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무등산을 산행한 기록이다
영남의 팔공산을 갔다 온 다음 주 호남의 무등산이다. 영남의 팔공산은 고려 왕건을 살리기 위한 순절한 사람들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고도 하지만 무등산은 등급이 없다는 이름의 산이다.불교신문에 따르면 무등(無等)의 사전적 풀이는 ‘등급이나 차별이 없다’는 것으로, 불교의 무등등(無等等), 무유등등(無有等等)에서 유래됐다. ‘비할 데 없이 높고, 등급을 매길 수 없다’라는 뜻이다라고 언급이 되어 있다.
반골의 기질이 있는 산을 품고 있는 광주에 위정자들은 그렇게 좋아하지 았을 것 같다. 무등산의 정상은 천지인이라는 3봉이다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이다. 현재는 군부대가 정상에 위치하고 있어 등산객 접근이 금지되어 있는데 1년에 2번 정상부 개방행사를 하는데 오늘이 그날이다. 이날은 맟추어 산행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을 하였다.
가을에 떠나는 호남선 고속열차는 너도나도 가을을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서울에서 4명이 각자도생하여 그런지 탑승차량이 제각각으로 광주 송정역에 도착하였다. 광주 송정역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반가운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즐거운 것이다.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有朋이 自遠方來 不亦樂好아"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를 기다리는 분이 있다는 것도 좋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2시간이 안 걸린다. 일일생활권이라는 말이 실감이 든다. 돈이 약간 들어서 그렇지 광주 무등산까지 집을 나서서 3시간 남짓 걸린다는 것을 상상을 초월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는 삼남길로거의 보름이 소요되었는데 지금은 집을 나서서 3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으니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삼남길로 걸어 보았다. 가히 먼길이다. 산길로 들길로 마을로 걸어가면서 옛사람을 만난 기억이 있다.
광주 송정역에서 만난 우리는 승용차에 타고 무등산으로 이동하였다. 다양한 업무의 애환을 들으면서 무등산 입구로 접어들려는 도시고속도로 출구에서 우리는 서로가 잘했다고 우기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보았고 광주 도시고속도로 출구에서 현금과 카드 등을 수납함에 정체되는 정겨움도 보았다.
수납 시간을 줄이거나 출구 위치를 조절하면 쉽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이 부분을 바꾸면 사람을 줄이지도 않고 해결할 수 있는데 그 위치를 고정시키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였다.
무등산이 도립공원일 때 2번인가 와보았는데 이제는 국립공원이다. 광주시민들의 마음의 쉼터이다. 광주사람들도 그렇게 자주 와보지 못하였는데 나는 벌써 3번째다. 우리 멤버 중에는 처음 오는 사람이 2명이다.
오늘은 1년에 2번 정상을 개방하는 만큼 등산객이 많고 서울에서 출발할 때 이른 시간이라서 점심을 준비하지 못하여 김밥집을 가니 줄이 길다. 할머니 두 분이 열심히 김밥을 말지만 줄은 줄어들지 않는다.
등산 예정시간보다 30분이 지연되어 출발을 한다. 정상에서 기다리는 행사를 진행하시는 분은 한결 여유롭게 행사를 하고 우리를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이 급하고 우리의 갈길을 변경한다. 증심사를 거치면서 사찰이면 들려서 기도하는 분은 입구에서 기도를 하고 지나친다.
당산나무가 있는 곳에서 숨을 들이켜면서 이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긴다. 예전에 마을이 있었고 이 마을의 당산나무였으나 이제는 마을은 없어지고 화장실만 남아 있고 당산나무는 500년 이상을 이곳을 지키고 있다.
예전 노무현 대통령이 장불재로 간 길이라 하여 노무현길로 명명되어있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바르샤바를 가면 쇼팽의 음악을 들어보라고 권고하는 것처럼 무등산을 오면 노무현길을 걸어 보세요 이렇게 말을 하고 싶다.
언론보도를 보면 고노무현대통령께서 2007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후 다음 날인 5월19일 오전 증심사 입구에서 출발하여 당산나무와 중머리재를 거쳐 장불재에 올랐고 한 너럭바위에 올라 육성으로 연설을 했다고 한다. 아울러, 광주광역시는 2011년 11월16일 무등산 증심사에서-중머리재-장불재 구간 3.5㎞다 ‘무등산 노무현 길’을 공식지정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이 경로를 이용하고 있으며 지금은 공원 입구로 이전되어 있는 예전에 보리밥집들이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중머리재로 이어지는 길에서 너도나도 길이 좋다고 한다. 해발 1100m 이상인 산에서 특히 주상절리가 있는 산에서 흙길이다. 중머리재에 이르러 고개를 드니 중봉이 지척이나 옆으로 등산로 방향을 트니 장불재 방향이다. 예전에는 중머리재가 훼손되어 넓게 형성되었으나 이제는 복원이 되어 이제는 이곳이 그렇게 훼손되었던 곳인가 쉽다.
