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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20. 2021

개와 늑대의 시간

개를 키우는 것

개와 늑대의 시간

5.1

    



밀루


우리 집에는 개 한 마리가 산다. 이름은 밀루. 어릴 때 재밌게 읽었던 ‘땡땡의 모험’이라는 책에 희고 작은 개 한 마리가 나왔다. 주인공 땡땡과 늘 함께 모험하는 충성스러우며 똑똑하고 귀여운 개였다. 땡땡의 밀루는 폭스테리어로, 성장한 우리 집 밀루와 전혀 다르게 생겼지만 말이다.

밀루는 진돗개와 풍산개의 혼혈이라는데 털만 흰 진돗개같이 생겼다. 정말 진돗개와 풍산개 모견과 부견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 밀루는 우리 가족이 개를 키우겠다고 결정했을 때 어떤 개를 키울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개였다. 우리가 개를 키우기로 하고 어떤 개를 키울지 즐거움 꿈을 꾸는 사이, 우리의 개 키우기 계획을 작은 고모부가 알고는 어디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아지를 구해다가 아빠에게 안겨줘 버린 것이다. 작은 강아지를, 아니 작은 고모부를 거절하지 못한 아빠는 그대로 강아지를 데려와 버렸다. 

엄마가 상상하고 나를 설득해 우리 모녀가 꿈꾸고 있던 개는 따로 있었다. 아기 땐 귀여워서 사랑스러운 모습을 잔뜩 감상할 수 있고, 성장해서는 우리에게 충성하며, 멋들어진 외모를 갖춰 존재만으로 집을 지킬 수 있는 도베르만핀셔 같은 개였다. 밀루도 개긴 개지만 도베르만핀셔와는 달랐다. 어쨌든 간에 우리 집으로 와버린 강아지를, 젖도 겨우 뗀 것 같이 낑낑거리는 작은 강아지를 다시 내쫓을 수도 없는 노릇, 결국 밀루는 우리 집 단 하나의 개가 됐다.          




충성심     


밀루가 어린 강아지였을 때는 성장한 밀루의 충성심을 기대했었다. 새하얗고 곁에 사람이 없으면 낑낑거리는 작은 강아지는 조금만 잘해주면서 키우면 나를 가장 좋아하고 따를 것 같았다. 그 안일한 상상은 곧 깨졌다. 밀루는 금방 커버렸고, 내게 충성하지도 나를 가장 좋아하지도 않는다. 

밀루를 관찰하다 보면 정말로 개가 인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느낀다. 밀루는 엄마를 가장 좋아한다. 엄마가 밀루를 가장 사랑해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엄마만이 밀루를 사랑해주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대상을 나와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존중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빠와 내가 밀루를 대하는 방식은 사랑보단 귀여워하는 것에 가깝다.

우리 가족 중 내가 가장 밀루에게 소홀한 것 같다. (그래서 밀루 또한 내게 가장 관심이 없는 걸지도?) 나는 가끔 산책시키거나 가끔 쓰다듬어 주고, 가끔 비어있는 밥그릇을 채워준다. 개와 함께 산다면 당연하고 귀찮은 일들을 나는 밀루가 우리 집에 오고 삼 년째에 놓아버렸다. 그전까지는 운동이라도 하려고 밀루를 산책시켰지만 귀찮음이 극에 달해서 운동도 놓아버린 후로는 집을 드나들 때만 밀루 이름을 부르게 됐다.

우리 집 마당에는 고양이도 하나 살고 있는데, 나는 내가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나를 쌩 스쳐 지나가는 고양이를 훨씬 더 아껴서 대놓고 편애하기 일쑤였다. 엄마는 내가 고양이만 예뻐할 때마다 한 소리 했지만, 고양이를 더 사랑스러워하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고 밀루를 지금보다 더 예뻐하고 싶은 의지도 없었던 나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처음에는 밀루가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밀루를 때리거나 밀루에게 마구 소리를 지르는 동물 학대를 하는 게 아니고서야, 태도의 다른 정도를 동물이 세세하게 알아챌 리 없을 것 같았다. 내가 고양이를 더 예뻐하는지 밀루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 뒤에 감춰진 생각은, 개 주제에. 나는 종차별주의자였다.)

