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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순 Oct 07. 2020

유산은 산모의 잘못이 아니다.

나 역시 유산을 겪은 산모였다.


첫 아이는 결혼 한 지 얼마 안되서 생겼다. 

첫 임신이여서 그런지 전혀 임신증상을 알 수 없었다.  


이상하게 계속 소화가 잘 되지 않아 회사 동료랑 이야기하던 중에 

"몇일부터 그러던데, 임신 아니야?" 라는 질문에 그제서야 테스트기를 해봤다. 


두줄이였다! 


남편과 함께 산부인과를 다녀왔다.

병원에 갔을땐 이미 8주차라고 했다.


8년 연애 후 결혼 1년차 내가 엄마가 된다니..

그 작은 몸에서 어찌나 힘차게 심장소리가 들리던지..


벅찬 마음을 붙잡고 나오는 길에 바로 양가 부모님께 말씀 드렸다.

우린 둘 다 집에서 장남, 장녀로 양가 부모님 모두 정말 기뻐하셨다.   


그 맘 때 병원은 항상 남편과 함께 다녔다. 



그 후 2주마다 정기검진을 다녔다.

 

두번째 정기 검진 때 선생님께서 초음파를 하시는데 그날따라 화면을 너무 유심히 보셨다.  


“선생님 심장소리 들려주세요~” 


“어.. 어.. 잠시만요” 



이때..

남편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 들었다고 한다. 



나는 전혀 몰랐다. 


그저 무언 갈 보고 계시는 줄.. 



“아이가 심장이 뛰질 않네요..” 



초기 임산부 5명 중 2명이 유산한다는 문구를 본적이 있다. 

그치만.. 내가 그 2명이 되거라고는 생각도 못해봤다. 



‘임신.. 그거 아기 가지면 당연히 낳는거 아니야?’ 라는 내 생각이 틀렸다.



옷을 추스르고 의자에 앉았다. 



선생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해주시는데.. 너무 멍해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멍해진 채 앉아서 듣고 있는데 갑자기 설움이 복받쳤다.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그 작은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무너졌다. 



나는 지금도 그 날의 초음파실과 내 모습, 남편 모습, 그리고 선생님의 말투, 눈빛

그리고 그 방의 배치부터 공기까지 기억이 난다. 



그날.. 난 바로 수술 대기실에 올라갔다.

멍해진 채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2주 전 내가 받았던 행복감은 사라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배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거 밖엔 없었다. 



한번도 우는 모습을 본 적 없었던 내 남편이 내 손을 잡고 흐느꼈다.

"우리 튼튼이 잘 보내주자.."



남편은 양가 부모님께 전화 드리러 나갔다.

나는 대기실 침대에서 소리가 새어 나지 않기를 바라며.. 울었다. 



얼마 후..


우리 엄마가 가장 먼저 왔다.

두눈은 빨개져서.. 이미 울면서.. 나에게 왔다. 


"엄마, 그 손톱만한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게 너무 슬퍼.."


엄마는 내 손을 꽉 잡아 주었다. 엄마는 나를 다 이해하는 것 같았다.  


엄마도 나를 낳기 전에 유산을 했었다. 

엄마는 사는 동안 한번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가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기억 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 그 기억은 평생 갈거라고, 

한번도 만나지도 만지지도 못했는데, 그렇게 기억이 난다고 했다. 


같은 경험은 위로가 된다. 

서로 우느라 몇 마디 못 나눈 말보다, 꼭 잡아준 엄마의 손이 그날의 위로였다.  






유산 후 한동안은 지나가는 임산부를 봐도, 아기띠 매고 가는 엄마들만 봐도 그렇게 눈물이 났다.

지금도 TV프로에서 나오는 다른 사람의 유산 이야기에 아직도 그렇게 눈물이 난다.


최근 종영 한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산부인과 의사가 습관성 유산 진단을 받은 산모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이런 병 가진 산모를 워낙 많이 보시니깐 이정도 병은 병도 아니죠..?"


"유산이 왜 병이예요? 유산은 질병이 아니예요

당연히 산모님도 잘못한 거 없구요.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일이 생겼나? 앞으로 내가 뭘 조심해야 하나 물어들 보시는데, 그런거 없어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입니다."


덤덤하게 말하는 그 의사 말에 왜 그렇게 위로가 되던지..


내 잘못이 아니면 누구 잘못인지, 

왜 하필 나에게 이런일이 일어나는지 자책했던 지난날에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한참이 지나고 다시 임신을 하게 되었을때 난 바로 회사에 알렸다. 


"저 퇴사하겠습니다"


두 번의 유산을 본 나의 상사는 아무 말 없이 사직서를 받아주었다. 


상사 역시 유산을 겪어 본 아빠였다. 




나 역시 지난날을 겪어 지금은 5개월차 아들을 키우고 있다.


임신만 하면 아이 낳는건 당연하다고 여겼던 나는 

그 위대한 10달의 과정을 몸소 겪으며 지금의 아기를 만났다.


지금까지 아기와 만난 모든 순간들이 신기하고 행복하다.





마지막으로 유산을 겪은 모든 분들에게 


꼭 자신이 먼저가 되길 바란다.


나는 수술 당일, 양가 부모님들 신경쓰느라 정작 내 슬픔은 그분들이 다 돌아가신 후에 몰려왔다.

불이 다 꺼진 거실에서 펑펑 울었다. 그게 아직도 나에게 미안하다.


울고 싶으면 실컷 울고 그 시간들 속에서 무조건 자신이 먼저가 되길..




나의 작은 경험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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