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다라이에 뿌리박아도 매화는 아름답다
얼마 전 2021년 경찰 채용 공고가 발표되었다. 오랜만에 범죄분석 특채(8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2017년에 범죄분석 7기를 채용한 이후 3년간 채용이 없었다가 올해 8기 채용공고가 난 것이다. <프로파일러 입직기> 연재를 시작하게 된 직접적 이유다. 현재 동국대 법심리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보니 석사 학생들이 범죄분석요원 채용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해왔다. 얼마나 막막할지 이해하기에 내가 준비했던 것들을 알려줬다. 그러다 프로파일러를 꿈꾸는 사람들 중 나와 직접 연이 닿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까지 가닿을 수 있도록 글을 남기기로 했다. 인맥 없는 사람의 꿈도 소중하니까.
[경찰 범죄분석요원 경장 경력채용]
경찰 채용은 크게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공채는 (1) 필기시험 (2) 체력시험 (3) 면접이지만, 경력 채용은 (1) 단계가 기능마다 각기 다르고 (2), (3) 단계는 공채와 동일하다.
우선 2021년 채용 공고를 확인해보자. 기존의 공고와 다른 점이 거의 없으나 응시자격에 '통계학' 전공이 추가되었다. 계량적인 분석이 강조되는 최근의 분위기를 반영한 듯하다. 범죄분석은 지방청 별로 1명씩 선발하므로 같은 청 지원자 중 1등이어야만 한다.
주요 업무
- 주요 발생 사건 및 미제사건 용의자 프로파일링, 신문전략 수립 등 수사 지원
- 피(용)의자 수사 면담 및 성향 평가
- 주요 범죄 데이터 수집.분석, DB관리
- GeoPros(지리적 프로파일링 시스템) 운영 관리
필요 역량
- (공통 역량) 공직윤리(공정성, 첨령성), 공직의식(책임감, 사명감)
- (분야별 역량) 전문성, 관계구축력, 의사소통능력, 성실성, 봉사심, 인내심·끈기, 준법의식, 협동의식
필요 지식
- 관련 전공 기본 지식(심리학, 사회학, 범죄학, 통계학)
- 심리측정·평가, 진술 분석, 자·타살 구별을 위한 심리부검 등 각종 활용 기법에 대한 기본 지식
- 면담 관련 소양
- 연구방법론, 통계 분석 등 데이터 분석·활용 지식
응시 자격 요건(아래의 요건 중 한 가지 이상을 충족하는 자)
- 심리학·사회학·범죄학·통계학 전공 관련 학사 학위 소지자 중 동일 분야 석사 학위 이상 소지자
- 심리학·사회학·범죄학·통계학 전공 관련 학사 학위 이상 소지자 중 관련 분야에서 근무(연구) 경력 2년 이상인 자
범죄분석 채용 (1) 단계는 전공 지식을 묻는 구술 면접이었다. 구술 면접 시에는 3명의 면접위원이 있었고 교수 2명과 경찰관 1명이 있었다. 지원자는 같은 지방청 지원자 3명이 들어갔다.
먼저 공통질문을 받았는데, 주로 이론적인 내용이었다.
- 내가 받은 질문은 "빅데이터란 무엇이고 범죄분석에 어떻게 활용 가능한가", "일상활동이론을 설명해보라"였고, 다른 지원자들은 성격장애 등 DSM-5 기반 질문, 통계 관련 질문을 묻기도 했다고 한다.
- 2021년(8기) 채용에서는 "범죄평가에 대한 역사와 국내 효용성", "재범위험성 평가도구에 대해 평가해보라", "범죄분석 프로파일링 보고서의 핵심이 무엇인가", "실무 하면 무엇을 하고 싶나", "사용해본 통계 분석이 있는가", "면담 시작 시 어떻게 할 것인가", "진술분석이 무엇인가", "허위자백은 왜 발생하는가" 등의 질문을 물었다고 한다. 기존에는 심리학, 범죄학 이론 질문이 많았다면 이제는 훨씬 실무에 가까운 질문으로 변화한 느낌이다.
이어진 개별질문은 각자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기반으로 "성폭력 피해자 진술분석 일을 해본 적 있는데, 그것이 피의자 면담과 어떤 관련이 있나" 같은 식의 질문이었다.
