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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명한 Mar 22. 2021

프로파일러 입직기 (5) 중앙경찰학교

매일 저녁 기우제를 하며 잠들곤 했다

합격한 날부터 프로파일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범죄분석 업무를 시작하기까지는 합격하고서도 1년이 더 걸렸다.

합격 발표가 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바로 중앙경찰학교(이하 중경) 입교를 했다. 경찰 채용 합격생을 교육하는 기관이다. 약 8개월로 구성되어 있는데 6개월은 중경 내에서 합숙 생활을 하며 정해진 시간표와 규칙에 따라 생활을 하고, 2개월은 현장실습을 했다. 실습기간 등은 당해연도 채용 일정에 따라 유동적이다. 순경•경장 합격자들은 공•경채 상관없이 중경에 입교하는 듯하고, 경간부•변호사 특채는 다른 교육기관으로 간다고 한다.


단정한 차림으로 입고 오라고 해서 소위 하객룩 원피스를 입고 갔다가 아직까지 놀림받고 있다... 대부분 정장을 입고 왔었다.


중경 교육생은 아직 공무원 임용이 되지 않은 상태로 ‘준공무원’ 정도의 취급을 한다. 경찰공무원으로서 요구받을 법한 의무를 지키며 교육을 받아야 하되, 교육비로 임용 예정 계급 본봉의 60%를 달마다 받는다. 먹여주고 재워주는데도 돈이 모자라서 속상했다.


중앙경찰학교에서 퇴교당하면 공무원 임용이 되지 않는다. 이미 임용한 공무원은 해임•파면이 어렵지만 교육생은 상대적으로 퇴교가 쉽다. 교육 기간 내내 이 점이 강조되므로 벌점 누적, 의무 위반 등에 주의해야 한다. 음주운전을 왜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지만(음주도 운전도 싫다), 음주운전으로 꾸준히 퇴교생이 나온다. 17년도에는 일과 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어서 자기 침대에 휴대폰을 올려놓고 강의실로 이동해야 했다(디지털 디톡스라 생각하면 나름 괜찮았는데 지금은 완화되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일과 중 사진은 거의 없다. 드라마 <라이브>에서 중경 교육생이 받는 퇴교 압박을 잘 그려냈다.


입교 직후에는 ‘1단계라고 불리는 가혹한 훈련이 2~3 진행된다. 체력 단련, 등산, 시위 진압 훈련 등을 한다. 7월에 입교해 혹서기에 훈련을 받아서 더욱 힘들었다. 오랜 시간 땡볕 아래 있다 보면 귓바퀴 위쪽, 쇄골 가운데 부위에 화상을 입기 쉽다. 검은색 기동복을 주는데 땀을 하도 흘려 옷이 빨갛게 바래기도 한다. 더위에 대비할  있는 모든 물품을 구비해 두는 것이 좋다.  번은 너무 오래 훈련을 받다 보니 몸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콸콸콸 났다.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포도당 같은 것이 준비되어 있으니  견디겠으면 창피함을 무릅쓰고 열외를 하자.


3주간 집에 가지 못했다. “외박 나오면 뭐 하고 싶어? 워터파크?”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냥 아이스 라떼 한 잔 마시고 싶어...”라는 내 답에 상대방이 충격을 받았었다. 마치 메슬로우의 욕구위계이론처럼 하위 단계의 무엇이 충족되지 않는 나날들이었다.

1단계 훈련이 와당탕당 끝나고 이제 일상에 가까운 것이 시작된다. 아침 5:45쯤 일어나 운동장에서 아침 조회를 하고 구보를 뛴다. 비가 오면 구보를 뛰지 않기 때문에 매일 저녁 기우제를 하며 잠들곤 했다.

중경은 산자락에 위치해 있어서 죄 언덕이고, 근무화(딱딱한 구두)를 신고 팔을 흔들며 걸어야 하는 일이 많아서 발목, 무릎 등 관절이 상하기 쉽다. 다치는 교육생들이 자주 생기므로 조심조심 걷자. 다쳐서 퇴교하면 재입교 해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니...!

