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와 박진영
가랏깃 가랏깃 가랏깃깃 그루비
여느 때와 같이 수업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 인스타를 맴돌았다. 시간 때우기에 좋은 인스타 돋보기 코너엔 그동안의 좋아요 알고리즘이 마련해 준 역도 영상들과 귀여운 동물 쇼츠들, 그리고 여러 컴백 가수들의 신곡 챌린지가 즐비했다. 그중 새로 컴백한 박진영의 Groove Back 챌린지가 뜰 때면 나는 유독 그 영상을 지나치기가 힘들었다. 박진영은 '박진영스러운' 춤사위로 유명하지 않나. 그의 팬은 아니면서도 쫄깃하게 흐느적거리는 그 춤사위를 보는 게 즐거웠다. 또, 챌린지를 함께 추는 동료가 그 박진영스러운 춤을 자기 스타일대로 소화하는 걸 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 둘의 춤선을 비교하며 내 취향을 골라내는 밸런스 게임을 하면 버스 안에서의 시간은 더 빠르게 흘러 금방 집에 도착하곤 했다. 그렇게 그루브백 챌린지를 하나 둘 섭렵하다 보니 그의 리드미컬한 몸짓이 탐이 났다. '박진영이 역도를 배우면 나보다 잘하겠는 걸' 싶은 이상한 경쟁심리 같은 것도 들었다.
박진영의 물 흐르는듯한 춤선에 역도를 떠올리게 된 이유가 있다. 역도는 보면 볼수록 춤 같았다. 역도를 잘하는 사람들은 다 자신만의 리듬이 있다. 공통점은 각자 고유한 리듬 속에 동작이 빠르고 이음새가 끊김 없이 부드럽다는 점. 춤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잔동작이 없다. 나는 남의 스내치에서 이 쾌감을 자주 느꼈다. 그들의 스내치를 보고 있자면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찰나의 시간 동안 힘과 기술의 조화가 이루어진 멋진 춤... 그들의 춤사위를 보는 동안 내 머릿속은 빠르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따라 하느라 바쁘다. 또, 그 몸짓을 나에게 입혀보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도 돌려본다. 그 속에서의 나는 그들과 같은 모양새로 춤을 추지만 입력과 다르게 출력된 나의 역도는 오늘도 역시나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현실에서의 동작은 슬로모션이 걸린 것 마냥 느리고 삐걱거린다. 상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느껴질 때마다 마스크 속에서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문제를 아는데도 몸으로 뱉어내지 못하는 내가 솟구치게 짜증이 났다.
역도는 동작을 수행할수록도 춤 같아서 혹시 내가 역도에 힘을 쓰지 못하는 게 몸치인 것과 관련 있나 생각했다. 춤과도 거리가 멀었던 나... 춤 카테고리에서 그나마 있던 추억을 꺼내본다. 지원자가 없어서 끌려나갔던 치어리더에서는 어땠지? 3분을 채우는 다채로운 동작을 잘 외우지 못해 남들보다 외우는 데 시간을 더 써야 했고, 춤은 제법 괜찮았지만 음악이랑 동작을 맞추는 박자가 미세하게 엇박들이라 가르쳐줬던 언니들이 고생 좀 했다. 아, 어쩌면 몸치인 것보다 박치인 게 더 문제였을까? 이런저런 생각찌꺼기들 사이에서 탓할 거리를 하나 더 찾아냈다.
처음엔 재능 탓, 신체 탓, 몸치박치 탓까지. 나는 왜 안될까?라는 질문의 답은 항상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했다. 아무래도 타고난 결함은 합리화에 가장 편리하니까 시작은 내 불리한 조건에서 이유를 찾곤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탓들은 항상 '이래서 난 못해'라는 식의 부정적인 결론을 내린다. 아직은 재밌고 잘하고 싶은 역도를 지속할 동기를 떨어뜨린다. 그래도 탓이 필요하다면 폭탄 돌리기처럼 모든 탓으로 다 돌려보다가 마지막 남은 노력을 탓해본다. 다른 탓들은 이 운동을 지속하는 동기를 꺼트렀지만 노력 부족만큼은 인정하는 순간 다시 하고 싶은 오기가 생긴다. 항상 그 어떤 탓보다 노력 탓이 가장 희망적이기에 오늘도 노력 부족으로 부족한 역도에 숨통을 텄다.
스스로의 역도가 만족스럽지 않은 날은 탓을 하던가 누군가의 역도를 부러워를 하던가 둘 중 하나였는데, 오늘은 어설프게 두 가지가 모두 이루어졌다. 다만 하다 하다 애꿎은 박진영까지 질투하나 싶어 스스로 웃겼다. 그의 챌린지를 몇 개 더 찾아봤다. 박진영의 소속 가수와 함께 추는 챌린지를 보니 그 스승의 그 제자라고 둘의 느낌이 비슷하다. 크게는 비슷한데 미묘하게 다른 춤선. 그건 아마 제자, 자신의 것에서 나오는 거겠지? 오디션이나 연습생 때의 영상들을 보면 그들도 처음부터 박진영스럽진 않았던 거 같다. 그 춤선의 느낌이란 것도 제법 흉내가 가능한 것 같고, 그 속에서 자기 것도 잃지 않는 것도 가능한 거 같다. 비슷한 듯 다른 영역에서도 할 수 있다는 기운을 얻었다. 속으로 박진영 춤을 따라 해본다. 내일 수업에선 박진영에 빙의해 부드럽게 무게를 끌어봐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