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궁예가 생각나는 명성산을 가다

by 김기만



명성산은 포천에 있으며 우리에게는 산정호수로 더 알려져 있다. 새벽을 깨우는 알람보다 먼저 일어나 동서울 터미널로 이동한다. 명성산은 접근하기 쉬운 산이 아니다. 서울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운천에 도착하고 운천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산정호수로 이동을 한 후 산행이 가능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였다. 돌아오면서 그것보다 의정부에서 산정호수로 접근하는 광역버스가 있으며 이를 이용하면 보다 쉽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은 여전히 3시간 가까이 소요되었지만 비용은 절반이다. 부산 주변을 이 잡듯이 산행하는 친구 왈 3시간을 이동하였으며 6시간을 산행하여야 한다는 지론이 있는데 우리는 산행시간을 6시간 정도 해야 본전이다. 명성산은 주중에 사격장에서 포사격을 하기에 산행을 통제한다고 한다. 억새가 유명하여 억새를 보기 위하여 10월에는 산객이 차고 넘칠 것 같다. 억새가 유명한 산으로 정선의 민둥산, 창녕의 화왕산, 포천의 명성산, 울산의 신불산이 있는데 정선의 민둥산, 창녕의 화왕산, 울산의 신불산 등은 수도권에서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포천의 명성산을 많이 찾는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아침에 동서울까지 이동하여 시외버스에 몸을 싣는다. 시외버스가 재미있다. 동일한 시간대에 2대가 동시에 출발한다. 목적지는 같지만 경유지가 다를 뿐이다. 2시간 정도 지나 시외버스가 나를 서울에서 운천으로 옮겨주었고 운천 시외버스 터미널은 재미나게 건물을 끼고 한 바퀴 돌아서 나를 내려준다. 주차장은 별도로 없고 지나가는 자리에 터미널이 설치되어 있다. 터미널에는 북가 가까워서 군인들이 많다. 터미널 안에는 외출 나온 사병들과 부대를 이동하는 사병들이 옛 기억을 되살린다.

운천에서 산정호수로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이동을 한다. 터미널을 나온 이후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이동을 하니 시내버스가 15분 이내에 도착한다고 한다. 마을버스 같은 버스와 광역버스가 동시에 움직이는데 우리는 시내버스를 타기로 하였다. 7km 남짓한 거리를 광역버스를 타는 것은 사치스럽다고 할 수 있다. 마을버스 승객은 산객과 동네 어르신 2명, 동네 주민 1명이다. 산객을 제외와 승객과 운전기사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이다. 하차 위치도 알고 있다. 산정호수로 가는 길에 평강식물원을 거친다. 처음에는 그곳으로 가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평강식물원을 들어갔다가 나온다. 평강랜드가 휴양객을 기다리고 있다. 식물원을 나온 시내버스는 산정호수와 명성산에 데려다주었다.

산정호수는 일제강점기 때 수리 목적으로 건립된 이 호수로 산자락의 천연 암벽을 따라 수궁처럼 펼쳐져있다. 전쟁 전 포천은 북의 치하에 있었는데, 그때 김일성 주석이 이곳에 별장을 지어 휴양했다고 한다. 그만큼 산세가 빼어나고 현재도 골짜기 곳곳에 펜션이 자리 잡고 있다. 북의 김일성은 경치가 빼어난 남쪽에 별장을 많이 지었다. 화진포에도 있고 이곳 산성 호수에도 있으니 말이다. 3년도 안 되는 시기에 남쪽 지역에 많은 별장을 짓었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2곳에 불과하지만 3년밖에 안 되는 시기에 이렇게 지었다는 것은 북쪽이 춥기에 따뜻한 남쪽을 동경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억새밭이 있는 능선으로 접근하여 궁예봉을 거쳐 하산하기로 등산경로를 수립하였다. 명성산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후삼국의 궁예와 관련되어 있는 산이다. 명성산 이름은 궁예가 왕건에 의하여 추출된 후 은거하다가 왕건과 싸움에서 패한 후 크게 울었다고 하여 울음산, 명성산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산객들은 대부분 이경로를 이용한다. 입구에서부터 산안고개까지 이동하는 거리가 만만치 않을 것 같고 산안고개에서 명성 상정상까지 접근하는 오르막이 가파른 결과라고 보아여 할 것이다. 궁예가 이곳의 이웃인 철원에 도읍을 정한 이유를 친구와 생각해 보았다. 내 논리는 이렇다. 송악의 호족인 왕건이나 호서지방의 호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철원으로 천도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조선시대 정조가 노론의 압박을 벗어나기 위하여 화성으로 천도하려고 노력하였던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될 것이다. 궁예가 실패한 원인은 호족세력을 완전히 규합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역사는 객관적으로 기술되기보다는 승자의 역사로 기술되기 때문이다.

