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시절 팔공산은 왕건은 신라를 돕기 위하여 송악에서 왔지만 견훤에게 크게 패한 곳이다.
이번 주는 갓바위에서 시작하여 파계사까지 10시간 정도 걸을 생각하고 다음 주는 호남의 무등산을 등산할 계획이다. 영호남을 아우르는 산행이다. 팔공산의 명칭에 대하여 백과사전에서는 "팔공산의 지명유래는 몇 가지가 전해오나 가장 설득력 있는 유래는 중국 안후이성(安徽省)에 있는 팔공산(八公山)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383년 전진(前秦)의 부견(符堅, 337~385)과 동진(東晉)의 사현(謝玄) 간에 벌어진 '비수 전투(淝水戰鬪)' 당시의 상황이 927년 고려 태조 왕건(王建, 877~943)과 후백제 견훤(甄萱, 867~936) 간에 대구 팔공산에서 일어난 공산전투와 유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비수전투지에는 중국의 팔공산이 있었고 비수 전투와 공산전투의 성격이 유사한 것에 견주어 사대주의자들이 '공산'을 '팔공산'으로도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불교의 팔간자와 관련되었다는 설, 여덟 고을에 걸쳐 있다는 설, 고려 왕건의 심복 여덟 장수가 공산전투에서 순절했다는 설 등이 전해온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의기투합하였고 금요일 밤에 만나서 토요일 새벽에 갓바위 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하였다. 1명은 부산, 1명은 경기도, 1명은 충청도에서 출발하기로 하였다. 새벽기차가 아닌 야간열차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이동을 한다. 금요일 밤 1주일을 객지에서 보낸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내려서 그런지 기차는 지체로 마음을 급하게 한다. 기차는 10분 늦게 나를 친구들을 만나게 한다. 6개월만에 만나는 친구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와서 그런지 tv를 친구로 하여 우리를 기다린 것이다.
오랜만에 회포를 풀기보다는 내일의 산행을 위하여 잠깐이라도 눈을 붙인다. 눈을 감았고 눈을 뜨니 1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우리가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일어나자마자 컵라면에 물 붓고 이것저것 준비한 것 가지고 아침을 해결한다. 새벽을 깨우는 버스를 타기 위하여 서두르는 친구를 쫒아가니 이른 시간에 첫 버스가 도착하였다. 버스에 탑승하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알고 서로 간 안부를 묻는다. 첫 버스의 특징인 직장을 일찍 출근하여야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갓바위 주차장을 오르는 버스는 요란한 소리가 절정에 이를 때쯤 우리는 도착하였다.
갓바위에 많은 사람들이 수능을 앞두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즐비하고 있다고 한다. 수능일이 되면 방송에서도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이곳이 처음이고 친구들도 처음이다. 팔공산 단풍축제를 준비하기 위하여 주차장과 도로 양옆을 임시상가가 들어서 있다.
등산로에 접어들 때쯤 앞선 사람들이 지나가고 오르막이 시작될 쯤 어느 연세 드신 부부가 자동차에서 물품을 내리고 있다. 친구가 물어보면서 개시를 해주면서 오늘 장사가 잘되기를 축원한다. 사찰이 곳곳에 있는데 관음사가 있다. 그런데 바로 위에 관암사가 있다. 우리는 처음이 사찰에 갓바위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관암사에서 본 갓바위에 관한 설명을 보면 관암사에 속해 있지 않고 선본사로 재산권 분쟁 후 넘어갔다고 한다. 관암사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사찰인 것처럼 보였으나 오래된 사찰이었으나 전쟁 등으로 유실되었다가 최근에 사찰의 면모를 다루었다고 한다. 나는 확인을 하지 못하였지만 탱화를 보고서 부처가 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였다.
관암사에서 갓바위까지 1365계단이라고 한다.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고 그것보다 10개 또는 20개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지만 의미가 있게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1년 365일을 생각하면서 자기 수양을 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가파른 돌계단이 정비가 되어 있고 곳곳에 쉴 수 있는 벤치도 있지만 돌계단이 반들반들한 것에 불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절반쯤 오른 곳에 젊은이들이 휴식을 하면서 아침 일찍 시작한 산행길에 유연성을 확인하고자 몸을 풀고 있다. 머리에 삿갓을 쓴 부처가 있는 갓바위에 도착하니 새벽부터 올라온 불자들이 가득하다. 수능이 임박하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면서 수능 3주 전인 현상황보다 1주 전이면 절마당을 가득 채울 것이라고 본다.
