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도청이 홍성과 예산 경계에 위치한 내포에 위치하면서 충남도청 공무원이 사랑하는 산이 되었다 홍성은 최영 장군의 고향이고 김좌진 장군의 고향이다. 이웃한 예산은 윤봉길 의사의 고향이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익숙하지 않다.
용봉산 입구에 도착하여 보니 380m 남짓한 산에 산객이 넘친다. 전국에서 몰려온 산객을 실은 관광버스다. 단체 등산객이 많다. 100대 명산 중에 하나가 용봉산이라고 한다.
오늘은 용봉초등학교에서 출발하여 용봉산에서는 용봉산 정상 > 노적봉 > 악귀봉 > 전망대를 지나고 능선을 따라 수암산으로 갔다가 덕숭산 방향으로 하산을 한 후 덕숭산을 올랐다가 수덕사로 내려오는 코스다. 산악회 버스를 이용하지만 이렇게 길게 코스를 만들었다는 것이 재미있다. 산이 그렇게 크지 않고 산이 재미있게 연결되어 있어 이렇게 코스를 설계한 것이라고 본다.
용봉산은 곳곳에 바위가 있다. 병풍바위, 용바위, 물개바위 등이 있다.
용봉산 정상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최영 장군 활터도 있다. 용봉초등학교에 도착한 모든 이는 용봉산을 본 사람도 있고 보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는 본 사람에 해당하여 그 흥미가 덜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아기자기한 산 자체를 보는 것이 더 좋고 안내를 할 수 있어 더 좋다.
용봉초등학교 쪽에서 올라가면서 처음 만나는 곳에 있는 사찰에 있는 미륵불이다. 그냥 문화재로 본다. 종교가 틀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바위를 쪼아서 만든 미륵불이 크다. 용봉산에 있는 바위 자체를 이용하여 미륵불 불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바위산은 흙산과 다르게 처음부터 가파르게 오를 수밖에 없다. 비와 바람에 따라 흙은 비에 쓸려서 내려가고 바위만 남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
오늘은 수암산을 거쳐 덕숭산을 올랐다가 수덕사까지 내려와야 하므로 시간은 그렇게 지체할 수 없어 오를 때는 빠르게 기묘하게 생긴 바위는 감상을 할 때는 천천히 걷고 사진도 찍어야 한다.
용봉산 정상에 빠르게 도착하여 친구를 기다리면서 멀리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을 담아 본다. 수덕사는 우리는 노래를 듣고 여승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이 있는데 여승은 없었는데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겠다.
수덕사의 여승(노래 : 송춘희)
인적~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온~~ 정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용봉상 정상을 지나 이제 노적봉으로 간다.
정상에서 악귀봉을 향하여 사진을 담으니 노적봉이 있고 악귀봉이 보인다. 저 바위산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인가 궁금하다. 노적봉이다. 전국의 산하에 노적봉이 많은데 이곳도 노적봉이 있다. 홍성, 예산의 경우 곡창지대인 만큼 노적봉이라고 할 필요가 없이 곳곳에 노적가리가 있을 것인데 산 위에도 노적봉을 두고 있다. 노적봉을 지나다 보면 용봉산의 명물인 바위에 옆으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가 있어 모두들 사진에 담는다.
노적봉에서 악귀봉으로 가는데 노년의 부부가 정상을 오르면서 부인이 "또 올라가야 하는 것이야!" 하니 아저씨 왈 "이 봉우리가 마지막이야 다 와서 왜 그래"한다. 이제 악귀봉을 올라왔다가 내려와서 끝이 났나 했는데 또 내려갔다가 올라가니 힘이 드셨는 것 같다. 연세 드셔서 같이 등산을 다니시는 그 부부가 부러운 것이다. 같이 취미생활도 하면서 전국의 산하를 돌아다닐 수 있는 건강도 있으니 부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악귀봉에 오르면서 바위와 소나무가 조화를 이룬 용봉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악귀봉에서 다양한 모양의 산을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기암괴석이 많다. 물개바위가 있는데 사람들이 하도 많이 올라 그 모양이 사라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물개바위에 올라 사진을 찍는다. 우리는 인증샷을 좋아한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관광 명승에 도착하면 인증샷을 남긴다. 오늘 이후에 몇 번이나 해당 사진을 볼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당 사진을 찍기 위하여 위험도 불사하고 인증샷을 남긴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전망대로 이동하여 맞은편 능선을 담으니 한 폭의 금강산이 되었다.
