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남북 분단 시기에는 38도선 이북에 위치하였는데, 한국전쟁을 겪은 후 판문점 인근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군사분계선이 북으로 이동한 것처럼 이곳도 북으로 이동을 하였다. 연천이란 곳을 한국전쟁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황해도, 경기도 북부의 노른자위 땅이 사라진 것은 아쉬움이 가득하지만, 휴전회담이 열리고 있던 판문점 인근은 우리에게 곡창지대이기도 하고 북으로 보아서도 동일하다. 이곳은 전투를 벌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안고 있는 연천을 주중에 부부가 함께 여행하였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관광열차를 타고 연천까지 가서 연천 투어를 하기로 의기투합을 하고 예약하였다. 결과는 만족이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에 주중이라 그런지 1칸에 3명이 탔다. 이것을 운영하는 KORAIL도 참 어려울 것 같다. 기본적으로 수익이 아니고 적자다. 4월 1일부터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해할 만하다. 열차는 승객보다 승무원이 많다. 최근 마지막 사법연수원생으로 1명이 입교하였는데 사법연수원 교수가 30명이 있었다고 한 기사를 보았다. 완전 개인 교습이 된 것처럼, 우리는 열차를 전세 낸 것 같다. 버스는 그래도 다른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같고 기차를 탔다. 아내는 디젤 냄새에 민감하다 특히, 디젤동차가 뿜어내는 냄새는 싫다. 서서히 달릴 때는 냄새가 진하였으나 어느 순간 속도가 올라가니 줄어들었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관광열차이지만 실제 기차는 옛날 비둘기 열차이다. 관광열차라는 사실을 고려하여야 할 것 같다.
열차는 서울역을 떠나 청량리역 → 의정부역 → 동두천역 → 소요산역 → 연천역 → 신탄리역을 거쳐 백마고지 역까지 운행한다. 서울역에서 소요산역까지는 전철 운행 구간을 같이 운행하고 소요산역에서부터는 경원선 구간을 운행한다. 경원선은 서울에서 원산까지 가는 기찻길이며, 철원에서 철마는 달리고 싶다로 표기되어 있다. 경의선은 신촌, 문산, 판문점으로 이어지는 기차이다.
열차는 완행이다. 기본적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처음으로 가는 길은 모르기 때문에 지루한 것이 기본인 사항에서 전철 운행구간과 단선 구간을 운행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또 정기 열차가 아닌 관광열차이다 보니 우선순위도 후순위라고 할 수 있다. 단선은 반대편에서 오는 기차가 오면 기다려야 한다. 기차가 어느 정도 접근하였느냐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고 시간에 구애되지 않는 힐링 여행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을 벗어나서 의정부까지는 도심 구간이고 양주로 접어들면서 농촌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소요산역에서 소요산을 바라보면서 그 옛날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원효대사가 자재암을 세운 후 국민 관광지로 지정되어 많은 국민이 찾던 곳이다. 왕방산에서 출발화여 소요 지맥을 따라 소요산까지 걸었던 기억이 있다. 여름날 더위에 물이 모자라 목 가뭄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웃을 기웃기웃 한 기억도 있고 공주봉도 있다는 사실 등등이다. 기본적으로 경기 북부의 산천에 접근하기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소요산역을 출발한 기차는 연천역을 향하여 이동하고 한탄강을 건너서 전곡역을 거쳐서 연천역에 도착하였다.
기차는 여기에서 15분을 쉬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관광열차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15분 동안 연천역 인근을 순회하면서 사진도 찍고 구경을 한다. 급수탑도 있고, 증기기관차도 보인다. 근처의 조그마한 꽈배기 집이 유명하다고 한다. 돌아갈 때 여기가 출발점이므로 그곳에 들르기로 한다.
신탄리역에 도착하였다. 점심시간이다. 내리는 사람은 우리 부부를 포함하여 우리 열차 칸에 탔던 3명뿐이다. 투어에 참가하는 사람은 몇 명일까 궁금하여 관광버스 기사에게 물어보았다. 우리 둘 뿐이라고 한다. 점심을 먹고 버스에 탑승하라고 한다. 1시에 출발한다고 한다. 오후 반나절을 이곳에서 보내게 되는 것이다. 먼저 점심을 먹기 위하여 이동하니 이곳에 특이한 음식점인 막국수집이 있다. 사람들이 많다. 신탄리 맛집은 오리집이지만 간단한 점심은 막국수가 적격이라 이곳을 찾았다.
