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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선 Feb 21. 2023

승모를 좋아하세요...?

승모 솟은 여자는 어떠신지요

운동에 여자남자가 어딨냐고 외치고 다니지만, 사실 말을 할 때마다 머릿속에선 벤다이어그램 하나가 그려진다. 운동을 주제로 한 두 집합. A그룹엔 축구, 야구, 격투기, 복싱 등의 운동들이, B그룹엔 필라테스, 요가, 발레, 폴댄스 등의 운동이 분류되어 있다. 그저 무의식적 이미지로 분류해 둔 이 편협한 벤다이어그램에 내가 하는 운동은 A그룹에 넣어두고는 이따금씩 B그룹 사람들이 갖춘 몸에 미련을 뚝뚝 흘리곤 한다.


하루는 탈의실에서 머리를 높게 끌어 묶는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목이 없었다. 머리를 묶는 포즈의 탓도 있었겠지만 쑥쑥 자란 승모 탓에 목이 없어진 마냥 쑥 들어가 있었다. 나는 황급히 목을 길게 빼고 목의 유무를 확인했다. 눈에 띄게 짧아진 목길이. 양 옆 승모의 기울기가 가팔라졌다. 내 승모가 언제 이렇게 자랐지? 놀란 마음에 코치님한테 달려갔다.


-코치님 승모 안 자라게 역도 할 수는 없나요? 지금 제 승모가 너무 커졌는데요!

-야 그건 밥 많이 먹으면서 다이어트하는 방법 알려달라고 하는 거랑 똑같은 거야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고 빨리 운동할 준비나 하라는 코치님. 야속하다. 그런 한편, 그동안 역도를 배우고 무게를 드는데만 재미 들려서 내 몸의 부위별 근육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는 살피질 않았다는 사실이 아차 싶었다. 그래도 운동은 대충 할 수 없지. 마음 한편에 속상함과 찝찝함을 가둔 채 열심히 운동을 하고 집으로 왔다.


씻고 침대에 누워 아까의 찝찝함을 꺼냈다. 떨리는 마음으로 유튜브에 역도 체형변화를 쳤다. 역도, 크로스핏, 파워리프팅, 필라테스 등 운동별 여성의 체형을 비교하는 영상이 맨 처음 등장했다. 영상에서는 역도가 고강도의 중력 저항 운동이라 승모근을 키우기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설명한다. 승모가 없이는 힘을 제대로 쓸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짐작했지만 눈앞에 사실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아리다. 또, 무거운 무게를 머리 위로 받치는 게 특징인 역도는 몸이 살기 위해서 몸통이 일자로 굵어지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허리가 통자로 커진다는 말이었다. 아까 샤워하면서 봤던 내 두터운 허리가 떠오른다. 영상에서 설명한 모든 특징들은 일 년간 크로스핏과 역도를 병행하면서 나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난 변화들이었다.


유튜브 창을 닫고, 앨범으로 들어가 그동안 찍어두었던 운동 영상들을 쓱쓱 둘러봤다. 영상의 날짜가 흐를수록 나는 눈에 띄게 건강해졌다. 어깨와 등이 펴지면서 벌어진 모양새였고, 팔은 이두와 삼두가 울룩불룩하게 발달하고 있었다. 더욱이 근수저인 덕에 다른 사람들보다도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를 오래 봐온 사람은 이런 변화를 멋있다고, 부럽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거울 속에 내 모습은 2n년간 선호해 왔던 몸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나는 왜 많고 많은 운동 중에 하필 역도와 크로스핏에 재미를 느낀 사람으로 태어난 건지, 이런 성향으로 태어나게 했으면 이런 몸을 좋아하게끔도 만들어주시지 믿지도 않는 신이 한번 째려봤다.


다시 켠 유튜브엔 최근 빠져있는 여자 아이돌 직캠이 제일 먼저 뜬다.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소문난 그룹이지만 마찬가지로 운동을 열심히 하는 우락부락한 내 몸과 다르다. 여리여리하고 가는 선들. 그 위에 적당히 탄탄하게 붙어있는 근육. 여성스럽다.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말들과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들. 내게 틀어박힌 '여성성'이라는 고리타분함은 이렇게, 여전히 나를 심란하게 한다. 성별로 나누는 모든 것들에 학을 떼면서도 아직 거기에 얽매어 있음을 실감한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스러워지고 싶은 걸까? 스스로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이 정도 살면 내 성격이 그럴 수 없는 깜냥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내가 고리타분하게 정해 놓은 여성성은 나랑 맞지 않아서 그걸 부수고도 싶고 붙들고도 싶다. 이건 마치 어릴 적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었던 아이팟 클래식이나 비비안웨스트우드의 지갑의 느낌이다. 미치도록 갖고 싶은데, 가질 수 없었던 물건들에 남는 미련과 비슷하다. 어린 시절의 그 미련 때문에 경제력을 갖추고 가장 처음 마련한 에어팟 클래식이 책상 밑 서랍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혹시 정해 놓은 몸을 향한 환상도 미련도 이렇게 될는지. 구석에 박힌 엠피쓰리를 보는 마음이 알쏭달쏭하다.


혹시 솟아날 구멍이 있나 싶어 같은 승모 고민을 다른 코치님한테 털어보았다. 앞선 코치님과 달리 차분한 성격의 코치님은 내 고민을 듣더니 해결책을 하나 제시했다.


- 승모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세요


흠. 나도 미워하는 내 승모를 누가 좋아하리. 과연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라는 말을 꾹 삼키고, 그래도 주어진 해답에 성의가 있지. 사고회로를 돌려 긍정적으로 검토해본다. 처음 만나는 누군가에게 혹시 승모를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을 하는 날 생각하며 괜히 킥킥댄다.


- 승모를 좋아하세요...?


그전에  러브 유어 셀프. 나부터 긍정적이게 대답할 수 있을 때 물어봐야겠다. 거절당하면 나 곱하기 두 배. 두 번 거절당하는 셈이다. 그럼 마음이 두 배로 안 좋을 거 같다. 여전히 근육에 대한 칭찬보다 말랐다는 말이 더 반가운 내가 역도라는 운동에서 어떤 타협점을 찾게될 지, 나중에 이 글을 보면서 '그땐 그랬지' 하는 몸과 마음이 궁금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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