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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보연진아 May 16. 2024

비로소 고양이 곁에 서다

웃기지만, 슬프다

"아악!"
물컹하고 온기가 있는 생명체가 달려와 나의 왼쪽 종아리에 부딪혔다. 나는 너무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자, 순간 다시 한번 비명이 나왔다. 놀란 녀석은 잽싸게 도망쳤다. 재빨리 몸을 숨기는 걸 보니, 다치진 않은 것 같았다. 나도 다친 곳은 없었다. 퇴근길에 걸음을 재촉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나를 바라보았다. 창피함과 당혹함에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이후 길고양이들은 공포가 되었다. 울음소리와 눈빛이 무서웠다.
 
무서운 고양이와 치유의 시
어릴 적에는 골목길에서 만나는 개가 무서웠다. 개를 보면 나는 뒷걸음질 후 냅다 달렸다. 내가 달리면 개도 짖으며 나를 따라 달렸다. 그 시절 나는 확실히 개보다는 빨랐다. 나이를 먹으면서 개보다는 고양이가 무서웠다. 고양이 그림만 봐도 온몸이 쭈뼛거리며 몸은 굳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골목에 길고양이들이 점점 많아졌다. 골목길을 걸을 때, 고양이와 부딪혔던 일이 떠오르기라도 하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고은 시인의 시를 만났다.
 
 
 개미행렬이
 길을 가로질러 가는 것은
 결코
 이 세상이
 사람만의 것이 아님을
 오늘도
 내일도
 조금씩 조금씩 깨닫게 하는 것인지 몰라
 
 햇볕이 숯불처럼 뜨거운 한낮 뻐꾸기 소리 그쳤다
 
 
천천히 여러 번을 읽었다. 곱씹을수록 개미나 길고양이들도 이 골목에서 살아야 하는 나와 같은 생명체였다. 생각이 바뀌자, 혐오감이 덜해졌다. 이제는 고양이와 갑자기 마주쳐도 살짝 놀라지만, 괜찮다.
 



조선시대 화가 긍재 김득신의 풍속화 <파적도(破寂圖)>를 보자마자, 밤 길고양이와 부딪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처럼 쭈삣 소름도 돋지도 않았고, 이상하게도 도망치는 고양이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평화로운 오후였을 것 같다. 병아리네 가족이 앞마당에서 놀고 있다. 주인네 부부는 대청마루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고요한 한낮이다. 그런데 길고양이 한 마리가 마당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순식간에 병아리 한 마리를 낚아채 달아나가고 있다. 어미 닭이 좇아 보지만 소용이 없다. 병아리들이 놀라, 최선을 다해 일제히 도망친다. 닭의 퍼덕거림에 알아차린 주인이 병아리를 구해 보려 하지만,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급하게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마루에서 마당으로 고꾸라진다. 탕건도 벗겨진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 아쉬운 대로 장죽으로 고양이를 잡아 보려 하지만 고양이가 의외로 빠르다. 무릎이며 어깻죽지가 꽤 아프겠다. 뒤따라 일어선 안주인도 중심을 잃었다. 길쌈을 하던 자리틀이 나뒹군다.
 
순간을 포착한 스냅사진 같은 그림이다. 한낮의 소동이 극적이다. 표현이 너무나 생생하다. 남자가 넘어질 것이 예상되니, 내 오금이 다 저리다. 그런데 이다음 상황을 생각하니 웃음이 사라졌다. 새끼를 잃은 어미 닭과 같이 놀던 형제를 잃은 병아리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피붙이를 잃은 아픔에 서로 부둥켜안고 울지 않았을까? 그 슬픔은 미물이라도 다르지 않을 테다. 주인도 몸을 추스르면, 당장 고양이를 잡으러 나설지도 모르겠다.


김득신, <파적도(破寂圖)>, 18세기, 종이에 담채, 27.1 ×22.5cm, 간송미술관소장


고양이는 왜 난입했을까?
고양이는 오랫동안 이 집의 앞마당을 호시탐탐 노렸을 것이다. 외로운 길고양이는 친구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혼자였던 고양이는 오랫동안 이 집의 앞마당을 지켜봤을 것이다. '설마 잡아먹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겠지.', 살짝 의심을 해 보지만, 그림 속의 정겨운 광경으로 봐서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고양이 주둥이를 보면, 병아리를 꽉 물지도 않았다. 네 발 달린 짐승들이 새끼를 물어 옮기듯 살짝 물었다. 먹이가 아니란 뜻이다. 인상 좋은 부부와 익살스러운 정황도 끔찍한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 아마 고양이는 앞마당에서 노는 어미 닭과 병아리들이 부러웠을지 모른다. 그래서 심통이 나 귀여운 병아리를 데려갔을 수도 있다. 고양이는 병아리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또 다급하게 도망쳤던 고양이는 안전할까? 달리다가 사람과 부딪혀 잡히지는 않았을까? 고양이가 '빌런'이기만 할까? 혹, 어디선가 병아리를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닐까? 병아리는 고양이의 속성을 모르는 만큼 잘 지낼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은 끝이 없다.
 
내가 고양이에게 이런 호의적인 마음을 갖다니, 신통방통한 한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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