점심을 먹고서 관광버스에 올랐다. 45인승 버스에 4명이 탔다. 운전기사가 있고 우리 부부 그리고 문화해설사다. 1명이 타도 운행을 한다고 한다. 융통성 있게 조그만 승합차나 RV차가 적격일 것 같은데 승용차나 이런 것으로 움직일 수 있는 영업행위를 할 수 없으니 그럴 것 같다. 이런 부분에 규제가 완화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화해설사는 연천군청에서 은퇴하고 15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향토사학자가 된 것이다. 나도 고향에 가서 향토사학자가 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분은 연천에서 유명한 것에 기본적으로 향토사학자로 설명을 하였다. 숭의전, 경순왕릉, 전곡 선사박물관, 주상절리 등이다. 경순왕에 대하여 나라를 고려에 바친 왕으로 망국의 왕이며 마의태자와 비견되는 인물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분이 생각하는 경순왕은 신라인을 살리기 위하여 신라를 고려에 바친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그분은 사람을 살린 사람으로 설명을 하였다. 경순왕릉이 그곳에 있게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경순왕이 개경으로 올 때 수많은 신라인이 따라왔으며 경순왕이 죽자 그의 시신을 경주에 안장하기 위하여 이동할 때 함께 왔던 신라인들이 이동함에 신라인들이 경주에 이동하여 나라를 불안하게 할 우려를 생각하여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의 첫째 딸과 결혼하였으므로 왕족이라고 하여 왕족은 개경에서 100리 이내에 묘를 설치하여야 하므로 연천까지 이동한 시신을 그곳에 안장하라고 하여 연천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경순왕릉은 조선 시대까지는 관리가 잘되었으나 남북 분단 이후 민간인 통제 선 안에서 거의 관리되지 않다가 병사가 경순왕릉을 확인하고 이를 관리하기 시작하여 민통선이 북으로 이동하면서 복원 관리되었다고 한다
여행코스는 태풍전망대 → 전곡 선사박물관 → 물문화관 → 재인 폭포 → 연천역이다. 나는 태풍전망대를 가본 기억이 있다. 태풍전망대는 북과 가장 가까운 전망대이다. 태풍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땅이나 남쪽의 땅은 유사하였다. 다만, 철책선이 있고 GP가 있다. 북의 농부들이 농사철에 농사짓는 땅이 있다. 그 사이를 임진강이 유유히 국제하천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다. 문화해설사는 6·25 전쟁 이전 서울에서 태어나 휴전선이 연천북쪽으로 형성된 후 이곳에서 자라고 한평생을 이곳에 보냈다고 한다. 선조들의 무덤이 있는 이곳에서 그는 여생을 보낼 것이다. 지방공무원은 그것이 가능하여 좋다. 태풍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북녘땅은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망원경으로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태풍전망대에는 우리나라의 각종 종교단체가 세워놓은 다양한 기념물이 있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이 세운 상징물이다. 누구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천주교나 개신교는 동일한데 이를 다 인정하면 기독교가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분리하여 생각하니 그렇지 않으리라고 본다.
태풍전망대를 보고 전곡리 선사유적지 박물관으로 이동한다. 선사유적지로 이동을 하면서 전곡리와 관련하여 문화해설사는 설명한다. 세계 고고학의 역사를 바꾼 돌조각의 발견이 우연히 이루어졌으며, 동아시아의 구석기 문화를 대표한다고 하였다. 미군(Greg Bowen)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여자 친구 또는 부인과 연천에 놀러 와서 하천에서 돌을 주운 것이 자기가 학교에서 배운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와 유사하여 시작된 전곡리의 역사가 우리를 재미나게 하였다. 그는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였으며 1978년 1월 한탄강 유원지를 거닐다가 주먹도끼 3점, 가로 날 도끼 2점, 긁개 1점을 발견하였고 이를 프랑스에서 사진을 보내어 확인하여 1979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지속해서 발굴사업을 하여 전기 구석기시대에 속하는 유물로 판명되었다고 한다.