삿갓을 쓴 부처보다 가을을 만끽하면서 올라서고 새벽의 미명을 깨우면서 올라온 그들의 건강에 감사를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벽의 미명에 녹색은 이제 노란색으로 변하였고 뜨거운 공기는 찬바람으로 바뀌었다. 갓바위에 갓을 쓴 부처님은 매일같이 삼라만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언덕 위의 성당이 부러웠으나 우리에게도 갓바위가 있었다. 언덕 위의 성당에 접근하기 위하여 많은 경비를 부담하였으나 이곳은 튼튼한 다리만이 필요하다. 우리의 자원을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네 입장은 보존이겠지만 활용도 무척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갓바위 부처에 대한 설명을 보면 "갓바위 부처라고도 불리는 약사여래좌상은 원광의 제자 의현(義玄)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하여 638년(선덕여왕 7)에 이 여래상을 조성하였다고 하며 지성껏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지며, 영험이 많다는 갓바위 부처를 예불하기 위하여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며 특히 음력 그믐날부터 새달 초이레까지는 하루 2,000명의 신도들이 참배하고 자연석을 갓 모양으로 머리에 이고 있는 이 불상은 오랫동안 태고종 사찰 관암사(冠巖寺)와 권리권을 둘러싸고 법정 시비를 벌인 결과 1971년 1월에 조계종 선본사가 권리권을 확정받았다"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갓바위에서 이제 팔공산 정상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정상으로 가면서 팔공산에 대하여 왜 팔공산이라고 했을까에 필이 왔다. 누구는 여덟 개 지자체와 접해서 그렇다고 이야기하여 인접한 지자체를 읊어 보니 대구 영천 경산 군위 칠곡 등 5개밖에 없어 제외시키고 누구는 고려 왕건이 참패 후 그를 살린 사람들을 기억하는 산이라는 뜻이라는 의견을 개진하였으나 여덟이라는 숫자에 그것도 채택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의 목적지인 파계사가 다시 토론의 장에 올랐다. 파계승은 대처승이라는 뜻인데 이를 사찰 이름에 사용하였으니 우리의 머리를 복잡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노적봉이 잘 보이는 곳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이동을 한다. 그것이 오를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도전의식을 갖고 걷는다.
노적봉 아래에 도착하여 오를 길을 찾았으나 가파른 등정에 포기하고 오늘은 이곳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어하는 푸념을 하고 포기하였다. 이솝우화에서 여우가 포도를 먹으려다 실패한 후 저 포도는 시어하고 물러난 것 같다. 자기만족이다. 자기변명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솝이 그런 것처럼 우리 스스로에게 변명을 한 것이다. 능선에서 멀리 우리가 갈 능선을 쳐다보니 구름이 걸려있어 운치가 있다. 이것이 우리가 가면서 구름이냐 안개냐 논쟁의 중심에 놓이게 될 줄 몰랐다.
능선의 오른쪽은 단풍이 한창이다 왼쪽은 골프장으로 어쩔 수 없이 잔디를 보고 있지만 오른쪽은 북사면이 아닌 이상 아침해를 바라보고 그 빛을 볼 수 있다. 아울러 능선 중간중간 붉게 노랗게 물든 산하를 접하고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팔공산 cc를 보면서 우리 중 누군가 사람이 가는 곳 어디에도 골프장이 산을 둘러싸고 있다고 지금 보는 팔공산 골프장은 어색해 보인다. 어울리지 않는 곳에 골프장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동봉으로 이정표는 지속된다. 비로봉의 동쪽을 동봉 서쪽을 서봉이라고 한다. 동봉에서 오는 사람들이 재킷을 입고 있다. 그곳에 바람도 불고 안개도 있어 햇빛이 없어 추웠다고 한다. 우리들도 동봉으로 가기 전 바람막이 재킷을 입으면서 그것이 구름이었는데 왜 안개라고 하지 하면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안개와 구름의 차이는 무엇일까 고민하여보니 싶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들 나름대로 이러한 결론을 내리고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지표에 낀 것은 안개이고 산 위에 걸린 것은 구름이야 하지만 산에도 안개가 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이라고 설명하여야 할까 고민하면서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니 우리와 비슷한 결론이다. "안개와 구름의 차이는 떠 있는 위치에 있다. 높은 하늘에 떠 있으면 구름이라고 하고, 땅 표면의 근처에 떠 있으면 안개라고 한다. 이처럼 물방울이 만들어진 높이에 따라 낮은 곳에서 생긴 것은 안개, 높은 곳에서 생긴 것은 구름으로 나눠지며 안개와 구름은 지형이나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고, 산허리에 있는 구름은 땅 위에서 보면 구름이지만, 그 산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안개가 된다. 안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구름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비슷하다. 안개도 구름과 마찬가지로 수증기가 응결되어 생긴 물방울들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설명이다. 동봉을 지척에 두고 배고픔을 해결하면서 서양의 고성처럼 우뚝 솟은 비로봉의 중계소를 쳐다본다.
