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번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이동하면 몇 날며칠을 보내고 돌아갈 것이다. 힘들게 이동한 경로라고 할 것이다. 중간중간에 무엇이 있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볼 수는 없었다. 송광사에 도착하기 전 개울에서 세족하고 이제는 송광사에 들러서 사찰을 둘러보고 하산을 한다.

송광사에 도착하여 산사의 분위기를 맛보려고 하였으나 그렇지 못하였다. 선암사에서 느꼈던 분위기가 아니다.  송광사는 조계종의 창시자인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修禪社)로 이름으로 고치고 중창하여 가르침을 베풀기 시작하면서 발전하였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 6.25 전쟁 등으로 사찰의 중심 전각들이 불탔는데, 그 뒤 승려 취봉과 금당이 건물들을 복구하였으며, 대웅보전은 1988년에 재건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송광사의 송광(松廣)이란 이름에서 松(소나무 송) 자를 파자하여 十八公으로 풀이, 고승 18명이 나오게 될 절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송광사에는 목조삼존불감(국보 42호), 고려고종제서(국보 43호), 국사전(국보 56호), 금동요령(보물 179호), 하사당(보물 263호) 소조사천왕상(보물 1467호)등을 비롯해 총 8천여 점의 불교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송광사는 법보사찰 합천 해인사, 불보사찰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승보사찰로서 한국의 3보 사찰로 알려져 있다. 현재 송광사에서 볼 수 있는 문화재는 다양하다. 어떤 것은 박물관에 있고 어떤 것은 그 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오늘은 사찰음악회가 개최되었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장터 같은 분위기다.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곳을 피하여 선암사로 가서 수행하여야 할 것 같다. 송광사에서 이제 버스가 주차하고 있는 곳으로 내려온다. 도로를 벗어나서 매표소까지 걸어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어서 좋다. 자동차길과 분리되어서 운영이 된다. 주차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사찰로 올라오는 많은 자동차들이 있다. 반면, 일반인들은 모두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세워두고 올라와야 한다.

매표소는 이제 그 목적을 달성하여 닫혀있다. 다만, 무료입장이라는 안내판을 붙이고 있다. 시내버스가 주차하는 곳에 도착하였다. 우리 버스도 그곳에 기다리고 있다. 서울로 올라와야 하는 버스기사 아저씨의 휴식타임을 저해하여서는 안되기에 버스정류장이 있는 휴게 공간에 앉아 쉬고 있으면서 순천에서 온 산객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다. 버스를 놓쳤다고 한다. 휴일 더 많은 승객이 있는 곳임에도 이곳은 전체를 감차하여서 운행하고 있다고 한다. 평일 송광사에 오는 승객보다 주말 승객이 많음에도 그렇게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니 그렇지 않을까 이야기해 본다. 조계산에서 가장 좋은 구간은 천자암구간이라고 한다. 그곳은 암릉도 있고 경관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순천으로 가는 버스가 떠난 후 우리 버스도 문이 열렸다. 이제 우리도 떠날 준비를 하여야 한다. 화장실에 들러서 준비를 한다. 모두들 부지런을 떨면서 버스에 탑승하고 출발을 기다린다. 버스는 집으로 가고픈 우리들을 싣고 밤을 친구 삼아 달린다. 차장 멀리 집들의 조명이 반짝이고 있고 자동차 바퀴소리가 귓전을 때리고 버스 차장에는 가을날 안개비가 적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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