악귀봉에 있는 주요 바위를 보면 삽삽개바위, 두꺼비바위, 물개바위 등등이다. 본인이 이름을 붙이면 모든 것이 그 이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감투봉으로 오른다. 감투봉에도 자기가 필요하면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바위가 있다.
전망대에서 수암산을 쳐다보고 수암산으로 걷는다. 이동하면서 수암산으로 가기 위하여는 왼쪽으로 가는 등산로로 가면 된다고 등산 가이드가 말한 것을 돼 새기고 수암산을 갔다가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도 상기하였다. 그곳이 가루실 고개다. 수암산은 장군봉 근처에 정상석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을 하였는데 아니다.
수암산을 오르면서 이 지역에 거주하시는 산객들에게 물어보니 수암산 정상석은 한 참 걸어야 한다고 한다. 친구가 정상석을 찾아가는 나에게 본인은 여기에서 휴식을 취할 것이니 나보고 정상석이 있는 곳까지 갔다 오라고 한다. 좋다. 사나이에게 오기가 발생하여 걷는다. 정상이 어디메쯤 있을까 걸어본다. 그래도 수암 능선 자체가 오르내림도 거의 없고 평탄하게 이어지고 있어서 빠르게 30분 이상 걸으니 수암산 정상석이 있었다. 수암산 능선은 덕산온천으로 이어지는 만큼 근처에 정상석이 있었다. 정상석 근처에는 그래도 남들이 생각하면 특이하게 꾸며 놓아서 이를 담아 보았다.
수암산 정상을 향해 갈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오형제봉이 있어서 담아보았는데 다섯 형제가 그대로 보인다. 엄지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이 굵다. 그냥 손에 있는 오 형제가 아닌 것 같다. 이 오형제가 무엇을 바라고 여기에 있는 것일까? 옛날~ 옛날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어머니가 한양으로 떠났는데 십 년 후 돌아온 어머니는 원수의 부인이 되어 더욱 억울하여 장남이 원수를 죽였고 그 오 형제가 동시에 자결하였고 그 오 형제가 죽은 자리에 시신은 없어지고 오형제를 닮은 바위가 생겨 이 바위를 오 형제바위라고 불렀다고 전설을 표지석으로 예산군에서 정리하여 놓았다. 그 어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보니 바로 아래에 구렁이가 되어 사람들에게 밟혀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가 진짜로 부인이 된것인지 원수를 갚기 위하여 위장한 것인지 모르는데 그렇게 전설이 만들어져 있다.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장군봉을 향하여 줄기차게 걷는다.
장군봉 근처에 와서 네이버 지도나 다음 지도 등 전자지도를 보니 여기가 정상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사실 지구는 둥글고 사람들이 정상석을 어디에 설치하느냐가 중요하다. 덕산온천에서 올라오는 것이 주이고 이곳은 그곳에서 2km 이상 떨어져 있으니 거기를 정상으로 한 것 같다. 장군봉 근처에 의자 바위가 있어 않아 본다. 수암산에도 여러 바위가 있다. 부부바위, 얼굴바위 등이다.
장군봉에서 친구를 만나 가루실 고개로 내려간다. 가루실 고개에서 이제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으로 가기 위하여서 마을로 내려갔다가 다시 산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마을로 들어선다. 농사일을 하기 위하여 마을은 한창 바쁘다. 트랙터가 논과 밭을 가꾸고 있다. 트랙터에서 일을 하시는 분이 친구와 이야기를 한다. 친구는 무엇을 심을 것인지 그 아저씨는 우리에게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어보고 답한다.
