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 보고 달려왔는데... 결국 그 선배가 합격했다.
대학원을 졸업했다. 논문 하나만 보고 달려온 2년의 시간이 끝나고 나니 홀가분함은 며칠 가지 않았다. 막막함이 찾아왔다.
무직자가 된 것이다. 또, 또, 새로운 고난의 시작이다.
세부전공인 법심리학을 살려 취직할 수 있는 곳을 우선순위로 두되, 심리학 석사 학위를 살려 취직할 수 있는 곳이면 최대한 지원하기로 했다. 법심리학을 실무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곳은 수사기관이 대부분이므로, 최종 목표는 공무원이었다.
대학원 때부터 해왔던 범죄심리사 활동으로 간간히 용돈을 벌면서 취업 활동을 했다. 한 군데에 합격했으나 급여를 듣고 기겁하여 거절했고, 한 군데는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고, 한 군데는 합격했고, 이후 최종 목표에 도달하여 이직했다.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다. 아래 이야기는 2016년~2017년 이야기로 지금은 다소 달라졌을 수 있다. (2024. 5. 23. 업데이트)
[범죄심리사: 소년범 조사 시 전문가참여제]
한국사회및성격심리학회에서 발급하는 자격증으로, (1) 교육 -> (2) 수련 -> (3) 자격 취득의 순서로 진행된다. 범죄심리사 활동은 취업 준비 기간에 한줄기 빛이었다. 수련을 하면 보고서 1건당 소정의 금액을 받을 수 있고, 자격을 취득하면 슈퍼비전을 받지 않아도 돼서 금액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1) 교육의 경우 한국심리학회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공지문을 확인하고 신청하면 된다(하단 링크 참조). 교육 경쟁이 치열하다. 교육은 2주간 이루어지며 범죄심리학 전반과 범죄심리사 활동에 대한 교육이 있다. 교육 마지막에 시험을 치르며, 합격율은 높은 편이다.
https://www.ksppa.or.kr/html/?pmode=psychologyintro
(2) 교육을 받으면 자신이 원하는 지역의 경찰서에 배치를 받아 수련을 시작한다. 여성청소년과의 소년범들을 면담하고 재범 위험성을 평가하는 과정이다. 당시 보고서 1건당 5만 원(수련생은 3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비용이 현실화되어 1건당 10만 원(수련생은 6만 원)으로 상승되었다고 들었다. 소년범을 면담하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이론으로만 공부했던 범죄자를 직접 면담하고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다들 수련을 겁내지 말고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3) 일정 시간 이상 수련을 하고 학회에 참석하면 자격 심사를 받는다. 자격 심사는 상시로 이루어지지는 않고 공지가 뜨면 그때 수련 수첩을 제출해야 한다. 여러 경찰서를 다녔거나 슈퍼바이저가 여러 명인 경우 미리미리 도장을 받으며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다.
범죄심리사 자격증은 사회 및 성격심리학회에서 관리하는 자격증이니만큼 꽤나 공신력 있다고 생각하며, 프로파일러 선후배들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자격증이다. 현재 나는 전문가 교육을 받아 수련과 학회 시간을 채우고 있다.
[서울 모대학 양성평등센터 석사급 연구원]
교직원은 꽤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만 알고 있었다. 나름 우리나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이고, 석사급 연구원이면 더 괜찮지 않을까 싶어 지원하게 되었다. 간단한 서류를 제출한 뒤 면접장에 갔는데 같은 지원자 중에 나이가 지긋한 분들도 꽤 계셨다. 나보다 훨씬 경력이 많은 분들 같아서 나는 떨어질 줄 알았다. 그랬는데 며칠 뒤 합격 소식을 들었다. 계약서에 서명을 하러 와야 된다고 했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먼 길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갔다. 집에서 꽤 먼 곳이라, 일을 시작하면 자취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부동산 어플을 켜보기도 했다.
도착해서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직원 분은 "힘들게 만들어낸 자리니까 열심히 해주셔야 돼요"라고 당부했다. 계약서의 연봉 부분에는 밑줄만 쳐져 있었다. 내가 펜을 들자 그 직원분이 "천육백만 원 적으시면 돼요"라고 했다. 머릿속에서 천육백을 12로 나누어보았다. 지금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133.3333...이 나온다. 그 뒤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다.
