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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명한 Mar 04. 2021

프로파일러 입직기 (2) 법심리학 석사 과정

아무도 네 논문을 읽지 않는다.

나름대로 힘든 과정을 거쳐 한림대 법심리학 대학원에 입학을 했다.

그토록 바라던 대학원 입학이었는데, 역시 공부는 힘들다.


석사 과정의 절대 목표는 학위 논문 작성이다.

일반대학원은 보통 4학기(24학점)로 구성되어 있다. 대학원마다 분위기는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1~2학기에 학점을 몰아 듣고 3~4학기에는 학위논문 작성에 매진하는 것이 좋다. 1~2학기에 여러 과목을 공부하며 새로운 연구 분야를 다양하게 접하고 자신의 연구 문제를 탐색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3학기에 연구계획서를 발표하고, 4학기에 학위논문 결과 발표를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대학원생의 절대다수는 1~2학기에는 경험이 부족하고 3~4학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따라서 1~2학기에는 선배들의 학위 논문 진행을 도우며 같이 실패하고 성공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 좋다. 또 3~4학기에는 후배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빠르게 연구를 진행시키고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후배들도 선배들의 연구를 돕기 어려울 정도로 바쁠 수도 있고, 선배들도 미적대다 논문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


대학원 입학 전, 한 선배가 "한 학기 동안은 분위기 적응 기간이라고 생각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빨리 학업에 집중하고 싶은데, 분위기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결국 두 학기는 지나서야 대학원의 분위기를 이해하고 적응하게 된 것 같다. 생각보다 연구실 생활은 엄청난 단체 생활이다. 대학원 사회 내에서 나의 약점은 보완하고 강점은 어필해야 한다.


나의 경우 학부에서 심리학 전공을 하지 않은 채로 석사 과정에 진학했기에 스스로 심리학 밑천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다. 법심리학 전공생만 듣는 과목은 그나마 괜찮았는데, '고급심리통계', '고급실험설계' 같은 과목은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 과목은 심리학과 대학원생들이 전부 듣다 보니 수강생도 많았고, 엄격한 상대평가를 통해 학점이 부여되었다. 두 과목 모두 시험 점수로 1~2등을 해서 A+를 받고 나니 혼자만의 열등감이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또 1~2학기에는 등록금의 60%밖에 장학금을 받지 못해서 대학생 때 저축해둔 돈과 학자금 대출을 통해 생활비를 충당했다. 장학금이나 연구비를 받고 싶은데, 지도교수님에게 적극적으로 연구에 넣어달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당시에는 교수님이 전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하며 건방져 보이지 않을까 싶어 회피했었는데 후회되는 점 중 하나다. 결국 소심하게 장학금 규정을 뒤지다가 대부분의 대학교에 있는 '고시 장학금'을 노리기로 했다. 많은 대학교에서 사법/행정/외무고시 1차에 합격하면 장학금을 준다. 한림대학교도 한 학기 등록금을 받을 수 있었다. 뜬금없지만 3학기를 앞둔 겨울, 5급 공채 '교정직'에 응시해서 1차 시험(psat)에 합격했다.


우연찮게 3학기부터 교수님이 여러 연구에 참여시켜 주어서 고시 장학금을 수령하지는 못했다. 3~4학기에는 등록금 전액, 매달 70만 원가량의 연구비를 받아 생활했다. 영국 포츠머스 대학 Aldert Vrij 교수의 거짓 탐지 연구, 진술분석 법정 보고서 작성 등 다양한 연구 및 실무에 투입되었다. 교수님의 지도 하에 대학원생들이 실제 사건을 분석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며 교수님에게 슈퍼비전을 받는 경험은 매우 귀중하다. 실무에 투입되면 곧바로 전문가로서 역할을 해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교수님에게 의뢰된 사건 분석을 보조하며 여러 생각을 거듭한 덕에 석사 연구 주제를 결정하기도 했다.


석사 학위 논문은 <인지일관성이 증거 평가에 미치는 영향과 탈편향 전략 연구>에 대해 작성했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 법원 판결에서 유/무죄가 갈리고, 이에 따라 동일한 증거마저 정반대로 해석되는 경향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연구이다.


논문을 쓰며 칭찬도 받았지만 비판도 많이 받았기에 한 학기 여유를 가지고 논문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다는 유혹이 들었다. 그러나, 한 번에 졸업하지 못하고 다음 학기에 혼자 논문을 작성하는 것은 10배 이상 어려운 일이다. 오래 달리기에서 러닝 메이트가 꼭 필요한 이유와도 같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무조건 기일 내에 밀어붙여야 한다. 모든 연구는 한계를 지닌다(내 연구의 한계는 조금 두드러질 뿐이다...).


특히 법심리학은 실무와 밀접하게 관련된 학문이다 보니, 학생들이 "실무를 잘 몰라서..."라는 하소연을 자주 한다. 이와 관련해서 지도교수님이 얼마 전 명언을 남기셨다. "석사 학위 논문으로 실무에 도움이 되겠다는 집착을 버려. 아무도 네 논문을 읽지 않는다. 스스로 흥미롭다고 생각되는 연구 문제에 집중하는 걸로 석사 논문의 소임은 다 한 거야."


논문을 pdf 파일로 변환해 교학팀에 전송하고 춘천을 떠났다. 2년간의 대학원 기간은 길고도 길었다. 한정된 시간 내에 졸업 논문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감, 논문이 슬금슬금 미뤄지면 학교의 지박령이 되고야 말 것 같은 불안감, 이렇게 부족한 내가 논문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 친구들은 취직해서 여행 다니는 것을 구경만 할 때의 부러움, 등록금과 생활비를 계산해보며 느끼는 막막함...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에 시달렸다. 졸업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내가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고통은 성장통이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는 만큼 하며 컴포트 존에 머무른다면 전문가의 반열에 도달할 수 없다. 어려운 통계도 무서운 영어도 피할 수 없다. 정해진 커리큘럼을 좋든 싫든 이수해야만 하고, 그 과정은 찬찬히 원을 그리며 배움을 통합해준다. 이것이 학위가 가진 권위이고, 곧 당신의 실력이다.


혹여 대학원을 준비하는 분이 계신다면 응원을 보냅니다.

힘들었지만 공부는 정말 재밌었어요.


혹여 힘든 대학원 생활을 겪고 계신 분이 있다면 공감과 위로의 마음을 보냅니다.

생각보다 금방 끝나고요, 힘들었던 만큼 잘 되실 거예요.


이후 이어집니다: (3) 석사 졸업 후, (4) 입직 방법, (5) 입직 후

(여러분의 반응은 글을 쓰는 연료가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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