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산이지만 다시 가고 픈 월악산

by 김기만

월악산을 갔다 왔다. 월악산은 악산이다. 힘들고 어렵다.

그래서 호응자가 거의 없다. 기본적으로 계단이 많다. 한 달 전에 약속을 하고 6월 6일 주말부부의 취지에 부합하게 주말에 집에 가기로 하고 주중 휴일은 근무지에서 지내면서 전국 산을 등산을 한다. 이것이 기본이 되어 움직인다. 충주와 제천을 걸쳐서 있는 월악산은 많은 계곡을 갖고 있다. 가람도 많다.
국립공원인 만큼 기본 지식은 공단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았다

월악산의 높이는 1,095.3m이며, 충주호(忠州湖)에 바로 인접하여 있고, 산의 동북쪽에는 소백산 국립공원이, 남서쪽으로는 속리산 국립공원이 있다. 지질은 주로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남쪽과 북서쪽으로는 약간의 퇴적암층이 있다.

자연적인 월악산의 형성은 고생대 암석 사이로 중생대 백악기 화강암이 관입하면서 형성되었고, 삼국시대부터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이자 통행로였다.

산 남쪽 기슭에는 마의태자와 동행하던 누이 덕주공주의 이름을 딴 덕주사(德周寺)가 있는데 윗산에는 망국의 한을 품은 덕주공주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는 덕주사 마애불(보물 제406호)이 있다. 미륵리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약 3.5㎞ 지점에 넓은 암반과 맑은 물이 아름다운 팔랑소가 있다.

또한, 월악산의 동쪽 산록에는 신륵사(神勒寺)가 있으며, 산의 동쪽을 흐르는 광천은 대미산(大美山)·문수봉(文繡峰)·하설산(夏雪山)에서 흘러나와 월악리를 거치면서 송계계곡 못지않은 신륵사 계곡을 전개한다.

날씨는 오후 늦게 비예보가 되어 있어서 그런지 전망은 좋지 않다.


이번 등산은 수산리에서 출발하여 보덕암 하봉 중봉 영봉 덕주사로 이동을 한다. 보덕암까지도 상당한 오르막이다. 수산리에서 보덕암까지 이동하면서 지천에 있는 산딸기에 마음이 다 가 버렸다. 산딸기를 손에 가득 따서 입으로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한다.

보덕암에서 만난 보덕암을 지키고 계시는 스님이 이야기 하기를 본인이 사찰이 건립하였으며 옛 절터였고 전탑 기단이 있었는데 이것이 흩어져 있어 이를 모아서 전탑을 3층으로 만들었다고 하였다. 보덕암의 약수는 그래도 유명하여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하였다.


하봉까지 오르면서 야생화에 이런저런 이야기도 잠시 잊어버릴 정도의 가파른 길이다. 숨이 목까지 오르고 땀은 비 오듯 한다. 보덕암 능선에 오르면서 가쁜 숨을 들이켜고 6월 6일 우리가 여기에 올 수 있게 한 순국선열들에 대한 묵념을 10시 정각에 한다.


이제 하봉에 접근을 한다. 호기심이 많은 분이 드디어 호기심이 발동되어 야생화를 찍어서 앱에 등록하고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한다. 듣지 못한 야생화 이름이 대부분이다. 나는 함박꽃밖에 모른다. 앱에 야생화를 사진 찍어 올리면 사람들의 지식이 동원이 되어 이름이 되돌이 온다.