선사 유적박물관은 경기도 도립박물관으로 이무기 형태의 외관을 갖고 있었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는 유인원과는 차이가 있고 기본적으로 돌이나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이를 가공하여서 사용한 것이 나타나는 모습을 전곡리 선사유적지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손도끼, 가로 날 도끼 등이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군이 고고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발견된 손도끼는 의미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선사 유적박물관은 우리보다 프랑스에서 관심을 두고 많은 지원을 하였고 우리의 돈과 그들의 기술이 접목하여 다양한 형태의 유물과 전시물이 있었다. 봄이 되면 박물관 앞에 있는 다양한 야외 전시물도 그 형태를 보여 줄 것이라고 본다.
연천은 한탄강과 임진강이 교차하는 지점이고 전곡읍을 지나는 한탄강을 영역을 자세히 보면 한반도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한다. 항공사진이나 위성사진을 보아야 한다고 한다. 아울러 이곳에는 한탄강과 임진강이 있어 홍수의 위험이 수시로 이곳을 엄습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홍수조절 댐으로 한탄강댐과 군남댐이 있으며. 다목적댐은 물을 항시 가두어서 이를 이용하지만, 홍수조절용 댐은 홍수시에 물을 가두어 하류의 비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에 주목적을 두고 있어 홍수시에 만수위가 되면 수몰되는 지역이 있기 때문에 수몰 예상지역을 이주를 시켜 놓은 상태라고 문화해설사가 설명을 한다.
한탄강댐 바로 옆에 물문화관을 만들어서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물문화관에서 이벤트로 한탄강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아울러, 연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전시장도 운영하고 있었다.
연천의 모습에서 갑자기 등장한 고려 태조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북한의 열악한 문화재 발굴의 모습을 설명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고려 태조는 숭의전에 이를 가지고 있었으나 세종 때 고려 태종의 무덤 주변에 묻어둔 것을 북학이 잘못 발굴하여 훼손되었다고 한다. 숭의전은 조선의 종묘와 같은 고려의 종묘이다. 나는 이러한 모습이 우리의 70년대 우리의 문화재를 접하였든 문화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연천은 잔디가 유명하다. 3년 전 연천을 걸어서 탐방할 때 잔디를 많이 보았다. 그것이 왜 그런지 문화해설사에게 물어보았다. 문화해설사는 이렇게 답변을 하였다. 연천의 땅을 갖고 설명을 하였다. 아울러, 연천의 인구변화가 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연천은 기본적으로 주상절리가 유명한 이유가 있다고 하였다. 연천은 강원도의 평강지역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연천, 파주까지 영향을 미쳤고 그래서 연천 대부분 돌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평강의 오리산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철원의 낮은 지대를 메우고 옛 한탄강을 따라 포천-연천을 지나 파주까지 흘러갔으며, 고문리-통현리-전곡리-온대리 일대에 약 30M 두께로 덮여 굳어졌다고 하였다. 이 부분이 침식작용으로 주상절리가 생겼으며. 지금도 차탄천의 주상절리는 유명하다고 한다. 제주에 가서 주상절리를 본다고 하지만 이곳의 주상절리가 더 멋있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고 한다.
이러한 기반 위에 흙먼지 등이 싸여서 이루어진 지형에 임진강과 한탄강이 범람하면서 이루어진 땅 위에 잔디를 재배하는 것이 효과적이라서 잔디 재배가 많다고 하였다.
강원도 평강 지역의 분수령까지 조선 시대 왕들은 강무를 1년에 2번씩 하였는데 연천은 그 길목이었으며 세종 등이 주둔하였던 곳이 있다고 하였다. 왕의 강무는 한양에서 출발하여 파주, 연천, 평강까지 갔다가 철원, 포천으로 회군하였다고 한다. 옛날에 강무를 하면서 군사훈련을 하였던 곳이 현재 군 훈련장으로도 사용된다고 하였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재인 폭포를 갔다. 재인 폭포를 간다고 하니 친구가 이렇게 말을 하였다. 재인 폭포는 물이 많을 때 가면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의미를 거기에 가서 알았다. 기본적으로 재인 폭포는 물이 많으면 접근하기 어렵게 되어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하지만, 현대의 모든 사람은 자연을 자연처럼 두지 않는다. 재인 폭포를 감상할 수 있도록 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데크에서 재인 폭포를 내려갈 수 있도록 길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 놓고 또 이것의 사용제한을 걸어 놓는다. 한탄강댐을 만들면서 수몰 예상 지역 사람들을 이주시켜 놓고 재인 폭포 가는 길은 만들어 놓았다. 재인 폭포는 겨울 가뭄의 영향으로 수량이 거의 없이 졸졸 흐른다.