내포에서 가루실 마을로 넘어가기 위한 고개가 가루실 고개다. 고개에서 마을로 한 걸음에 내려올 수 있고 둔리 저수지를 중심으로 가든도 있고 농장도 있다. 하우스에서 재배한 딸기향이 마을 전체에 그득하다. 예산에서 유명한 딸기 하고 한다.
덕승산을 가기 위하여는 40번 국도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 덕숭산을 거쳐서 수덕사까지 도착할 시간이 빠듯하다. 그런데 나는 수암산 정상석을 찾기 위하여 4km를 더 걸었다. 친구는 약간의 몸에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래도 나는 친구보다 등산을 많이 하였기에 견디면서 걷는다. 이제 40번 국도를 만났다.
가이드가 말하기를 수덕사는 입장료를 내는 사찰이고 그 주변에 울타리가 둘러져 있으니 그 울타리 끝까지 가서 덕숭산을 올라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이 기억나서 울타리를 따라 걸어 덕승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함께 산행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저만치 갔을 것이다. 우리는 수암산 정상석을 찾아 헤매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친구는 그래도 원기 회복하여 산을 오를 것이다.
곶감을 에너지원으로 하여 덕숭산 초입에 있는 넓은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오를 길과 시간을 계산하여 보니 그렇게 늦지도 않았고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아 서로를 응원하면서 덕승산을 올랐다.
40분쯤 올라 수덕사에서 올라오는 등산객을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제는 10분 내외로 덕숭산에 오를 것이며 내려가는 시간을 감안하여도 수덕사를 돌아보고도 산행 버스 출발시간까지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뇌리를 스치면서 친구가 따라오기만 바랄 뿐이다. 덕승산 정상에서 수덕사까지는 30분 내외로 내려가면 되고 거기에서 수덕사도 돌아보고 수덕사 여관도 돌아볼 수 있는 것이다.
만공탑을 지나고 샘터에서 갈증도 해소한 후 수덕사를 돌아본다.
예전에 이곳 수덕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한 기억이 있고 아침에 운동겸 만공탑까지 올라온 기억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 예불드리는 모습도 보고 그 예불이 끝나면서 아침 식사 전에 마당을 쓸고 운동 겸 만공탑까지 올라왔었다. 수덕사에 대하여 설명을 찾아보면 백제시대의 고찰로 위덕왕때 창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수덕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있는 사찰이 아니고 노래가 그렇게 되어 알려진 것이며 덕숭산 줄기에 낙람암 건설암 등이 비구니 스님 암자라고 한다. 수덕사는 승가대학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구본사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수덕여관은 소설책에도 나오고 해서 유명하다. 수덕사 앞의 모든 음식점들은 철시하여 별도로 조성된 거리에서 상행위를 하고 있지만 수덕여관은 현재 영업활동을 하지 않지만 그 의미가 있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이응로가 1944년에 구입하여 6·25 전쟁 때 피난처로 사용한 곳으로 수덕사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바위 위에 새겨진 암각화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수덕여관에는 슬픈 전설 같은 실제 이야기가 지금도 고이 간직되어있는 곳이라고 한다. 신여성이자 여류화가 나혜석이 1937년부터 1943년까지 말년을 이곳에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응로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도 한다. 수덕여관은 충남도에서 사적지로 관리하고 있다. 이응로가 돌아왔을 때 이곳에 한동안 머물렀는지 그와 관련된 기사를 스크랩하여 전시회 놓았다.
이제 산행 버스를 타려 내려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속시간에 맞추어 도착해 있다. 우리들처럼 덕숭산을 거친 사람도 있고 덕숭산을 올라가지 않고 40번 국도를 따라 조금 걸어와서 막걸리 한잔 한 사람도 있다. 작지만 아름다운 용봉산과 수암산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