네이버에서 알려주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한계가 있다고 설명을 하신다. 사실 그런 것 같다. 한국의 야생화를 그렇게 많이 등록하고 있는 시스템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식물은 성장한다. 그 성장하는 모습이 제각각인데 그것을 인식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른 앱도 유사하다.
1)산조팝나무,2)정향나무3)자란초4)까치박달5)개갈퀴6)말채나무이다

사람들에 따라 자기 관심분야가 있다. 나도 야생화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잼뱅이다. 야생화 이름을 듣고도 30분만 지나면 잃어버린다. 라일락의 이야기를 또 듣는다.
한국의 야생화는 그 이름이 모양으로 이름이 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이 원산지인 라일락 그 향기에 반하여 미국에서 개량하여 전 세계로 확산되었으며 우리는 그것이 미국이 원산지로 알고 있다. 수수꽃다리라는 말도 처음 들었다. 미스김 라일락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미군정기 식물채집가가 미군으로 가져가 개량한 것이다. 미스김은 타이 피스터였다고 한다

그런데 난데없는 어린아이 목소리가 산에 퍼진다. 궁금증이 유발된다. 하봉을 향하여 나아간다. 하봉은 3년 전까지는 올라갈 수 없었다. 최근에 등산로에 데크를 만들어 이제는 올라갈 수 있다. 첫 번째 하봉에서 뒤를 돌아보면 충주호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멋진 풍광이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광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데크를 만든 결과이다. 위험구간을 우회시켰으나 이제는 직접 공략하고 감상하게 하였다.


하봉 구간 마지막 부분에서 어린이 목소리 주인을 찾았다. 가족이 왔다. 엄마는 힘들고 아빠와 아이들은 앞서가서 엄마와 아이들이 계속적으로 대화를 한 것이다. 엄마 본인은 어렵게 가면서 아이들이 걱정이 되어 아이들을 부르고 아이들은 그것에 응답하는 것이다. 예전에 본 bear라는 영화가 생각이 난다. 엄마곰이 애기곰을 애처롭게 부르는 모습이 생각이 난다. 거기에서는 애기곰이 따라가지 못하였는데 여기는 엄마가 따라가지 못하였다. 하봉 끝에서 중봉으로 가는 아이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애처롭게 부르고 아이들은 거기에서 응답한다. 결국 아이들과 아빠는 영봉까지 가지 못하고 중봉에서 돌아섰다. 중봉에서 엄마에게 가면서도 초등생인 아이들이 소리친다. 돌아간다고


중봉을 올라서는 철계단은 이제 데크로 바뀌었다. 철계단일 때는 정말 무서웠는데 이제 그렇지 않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차이점이라고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무섭고 두렵지만 아직 나에게 직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양쪽의 깎아지른 절벽이 보이지 않으니 그런 것 같다.


하봉은 쌍봉낙타이지만 중봉은 단봉낙타이다.
낙타 등은 골이 깊다. 암릉을 타고 넘을 때마다 줄기차게 계단이 우리 앞 억 등장한다. 오른쪽은 절벽이다.

중간중간에 야생화다.


5년 전에는 월악산 영봉을 갈 경우에는 중봉을 넘은 후 송계계곡에서 올라오는 길까지 우회하여 영봉으로 올라갔으나 국립공원공단 측에서 하봉, 중봉뿐만 아니라 영봉 가는 길도 데크를 새로 만들어서 등산로가 완전히 변경이 되었다. 중봉을 넘어서 영봉으로 직접 가고 영봉도 송계계곡에서 올라옴에 있어서도 철계단아 영봉에 바로 붙어 있었으나 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이 데크를 만드신 분들은 고소공포증이 없는 사람이라고 본다. 데크에 올라서도 무서움이 있는데 만드는 과정에 낭떠리지에 그대로 데크를 만들었으니 안전장비를 갖고 있어도 나 같은 경우에는 접근도 하지 못하였을 것 같다.


그 이름이 궁금하다. 우리의 호기심은 끝이 없다. 수없는 계단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이제 영봉을 오르기 전 중봉과 영봉 사이의 안부에서 숨을 들이켠다. 시원한 계곡풍이 우리를 여유롭게 한다. 30분이면 영봉에 도착한다. 마지막 고비를 또 계단이다. 영봉에서 바라다본 능선과 계단 충주호가 조화를 이룬다.

영봉이다. 우리나라에서 영봉은 2군데 밖에 없다고 한다. 정상이 영봉인 곳은 백두산과 월악산이라고 한다. 그만큼 신령스럽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산 영봉도 있는데 그 영봉의 영자는 다른 것이다.