준비한 것을 차분하게 얘기하면 좋을 것 같다. 지원자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말로는 1차 면접에서 점수가 많이 갈린다고 한다. 체력 시험으로 뒤집기 어려울 정도로 차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준비를 잘하고 가야 한다. 시험은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경찰공제회 건물에서 치러졌고, 특채 지원자들은 전부 그곳에서 시험을 본 것으로 기억한다. 1차 시험에서 3배수를 거른다고 한다. 앞으로 두 명을 제쳐야 한다.
(2) 체력시험은 다섯 종목을 본다: 100m 달리기, 1000m 달리기, 악력,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체력이 매우 나쁜 편이라 세 단계 중 가장 걱정이 됐던 과목이다. 100m 달리기와 악력은 점수 올리기가 아주 어려운 것 같다. 그렇지만 1000m 달리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는 비교적 빠르게 점수를 올릴 수 있는 종목이다.
준비할 때에는 집 근처 체대 입시학원을 찾아서 경찰반을 다니려 했는데 당시 형사정책연구원에 근무하고 있어서 주말 소방반 수업을 들었다. 종목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유사한 점들이 많아 그냥 똑같이 따라 했다. 주 1회 체력학원으로는 도저히 체력이 향상되지 않는 것 같아서 복싱, 필라테스, 헬스장을 병행했다. 운동을 하다가 쉬어주기도 해야 한다는데 마음이 급해서 거의 쉬는 날 없이 운동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시험 보기 며칠 전 전신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시각장애인 안마사 분이 "몸이 완전 땅땅하다"라고 놀라셨다.
체력시험장은 경기도 고양시였던가, 너무 멀어서 조금만 더 가면 북한이라며 투덜대며 갔다. 구술 면접 때와 마찬가지로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나는 입으로 얘기하는 것에는 별 두려움이 없는데 몸으로 임해야 하는 모든 것에 자신이 없었다. 머리는 벼락치기가 되는데 육신은 벼락치기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시험장 사정이 따라 종목 순서가 결정되는 듯했다. 체력 시험 날 비가 조금씩 내려서 비가 더 오기 전에 100m와 1000m 달리기를 먼저 실시했다. 이때 굉장히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 수험번호 상 거의 마지막 순서로 100m 달리기를 뛰게 되었는데 결승점에 있는 센서가 잘못되었는지 내 기록만 측정이 되지 않았다. 감독관은 놀라서 주저앉은 나에게 "지금 다시 뛸 거냐, 1000m를 뛴 후에 다시 뛸 거냐" 물었다. 비 때문에 빨리 진행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100m를 전력으로 질주하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뛰어야 한다니 아득했다. 감독 측의 오류로 너무 큰 손해를 보는 것이 억울했고 강압적인 태도에 화도 났다. 그렇지만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한다고 받아들여질 상황도 아닌 것 같은 데다가 그것이 내 컨디션에도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해서 마음을 비우고 다시 뛰었다. 결국 평소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만약 불합격했더라면 이 일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체력 시험은 한 과목이라도 과락 점수가 나면 그 즉시 체력 시험을 종료하고 귀가한다. 100m를 두 번 달린 후 질척한 모래에 발목 붙잡히며 1000m를 뛰었는데, 같은 청 지원자는 과락이 나서 운동장에서 곧바로 집에 갔다. 이제 한 명 남았다.
(3) 면접시험은 단체 면접과 개별 면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찰관으로서의 인성을 검증하기 위한 단계다.
단체 면접은 7명이나 되는 지원자가 들어갔다. 토론 형식을 의도했는지 모르겠으나 다소 산만했다.
- "셉테드에 대해 말해보라",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신고 전화를 수차례 반복하는 악성 민원인을 어떻게 응대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자율적으로 대답을 시키는 경우도 있고 순서를 정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 셉테드의 경우 다른 지원자들은 다 좋다고 얘기했고, 7명이나 되는 지원자들이 똑같은 말을 하다 보니 점차 근거가 궁색해져 갔다. 그래서 나는 "셉테드가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긴 하지만 풍선효과가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계속되는 점, 막상 셉테드를 진행한 동네에서 관광객으로 인한 불편이 야기되기도 하는 점 등을 고려해서 해당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여 진행해야 한다"는 논지로 답변했다.
