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은 서울시민의 휴식처이면서 서울에서 돌아보면 어디에서나 보이는 산이다. 1년에 서너 번은 북한산을 간다는 사람들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원정 산행을 하지 못할 경우 북한산 산행이 1번이 된다. 금년에만 북한산 백운대를 오른 것도 2번 대동문까지 간 것도 2번이니 이번 산행을 포함하면 5번을 북한산을 산행한 것이다.
북한산은 우리에게 북한산이란 의미보다 북한산성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북한산은 한수이북에 있는 산이란 의미다. 북한산은 등산로가 서울의 강북지역 곳곳에 등산로가 있다. 기본적으로 북한산성입구에서 출발하는 것과 우이동에서 출발하는 것이 기본이며 정릉이나 평창동에서 형제봉 능선을 경유하는 노선 불광이나 독바위에서 출발하는 비봉능선
정릉에서 출발하는 칼바위 능선, 밤골 입구에서 출발하는 북한산의 백미 숨은 벽 능선 등이 있다.
오늘은 가장 기본 등산로를 이용하여 북한산 백운대를 올라간다. 북한산성입구에서 출발하여 계곡을 따라 올라가며 대동사 약수암을 지나고 백운대 암문(위문)을 거쳐 백운대를 오르기로 하였다.
산을 다니면서 부부가 같이 산행을 하는 것을 부러워한 적이 많다. 취미생활을 같이 하는 것은 그 어는 것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동네산을 따라다는 것으로 취미생활을 같이 하였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큰 산에 도전을 한다.
아내는 처음으로 백운대를 도전하는 것이다. 대동문까지 2차례 올라갔고 관악산을 등정하여 자신감을 서서히 갖기 시작하였다. 올라갈 때는 힘들어도 문제가 없는데 가파르게 내려오면 어렵다. 전형적인 무릎 보호 산행이다.
10월 마지막 날 산행을 위하여 북한산성입구에 도착하니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어 우리를 반긴다.
오늘은 나에게는 북한산을 다시 한번 쳐다보는 여유로운 산행이라 이것저것 쳐다보는 여유가 생긴다. 그동안 스쳐 지나가면서 보지 못하였던 것을 보았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탐방지원센터를 지나자마자 갈림길이다. 계곡길과 포장길이다. 등산을 시작하면서 오를 때는 가파르게 내려올 때는 여유롭게라고 배웠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계곡길을 선택하고 오르는데 북한동 옛이야기가 곳곳에 남겨져 있다. 탐방지원센터 바로 앞에도 북한산 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어 예전에는 상당히 큰 마을이 계곡 입구에 형성이 돼있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탐방지원센터 이전에 형성된 마을도 그 예전 마을 이전으로 형성이 되었을 것이다.
국립공원에서 상행위와 건전한 등산문화 조성을 위하여 이들을 탐방지원센터 밖으로 내보내기 위하여 노력한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다
계곡길로 오르는데 산사들이 복원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북한산에 위치하였던 사찰들이 일제강점기 전쟁을 거치면서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거나 전쟁 시 강제로 철거되어 아직 복원되지 못한 사찰이 있어 복원공사가 지속된다고 하였다.
계곡길과 포장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백운대를 쳐다보면서 저곳을 오른다고 하니 돌산이네 한다.백운대의 모습을 오를 때보고 올라서 보고 지나서 보고 북한산성 보현봉에서 보고 오늘 하루 계속 볼 것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돌계단이 시작된다. 대동문 쪽으로 우회해서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간다.
대동문 쪽으로 대부분 사람들이 가는 것을 보고 우리 등산로 방향을 물으니 나는 왼쪽이다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방향은 하산로라고 이야기하고 오르는데 어느 사찰의 스님인지 보살님인지 지게꾼을 뒤로하고 가고 있다. 저 지게꾼이 있기에 사찰에 물자가 공급되고 대피소나 산장이 운영되는 것이다. 무척이나 힘들게 올라가지만 저분은 생업 우리는 취미생활이 되는 것이다.
등산로 초입은 어디에나 힘들게 시작이지만 북한산성입구, 우이동 등에서 시작하는 북한산 등산로는 의상능선 등산로를 제외하고 초입에서 1km 이상은 힘들이지 않고 서서히 자기 몸을 등산로에 적응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동사 인근을 지나기 위하여 개울을 지나는데 산이 온통 물들어 있다 불타는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어제 족두리봉을 중심으로 산불이 난 만큼 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너도 나도 조심하여야 할 것이다. 산이 자연스럽게 불타야 하는데 인위적으로 불타오르면 우리 모두의 불행일 것이다.