이제 하산길이다. 하지만 정상에서 둘러보는 파노라마는 가히 일뿜이다. 누구는 인증샷을 정상석을 향하여한다는데 나는 정상에서 둘레를 돌아보는 광경으로 한다.

바위산은 경치가 멋있다. 힘들다. 멀리 중봉 하봉 넘어 충주호가 보인다. 사실 맑은 날 오면 더 멋있겠지만 오늘은 안갯속에 있다.


한 폭의 동양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제 내려선다. 하지만 저만치 아래에 있는 꽃이 궁금하다. 산아래에 보이지만 깎아지른 절벽 아래에 있는 나무에 꽃이 핀 것이다.

산이 녹음과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제는 허기가 진다. 내리치는 하산길에 이제 등산길에서 살짝 벗어나고 풍광이 좋은 곳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30분을 더가야 그러한 곳이 있다. 30분을 더가야 한다고 하는 순간 안된다는 비토가 들어온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식사 장소를 찾고 허기를 채우고 이동한다. 야생화에 대한 응답이 온다. 좋은 세상이다. 산 위에서도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아직도 야생화 이름에 벽창호다.
산 위에서 보았던 헬기장이다. 뒤를 돌아보니 영봉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 덕주사로 하산하는 등산로이다. 마애석불이 중간에 있다. 이를 거쳐야 한다. 우리네 모습이 있다고 한다. 힘들게 올라오는 부부의 모습에서 우리의 오전을 엿볼 수 있다. 우리도 오전에 이렇게 올라섰는데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계곡에서 올라오는 한쪽에 데크가 설치되어있다. 데크에 휴식을 취하고 있다. 덕주사에서 올라왔다고 한다. 1시간 30분 걸렸다고 이제 2시간 걸려야 영봉까지 갈 수 있다고 하니 한숨을 내쉰다.
덕주공주의 전설이 있는 마애석불이다.


법당 앞에 우 탑(牛塔) 1기(基)와 조선시대의 부도(浮屠) 4기가 있는데, 이 우 탑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얽혀 있다. 덕주사에 승려가 많아져 절이 좁아서 새로이 부속건물을 지으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건장한 황소 한 마리가 나타나 목재를 어디론가 실어 날랐다. 뒤따라가 보니 지금 마애불이 있는 바위 아래였으므로 거기에 절을 짓고, 목재를 다 실어 나른 황소가 죽은 자리에는 우탑을 세웠다고 한다.

삼성각 아래 바위틈에서 나는 약수는 몸을 굽히지 않으면 떠서 먹을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한다.


이제 덕주사로 이동한다. 마애불을 떠나려는데 스님이 커피 한잔 하고 가시라고 권한다. 동행한 분이 반갑게 응답하면서 법당에 대하여 물어본다. 스님이 말하기를 10여 년 전에 건축하였는데 부실공사가 되어서 기와가 틀어졌다고 한다. 물이 샐 수도 있는 것이며 스님들의 욕심 때문에 예산보다 크게 불사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모두가 동일한 생각을 갖는 것이 우리들이다. 암자 앞에 있는 은행나무에 꽃이 예쁘게 피었다.


덕주산성을 지나고 덕주사까지는 30 분 남짓거리다.

덕주산성에 대하여 문화재청에서 설명하기를 충청북도 제천시 월악산의 남쪽에 있는 이 산성은 돌로 쌓은 통일신라시대의 산성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되어있고, 문경과 충주를 잇는 도로를 차단하는 전략적인 요충지이기 때문에 차단성의 기능을 지닌 이 성은 고려 고종 43년(1256) 몽고군이 충주를 공략하자 갑자기 구름, 바람, 우박이 쏟아져 적군들은 신이 돕는 땅이라 하여 달아났다고 하는 전설이 있기도 하며, 현존하는 성문은 조선시대에 새로이 축성되었다고 한다.


덕주사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을 만났다. 그분이 우리가 주차해 놓은 곳으로 안내를 한다. 차량을 회수하고 뒤풀이를 할 뿐이다.

keyword
김기만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