이 급여를 받고 일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엄마는 연봉이 천육백...을 듣더니 가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센터에 전화를 걸어 죄송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근무가 어렵겠다고 말했다. 이유를 말해달란다. "이 월급으로는 제가 생활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답변하니 얼버무리며 전화를 끊는다. 2016년의 일이다. 석사는 꿈을 인질로 잡힌 채 백만 원을 벌며 살아야 하나? 회의감이 들어서 아무 곳이나 지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군무원 수사 직렬 6급 경력채용]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 이상 전공자를 채용했다. 법심리학 전공자는 주로 심리부검 업무를 한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다. 이전에 군 내 자살율이 높았을 때는 심리부검 업무가 많았을 것 같은데, 이제는 20대 남성의 평균 자살율보다 군 내 자살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특히 사병은 간부보다 더 낮다). 군무원 채용은 1차에 형법과 형사소송법 필기시험을 보고, 2차로 면접시험이 있었다. 독서실을 다니며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공부했다. 또, 시험을 준비하면서 교수님이 실무에서 바로 활용 가능하도록 심리부검 보고서 작성법을 알려주셨다. 다행히 학부에서 법학을 복수 전공했기 때문에 여유 있는 점수로 1차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 당시 열명 가량이 필기시험에 응시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합격자는 나까지 두 명이었다. 교수님께 심리부검을 배우고 있기까지 하니 합격 가능성을 매우 높게 점쳤다.
그런데 면접 당일날, 오래전 대학원을 졸업한 선배를 만났다. 그 선배도 필기시험에 합격했던 것이었다. 그 선배는 국방부 용역으로 심리부검 연구에 참여한 경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면접장에서 크게 당황했다. 이것만 보고 달려왔는데...
결국 그 선배가 합격했다. 합격자 발표에 내 수험번호가 없는 것을 보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 선배가 오래 기다려온 자리였을 것이라 생각하며 내 자리도 언젠가 만나겠지 마음을 다잡았다.
https://recruit.mnd.go.kr:470/recruit.do
(매년 4월쯤 채용공고를 하고 5월쯤 접수를 받는 것 같다)
[형사정책연구원 인턴연구원]
모대학에서 상처를 받고 군무원 채용에 대부분의 시간과 힘을 다 써버린 채 일 년이 흘렀다. 최종 불합격 소식을 들은 것이 가을이었다. 하반기는 각종 연구나 사업들이 마감을 준비할 때이고, 공무원 채용이나 자격증 시험도 더는 없다. 그 해 겨울은 엄마랑 아주 크게 싸웠다는 것만 기억난다. 나는 힘든 티를 내지 않았고 엄마는 힘든 티를 너무 많이 냈다. 어쨌든 뭐라도 해야 했다. 몇 차례 떨어졌던 형사정책연구원 인턴연구원을 다시 지원했다.
형정원은 석사학위급 연구원을 자주 채용하고, 때론 석사 재학생도 채용한다. 2024. 5. 23. 접속 결과 2024년에도 채용공고를 12차례 낸 것으로 확인된다. 형정원은 계약직의 경우 계약시부터 연말까지 채 1년이 안 되는 계약기간으로 안정된 생활을 기대할 수는 없는 곳이다. 매해 연구과제를 시작하고 보고서를 연말까지 마감하는 체제라 그런 듯하다. 형정원에서 오래 일한 인턴연구원의 경우 연말에 계약기간이 종료된 뒤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연구가 시작되는 연초에 다시 계약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봉이지만 근무 환경은 좋았다. 인턴연구원은 연구위원(박사)의 연구를 보조하는 업무를 하는데 개인 조교 정도로 보면 된다. 담당 연구위원의 업무 스타일이나 인성에 따라 근무 여건이 많이 달라진다. 대부분 연초에는 조금 여유롭고 여름이 넘어가면 야근을 하는 분위기라고. 나는 좋은 분을 만나 많은 배려를 받아 아직까지도 감사한 마음이다. 당시 프로파일러 특채를 준비한다는 사실을 박사님에게 알리고 시험 날에는 연가를 써서 다녀왔다. 퇴근 후에는 체력 학원을 다니며 틈틈이 준비했다. 또 담당 연구가 신종마약을 주제로 했는데 아주 생소한 분야라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나중에 대학원 박사 입학시험에 마약 범죄 관련 질문이 나와서 이때 공부한 지식을 많이 써먹었다.
형정원은 형사법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인맥을 형성하고 도움을 얻기도 좋은 곳이다. 특히 연구원이 양재역 근처에 있어서 동료들과 자주 맛집을 찾아다녔다.
지금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으로 기관명이 변경되었다.
https://www.kicj.re.kr/board.es?mid=a10305000000&bid=0015
석사를 졸업하고 지도교수님은 내게 박사 유학을 권했었다. 유럽 법심리학회 주관의 법심리학 박사 프로그램이었는데 한참 망설이다가 "취업을 먼저 하고 싶다"는 이유로 거절했었다. 여러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일 년을 날릴 줄 알았다면 유학을 다녀올걸 그랬나, 그냥 모대학에서 일하면서 백삼십삼만삼천삼백삼십삼 원을 받을걸 그랬나, 많은 후회와 자괴감 속에 살았다. 모질게도 긴 일 년이었는데 지금은 몇몇 순간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대체 언제 프로파일러가 된다는 거야?
저는 오죽했겠어요... 곧 됩니다: (4) 경찰 범죄분석요원 경력채용 (5) 입직 후
(여러분의 반응은 글을 쓰는 연료가 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