대동사 초입에 있는 대동사 약수터 2개월 이상 지속되는 가뭄에 거의 흔적이 없고 개울에도 물이 없다. 대동사 초입부터 등산로는 가파르다. 늦가을이라 더위가 없어서 그런지 땀이 많이 날 뿐 갈증은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땀을 식히기 위하여 재킷을 벗어 배낭에 넣으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하여 산을 오른다. ㄱ자로 꺾이고 상부에 휴식터가 있는 가파른 등산로에서 잠식 휴식을 취하면서 여유를 찾으며 이웃한 노적봉을 바라본다.
노적봉은 전국에 산재하여 있다. 북한산에도 노적봉이고 있고, 남한산에는 노적산이 있고, 목포의 유달산에도 노적봉이 있다. 노적은 우리 조상들이 곡류형의 곡식을 거두어 쌓아 두는 형태로 이것이 많으면 집이 부자였든 것이다. 가을 추수 후 벼 노적이 많으면 든든한 식량이 생겼고 누가 무시하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본다. 목포 유달산의 노적봉은 이순 신장 군하고 연관이 있다. 왜군이 정유재란 시 목포 근처를 지날 때 노적봉에 볏짚으로 이것을 덮어서 조선군에 식량이 많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10월 말이다. 3월 말에 산을 오르는 것과 비슷한 형태가 나타나지만 3월 말에는 앙상한 가지와 녹음이었으나 이제는 높은 지역은 낙엽이 다 떨어지고 있고 낮은 지역은 단풍이 제철이다. 북한산에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약사암터에서 북한산 암문, 예전에는 위문까지 이르는 가파른 길은 누구나 힘들어한다. 금년에 나와 같이 이 등산로를 이용하여 2월에 오른 사람은 그때를 회상하면서 그곳을 오르고 방전이 되었다고 하였다. 에너지를 최대한 많이 쓰기 위하여 약사암터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무엇을 먹으면서 뱃심으로 올라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렇게 본다. 무엇을 먹을 때 에너지를 최대한 빨리 이용할 수 있는 초콜릿 등을 먹지 않고 과일 등을 먹을 경우 더욱 힘이 든다고 본다.
또한, 산을 즐기려 왔기 때문에 가파른 등산로가 있으면 천천히 쉬면서 올라가면 된다고 본다. 그것을 무리하게 다른 사람이 앞서 간다고 따라갈 필요가 없다고 본다. 아내도 역시 나를 따라오기보다는 천천히 자기 힘을 조절하면서 올라온다. 하지만, 나는 걱정이다. 올라와서 돌아보고 올라와서 돌아보고 이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넓은 바위에 앉아 가쁜 숨을 들이키면서 이웃한 만경대와 노적봉을 보여주고 저기는 안 올라간다고 하면서 위로를 하고 아침 일찍 백운대를 올라가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젊은 친구 3명이서 서로를 북돋우면서 걷고 있다.
백운대 암문(위문)에서 50m 정도를 데크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곳에 도착하면 이제 안심이다. 내려오는 사람이 이제는 1분이라고 위로를 한다. 산을 오를 때는 내려오는 사람에게 열심히 물어본다. 통상적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힘들게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고 사람들은 위로로 거의 다 왔다고 한다. 사실 1시간이나 남은 거리를 30분밖에 안 남았다고 하면 힘든 구간이 이제 거의 끝났다고 생각하고 힘을 내지만, 내가 2시간 이상을 힘들게 왔는데 아직도 1시간이나 남았다면 다리에 힘이 풀릴 때도 있고 휴식을 취하면서 다시 한번 다짐을 하기도 한다.
오르는 사람은 중력을 거스르면서 오르는 것이고 내려오는 사람은 중력에 이끌리어 내려오는 만큼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백운대 암문에서 이제는 뒤쪽은 만경대 앞쪽은 백운대가 있도록 다시 시작한다. 이제 500m 남짓 남았는데 이것이 절정의 어려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국립공원공단에서 안전을 위하여 데크도 만들고 안전 지주도 만들고 안전 철선도 만들어서 설치하여 등산로를 벗어나지 않으면 문제가 없는데 혹, 이를 벗어나는 사람들이 있어 소방헬기가 나타나기도 한다.
오전 이른 시간에 내려오는 사람은 거의 없고 올라가는 사람만 있어서 그런지 일방통행이 필요한 곳도 문제없이 오르는데 내려올 때가 걱정이다. 저 등산로를 따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조금 지나면 올라올 사람들과 일방통행이 필요한 곳에서 정체를 유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운대 바위는 이웃한 인수봉보다 낮고 비스듬하여 바위 절벽을 타기 위한 등산교실이 수시로 열린다. 오늘도 암벽을 타기 위한 등산교실이 열리고 있다. 이웃한 인수봉에는 아직 사람이 없다. 이른 시간이고 바람이 약간 세게 불어서 그런 것 같다. 온도가 약간 더 높아지면 인수봉에 사람들이 붙어 있을 것이다.
