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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명한 Mar 01. 2021

프로파일러 입직기 (1) 법심리대학원 입학

취직을 하지 않고 대학원에 가는 게 좋은 선택일까?

"왜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으셨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프롤로그에 적었듯, 어렸을 때부터 탐정/추리 등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했다. 범인을 잘 맞추는 독자는 아니었지만. 또 자라는 내내 타인의 서사를 궁금해했다. 작가가 되고 싶기도 했고 기자가 되고 싶기도 했다. 특정한 하나의 사건 때문에 이 직업을 꿈꾸게 되었다기보다는, 이 일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라 어려서부터 저런 것들을 좋아했었나 보다 생각한다.


프로파일러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다가온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토요일 이면 ‘그것이 알고 싶다’를 기다리고, 인터넷 검색창에 ‘프로파일러’를 입력했다. 그러나 고등학생 때에는 직업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어렴풋이 돈을 많이 벌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려면 사기업에 취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교를 상경계열로 진학하게 되었다. 입학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전공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전공 선택에 더욱 신중했을 것이다. 복수전공을 하기로 마음먹고 2학년 때부터 바로 법학을 복수 전공하게 되었다. 법학을 공부하며 형법과 형사소송법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4학년이 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다.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다.


며칠간 고민을 했다. 취직을 하지 않고 대학원에 가는 게 좋은 선택일까?

마침 절친한 친구가 석사 1학기에 재학 중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역사 덕후로 유명했던 친구는 역사교육과를 진학했다가 역사를 더 공부하고 싶다며 대학원 역사학과에 진학했다. 그 친구는 "네가 취업이 아닌 다른 길을 생각한다면 한 번쯤 진짜 열라 해봤으면 좋겠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석박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는 것과 네가 잘 해낼 것 같아서야"라며 강한 힘을 주었다.

석박의 미래도, 내 가능성도 몰랐던 내게 이렇게나 장밋빛 이야기를 해주다니. 대학원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그 친구가 3~4학기 중이었다면 다르게 얘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 7년도 더 된 메시지지만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친구의 말대로 석박의 미래는 어둡지 않았고, 나는 잘 해냈다.


결국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굳히며 난관에 부딪혔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길을 시작하려니 아는 것이 없었다. 어느 학교를 가야 하는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아니 심리학이 대체 무엇인지도 잘 몰랐었다.


심리학의 이해(교양 과목)를 수강하고, 학교 심리상담센터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사회심리학 콘텐츠를 올리는 블로거에게 문의 메일을 보내고, SNS에서 심리학 스터디를 찾아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해가며 심리학 공부를 해온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받았다. 대학원 입학과 관련된 자료들도 많이 찾아보았다. 생판 초짜인 나로서는 이렇게 개방된 정보밖에 접할 수 없었다.


나는 한림대학교 법심리학 대학원(협동전공)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현재는 법심리학 대학원은 사라졌고, 한림대 대학원 심리학과의 세부 전공으로 사회 및 범죄심리학 전공이 남아있다). 다른 학교로는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숙명여대 대학원 사회심리 전공의 경우에도 범죄심리에 특화된 교수님이 두 분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앙대에는 특수대학원으로 유사한 전공이 있다고 한다. 석사 시절 지도교수님 중 한 분이셨던 조은경 교수님이 동국대로 학교를 옮기셔서, 동국대 대학원 경찰행정학과의 세부 전공으로 법심리학(일반대학원 석/박사)이 신설되었다. 현재 나는 동국대 법심리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그중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1) 통계학 스터디와 (2) 대학원 진학 방법에 대한 구체적 안내글이었다.


(1) 통계학의 경우 책으로 독학했을 때에는 이해도 암기도 되지 않아서 막막했었다. 마침 '싸이그래머'라는 페이스북 그룹에서 통계학 스터디를 진행한다는 공지를 보고 냉큼 지원했다. 스터디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강의를 해주시는 형태였는데, 그제야 책에 나온 이야기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모이니 그 학계의 커먼 센스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 '싸이그래머' 스터디 그룹은 여전히 활발하게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몇 년 사이 R/파이썬 등 계량적인 부분에서 스터디원들의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이제는 초보자가 끼기는 어려운 그룹이 되었다. 그러나 스터디 문화가 활발해진 만큼 이제는 더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니 적극적으로 여러 곳을 탐색해보길 권한다.


(2) 대학원 진학 방법은 암묵적으로 정해진 틀이 있기 때문에 이 절차를 전혀 모른다면 본의 아니게 실례를 범할 수도 있다. 가장 처음 해야 하는 일은 자신의 학문적 관심사를 정하고 연구 계획서를 작성하는 일이다. 연구계획서를 작성하기 위해 수많은 문헌을 검토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해당 주제에 집중하는 연구자들을 알게 된다. 그렇게 관심 있는 분야의 학교와 교수님을 탐색한 후 교수님에게 컨택 이메일을 드리고 약속을 잡아 연구실에 찾아간다. 갈 때 궁금한 점들을 준비해서 가면 좋다. 평균적으로 석사를 졸업하는 데 몇 학기 정도 걸리는지, 장학금 수혜율은 어느 정도 되는지, 한 학기에 몇 명 정도 입학하는지, 현재 진행 중인 연구나 프로젝트가 있는지 등을 질문할 수 있다.

당시 나는 여성의 범죄에 관심이 있어서 가해자로서의 여성을 주제로 한 연구 계획서를 작성했었다(결국 석사 논문을 그 주제로  작성하지는 않았지만). 교수님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오지 않아 다시 한번 메일을 보낸 뒤에 약속을 잡고 학교에 찾아갔다. 연구실이 소수정예로 운영되며 2년 만에 졸업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는 점,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장학금 수혜율이 높다는 점을 알게 되어 한림대학교 법심리학 대학원을 선택했다.

입학을 위해 영어 번역 시험과 면접을 치렀다. 입학 전에  적어도 지도교수님의 논문은 전부 읽고 흐름을 알아두면 좋다. 제자들이 작성한 연구들도 그 연구실의 분위기를 반영하므로 읽어두면 좋다. 여력이 된다면 학과 홈페이지에서 다른 교수님들의 연구 이력까지 찾아보면 더 좋다. 교수님이 면접관으로 나올 수도 있고, 추후 연구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면접 시 "내 논문을 읽은 게 있나? 독립변인과 종속변인 위주로 설명해보라."는 질문을 받았고 다행히 설명할 수 있었다.


공인 영어 성적이나 학부 학점이 대학원 입학에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관심 있는 주제를 적극적으로 탐구하려는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학부 때 심리학 전공을 하지 않았음에도 대학원 입학에 성공했다. 그러나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를 만회하기 위한 노력은 필수적이다. 나의 경우 공인 영어 성적을 제출해서 영어 논문을 읽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준은 아님을 입증했고, 학점은행제를 통해 심리학 학사를 취득했다. 또 전공을 바꿀 만큼 열의가 있음을 보여드리려 노력했다.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는 시기는 가장 신선한 에너지로 가득할 시기이다. 못 해도 된다. 헤매어도 된다.

많은 이에게 도움을 구하고, 열정을 책임질 만큼의 노력을 보여주면 된다.


응원을 보냅니다.



이후 이어집니다: (2) 석사과정, (3) 석사 졸업 후, (4) 입직 방법, (5) 입직 후

(여러분의 반응은 글을 쓰는 연료가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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