우리나라는 인심도 좋고 소매치기도 없다. 유럽에서는 스마트폰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잠시 맡겨 사진을 촬영한다는 것은 스마트폰을 주는 것이라고 하여 여행 가이드로부터 주의를 받은 기억이 있다.
집시족에 의한 소매치기가 다반사인 유럽에서 일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외국에서 한국의 식당에서 고가의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놓고 다니는 것을 부러워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중머리재에서 장불재를 바라보니 억새 뒤로 장불재가 보이며 장불재에 있는 송신탑 등이 거슬린다.
중머리재에서 장불재로 방향을 잡고 올라가는 길에 광주천의 발원지가 있다고 설명이 되어 있고 조그마한 샘에서 물이 솟아나 너도나도 목을 추이고 조금 더 오르니 또 옹달샘이 있다. 여기가 조금 더 위니 여기가 발원지인데 하면서 표지판의 위력을 실감한다.
장불재에 도착하니 아침부터 행사를 진행한 국립공원 직원들이 지쳐가고 있다. 우리는 30분 늦어서 길게 줄을 서지도 않았지만 아직도 줄은 있으며 예약하지 못 한 산객은 현장 예약으로 이동한다.
장불재는 억새가 밭을 이루고 있고 백마능선으로 이어진다고 하였다. 이곳부터는 화장실도 없고 하여 몸을 정리하고 입석대와 서석대를 바라보니 한 곳에서 두 곳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왼쪽이 서석대 오른쪽 입석대다. 이곳에서 다시 한번 인증샷을 남긴다. 무등산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정상부의 주상절리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곳이다. 거의 평탄하면서 억새밭이 펼쳐져 있다.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중생대 백악기에 발생한 화산 활동의 산물로서 용암이 냉각·수축하면서 굳어져 만들어졌으며, 오랜 세월동안의 물리적 풍화에 의해 기둥모양 혹은 병풍모양을 하고 있어 경관이 수려하고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입석대와 서석대 그리고 규봉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 중 입석대와 서석대를 천연기념물(465호)로 지정 · 보호하고있다. 입석대는 5~8각, 둘레 6~7m, 높이 10여m의 독립된 돌기둥 수십 개가 수직으로 하늘을 찌르듯 솟아 있으며, 서석대는 발달한 용암이 돌 병풍 모양으로 동서로 길게 발달해 있다. 우리의 등산로는 서석대를 하산하면서 보는 코스이다. 그래도 열심히 걸어보려고 한다.
장불재에서 입석대를 거쳐 정상으로 가기 위하여 길을 들어서니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교통체증이 발생한다. 서울의 북한산 도봉산이 이래서 좋다는 사람도 있고 싫다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호불호가 있는 것이다.
설악산에 단풍철에 단풍을 보는 것보다 사람들 뒷 발치만 보인다고 한 얘기가 생각이 난다.
도봉산에서 y계곡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주말은 일방통행이며 오늘도 정상은 일방통행이라고 이야기를 들었다. 많은 사람들을 따라 움직인다.
입석대 전망대를 앞에 두고 옆에 주상절리가 무너진 바위군이 보여 잠시 여유를 가지려 빠져서 전망하니 입석 대전체가 보인다. 앞뒤 조망이 전망대보다 좋다.
왜 이곳을 전망대로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 이유는 주상절리의 훼손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전망대를 여기에 만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좋지 주상절리를 가까이서 보는 것은 그 크기에 압도당할 뿐이다.
이렇게 좋은 풍광을 두고서 가까이서 보는 입석대를 볼 필요가 없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망대를 올랐다 아 조금 전보다 못하네 하면서 돌아선다. 어떤 이는 조금 전의 모습을 보지 못하였기에 전망대에서 입석대도 보고 백마능선도 쳐다본다.
한분은 백마능선을 쳐다보면서 저번에 저 능선을 탔어 그런데 이곳이 더 좋은 것 같아. 나는 서석대를 거쳐서 입석대로 하산을 하여서 입석대를 위로 쳐다보지 않아 이러한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고 본다. 가는 길도 다르고 오는 길도 다른 것이다
입석대 표지석은 필요하여 인증샷을 남긴다.