아내는 처음으로 오르는 백운대 바윗길을 씩씩하게 잘 오른다. 아내의 등산 실력을 아직까지 몰랐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도봉산도 도전해 보아야겠다. 도봉산은 백운대보다 Y계곡을 중심으로 위험한 곳이 조금 더 있고 자운봉의 정상도 지주를 잡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부분이 어려움이 있어 아직은 권고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서울 근교산 중 밧줄을 심하게 타는 수락산을 제외하고는 완주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백운대에 올라 백운대 정상석과 태극기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기 위하여 많은 사람이 줄을 섰고 우리는 그것에 동참하지 않고 살짝 비켜난 곳에서 태극기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긴다.
이제 하산을 하여야 하나 백운대 오른 기념으로 간단하게 우리가 산에 가서 먹으면 더욱 맛있는 컵라면을 하나 먹는데 이웃한 곳에 산행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재미있다. 산행을 하시는 모든 분들이 들으면 좋을 것이다. 백운대에 넓은 바위 옆에 사람들이 올라가는 봉이 또 하나 있다. 그곳에 올라 간 사람에게 그곳에서 안전에 유의하라고
"그곳에서 미끄러지면 지름길이다.
니가 그곳에서 미끄러지면 너보다 너 아내가 좋아할 것이다"
안전사고가 나면 너는 죽음의 지름길로 갈 것이고 젊은 아내는 너보다 멋진 신랑을 만날 것이다라는 이야기다. 우리 모두 안전에 유의하면서 위험한 곳에는 위험한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삼각산에 대한 설명이 인수봉을 바라보는 지점에 있어 옮겨본다.
삼각산은 백운대(836.5m), 인수봉(810.5m), 만경대(757m)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서 볼 때 이 봉우리들이 마치 세 개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삼각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정하였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의 부아악이 삼각산을 말하는 것이다. 삼각산 봉우리는 쥐라기 말에 형성된 대보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형상을 달리하는 반구형 형태를 보이며 산 사면의 경사는 대체로 70도 이상에 달한다.
주봉인 백운대의 정상에는 500㎢의 평탄한 공간이 있어 수백 명의 사람이 앉아서 탁 트인 주변 경관을 즐길 수 있다. 백운대 동쪽에 자리 잡은 인수봉은 뿔 모양의 바위 하나가 우뚝 솟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암벽등반 장소로 유명하다. 동남쪽에 솟은 만경대는 국방봉이라고도 불렸다. 만경대에는 무학대사와 얽힌 이야기가 있다. 태조 이성계와 왕사인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 후보자를 찾으려 순례할 때 백운대로부터 맥을 밟아 만경대에 이르러 서남 방향으로 가 비봉에 이르렀다고 한다. 거기에 한 석비가 있는데 "무학이 길을 잘못 들어 여기에 이른다"라고 적혀 있어서 길을 바꾸어 내려가 궁성을 정하였다고 한다.
백운대에서 하산을 하는 데 앞에 어린 친구가 하산을 하면서 어려움이 있고 엄마, 아빠가 안절부절못하다가 잠시 기다리는 여유를 갖기로 한다. 뒤에 모든 사람들이 그 친구 때문에 정체되기 때문이다. 내려올 때 우리는 일방통행 지점에 재 빠르게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 행렬에 붙어서 잘 붙어서 내려왔다. 올라오는 사람들인 많았지만 한 번은 내려가고 한 번은 올라오는 것이 일반통행 지점이다.
백운대 암문을 지나서 대동문으로 방향을 잡는다. 북한산성의 길로 들어섰다고 보면 될 것이다. 북한산성 입구에서 백운대를 오른 것도 북한산성 구역이지만 용암문을 거쳐서 대동문을 이르고 대남문까지 이르는 길은 성벽을 끼고 걷는 것이다.
백운대 암문에서 데크를 타고 내려와서 만경대의 7부 능선의 암릉길에 조성된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서 하산한 백운대를 쳐다보니 등산객이 등산로에 가득하다. 우리가 일찍 잘 갔다 왔다고 아내는 말한다.
북한산성에 대하여 아내가 질문하여 병자호란시절 남한산성에서 청나라를 방어하기에 한계가 있어 숙종 때 북한산성을 건설하였고 답변하였다. 그리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맞았다.
