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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명한 Mar 28. 2021

프로파일러 입직기 (6) 지구대 생활

바다는 교대 근무도 없이 파도를 치네

김 경위: 야!! 감천은! 백대맹소다! 세계 그 모지? 그?
박 경사: 갑자기 생각이 안 납니다
이 경위: 마추픽추...
김 경위: 그래 마추픽추!! 마추픽추 다음에 감천 계단 아이가!!

부산 여행을 하며 감천문화마을에 두어 번 방문했었다. 이 곳에서 일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감천은커녕 부산에 살게 될 거라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감천지구대는 원래 화력발전소 근처 대로변에 위치하지만, 내가 발령받았을 때는 지구대 건물을 리모델링하던 중이라 언덕 위 감천문화마을 초입에 있는 감천2치안센터로 출근을 했었다. 그래서 여행 가듯 출근할 수 있었다(초반에만).


첫 출근 전 머릿속에서 그려본 지구대 근무는,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퍽치기 신고를 받고 출동해서 도망가는 범인을 발견해서 골목길을 달려가서 몸싸움 끝에 범인을 제압해 수갑을 채우는 것. 순찰 도중 중대한 범죄를 목격해서 사견을 해결하고 보람을 느끼는 것. 체력이 중요하겠는걸, 꾸준히 달리기를 해야 하나.


우습게도, 지구대에 발령받고 가장 처음 봉착한 고난은,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경찰들이 쓰는 용어도 생소한데 부산말이 섞여 버리니 외국에 온 느낌이었다. "진술조서 빼라!"는 말을 듣고 열심히 책상 서랍을 뒤졌는데, 알고 보니 "빼라"는 말은 인쇄를 하라는 뜻이었다. "총기 여라!" 하면 총을 무기고에 집어넣으라는 건지 챙기라는 건지 알아듣지 못했다. "오봉 쫌 가온나" 하면 눈치를 보며 이 물건 저 물건을 가져가기도 했다. 프로파일러랍시고 서울에서 온 애가 이렇게 어리바리하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최 경사: 울 아!들이 망고를 좋아해가
윤 경장: 아드님이 망고를 좋아하신다고요? 저도 좋아하는데~~
최 경사: 엥? 나 아들 없는데
윤 경장: 방금 아드님 얘기하신 거 아니에요?
최 경사: 아! 있다고! 아!! 딸랑구 둘!!

빨리 범죄분석 업무를 시작하고 싶었다. 중앙경찰학교와 지구대 생활을 하며 머리가 점점 하얘져가는 듯했다. 배운 것도 다 잊어가는 것 같고, 얼른 범죄분석 업무를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현장 근무를 해봐야 진짜 경찰이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가정폭력, 주취소란, 정신질환자 난동, 교통사고, 흉기 소지 등 살면서 경험하기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었다. 경찰관으로서 근무복을 입고 사건을 접수하고, 다툼을 중재하고, 사람을 체포하기도 했다. 하늘 아래 같은 사건은 없다고 하니 여러 사건을 접해도 늘 새로웠다. 그리고 경찰 조직에 융화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경험이다. 프로파일러도 결국 십이만 경찰관 중 한 명이니까.

어떤 동네를 이렇게 많이 돌아다녀본 것은 초등학생 이후 처음이었다. 아무리 오래 거주한 곳이라고 해도 대낮에, 늦은 밤에, 새벽에 돌아다닐 일은 거의 없다. 낮에도 열두 시간 밤에도 열두 시간 순찰을 돌다 보니 감천이라는 동네에 묘한 애정이 생기게 되었다. 복잡하고 꼬불꼬불한 동네라 신고 장소를 찾아가는 길이 미로 찾기 같기도 했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새벽 감천 골목길의 주인공은 고양이였다. 밤새 순찰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헤드라이트에 비춰 번쩍하는 고양이의 눈빛을 만날 수 있었다.

부산에 오니 회를 먹을 기회가 아주 많았다. 지구대 직원 한 분은 낚싯배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낚시를 좋아해서, 가끔은 야식으로 자신이 잡은 생선을 준비해오기도 하셨다.

지구대 근무 일정

경찰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이 많다. 입직 전에는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지구대에서 근무하며 만난 모든 선배들은 정의감이랄지 사명감이랄지 뭐 그런 마음들을 가지고 있었다. 국민과 국가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처음 만났다. 높은 피로도에 시달리며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에 사명감 없이는 힘든 일이기도 하다.


지구대의 근무 형태는 4조 2교대였다(지역마다 다를 수 있다). 주간근무-야간근무-휴무-비번으로 돌아간다. 4일 중 2일만 출근하면 된다는 뜻이다. 혹여 야간 자원 근무에 들어가면 4일 중 3일을 출근하게 된다.


처음 몇 달간은 4일 중 하루만 일찍 일어나면 되는 지구대 근무가 좋았다. 그러나 곧 규칙적 수면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체감하게 되었다. 교대 근무를 하는 지구대 직원 모두가 수면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깊게 잠을 들지 못하거나, 수면 시간이 극도로 짧거나, 나는 반대로 수면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 건강과 성격이 나빠지고, 자유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유용하게 쓰기 어려웠다.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또 불규칙한 생활 패턴에 고양이들이 혼란스러워했다. 형정원에 다닐 때는 아침 알람을 7시에 설정해두었더니 탱이가 아침 6시 50분이면 소리를 질러서 깨워주곤 했었는데... 고양이에게 교대 근무를 납득시킬 수는 없었다.


유사한 직업군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야간근무 때 큰 위로가 되어준 것은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이었다. 어느 밤 광안리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바다는 교대 근무도 없이 파도를 치네"라며 우울해지기도 했다.

예전에는 “내 세금으로 니 월급을 주는데!” 어쩌고  하는 소리가 우습다고 생각했다. 나도 세금 내는데!  그러나 이제는 경찰 서비스의 공공성-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이런저런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신고 출동을 나갔을 때 “저 여경만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며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크리스마스라고 동네 교회 아이들이 지구대에 찾아와 감사 편지를 전해주거나, 순찰을 돌다가 과자를 사면 음료수라도 챙겨주는 분을 만날 때면 생소하지만 기뻤다.


이제 얼추 경찰이 되었나 보다. 1년도 되지 않는 짧은 지구대 생활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하반기 인사 발령에 과학수사과로 전입되었다.



드디어 프로파일러 일을 하러 갑니다.

앞으로 꽃길만 걸을까요...: () 과학수사과 범죄분석 (후) 법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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