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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판타지 Oct 29. 2020

JD. 우리 회사의 프로필 사진

구직자들은 우리회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광고 한 번 하지 않았는데, 우리회사가 잘 나가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을까? 

아니면 우리회사의 미래가 탄탄대로라는 비밀정보가 새어 나가서 너나 할 것 없이 깃발을 꽂으러 달려들까?

이미 브랜드 네임이 짱짱한 대기업이라면 구직자들이 이력서를 들고 줄을 서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회계상 영업이익 증가율이 상승곡선을 보이고 성장 가능성이 담보되어 있다 하더라도 구직자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쩌면 거의 불가능할 수도...?




그런 회사들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 이하 JD)'다. 


소개팅으로 따지자면 카톡 프사 같은 것이다. 그런데 많은 회사들이 JD를 너무 우습게 본다. 

JD를 우습게 보지 마세요. 그러다 큰 코 다칩니다. ㅠㅠ


우리회사 (주)냥냥펀치에 영업담당자를 채용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구인구직 웹사이트에 JD를 올린다. '영업담당자 - 경력 5년 이하' 정도로 썼으니, 이제 딱 봐도 사람 좋고 성실해 보이는 지원자를 기다린다. 한 달, 세 달, 반년, 1년이 지나도 자기소개서 하나 받아보지 못할 것이다. 만일 누군가 지원했다고? 그런 사람이야말로 요즘 말로 아묻따 믿거* 입니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고 거른다)  

영업도 분야별로 하는 일이 다 다르다. 정말로 상품을 들고, 잠재 고객들이나 기존 고객들을 면대면으로 만나서 구매를 유도하는 영업직도 있지만, 상품을 기획하는 업무를 영업팀이라고 표현하는 조직도 있다. 다녀보지 않으면, 그 회사에서 말하는 '영업'이 대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럼 구직자/지원자가 '을'이니까 어떻게든 모든 인맥과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우리회사의 '영업직원'이 하는 일을 알아내서 준비해야 할까? 우리회사가 정말 그 정도의 브랜드 파워가 있는가?  



JD. 제대로 쓰는 노하우(Know-How)



첫째, 구인하는 직무가 어떤 포지션인지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우리회사가 연예 기획사고 7명의 남성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을 기획했다. 데뷔가 백일 뒤인데 보컬이 개인 사정으로 탈퇴했다. 이미 노래랑 춤을 다 받은 상황인데, 급하게 한 명을 채용해야 한다. '보컬'이 나갔으니 노래를 잘 부르는 '보컬'을 뽑아야 하는데, '남자 아이돌 연습생-데뷔가능'이라고 공고를 냈다. 

    여기서 야기될 수 있는 첫 번째 문제점은 '노래를 특히 잘하는' 연습생이 와야 하는데, 노래를 잘하든 못하든 메뚜기떼처럼 지원자가 몰려들 수 있다. 두 번째 문제점은 그렇게 몰려든 지원자들 사이에서 '정말로 노래를 잘하는 연습생'을 골라내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우린 센터에서도 노래를 부를 수 있고, 킬링 파트를 소화해낼 수 있으며, 3 옥타브가 가능한 남자 연습생을 뽑는다. 그런데 랩도 가능하면 금상첨화다. 연습생은 최소 반년 이상 했어야 한다. 춤 기본동작이 완성돼있어야 한다.' 라고 최선을 다해서 포지션에 대한 JD를 뿌렸다. 이제 모든 준비가 된 것만 같다. 항상 함정은 있다. 노래를 기깔나게 잘 부르고 춤도 되고 랩까지 되는 연습생이 왔는데, 멘탈이 개복치인 연습생이라 리허설까지도 괜찮은데 본무대에 나가기 전에 픽픽 쓰러진다. 그리고 단체생활이 불가능한 성격이라 합숙이 되지 않는다. 우리회사는 이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켜 BEP를 맞출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시작도 전에 보컬만 개인 숙소를 잡아주게 생겼다. 이런 문제도 JD에 설명함으로써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둘째, JD에는 해당 직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attitude)도 담아야 한다.