식사는 훌륭한 편이다. 전반적으로 경찰 교육기관 식사는 다 좋은 것 같다. 아침에는 시리얼/한식을 골라 먹을 수도 있고, 특정 요일은 탄산음료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치킨 가게도 입점해 있어서 미리 예약을 해두면 치킨을 먹을 수 있다. 우리 때는 굽네치킨이었는데 아직도 그대로인지 모르겠다.

주말에 집에 갔다 돌아오며 각자 동네에서 맛있는 것들을 사 와 복귀 파티를 하기도 했다. 중경에서 남는 것은 동기밖에 없다고들 한다.

중경을 수료하기 위해서는 필기시험, 체력 시험에 다시 통과를 해야 한다. 채용 시험만큼 어렵지는 않다. 또 중경 내에서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아 평소에 운동을 하기도 좋은 환경이다. 그렇지만 나는 오래달리기(심지어 1200m)에서 정말 지옥을 보았다. 다리에 족쇄라도 달려있는 줄 알았다. 두 번 다시는 오래 달리고 싶지 않다.

또 운전과 사격도 중요하다. 나는 아직도 운전을 잘 못하는 편인데... 교육 때에도 사고 위험이 몇 차례 있었지만 무사히 졸업했다. 정말 다행이다. 사격은 맨 처음에는 “총을 뒤로 쐈냐?” 할 정도로 표적지에 탄흔이 없었는데, 배우다 보니 완사는 꾸준히 80점대가 나오게 되었다. 다만 아직 속사는 몇 알씩 빠져나간다. 못 쏘겠을 때 사설 사격장에 가서 경찰 혹은 중경 교육생이라고 하면 아주 친절하고 상세히 알려준다. 사격에 자신이 없다면 꼭 다녀오길 추천한다. 일취월장한다.

범죄분석의 경우 이미 근무지가 결정되어 있는 상황이라 중경 성적으로 경쟁을 할 필요가 없었다. 또 특채라고 따로 커리큘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반 경찰 생활에 대한 교육뿐이라 큰 흥미가 없기도 했다. 굳이 성적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어서 나는 책을 많이 읽고 오려고 마음먹었다(틈틈이 딴짓도 하지만...). 그러나 공채 등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경우는 선호 경찰서로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북카페 건물 근처에 고양이 가족이 살았다. 고양이 사료 포대를 옷장에 넣어두고 매일 가서 부어주었다. 나를 만난 고양이가 그날의 주린 배를 채우는 운 정도는 누리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졸업할 때도 가장 마음에 걸린 것이 고양이들이었다. 북카페에서 일하시는 분과 얘기를 했는데 사료만 있다면 주는 것은 문제없다고 하셔서 사료를 드리고 왔다.

중경에서는 맛있는 거 먹고 누워서 책 볼 때가 제일 좋았다. 방은 4인실인데 범죄분석 동기들과 함께 써서 더욱 편했던 것 같다. 많은 교육생이 체력 좋고 외향적이고 등등 내게는 없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동료라고 나를 많이들 챙겨주어서 고마웠다.


중경 막바지에는 실습 경찰서가 결정된다. 실습서에 임용받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긴장되게 마련이다. 부산은 이미 특채 여경(나)이 갈 경찰서가 정해져 있는 듯했다. 어차피 부산에 아무 연고도 없어서 그러려니 했다.


실습은 지구대 4주, 경찰서 4주로 진행되었다. 지구대 실습 3일 차에 순찰차로 교통사고를 내서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경찰서에서는 1주일씩 돌아가며 교통/형사팀 업무를 배웠다.

실습 후에는 중경에 복귀해서 1주일간 졸업식 예행연습을 하고 졸업식을 한다.


이제 진짜 경찰이다!


졸업만 하면 바로 근무일 줄 알았는데, 이제 지구대 생활이 주야비휴 시작됩니다...: (6) 지구대 (7) 과학수사과 범죄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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