백제가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있을 때 개루왕이 한수 북변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근초고왕이 평양성을 공격한 뒤 한강 이북으로 도성을 옮기고 이후 비류왕 때 내신좌평 우복이 북한산성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고, 개로왕이 도림의 꼬임에 넘어가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위치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을 겪으면서 도성 외곽의 성을 고쳐 쌓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1711년(숙종 37) 왕의 명령으로 대대적인 축성 공사를 시작하여 석성(石城) 7,620보(步)를 완성하였다. (나무위키, 북한산성)
나는 북한산성의 성문을 하루에 다 돌아보는 성문 종주를 해보았다. 대서문에서 시작하여 의상능선을 올라 간 후 가사당암문, 부왕동암문을 보고 주능선을 온 후 청수동암문, 대남문, 대성문, 보국문, 대동문, 용암동 암문을 거쳐 백운동 암문(위문) 지나 백운대에 갔다가 산성입구로 방향을 바로 잡고 내려오다가 원효봉으로 방향을 잡아 북문에 이른 후 원효봉을 오르고 시구문을 지나 수문으로 빠져나오는 코스이다.
용암동 암문 앞을 지나면서 용암도 암문을 소개하는 글을 읽으면서 사진을 담다가 우리의 얼굴이 거울과 같은 형태로 사진에 담겨서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등에도 해보았다. 하지만, 대성문에서는 햇빛의 영향으로 잘되지 않았다.
대동문 주변의 공터 대부분이 코로나 19로 인하여 사회적 격리를 위하여 등산객들이 공터에서 모여서 식사도 못하게 막아 놓았다. 하지만, 이곳에 그렇게 한다고 하여 산객들이 모이지 않는 것은 아닌데 좀 이 부분은 과하고 제거하였으면 한다. 산 전체에 모일 수 있는 곳이 곳곳에 있는데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과도한 규제라고 본다.
대동문을 지난 후 보국문으로 가는 길에 칼바위 능선이 있어 이곳에서 내려가면 수유리로 간다고 이야기하는데 봉우리 끝까지 데크가 끝까지 있어 두려움이 있다고 하였다. 내가 저기로 데크가 있어 그렇게 어려움이 없다고 이야기하였다. 칼바위 능선은 암봉의 오른쪽 면이 칼로 내리친 듯한 모양인 데서 유래하였고 칼바위 능선의 800m 구간은 급경사 암벽지역으로 추락사고가 종종 일어나 자연보호법에 따른 사고위험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대남문까지는 10분의 여유가 있었지만 더 이상 가는 의미보다는 이제 하산할 필요가 있어 산성입구 탐방지원센터로 가는 하산길을 접어들었다. 이곳이 행궁터도 있는 등 이곳에 성을 쌓은 이유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내려오면서 단풍터널이 있어 단풍놀이를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설악산을 가지 않았도 별도로 단풍놀이를 위한 멀리 산행을 가지 않아도 되었다. 코로나 19로 랜선 단풍관광이라고 하였는데 근교 산행에서도 이를 만끽하였다.
가장 편안하게 대동문까지 접근할 수 있고 대동문에서 빠져나와서 산성입구 탐방지원센터가 접근할 수 있는 등산로를 이용하여 하산을 한다. 혹, 등산을 할 때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동문까지 가는 등산로를 이용하여 등산에 재미를 붙여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산성은 전시에 이곳에 왕이 피신하여 적과 교전을 하여야 하는 곳이다. 병자호란시 남한산성에 인조가 피신을 하여 청과 교전하였고 그 행궁이 복원되어 있다. 북한산성은 숙종 때 건설되었고 대규모 전투가 없어서 그런지 이곳에 건설할 때 이곳을 온 숙종과 그아들이 영조가 왔다가 갔다는 기록이 있을 뿐 이를 이용하였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의욕은 있었으나 이웃한 청나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서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조선행궁터가 있는 지역이 그래도 평탄하지만 한양에서 왕궁을 나온 이후 산을 넘어 대성문으로 들어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지금은 남한산성처럼 도립공원이 아니어서 지자체가 복원공사를 할 수 없어서 위치만 표식 하여 놓는 것으로 국민들은 그것을 아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중성문을 지나면서 이제는 산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만경대에서 바라보았던 국녕사도 이곳에서 올라갈 수 있다.
자연학습원이 있는데 현재 늦가을이라 국화과 식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오늘 본 야생화는 감국, 산국, 구절초 쑥부쟁이를 담아본다
북한동 전시관이 있는 곳에서 계곡길이 아닌 포장길을 이용하여 산성입구 탐방지원센터로 내려온다. 지난여름 아내와 함께 대동문까지 갔다가 올 때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길옆에 나무에 매미나방 애벌레가 급습하여 이를 제거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오늘은 그 나무들이 홍엽이 되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자연은 인간이 무엇이라고 하여도 그대로 자연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 아내는 처음으로 백운대를 올랐다.
그리고 단풍놀이를 가지 않고 단풍 구경을 마음껏 했다.
마지막으로 산성입구에서 대중교통을 탑승하기 전 버스 정류장 부근에 은평구에서 설치한 먼지떨이로 산의 모든 것을 남겨두고 오늘의 산행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