그러나 밀루는 안다. 잘 안다. 엄마는 매일 매일 친절하게 이름을 불러준다. 밀루는 엄마를 가장 반가워한다. 내가 이주 만에 집에 돌아오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냄새 한번 맡아보고 가는 ‘왔냐….’ 정도로 반응하고 곧 자기 할 일을 하러 사라진다. 엄마가 매일 저녁 퇴근할 때면 멀리서 엄마 차가 보일 때부터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돌리고 엄마가 내리면 펄쩍펄쩍 뛰며 엄마 주위를 돈다. 엄마가 마당에 나오면 엄마 근처에서 알짱거리며 쓰다듬을 기다린다. 산책은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서 또는 함께하지만 산책할 때 밀루가 뭔가에 꽃혀서 움직이지 않을 때 참을성 있게 끝까지 기다려주는 건 엄마밖에 없다. 밀루는 산책하러 가자고 하면 누구든 좋아하지만, 엄마와의 산책을 가장 기뻐할 게 틀림없다.

그런 밀루도 볕이 너무 뜨겁거나 비가 쏟아지거나 찬 바람이 씽씽 불면 자기 집에 쏙 들어가서 사람이 오고 가도 나오지 않는다. 좋아하는 엄마라도 날씨를 이길 순 없다. 밀루는 사람을 아주 좋아하지만, 사람이 너무 가까이 붙어있는 건 싫어한다. 다가가서 별 행동 없이 밀루 곁에 있으면 곧 자리를 떠난다. 주인만을 따르고 주인을 지키고 주인의 명령을 고분고분 수행하는 뛰어난 충성심 같은 건 없다. 진돗개의 특출한 충성심이 진짜 있는 건지 궁금하다. 밀루에게 없는 건 확실하고, 밀루를 빼더라도 나는 충성스런 진돗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내가 가까이서 여러 번 볼 기회가 있었던 진돗개가 한 마리 더 있다. 전에 다녔던 학교의 이사장님의 모부님의 집에 진돗개가 있었다. 학교 안에 그분들의 집이 있어서 매일매일 그 개를 볼 수 있었다. 그 진돗개는 주인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사장님, 학교 선생님 하나, 그리고 그 선생님의 등 뒤에서 개와 조금씩 친해진 언니 하나 말고는 아무도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친하지 않은 사람이 조금만 근처에 가면 마구 짖어대는 무서운 개였기 때문에 그 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사람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진돗개가 진돗개스런 특출한 충성심을 발휘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그 개가 너무 묶여있기만 해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사람들에게 사납게 구는 거라고 말해줬다. 공포스러운 그 개는(이름이 진돌이였던가?) 나이를 먹다가 어느 순간 학교에서 사라졌다. 주인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진돌이를 보신탕집에 팔아버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보신탕을 즐겨 먹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다.  


        


질투     


원래 우리 집에 살던 고양이가 한 마리 더 있었다. 아기고양이 때 4차선 도로 분리대에서 어미 없이 울고 있던 걸 구출해왔다. 그래서 이름이 리대다. (안다. 내 작명 센서는 좀 별로다.) 

개와 고양이를 함께 지내게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걱정했는데, 밀루와 리대는 사이좋게 잘 지냈다. 밀루는 어린 리대에게 젖을 물리기도 했다. 밀루가 산책하러 갈 때면 리대도 따라가곤 했다. 산책하는 고양이가 차나 다른 개에게 봉변이라도 당할까 봐 걱정스러워하는 인간 마음도 모르고….