재인폭포에는 전설이 있다. 이폭포는 고을원의 탐욕으로 인한 재인의 죽음과 그 아내의 강한 절절이 얽혔있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문헌에는 전설과는 상반되는 내용이 기록으로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옛날 어느 원님이 이 마을이 사는 재인 아내의 미색을 탐하여 이 폭포 절벽에서 재인으로 하여금 광대줄을 타게한 뒤 줄을 끈어 죽게하고 재인의 아내를 빼앗으로 하였으나, 절게 굳은 재인의 아내는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거짓으로 수청을 들며 원님의 코를 물어 뜯고 자결하였는데, 그 뒤부터 이 마을을 재인의 아내과 원님의 코를 물었다하여 '코문리'라 붙리게 되었으나, 차츰 어휘가 변하여 '고문리'로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반면, 옛날에 한 재인이 있었는데 하루는 마을 사람과 이 폭포 아애에서 즐겁게 놀게 되었으나, 자기 재주를 믿고 흑심을 품은 재인은 그자리에서 장담하여 약속하기를 '이절벽 양쪽에 외줄을 걸고 내가 지나 갈 수 있다'라고 호언 장담하자, 마을 사람은 재인의 재주를 알지 못하고 그자리에서 자기 아내를 내기 걸게 되었다.
잠시 후 재인은 벼랑사이에 놓여 있는 외줄을 타기 시작하는데, 춤과 기교를 부리며 지나가는 모습이 평지를 걸어 가듯 하자 이에 다급해진 마을 사람은 재인 줄을 반쯤 지났을 때 줄을 끊었고, 재인은 수삼 길 아래 구렁으로 떨어져 죽게 되었다. 이러한 일로 이 폭포를 재인폭포라 부르게 되었다고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연천역으로 이동한다. 연천역의 급수탑은 유명하다. 하지만, 유명한 만큼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나 그렇지 못하다. 문을 열어서 볼 수 있게 하여야 하나 그렇지 않다. 단지 외관만 볼 수 있다. 외관을 보기 위하여 이곳에 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급수탑 주변에 증기기관차를 비치하여 놓았다. 증기기관차와 급수탑은 어울린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시뮬레이션 동영상이라도 만들어서 전시했으면 하는 것이 조그마한 소망이라 할 수 있다.
연천에서 유명한 꽈배기 집을 찾았다. 그래도 평일이라서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유명한 집은 집인 것 같다. 우선 주문받은 물량을 채우기 위하여 테이블에 봉투가 입을 벌리고 그득하게 놓여 있다. 그리고 값이 싸다. 부담 없는 가격으로 먹을 수 있어 좋다.
백마고지에서 출발한 관광열차가 우리가 연천역 주변을 산책하는 동안 도착하였다. 도착할 때와 마찬가지로 연천역에서 15분간 정차한다고 한다. 우리는 15분 이후에 출발하는 시간을 알고 있었다. 연천역을 출발한 기차는 석양을 안고서 달린다. 연천을 올 때는 참 지루하였는데 돌아갈 때는 거침없이 기차는 달린다. 지루함을 모르고 달린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전용 열차다. 김정은이 전용 열차를 이용한다고 하지만, 우리도 이용한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어둠이 완전하다. 가보지 않은 곳은 미지의 세계인만큼 긴장의 연속이고 시간이 지연되면 지루하다. 오늘 길은 갔든 길이라서 지루하지 않다. 그런 만큼 서울역으로 돌아오는 기차는 그렇게 지루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연천의 경순왕릉과 숭인전 등은 고려 시대의 유물이다. 기본적으로 조선 500년을 거치면서 많을 것이 변화되었고 기록이 없어졌으며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 연천은 우리에게 그렇게 잊혀졌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남북 분단 상황에 접경지역이라서 더욱더 사람들에게 잊혀졌다고 할 수 있다.
김기만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