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명한 Jun 22. 2021

매화나무와 고무 다라이

지나가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길을 걷다 회색 벽 앞에서 춤추는 매화나무를 만났습니다.

한 장의 유화를 보는 듯해 걸음이 멈추더군요. 처음에는 봄을 알리는 꽃잎을 바라보다가- 앙상하고 고집 있게 뻗은 가지를 바라보다가- 시선이 뿌리로 향했어요.


아뿔싸.

빨간 고무 다라이에 매화나무가 심겨 있더라고요. 근사한 화분도 아니고 든든한 땅도 아니고 꼭 엉터리 일본어로 얘기해야 알아듣는 그 고무 다라이.


순간 그 매화가 꼭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려한 화분에 담기지 않은, 튼튼하고 커다랗지 않은, 꽃이 만발하지 않은... 말하자면 초라해 보이는 모습이 왠지 그렇더라고요.


덕분에, 이내 행복해졌습니다.

그런데도 너무 아름답잖아요! 약속대로 봄이 찾아오고, 매화나무는 온몸으로 신나게 춤을 추고 있잖아요!


매화나무가 지나가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