어느 겨울, 추위가 상당해서 고양이를 현관에 재웠다. 밀루까지 들이기엔 무리여서 밀루는 늘 지내던 곳에서 지냈다. 그래서 질투한 것이었을까? 밀루가 리대를 공격하는 일이 있었다. 몹시 사납게 으르렁거리고 짖으며 리대를 사냥하듯 쫓는 모습은 섬뜩했다. 리대가 정말로 잡아먹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밀루가 리대에게 위기감을 줘 리대가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봐 한동안 밀루를 원망했다. 정말 그것 때문인지 얼마 후에 새로 온 고양이 동국이 때문인지 리대는 집에서 점점 멀어지더니 그냥 아는 고양이가 되어버렸다. 그 후로 꼭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려면 밀루에게도 줘야 하는 규칙이 생겼다. 동국이가 간식 먹는 것을 지켜보는 밀루를 볼 때면 조금 무서워진다.

동국이와 밀루는 거리두기를 하며 지낸다. 동국이는 밀루를 좋아한다. 리대도 그랬던 것처럼 밀루가 산책하러 가면 따라나선다. 밀루에게 다가가 몸을 슥 비비기도 하고, 잔디에 엎드려서 몸을 움찔움찔하다가 갑자기 획 튀어 나가 밀루를 덮치면서 장난을 걸기도 한다. 하지만 왜인지 밀루는 동국이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늘 일정한 거리를 둔다.          




비만 조롱     


몇 년 전에 밀루가 아팠던 적이 있다. 왜 아픈지 몰라서 병원에 데려가자, 심장사상충에 감염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심장사상충이라는 기생충이 동물의 몸으로 들어가 심장을 좋지 않게 만드는 병이랬다. 밖에서 사는 동물들이 걸리기 쉬운 병이니 꼬박꼬박 예방약을 먹어야 하고 다 낫고 나서도 계속 예방약을 먹어야 한댔다. 

치료하기 위해 먹이는 약은 예방약보다 훨씬 비쌌다. 예방약만 먹였으면 그만큼의 돈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밀루를, 개 키우기를 소홀했기 때문에 +a의 비용과 밀루의 고통이 발생했다. 

나는 밀루가 아파서 걱정하는 건가, 돈이 들어서 안타까워하는 건가? 그 물음 사이에서 나도 내가 정말 어떤 생각을 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밀루는 치료 약을 먹으면서 식욕이 늘었다. 우리 집의 동물들은 늘 채워져 있는 밥그릇에서 원할 때 밥을 먹는다. 평소처럼 밥그릇이 빌 때마다 밥을 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밀루가 물에 넣은 개구리알 장난감처럼 부어올랐다. 밀루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퉁퉁하고 흰 엄지손가락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밀루를 놀려댔다. (뚱뚱해졌어. 돼지개. 살 좀 빼!) 뭔가 불편한 얼굴을 하는 밀루를 놀리며 킥킥대다가 나는 멈칫했다. 비만 개를 놀리는 건 비만인을 놀리는 것과 다른가?

뚱뚱하다고 사람을 놀리는 것은 비만 혐오고, 그런 혐오적 발언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아파서 약을 먹고 뚱뚱해진 우리 집 개를 마구 놀리며 웃는 나는 어쩜 이리 모순적이고 못돼먹었나. 부끄러웠다. 그것도 여자애를…. (밀루는 암컷이다.) 어쩌면 나는 나를 조롱한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몰랐다.

밀루는 다 낫고 약을 끊자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탄탄한 근육과 늘씬한 다리를 가진 개로. 자기가 원하지 않은 약 때문에 식욕이 늘어 몸이 무거워진 건데 밀루 본인이 제일 불편했을 테다. (놀려서 미안해...)      


   


똥스키     


엄마와 밀루를 산책시키고 있었다. 여름이 막 저무는 계절의 밤이었다. 늘 가던 논 옆길을 걷고 있었다. 밀루가 길가 풀숲에 똥을 눴다. 거기까지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밀루가 똥을 다 못 싼 것처럼 엉거주춤하게 기어갔다. 그러고는 바닥에 궁둥이를 붙이고 질질 끌었다. 마치 고양이 똥스키처럼.