궁예가 관심법으로 사람들을 처벌한 것은 사실일까 이런 생각이 든다. 관심법이란 것이 절대군주가 신하들을 죽일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옛날 사또가 니 죄를 니가 알렸다와 동일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한 절대군주가 왕건에게 추출되었다는 것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본다. 억새밭이 있는 곳에 가기 위하여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계곡물이 특이하다. 수량은 풍부한데 무엇을 풀어놓은 것처럼 계곡물은 맑지 않다. 이유를 알고 싶어서 검색을 해보았다. 석회석이 녹은 물과 같다고 하여야 하지만 이곳은 석회석 지역도 아닌데 하면서 곳곳을 검색해보았다. 뚜렷하게 이유를 설명한 것은 없지만 상류에 있는 포사격장 때문이라고 설명이 몇 곳에 있었다. 확신은 없다. 사격장이 이유일 수 있지만 그것 때문이면 환경단체가 가만두지 않았을 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 우리를 반기는 것은 비선폭포이다. 정확하게 어는 것이 비선폭포라고 설명이 되어 있지 않지만 등룡폭포에 도착하기 전 폭포를 두 개 만난다. 수량이 적절히게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등룡폭포를 만나 다양한 모습의 사람을 쳐다본다. 폭포 전체 모습을 보기 위하여 폭포 앞까지 내려가는 사람과 데크에서 감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 무심하게 지나는 사람도 있다. 등룡폭포는 이중 폭포라고 하기도 하고 쌍용폭포라고 하기도 한다. 물안개를 타고서 용이 올라갔다고 해서 등룡폭포라고 설명이 되어 있있고 이곳이 명성산이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곳 폭포 소리가 그래서 이렇게 설명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궁예가 이곳 명성산에서 은거하다가 죽은 이후 한동안 궁예의 울분에 찬 울음이 이곳에 울려 퍼져 이곳을 울음산 또는 명성산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사격장 경고 표시까지 있는 곳까지 계곡을 따라 산길은 완만하게 이어진다.

사격장 이곳에 있다니 이렇게 투덜거리면서 이 좋은 산에 있다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을 하면서 주중에는 사격훈련이 있어 위험하여 산행을 조심하라고 하였다. 블랙야크라는 업체에서는 100대 명산을 지정한다. 이곳에서는 사격장이 있다는 이유로 제외하였다고 친구는 말을 한다. 산림청에서는 100대 명산에 명성산이 포함되어 있다. 팔각정까지 오르면서 이유를 알 수 없다. 사격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팔각정에 오르고서야 그 규모를 알 수 있었고 그 이유가 설명이 되었다. 개인화기 사격장이 아니라 포사격장이며 전차부대의 사격장이다.