- 헬조선의 경우 다른 지원자들은 대체로 "열심히 하면 극복 가능하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아마 스터디를 하면서 모범답변으로 정해진 것이 아닐까 싶었다. 면접관들이 같은 답변에 지겨워하는 듯해서 "저는 지금 국책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1년을 채우지 않는 계약조건으로 인해 퇴직금을 받을 수 없고 노동의 연속성도 보장이 되지 않습니다. 주로 어린 석사급 연구원들이 계약직으로 입사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청년층이 이런 세태에 불만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다소 과격하게 헬조선이라는 단어로 표출되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정도로 답변했다. 위험한 답변일 수도 있었는데 면접관들이 잘 수용해주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 악성 민원인의 경우 다른 지원자들은 "악성 민원인도 소중한 국민이므로 민원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면접관들은 "백번씩 전화하는데도 그래야 하냐"며 되물었다. 실무에 있는 사람들은 악성 민원인을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그때 다른 지원자가 "악성 민원인은 블랙리스트 장부에 기록하여 수신거부해야 한다"는 다소 강경한 답변을 했다. 그러자 면접관이 "요즘 블랙리스트 같은 단어 함부로 쓰면 위험한데"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타협적인 답변이 필요할 것 같아서, "우선 악성민원인이 왜 이렇게 반복적으로 민원을 제기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진짜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인지 혹은 민원인에게 정신적 문제 등이 있는 것인지 알아보는 과정이 선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별 이유 없이 민원을 계속 넣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반복 민원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어서 대응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세 번 이상 같은 내용의 전화가 왔고 그것이 해결 불가능한 민원이라고 기록이 남아 있다면 굳이 민원 처리를 하지 않아도 경찰관에게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는 식이면 적절할 것 같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개별 면접 때에는 압박 면접이 이루어졌다. 주로 공직자 윤리(김영란법) 위주 질문으로 "할머니가 경찰에게 고맙다고 음료수를 사왔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와 같은 것이었다. "할머니가 서운하지 않으시도록, 마음만 받는 것이 제게 더 도움이 된다고 말씀드리겠다"라는 원론적인 답변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답변을 망설이고 있으면 면접관이 바로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 적는 척하면서 지원자를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했다. 지원자가 미워서 그럴 리는 없으니 너무 상심하지 말자.
모든 단계를 끝마치고 홀가분했던가.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회사에서 최종 합격 발표를 확인했다. 내 수험번호가 맞는지 여러 차례 다시 보았다. 제일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수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보다 훨씬 마음고생을 했나 보다. 너무 들뜨고 싶지 않아서 평소처럼 퇴근 후에 필라테스를 가려고 했는데 친척들의 축하 전화가 쏟아져서 결국 양재역 주변에서 통화만 하다가 집에 갔다.
초등학생 때 명탐정 코난을 읽고, 중고등학생 때 아가사 크리스티를 읽고, 대학생 때 크리미널 마인드를 보던 내가 이제는 프로파일러라니.
드디어, 장래희망이 직업이 되었다.
법심리학이나 범죄심리학 전공자에게 프로파일러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다.
[심리학 전공 경찰 채용]
학교전담요원, 피해자심리요원 등 심리학 전공자를 경찰에서 상당히 많이 채용하는 편이다. 지원 요건, 경쟁률 등은 경찰청 채용 사이트를 확인하면 된다.
[심리학 전공 공무원 채용]
대검찰청에서 진술분석관을 선발한다.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진술분석을 주 업무로 하는 것으로 들었다. 기간제 근로자 형식이지만 계약이 연장 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공석이 발생하면 공고가 올라오는 정도로, 자주 채용 공고가 뜨지는 않는다.
https://www.spo.go.kr/site/spo/ex/board/List.do?cbIdx=1402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종종 법심리 관련 연구보조원을 선발한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국과수 법심리분과는 주로 폴리그래프(거짓말탐지)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주 본원 근무가 대부분이다.
https://nfs.go.kr/site/nfs/ex/bbs/List.do?cbIdx=16
중앙심리부검센터에서 조사원들을 꽤 자주 채용한다. 듣기로는 경찰서에서 자료를 코딩해오는 조사팀이 있고 그 데이터를 분석하는 연구팀이 있다고 한다.
http://www.psyauto.co.kr/sub/notice_list.asp
그 외에도 교정직 공무원 채용에 임상심리사 특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가정법원에서 심리학 전공자를 가사조사관으로 채용하기도 한다.
합격하면 끝일 줄 알았지?
이제 시작입니다...: (5) 중앙경찰학교 (6) 지구대 (7) 과학수사과 범죄분석
(여러분의 반응은 글을 쓰는 연료가 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