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이 있다. 도시가 발달하면서 이 부분이 희미해지고 있다.
시흥에서 출발하던가 부천 남쪽에서 출발하는 부천의 둘레길을 타고 이동한 후 인천의 산으로 이동한 후 시흥 소래산에서 종결하는 루트를 친구가 제안하였고 나도 처음으로 간다. 이곳에 산들이 200m 남짓 하여서 그렇게 끌리지 않고 근교 산행이라서 그랬는 것 같다. 그래도 근처에 이렇게 좋은 산행이 가능한 산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친구에게 감사할 뿐이다. 도심 속에 있는 산이 이러한 즐거움을 줄 수 있고 알바도 3번 정도 하였지만 10시간을 넘게 산행을 한 것에 또 한 번 친구에게 감사를 한다.
톱니바퀴 형태의 정맥은 아니지만 조용하게 담소를 하면서 시작하였지만, 마지막은 피라미드 같은 산을 오르고 내려왔다.
소새울역에서 시작하기로 하고 새벽 미명을 타고 이동한다. 1호선으로 이동하다가 서해선으로 환승하여 소새울역으로 나는 이동하고 친구는 시흥 대야역에서 소새울역으로 이동한다. 서해선은 처음 타본다.
서해선은 소사~원시 구간 개통(2018년 6월 16일)을 시작으로 소사~대곡~일산구간 및 원시~송산구간,
송산~홍성구간이 연차적으로 개통되어 경의선, 장항선과 연계될 예정이라고 한다. 소사원시구간은 하루 92천 명이 이용하는 수도권 서남부(부천시~시흥시~안산시) 시민의 발로 12개 역이 있다.
소사역에서 바쁜 걸음으로 환승구역에 가니 19분을 기다려야 한다. 서해선은 20분 간격으로 기차가 다닌다. 이러한 부분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소새울역에 도착하니 친구는 도착해서 3번 출구로 하고 안내를 한다.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한 지하철은 에스컬레이터가 길게 하늘로 머리를 들고 있다. 역삼역도 그렇다.
공사역명은 복사역이었으며 '복사'는 부천시의 별칭인 복사골(복숭아 고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며, 역 인근에 복사초등학교가 있다. 부천시청에서 복사정거장(가칭) 역사명 공모를 실시하였는데 소새울역>복사골역>신소사역>복사역>복사꽃말역 순으로 표를 받았다. ‘소사(素砂)’는 부천 토박이말로 ‘소새’ 또는 ‘소쇠’로 읽는다.
소새울역에서 나오자마자 소사대공원이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젊은 사람은 없고 잠 없는 사람들이 아침운동 중이다. 소사대공원에서 봉매산으로 가기 위하여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올라가다 보니 Love를 테마로 한 다양한 물품을 배치하여 놓아 이체롭다.
봉매산을 오르는 길에 접어들면서 초록의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촉록속에 검은 고양이는 몸을 숨기지만 그 정체를 완전히 숨기지 못하고 보여준다.
뱃살로 나이를 가름하는 곳이 있다. 우리 동네 산에서는 40대를 자신 있게 통과했는데 여기는 뱃살이 아니라 가슴이 통과가 안된다. 아쉬움을 자아낼 뿐이다. 우리는 50대이지만 40대가 꿈인 것이다. 꿈은 이루어져야 하고 그래야 꿈을 꾸는 것이다.
이제 첫 번째 만나는 산 정상이다. 사실 동네의 산이란 것이 설악산 전체의 하나의 봉도 안된지만 모두가 산이란 이름을 붙여놓았다. 정상석도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바위에 글자를 써놓았다. 카메라의 렌즈가 무척이나 무섭다. 사람이 인식하기에는 희미하지만 카메라에는 선명하게 보인다. 산이라는 글씨를 바위에 써놓아 특이하여 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겨본다.
산에 산이란 글자를 써놓은 것도 이채롭다. 저 바위에 왜 산이란 글자를 써놓았을까?
첫 번째다 오늘은 산이 참 많을 것이다. 공원에는 없었지만 산을 즐기기 위한 사람들이 개를 앞세우고 걷고 있다. 혼자서 걷는 것보다는 외롭지 않게 걷는다.