팔각정에서 바라본 사격장의 모습은 고원지대에 전차들이 움직이면서 사격할 수 있는 사격장이다. 주중에 이곳에서 등산을 하는 것은 포성이 지속적으로 울리는 곳에서 등산이다. 포성이 자욱한 현장에서 포탄이 날아가는 것을 현재는 볼 수 없지만 이러한 모습이 상상이 된다. 사격장 안내 표지가 있고 경고장이 있는 곳에서 이제는 억새밭으로 방향을 튼다. 억새밭이 얼마나 장대할지는 상상을 한다. 2년 전쯤 민둥산을 갔을 때 상상을 해본다. 지금은 그 시기보다는 빠르다. 억새가 어떤 모습 일까 궁금하다. 오르면서 지척에 있는 망초 등 야생화를 핸드폰에 담는다. 정선의 민둥산 억새밭은 오르면서 힘든 구간이 많은데 이곳은 그렇게 많지 않아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 같다. 억새밭이 우리를 기다린다. 오늘은 햇빛이 우리를 기다리지 않지만 억새와 햇빛이 조화를 이루면 그 장관이 생각만 해도 멋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억새밭이 이곳에 있게 된 이유는 사격장과 관련이 없는데 사격장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전쟁 시 포사격을 많이 받은 곳이며 이곳에 억새가 자랐다고 한다.

억새밭에 데크를 만들고 있다. 포천시 입장에서는 만은 돈을 들여서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팔각정까지 이르는 억새밭에 포토존을 만들고 데크를 만들고 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좋을 수도 있고 인공이 추가된 모습이 좋을 수 있다. 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억새가 유지되는 모습이 좋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인공데크를 이용하여 억새에 다가가는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억새밭에 있는 나무 한그루 한그루는 새로운 정취를 자아낸다. 억새에 둘러싸여 이는 나무 한그루 둘레를 데크를 만들고 억새와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을 한다. 하지만, 그 나무둘레 근처에 산객들은 먹을 것으로 가득하다. 먹기 위해서 산행을 한 것처럼 그곳에서 모두들 먹는 것에 집중을 한다. 주변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타산객들은 그곳에 올 수 없도록 모여 있다.

억새밭의 나무 고고함을 뽐내고 있다.

주변의 산객은 그 고고함보다는 데크를 만든 것을 이용하여 너도나도 술추렴과 먹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데크를 설치하지 말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을 나 홀로 받으면서 그늘을 만들지만 그 그늘이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들만의 그늘이 되어 버린다.

이제 팔각정이다. 팔각정이 있는 곳에 갑자기 정상석이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명성산 정상석을 왜 이곳에 설치하였을 까하는 궁금증이 있었지만 억새밭까지 오는 사람들에게 명성산이란 곳을 왔으며 그것을 기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각봉을 지나고 정상이 철원군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포천시에서 명성산을 그래도 자기들의 영역에 가두려고 정상석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뇌리에는 여전히 포천의 명성산이지 철원의 명성산은 아닌 것이다. 접근하기 쉽고 관광지는 포천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능선을 따라 삼각봉, 명성산 정산, 궁예봉으로 이동을 할 것이다. 팔각정을 벗어나 첫 번째 오른 봉에서 바라본 산정호수에서부터 멀리 보이는 봉우리의 봉우리의 모습 겹겹이 싸인 산의 모습이 장관이다. 산행을 하면서 이러한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아 여러 차례 내 눈과 카메라에 담는다