        실제로 계약까지 성사시켜야 하는 발로 뛰는 영업일 경우, 진취적인 성격과 굴하지 않는 성격, 갑질(애초에 갑질은 해서도 안 되고, 당하기만 해도 안된다. 갑질은 근절하자)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해줘야 한다. 내일모레 데뷔할 보컬이라면 3옥타브 성대를 찢다가 삑사리가 나도 윙크를 날리며 순간을 모면하거나 다시 부르는 근성이 필요하다고 '미리' 알려줘야 한다. 그 JD를 읽고 도망갈 사람이라면 지원도 전에 도망가는 게 낫다. 우리회사에 입사한 다음 매일같이 신경쇠약에 걸려 스스로의 커리어와 삶도 망치고, 보는 사람도 위태롭게 만드는 건 루즈-루즈(Loose-loose)다.  




               [잘 못 쓴 JD Vs. 잘 쓴 JD의 예시]


    이렇게 '스킬'과 '태도'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JD 작성이 끝났다면, 큰 고비는 넘겼다. 지원자/구직자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서류심사'를 통과한 것이다. 우리회사의 JD가 저쪽 손에 넘어갔고, 저쪽도 우리 손에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제출했다면 서로의 조건은 일단 확인한 셈이다. 

    이제 실전 면접인 진짜 소개팅이 남았다.  이때 많은 회사들이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면접을 보러 오는 지원자들을 마치 '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추후 고용계약서에 우리회사가 '갑'이고, 입사자가 '을'이라고 표현할지언정 실제로 그들을 '을'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갑'이 '을'에게 노동이나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돈'이라는 형태로 지급할지라도 '을'이 '갑'에게 필요한 노동이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걸 역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갑'에게 지금 당장 '을'의 노동력과 스킬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면접에서 '갑질'을 한다면 그보다 답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순화해서 말했다.)  


무엇보다 면접은 우리회사만 구직자/지원자를 평가하는 시간이 아니다. 


    우리회사 역시 지원자들로부터 '내가 다닐만한 곳인지 아닌지, 내 화려한 스킬을 나눠줘도 될 곳인지 아닌지' 평가받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상호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예의의 기본은 자기소개다. 우리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어떤 사람을 왜 뽑는지, 당신에게 기대하는 바가 뭔지 JD에서처럼 잘 설명해야 한다. 소개팅에 나가서 상대방에게 "제 스펙 다 듣고 왔죠? 그쪽 이야기해보세요." 라고 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스펙에 자랑할 것이 없다 하더라도 열심히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쓰는 게 지원자의 예의라면, 제대로 된 JD와 회사 소개를 하는 것 역시 회사의 예의다.  


    만일 우리회사가 게임회사라고 치자. 10살 코 묻은 용돈부터 20대 알바비까지 열심히 우리회사 아이템에 갖다 바친 지원자가 눈 앞에 있다. 알고 보면 그가 우리회사의 VVIP일수도 있다. 아니면 우리회사 대표 게임의 유명한 길드장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면접에서 갑질을 하고 지원자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면, 그는 세상 그 누구보다 무서운 '한 때 팬이었던 안티'가 될 수도 있다. 이 예의는 비단 면접에서 주고받는 대화뿐 아니라, '채용의 전 과정'에서 기본이 되어야 한다. 가령, 구인구직 웹사이트를 통해 채용공고를 내고, JD를 아무리 잘 써서 올렸다 하더라도, 지원자들에게 합격, 불합격에 대한 안내가 없으면 희망고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회사의 이미지에도 좋지 않다.  


   


    요약해보면,


    우리회사에서 채용하는 '포지션'에 필요한 '스킬'과 '태도'를 JD에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면접 시, 지원자의 자기소개를 요청하듯 우리회사에 대한 소개를 함으로써 기본적인 예의를 갖춘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에서 합격자뿐 아니라 불합격자에게도 분명한 이별 통보를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드디어 우리회사에 우리가 원하는 인재가 입사를 하게 된다. 그는 이미 완벽한 인재이므로 알아서 능력을 펼치게끔 놔두자. 라고 해도 될까? ㅎㅎㅎ 이 이야기는 잠시 다른 이야기를 했다가 다시 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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