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하 창업기
안녕하세요,
계약 관리(CLM) 서비스 <프릭스(Prix)>를 운영하는 래티스 주식회사의 공동창업자/CPO 이재하입니다.
오늘도 지난 글에 이어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창업을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희 하이드 팀은 가설 검증을 위해 치열하게 논의하고 빠르게 실행했습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서비스 방향성 설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처음에는 오프라인 hint 명함에서 시작했다가, 추후에 SNS로 발전시킬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다 두 제품의 타깃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보다 확장성이 있는 SNS 앱을 우선시하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앱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다 보니 문득 모두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오프라인 명함으로 시작했는데, 왜 지금 앱 기획을 하고 있지?'
계속 서비스의 방향이 바뀌며, 팀원 간 소통 역시 점차 어려워졌습니다. 모두들 능력이 있고 더 잘하고 싶은데, 구심점이 되는 서비스의 방향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각자가 생각하는 미래가 조금씩 달라진 것입니다. 저희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대표로서 팀원 한 명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두와 대화를 마치고 나니 한 가지 명확해진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대표인 저의 뚜렷한 방향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팀원들은 건강한 연결이라는 비전이나 hint 명함이라는 아이템에 모두 공감하긴 했지만, 그런 비전과 아이템보다도 저를 믿고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떤 방향으로 이끌면 모두 그 방향으로 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데, 제 스스로 확신이 없다 보니 모두와 함께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대표의 목표가 명확해야 함을 크게 느끼고, 팀원들에게 며칠 쉬다가 그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제 스스로 목표와 방향을 정비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며칠 동안 저는 정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 회사 대표님, 창업동아리를 함께 했던 형들, 회사를 창업한 학교 선배 등 창업 생태계에 있는 많은 분들에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다들 바쁜 와중에도 제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었고,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저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저는 팀을 해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창업의 바탕이 되는 방향성이 며칠 내로 뚝딱 만들어질 수 없으며, 그런 상태로 팀을 이끌다가는 계속해서 방황만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팀을 해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는 것은 아닌지, 다른 좋은 방법은 없는지 계속 생각해 봤지만, 깊이 고민할수록 그런 생각들은 모두 이별하기 무서워서 다른 길을 찾는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아직도 팀 해체를 결심한 그날 집으로 혼자 돌아오던 길이 생생한데요, 저를 믿고 팀원으로 합류한 친구들에게 어떻게 작별을 말해야 할지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 명 한 명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 결정을 이해하는 친구도 있었고, 빠르게 포기하는 모습을 아쉬워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어떤 만남이든 이별을 이야기하는 과정은 정말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경험은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뿐 아니라, 제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4월에 팀을 해체한 직후 이명이 들리고 기흉이 재발하는 등 제 건강도 많이 악화되었습니다.
(다행히 다시 창업을 한 지금은 꾸준히 운동도 하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팀을 해체하고 저는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창업에 대한 꿈은 꺾이지 않았지만, 제 부족함으로 인해 다른 팀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상황을 더는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왜 창업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했습니다. 예전이라면 ‘재미있고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것 같은데, 더 파고들어서 창업의 어떤 요소가 재미와 몰입을 만드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창업이 재미와 몰입을 주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바로 개인의 성장, 조직의 성장, 그리고 사회의 성장입니다. 개인의 성장은 자율성을 갖고 일을 하며 역량을 쌓는 것은 물론, 흔히 말하는 창업이 성공하는 경우 따라오는 부와 명예도 포함한 것을 의미합니다. 조직의 성장이란, 어떤 조직을 만들고 키워나가는데서 오는 소속감이나 성취감을 뜻합니다. 그리고 사회의 성장은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말하는 ‘임팩트’를 뜻하는데, 창업으로 인해 세상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를 의미합니다.
그동안 저는 막연하게 창업을 하면 세 가지 측면을 모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모든 요소를 잘 달성하고 있는 기업도 많지만, 현재의 저는 모든 것을 목표로 삼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제 자신이 세 가지 요소 중에서 어떤 요소에 더 끌리는지 깊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조직의 성장에 가장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개인의 성장이나 사회의 성장도 모두 달성하고 싶긴 하지만, 우선 개인의 성장(돈)은 특정 금액 이상만 벌 수 있으면 크게 상관없으며 사회의 성장은 사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따라오거나, 나중에 연쇄창업가가 되어서 추구해도 괜찮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조직의 성장이라는 제 내면의 목표를 발견하며, 몇 주 동안의 자아성찰을 마쳤습니다. 이제 다음으로 할 일은 목표를 위해 다시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