이제 능선에서 바라보는 사격장은 우리에게 왜 주중에 산행이 금지되는 이유를 설명하였고 능선을 이동하면서 왼쪽은 절벽이다. 능선 아래에 보이는 산정호수와 그 멀리 보이는 산그늘 봉우리들의 행렬이 사뭇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삼각봉으로 이동한다. 삼각봉은 보이지 않는다. 이동을 하면서 산정호수를 감상하고 사격장을 감삼하면서 봉우리 봉우리를 거쳐간다. 이제 삼각봉이 보인다. 맨 오른쪽이 삼각봉 그다음이 명성산 정상 그리고 조그마한 봉을 거쳐서 궁예봉이다. 삼각봉이 왜 정상처럼 비취고 이정표에 계속 나오는지는 명성산 줄기 중 포천시 위치에 가장 높은 봉이기 때문이다. 왼쪽에서 두 번째 봉이 궁예봉이다. 사실 산봉우리 중 사람 이름을 갖고 있는 봉은 그렇게 많지 않다. 불교의 의상봉, 원효봉, 문수봉, 나한봉 등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사람의 이름을 갖고 있는 봉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보면 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봉 이름도 감악산에 있는 임꺽정봉 정도이다. 이곳에 궁예봉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궁예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삼각봉은 포천시에 위치하고 있고 포천시에서 재미있게 정상석을 설치하였다. 정상석 위에 해태상이 있다. 이렇게 설치한 정상석은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의 정상석은 밋밋한 돌에 정상을 표시할 뿐이다. 하지만 민주지산의 삼도봉은 삼도의 화합을 표시하고 삼도를 의미 있게 다루기 위하여 화려하게 만들어 놓았다. 삼각봉에 오르면서 이것이 정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 내려서고 다시 올라서야 한다.

갑자기 철원군에서 재미있는 이정표를 만들었다. 철원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제 알았다. 지금까지 삼각봉의 이정표를 알린 원인을 찾은 것이다. 지자체별로 자기들의 영역을 표시하고 그것을 알리기 때문이다. 정상에 정상석이 2개 있는 경우도 보았다. 지자체별로 정상석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다. 어떻게 산 능선이 시군 또는 시도경계가 되지 않고 시도경계와 시군경계가 되어 있어 포천시와 철원군이 다르게 표시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명성산을 가로질러와서 도경계가 이렇게 형성된 것에 의문을 갖고 있지만 산세를 볼 때에는 각휼산, 명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더 중요함로 이러한 산세를 기초로 도경계가 만들어진 것 같다. 그래서 명성산은 국민관광지인 산정호수를 갖고 산세가 뛰어난 명성산이 있지만 도립공원이 되지 못한 것 같다.

명성산 정상을 지나 이제 궁예봉을 갔다가 내려서면 된다. 인생은 이런 것이다. 오르면 내리는 것이 인생이고 산행도 같다. 명성산 정상을 바라보면서 내려서는 아쉬움도 있지만 궁예는 어떻게 이 높은 곳에 까지 올라와서 신세를 한탄하였을까? 그렇지만 그것은 승자의 역사이고 패자는 말이 없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광해군도 우리는 그렇게 나쁜 폭군으로 알고 있다가 이제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 인조반정의 역사로 이러한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현실이다. 후삼국시대에 궁예가 어떠한 처지에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 당시의 기록이 없다. 궁예봉을 가면서 이러한 잡답을 하였다. 궁예봉은 별도의 표지석이 없다. 다만, 천연의 요새다 물과 식량만 있다면 누가 이를 공격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요새를 궁예봉이라고 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갈림길에서 궁예봉까지 왕복은 1.2km다.

궁예봉을 갔다 와서 이제 산정호수로 연결되는 산안고개까지 즐기차게 내려간다. 산안고개로 이어지는 길은 가파르고 너덜바너덜바위지대다. 이러한 길이 싫어서 대부분이 이길로 올라오지 않고 억새밭길을 거쳐서 올라오는 것 같다. 산객의 동료가 생겼다. 우리와 거의 비슷한 시간에 산행을 하면서 혹 길을 묻는다. 그래도 우리는 길을 안내하는 지도를 갖고 있기에 응답을 하면서 그들의 젊음에 감탄을 할 뿐이다.

산안고개에서 산정호수까지 길옆에는 펜션들이 다양하게 그 모양을 이루면서 산객과 여행객들을 찾고 있다.

연꽃이 정원이 아닌 화분에서 예쁘게 피어 있다.

산정호수에 있는 오리배가 이제는 열기를 잃어가는 태양을 머금고 두둥실 떠 있다.

명성산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계곡 돌 억새 사격장 바위 그리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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