여우고개로 방향을 잡고 걷는다. 여우고개는 곳곳에 있다. 여우가 살았다는 전설도 있고 다양하지만 이곳에 대한 민족문화사전을 찾아보니 한자로 여우고개[如牛峴]라 한 것으로 보아 산의 형세가 마치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이므로 소와 같다 하여 여우((如牛) 고개라 했다는 설이 있지만 옆에 있는 하우고개에 더 해당하는데, 하우고개를 일명 와우(蝸牛: 소가 누워 있는 형상) 고개로 부르기 때문이며 여우고개는 한자로 훈차한 호현(狐峴)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고 이곳에 나무가 많고 후미진 곳이어서 여우가 많이 출현하였다 하여 붙여진 것으로 본다. 아직도 여스고개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여우의 고어 형태인 ‘여스’가 ‘여으→여우’로 음운 변천한 것이므로 여우에 관련된 고개가 타당한 듯싶다고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렇게 높지 않은 고개를 여우고개라 생각한다.
부천과 시흥의 경계를 걸으면서 방향감각을 유지하고 여기는 부천, 저기는 시흥 하면서 서로에게 이야기한다.
여우고개 기슭에는 음식점들이 많다. 이런 곳에 나지막한 산세가 한 번쯤 걸어보고 싶은 곳이었다.
부천에서는 둘레길을 만들어 놓고 안내를 한다. 서울과 경계, 시흥과 경계, 인천과 경계를 사이에 두고 산과 도심을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부천을 즐기도록 하였다.
여우고개에 도착하니 부천과 시흥의 경계가 고갯마루가 아닌 터널로 그 높이를 낮추었다. 시흥이 끝나고 부천이 시작되는 터널 입구에 부천을 알리는 조각이 있다. 나와 친구는 비둘기라고 생각했는데 송골매라고 한다.
저것이 송골매라고 하니 그렇게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부천에서는 시를 상징하는 새로 까치였으나 까치보다 보라매가 힘차게 발전하는 시를 상징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보라매로 바꾼 것이며 시의 나무와 꽃은 복숭아나무와 복숭아꽃이며 과일도 복숭아다. 부천에서는 오래전부터 성주산을 중심으로 야생 복숭아나무가 심어져 있었으며, 부천에 개량된 복숭아나무가 처음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식민시대 초기인 1900년대 초부터라고 시 홈페이지에 설명되어있다.
이제 오른쪽 산이 할미산이고 왼쪽산이 성미산이라고 한다. 조그마한 언덕을 지나쳤는데 그것이 할미산이라고 한다.
이제 하우고개로 오른다. 하우고개로 오르면서 가파르게 오르는 언덕은 100m 산이나 500m 산이나 1000m 산이나 똑같다.
산을 오르면서 소래산을 쳐다본다. 피라미드처럼 삼각뿔을 형성하고 있는 저산이 오늘의 최종 목적지다. 산을 오르면서 왼쪽의 전원주택과 카페가 눈에 띈다. 산을 뒷배경으로 멀리 소래산을 쳐다볼 수 있는 곳에 풍경을 차아낸다. 이곳에 다정한 사람과 여유를 갖고 차 한잔 할 여유를 찾아보리라.
이웃한 집에 분양광고도 되어 있고 주민이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어 분양 가격이 얼마인지 물어보니 복층에 32평에 3억 2천이라고 한다. 구미를 당기는 가격이다라고 친구는 말한다, 부천과 인접하였고 시흥과 부천의 맑은 공기 속에서 살 수 있다니 다만 교통이 문제다라고 이야기한다. 카페와 전원주택이 끝나는 지점에서 하우고개로 방향을 틀고 내려선다. 하우고개 정상에는 구름다리가 놓여있다. 구름다리 아래로 시흥과 부천을 오가는 자동차들이 바쁘게 지나고 구름다리에서 멀리 있는 시흥시를 조망해 본다.
이제는 성주산을 오르는 길이다. 배움의 숲이라고 설명하고 의자가 나란히 있는 것이 야외 교실 같다.
성주산에서 소래산으로 직접 갈 수 있으나 우리는 부천 둘레길을 계속 걷고 인천으로 갔다가 돌아오기로 한 만큼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하지만 정상은 군부대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우회할 수밖에 없다. 거마산을 향하여 발걸음을 돌린다. 성벽이 있는 곳은 가파르다. 현대는 성벽은 없고 철망만 있다.