이제 동봉이 바로 앞이다. 미타봉이었으나 이제는 동봉이다. 동봉의 높이와 비로봉의 높이는 거의 차이가 없다. 3개의 봉우리가 1km 내에서 웅장하게 솟아 있다. 동봉이 사람이 많다. 접근하기 쉬워서 그런 것 같다. 동봉이 비로봉 동쪽에 있어서 그런 것이다.
정상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갓바위에서 여기까지 올 때에는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동화사에서 올라온 인파가 가득하다.
겨울 같은 바람이 분다 사람들이 바람을 피해 있다.
동봉을 내려서서 보니 석조약사입상이 있고 비로봉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대부분 중계탑이 정상을 장악하고 비켜주지 않는데 그래도 이곳은 곁을 내주었다. 비로봉이 정상이고 이를 인증한다.
이제 서봉으로 이동한다. 서봉으로 가는 이정표는 있으나 대부분이 이를 제대로 모른다. 그래서 지그재그다. 그 찰나의 순간에 바위에 솟은 나무를 발견하였다. 여름 녹음이 우거졌을 때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서봉을 향하여 내려가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고 등산로상 서봉을 확인하였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의견이 다르다. 어떤 사람이 아래로 내려가면 길이 있고 본인도 서봉을 간다고 하여 따라간다. 서봉을 가면서 좌상이 있나고 물어보니 모른다고 한다. 서봉으로 가는 길을 찾았고 길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마애약사여래좌상을 보기 위하여 서봉으로 가는 길에 비로봉 올라가는 길을 선택하고 조금 올라서니 여래좌상이 있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찾지는 않는 것 같다.
좌상이 있으면 암자가 있어야 하는데 암자터만 있다. 암자터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하였으나 가을철 잔디는 안된다고 하여 허기진 배는 뒤로하고 서봉으로 방향을 튼다.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적당한 곳을 찾아 휴식을 취하면서 이곳도 보고 저곳도 본다. 정상석이 두 개가 있다. 삼성봉과 서봉 그래도 우리는 서봉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긴다. 공간이 부족하여 어떻게 할 수 없어 셀카로 해결하였다.
톱날 능선으로 접어들면서 능선보다는 회피하는 안전지대로 이동이 많아졌다. 파계봉을 가면 그래도 계자의 의미를 알 수도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안고 이동을 하였다. 해발 900m 이상이 지속되는 톱날 능선은 이름 그대로다. 위험한 구간이 많고 유격장에서처럼 줄을 타고 오르내린다.
암름을 돌아 돌아 올라서는 봉에서 돌아본 톱날 능선은 아름답지만 무섭다. 저기를 가로지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능선 주변의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다. 친구는 서봉을 동봉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보이는 것이 다르다고 한다. 지금 보면 그것이 동봉이 아닌 서봉이고 동봉은 서봉 뒤에 숨어 있는데 보이지 않는 동봉이 비로봉보다 높다고 하였다. 동봉과 서봉은 일직선상에 있고 비로봉은 뒤로 물러나 있어 발생한 현상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산을 잘 아는 친구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그렇게 듣고 다시 확인한다.
능선에서 마지막 봉인 파계봉에 도착하여 한글로 된 정상석을 보고 이제는 내려가야 계자를 확인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봉우리마다 정상석과 혼동되는 바위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우리가 이제는 지쳤다는 증거다. 계자에 다양한 의견이 개진된다. 계곡계자, 계율계자 등이며 나는 팔공산이 고려 왕건의 패퇴에 따른 생존의 결과에 따른 사찰 가능성을 언급하였고 이것을 추측하면서 저녁 밥값을 부담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우리는 결론을 짓고 파계재에서 파계사로 내려선다. 파계사에 도착하여 아름다운 은행나무의 단풍보다 계자에 관심을 갖고 계자를 찾는다. 결론은 계곡계자다
파계사의 기본을 알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진동루라는 곳에 파계사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고 그 뜻을 알았다.
파계사를 이룬 물이 여기에 모여 있다.
새벽 미명에 시작한 산행은 어둠이 오면서 종료되었다. 파계사 주차장에서 동대구역으로 이동하는 버스는 산객과 행락객으로 가득하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다른차들이 용납하지 않고 놓아주지 않는다. 바쁜 마음을 안고 창밖을 보지만 알 수 없는 거리가 지나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