요상한 행동에 엄마는 손전등을 켜고 밀루의 엉덩이를 비췄다. 우리는 눈을 의심했다. 밀루의 엉덩이에 무언가가 붙어있었다! 초록빛이 돌고 길쭉한데다 미끈거리는 듯한 물체였다. 똥구멍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기절초풍해서 웃어 재꼈다. 밀루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기어갈 때부터 웃고 있었지만, 그 이상한 물체를 똥구멍에 매달고 있는 밀루를 보니까 정말 기절할 것 같이 웃겼다.

내가 거의 주저앉을 듯이 웃는 동안 엄마는 걱정스러워했다. 혹시 기생충이 아니냐며 웃지도 못했다. 밤공기가 시원해서 사람들이 산책을 나와 있었다. 우리를 옆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개의치 않고 나는 마구 웃었다. 너무 웃어서 배가 아팠다. 밀루는 5m에 한 번씩 똥구멍에 매달린 것을 떼어내려고 바닥에 엉덩이를 직직 끌었다. 그 물체는 곧 떨어질 것 같았는데도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똥구멍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밀루가 걸어갈 때마다 좌우로 흔들렸다. 배가 찢어질 것 같았다. 

똥스키를 타는 밀루와 포복절도하는 나를 팔에 매달고 겨우겨우 산책을 마친 엄마는 비닐장갑으로 무장하고 다시 마당으로 나갔다. 엄마가 알려주기를, 그건 버섯이었다고 한다. 어제 버섯이 포함된 무언가를 먹였던 것 같았다. 나는 또 너무 웃어서 배가 아팠다.      



    

개와 늑대의 시간     


엄마는 밀루가 어릴 때부터 ‘앉아’ 같은 재주를 가르쳤다. 밀루는 곧잘 따라 해 여러 가지 레퍼토리의 재롱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밀루의 재롱은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우리 가족의 큰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밀루는 꾸준히 완벽하진 않았다. 행동을 자주 까먹고 아무리 단어를 반복해서 말해도 듣지 않다가 휙 도망가버리기도 했다. 나는 밀루가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으면 실망해서 툴툴거리곤 했다. 

나는 생각 해 봤다. 아무래도 밀루가 내가 시키는 행동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내가 좋아서도 내게 충성해서도 아니다. 밀루가 사람이 시키는 행동을 하는 건 이해관계가 일치해서다. 정해진 소리에 맞춰 정해진 행동을 하면 평소에 자주 얻을 수 없는 특별한 간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해관계는 명령이 될 수 없다. 앉아, 엎드려, 이리와, 기다려, 브이- 등을 시키고 뒤따르는 보상이 꾸준히 있다면 다음에 행동시켰을 때도 똑같이 하지만 보상이 없는 상황이 몇 번 반복되면 이해관계는 곧 깨진다. 혹은 그냥 귀찮았을 수도 있다.

오랜만에 집에 갔을 때 아빠는 최근 들어 뭔가 들고 있거나 부스럭 소리가 나지 않으면 밀루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영악해졌다고 했다. 밀루도 나이를 먹고 있다. 밀루가 올해로 우리 집에 온 지 육 년이 다 되어간다. 개의 나이로 친다면 48살이라고 한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을 배운다고 하듯이 우리의 시간으로는 몇 년, 밀루의 시간으로는 몇십 년의 세월을 살면서 밀루는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것일지도 모른다. 뭔가 들고 있지 않으면 시키는 행동을 해도 보상이 없다는 것을. 굳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더 맛있는 간식을 사람이 내키는 대로 주기도 한다는 것을. 밀루의 입장으로는 견생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중이지 않을까?

해가 지고 어둑해질 무렵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한다. 개인지 늑대인지 확신할 수 없는 실루엣이 보일 때를 말하는데, 나는 무엇보다 밀루가 또렷하게 보일 때 밀루의 늑대다움을 본다. 밀루가 마당을 바라보면서 데크에 가만히 앉아있을 때, 해가 지며 밝은 노을이 밀루의 흰 털을 물들일 때, 불러도 이쪽을 쳐다보지 않을 때 밀루는 늑대 같다. 갑자기 번개 같은 속도로 달려 숲으로 사라질 것만 같은 뒷모습은 내가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나보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밀루를 그때만큼은 평소처럼 아무렇게나 소리쳐 부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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