내려섰다가 올라서는 곳은 가파르며 오른 길이 자박자박 오르는 길이며 이제는 두근두근 설레는 길이라고 한다. 거마산인가 하여 쳐다보니 아니다. 한순간을 걸어온 산객들이 너도나도 숨을 들이키고 있다. 조그마한 언덕도 언덕이고 높은 언덕도 언덕인 것이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큰 질병도 질병이고 작은 질병도 질병이며 큰 고난도 고난이고 작은 고난도 고난이다. 우리가 겪는 코로나 19도 이 또한 지나가리다.
유럽의 흑사병으로 인구의 1/3이 사망한 기억이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사회가 변화된 것처럼 코로나 19로 사회가 변화될 것이다.
소래산보다는 거마산으로 걷는다. 왼쪽은 부대 오른쪽은 등산로이다. 예전에 부대에서 공사를 하면 병사를 동원하여 어설프게 공사를 하였다. 같이 근무하는 미군들은 훈련만 하면 되고 공사 등에 동원되지 않은 것을 부럽게 쳐다본 기억이 있는데 요즈음 군대는 예전의 미군들과 같다. 30년이 지나니 우리도 변화고 좋아졌다. 병사들이 부대에서 훈련하던 훈련장이 이제는 퇴락하여 사용할 수 없는 모습이 안쓰럽다.
평탄한 등산로를 1km 이상 걷고 나서 도착한 곳이 거마산이다. 최초로 정상석이 있다.
여기서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인천대공원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뒤로 돌아서서 물넘이뒷산에 접근할 수 있는 등산로로 갈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능선을 타고 하산하여 물 넘이 뒷산으로 접근을 하기로 결정하고 이동하다 보니 군부대 훈련 표시가 지속되고 있다. 사격장 인근이라 도피탄에 위험하므로 접근을 하지 말라는 경고표시와 사격통제를 위한 초소도 보인다. 우리는 부대 안에 갇혀버렸다. 철망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이곳저곳을 쳐다보니 개구멍이 보인다. 개구멍을 통해 나서니 그곳이 바로 장수 ic부근이며 한국 진돗개 중앙회가 위치하고 있고 개를 키우는 농장이 있다.
개농장이 한적하고 마을과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였다. 전형적으로 개농장을 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큰 도로를 나와 도로를 건널 수 있는지 좌우를 살피니 좌측에 신호등이 있다. 좌측으로 이동하여 신호등까지 왔으나 차량신호등만 있고 횡단보도가 없다. 토끼굴이 있나 아래를 내려다보니 있다. 도로를 벗어나는 길에 여러 사람이 다닌 흔적이 있고 그리로 내려가니 토끼굴 입구가 보이고 자전거가 줄비하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몇몇 지나간다.
벽화를 재미있게 그려 놓았고 중고자전거를 파는 장이 서는 곳이다. 중고자전거 가격이 만만하지는 않다.
물넘이뒷산으로 방향을 잡고 가는데 산과 도로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하천에 물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물이 흐를 길은 없고 농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비닐로 고랑을 만들고 농작물을 심어 놓았다. 물넘이뒷산에는 군 훈련을 위한 시설이 있다는 경고 표시가 지속되고 등산로는 고갯마루 근처에서 시작되어 산을 오른다.
긴병꽃풀이 환영을 한다. 계단은 힘들다. 100m도 되지 않는 산을 오르면서 힘들다고 생각하니 이곳저곳을 쳐다보다가 정상 부근에서 군부대 막사를 보니 에어컨 실외기가 눈에 띈다. 에어컨 실외기를 보는 순간 옛날 군 시절 여름을 어떻게 났을까 생각해보니 강원도 산골짜기에 선풍기도 없이 난 것으로 생각나는데 요즘은 군대는 에어컨으로 여름을 나는가 보다. 겨울에는 베치카가 있는 내무반에서 여름은 선풍기가 없어도 시원하였던 기억이 있다.
3시간 이상 걸으면서 이제는 에너지도 보충하고 쉼이 필요하여 휴식한 곳이 군 훈련장중 화생방 교육장이고 교육생들이 앉아서 교육을 받는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먹었다.
그런데 먼 곳의 숲 속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쳐다보니 인민군 복장의 흉상이 숲 속에 있다.