독수리 오형제이다. 이들이 오늘 입석대를 지키는 것이다. 서석대 표지석을 향하여 걸음을 옮긴다. 평소에는 여기까지가 등산이 가능하다.
다섯 명만 있으면 우리는 독수리 오 형제라고 한다. 최근에 알았지만 일본 만화 내용이라고 한다.
서석대의 주상절리를 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표하지도 않고 천지인봉으로 이동할 것이다.
서석대에서 이동을 하면서 장불재를 통과할 때 받은 손목에 찬 밴드의 효과를 확인한다. 지금까지는 체크하지 않았는데 정상으로 갈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구분이 된다. 하지만, 이곳에도 현장에서 정상 개방을 모르는 사랑들을 위한 임시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등산로는 다양한데 그곳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천지인왕봉으로 발길을 돌린다. 아침나절에는 사람으로 가득하였으나 지금은 그래도 한가하다. 오늘 오전에만 3천명이 지나갔다고 하니 그럴 것이다.
너도나도 사진으로 상황을 담는다. 이곳은 거의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억새밭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도 있고 인왕봉을 배경으로 나를 담기도 한다.
오후에 여유를 볼 수 있으면서 그래도 줄을 서서 이동한다. 우리는 트래픽 잼에 10분 김밥을 산다고 20분을 지연하여 지금은 여유가 있다. 당시에는 늦어서 짜증이 났지만 지금은 호재가 된 것이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이야히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천왕봉과 지왕봉 인왕봉이 있는 곳이 군부대가 있다. 옛날 나도 저러한 곳에서 근문한 기억이 있다. 방공포대이다. 방공포는 산 정상을 점령하고 주변지역의 대공방어를 하는 곳이다. 방공포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전쟁이 나면 거기에서 전사를 하여야 한다.
오늘은 그들은 개방을 하고 레이더로 감시를 하는 것이다. 천왕봉은 개방이 안되지만 지왕봉과 인왕봉이 개방이 되며 병사들과 부사관들은 안내자겸 감시자로서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먹을 것을 건내는 사람도 있고 같이 사진을 촬영하자고 권유를 하기도 한다. 우리들은 그들보다 우리의 동료를 찾아야 한다. 이곳에서 만나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행사가 끝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지왕봉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우리의 동료가 나타났다.
지왕봉 표지석을 기준으로 균형을 잡고 인증샷을 남기고 지왕봉의 다양한 모습과 나무가 있는 곳에서 다시 한번 인증샷을 남긴다.
촬영은 병사들이 도와주었고 이곳에 암반수로 등산객의 목을 축여 준다. 이제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서울로 가는 기차는 예정되어 있고 올라서면 내려서야 하는 것인 인생인 것이다. 부대를 나오는 것은 일반통행이다. 나오는 길에 누에봉이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것 같다. 우리도 남은 음식을 이용하여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잡담을 나눈다.
내려서면서 중봉으로 방향을 전환하니 감탄을 한다. 억새밭이 나타난 것이다. 부대가 개방행사를 하지 않으면 입석대로 올랐다가 서석대를 거쳐서 중봉으로 하산하는 코스이지만 오늘은 부대가 개방을 해서 이렇게 움직인다. 중봉도 예전에는 군부대가 있었으나 이전하여 이제는 모두가 이곳을 즐길 수 있다.
저곳을 그냥 지나쳤다면 아쉬웠을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풀밭을 좋아한다. 억새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억새와 갈대는 비슷하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구분할까
기본적인 상식이다. 억새는 산에서 자라고 갈대는 물가에서 자란다. 그래서 산에서 만나는 놈은 억새고 강가에서 만나는 놈은 갈대인 것이다. 억새는 갈대보다 잦다. 혹 억새가 사람키를 넘어서 큰 놈이 있지만 대부분은 사람키보다 작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래서 억새밭에서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갈대는 사람키보다 크게 자란다. 그래서 갈대밭에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면 갈대가 훼손되는 것이다. 풍경이 그대로 남기를 바라지만 자기얼굴이 나오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중봉을 벗어나 내려서면 중머리재이다. 가파른 길을 내려오면서 이곳으로 올라왔으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서로서로 이야기를 한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은 또 촬영을 한다.
증심교를 향하여 왔던 곳으로 이동을 하지 않고 중머리재에서 새인봉 방향을 트니 하산객이 가득하였든 등산로가 조용해진다. 서인봉을 지나 갈림길에서 새인봉으로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여 증심교로 방향 틀고 내려섰으며 약사사가 나타났고 증심교를 벗어나 등산로 입구로 이동을 하였다.
김기만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