광학산을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지그재그로 오르면서 곳곳에 숨어있는 인민군 흉상을 보면서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던 훈련병들이 참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철마산을 간다. 남양주에도 철마산이 있고 여기에도 철마산이 있다. 이곳이 한남정맥이란 표식도 있다. 한남정맥이며 한강 줄기의 남쪽에 있는 분수령이라 하여 한남정맥이라 부르며 경기도의 한강 본류와 남한강의 남쪽 유역의 분수령으로 해발 100m 미만의 낮은 등성이의 연결로서 서쪽에 위치한 인천·시흥·안산 등의 산줄기를 만들고 소래산, 성주산, 계양산, 가현산을 지나 한강 하구인 보구곶리 근처 강화 접경의 문수산성에서 한강으로 몸을 숨긴다고 설명되어 있다. 성주산을 거쳐 거마산을 통과한 후 물넘이뒷산을 거쳐 광학산을 올라섰다. 이제는 철마산을 오른 후 만수산까지 간 후 우리는 돌아서서 인천 둘레길로 내려서서 거머리산으로 갈 것이다.
철마산에서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만수산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만수산 전망대에 도착하니 코로나 19에 벗어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황사에 가려진 인천의 모습이 아련하다.
만수산에서 처음 알바를 한다. 둘레길은 산을 내려서면 만나기에 능선을 따라 하산을 시도하였으나 골프공 대신에 자갈을 치는 사람이 그곳으로 내려가면 아파트 단지라고 한다. 우리는 알바를 한 것이다.
저 사람이 돌을 저렇게 치면 누군가가 돌을 맞을 것인데 그런 생각도 없이 돌을 치다니 말이 안 된다.
만수산 정상에 다시 올라서고 전자지도를 살펴보니 조금 돌아서서 내려서는 등산로가 보인다.
알바는 제대로 등산로를 알지 못하거나 너무 자신이 있을 때 발생한다. 우리는 등산로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알바를 한 것이다.
인천 둘레길을 만나니 재미있는 이정표가 보인다
화살표로 표시를 보고 인천 둘레길의 표지를 따라 걷는다. 산행 표지는 등산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안내를 한다. 도심을 걷는 둘레길은 특히 표지가 없다면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내가 강화도 나들길을 걸을 때 이것을 찾아 완주하였다. 삼남길을 걸을 때 표지를 찾기보다 모바일의 트랙을 잘 이용하였다. 인천 둘레길 트랙은 없고 표지를 따르기로 작정을 한다. 산에서 전자지도를 보는 방법도 어렵다. 난상토론을 한 끝에 친구의 전자지도 판독보다는 표지를 따르기로 하고 이동한다.
거머리산에 접근을 하면서 6시간 이상 걸은 거리는 15km를 넘어섰고 몸은 천근만근이 되어 간다.
나는 홀로아리랑을 읊조린다.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홀로아리랑인데 손잡고 가보자야고 홀로 가야지 한다.
이제는 거머리산이다. 우리는 이승훈 묘를 보고 116봉을 우회하기로 하고 거머리산이 무엇일까 하고 궁금해하면서 찾아보았다.
거머리 산은 해발 125.4m로 인천 만수동에 있는 산이지만 만월산의 징검다리형 산으로 보아야 하지만 유래는 찾을 수가 없었다.
한국 최초의 영세자이자 천주교를 설립한 이승훈의 묘가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한다. 천주교의 111개의 성지 중의 하나라고 한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였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승훈은 기독교를 한국으로 들여오고 직접 교회를 개척하였다는 점은 역사적 가치와 종교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승훈 묘소에는 이승훈의 장남과 삼남의 묘가 묘역으로 조성되어 있다.
116봉을 스쳐가려고 하였으나 이 또한 지나가기에는 아쉬움이 있어 올라서니 몇 걸음 만에 올라서니 인천대공원이 바로 앞에 놓여 있다.
무네마로는 횡단보도가 없다. 토끼굴을 찾는다.
여기 토끼굴도 벽화다.
토끼굴을 나오니 인천대공원 캠핑장이다. 우리는 산을 타고 넘어가서 관모산으로 가려고 한 만큼 캠핑장을 관통하기 위하여 들어갔으나 캠핑장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고 탈출이 불가능하다. 캠핑 온 사람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노력한 결과이다. 우리들은 다시 입구로 나와 울타리 밖으로 나와 용등산 등산로 입구를 찾았으나 없다. 나는 포기하자고 설득하고 친구는 아쉬워한다. 용등산을 포기하고 관모산으로 간다.
이동하면서 그림 같은 풍경을 담는다.
관모산 입구에서 백범광장이 있었다. 백범과 인천의 인연을 이유로 백범광장이 만들어져 있으며 동상도 세워져 있다. 백범의 모친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관모봉을 오르는 길은 조그마한 피라미드를 오르는 길이다. 계단을 오르면서 이를 응원하는 문구가 계단에 쓰여있다. 단숨에 올라서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어 한달음에 오른다. 계단을 오르는 산객들이 숨을 들이키면서 쉬고 있다.
산봉우리 모양이 옛 관리들의 모자처럼 생겼다는 유래에서 관모산이라는 지명이 생겨났고 일설에 의하면 산의 모양이 비를 피하기 위한 모자인 '갓모'였는데, 이것이 한자화되면서 관모가 되었다고 전하며 동쪽에 인접하여 솟아 있는 봉우리는 상아산(151m)이며, 상아산 동쪽으로 멀리 보이는 산이 소래산(299m)이다.
이곳에서도 알바를 하였다. 150계단 이상을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오니 힘이 든다. 친구에게 핀잔을 듣고 보니 정신을 차린다. 알바를 한 이유는 지도를 지속해서 쳐다보지 않은 것이고 산을 오른 사람들에게 불확실하게 물어본 죄이다.
상아산을 거쳐 능선을 따라 이동하다 좌측으로 하산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김재로 묘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초기에는 이정표가 있었으나 전자지도에 표시된 등산로에 의존하여 길을 찾았다.
김재로 묘는 누구인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등산지도를 믿고 길을 찾아 내려섰다. 이제 김재로 묘를 거쳐 소래산을 오르면 오늘의 목표를 이룬다. 8시간 이상 산행을 하였고 생생하다면 오르는 것에 그렇게 어려움이 없겠지만 피라미드처럼 우리 앞에 우뚝 솟아 있다.
김재로는 영조시대에 영의정을 지낸 인물로 문인석은 없고 동물석 2개가 좌우를 지키고 있다.
소래산 정상을 바로 오르지 않고 이웃한 봉이 었다. 안부로 내려간 후 소래산 정상으로 간다.
가파르게 내려가다가 100m 지점에서 다시 올라선다. 가파르게 내려서는 고개를 갈지자로 내려선다. 소래산 이정표가 재미있다. 돌고래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100m에서 299m까지 올라가야 한다. 계단이 몇 개 일지 생각해본다. 관모산에서 20분을 올랐는데 소래산은 얼마나 걸릴지 궁금하면서 오르기 시작하는데 아기를 업고 오르는 가족을 만났다. 저들도 오르는데 하면서 자신감이 생긴다.
계단을 오르면서 계단은 응원을 한다. 마지막 부분에 850개를 찍는다. 오늘 오른 계단이 저렇게 많고 저렇게 수명을 늘렸으니 수명을 1일 이상은 늘렸을 것이다. 어릴 적 읽은 3년 고개가 생각이 난다. 3년밖에 못 사는 것이 아니고 3년씩 늘어나니 3000천 년을 살았다고 한다.
소래산 정상은 피라미드 정상이며 시흥과 인천을 넓게 조망을 할 수 있다. 정상을 올라온 젊은 친구들이 정상석을 배경으로 폴짝폴짝 사진을 찍는다. 그들의 젊음이 실을 생동감 있게 하고 누구도 싶게 접근하는 산이란 것을 보여준다.
통상 정상에는 지자체 간 정상석을 따로 두고 서로의 경계를 자랑하지만 소래산은 이웃 지자체 간 다정하게 지자체 깃발을 국기대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민주지산의 삼도봉에 삼도탑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알바를 조심하기 위하여 전자지도를 쳐다본다. 오른 길을 약간 거슬러 능선을 타고 내려가다가 산림욕장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피라미드는 오르는 길 못지않게 내려가는 길도 계단의 연속이다.
내려선다. 약수터로 물도 음용이 가능하다. 요즈음의 약수터는 부적합이 대부분인데 여기는 가능하다. 부족한 수분을 보충하고 한걸음에 내려오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산림욕장에 있는 철쭉동산은 제철을 맞아 꽃이 만발하다. 산림욕장 입구에 도착하니 벌써 산행시간 10시간 넘어섰다.
오늘 오른 산 이름을 되짚어 본다. 봉매산, 성주산, 거마산, 물너미뒷산, 광학산, 철마산, 만수산, 거머리산, 관모산, 상아산, 116봉, 소래산이다. 도합 12개 산이다,
오늘의 산행을 정리하면서 만난 야생화를 정리하면 갓, 철쭉, 긴병꽃풀, 호제비꽃, 꽃잔디, 귀롱나무다
김기만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