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이 많이 나온다. 열심히 일하던 주인공 A는 어느 날 회사에 갔더니 갑자기 보스가 'You fired (너 해고됐음)'라고 말한다. 영문을 알든 모르든 주인공 A는 커다란 박스에 회사에서 쓰던 짐을 쑤셔 넣고 길거리로 나온다.
물론 한국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을 찾아볼 수 없다.
한국 고용 시장에서 사람을 자르는 일은 사람을 뽑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우리나라에서는 노동법상 근로자/피고용인을 능력/성과(performance)의 사유로 해고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뽑을 때 최대한 신중하게! 온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참고: 내가 딱 보면 알지!)
<쇼미 더 머니>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중간에 탈락자에게 이런 멘트를 날린다.
보통 가사를 까먹거나 라임을 절면 그들은 더 이상 다음 무대로 나아갈 수 없다. 그중 정말 엄청난 실력자들은 실수를 그 자리에서 만회하여 진짜 실력을 보여주기도 하고, 천운이 따라주는 이들은 패자부활전에서 살아남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거기서 실수하고 주저앉는 그들과는 안녕(bye) 한다.
회사는 일단 정규직으로 근로자를 고용하면 이렇게 쉽게 이별을 고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질 수 있는 상황은 당연히 존재한다.
앞서 다뤘던 채용의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라서 사람을 뽑았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의 직무 적합성(job-fit)이 어떻게 떨어질 수가 있을까?
근로자에게 요구되는 직무 적합성(job-fit)의 수준이 올라가는 경우는 보통 근로자가 직책 레벨업을 했을 때다. 예를 들면, 팀장으로 승진한 경우다. 물론 모든 근로자가 팀장으로 승진했다고 해서 직무적합성(job-fit)이 뚝 떨어지지는 않는다. <쇼미 더 머니>에서처럼 무대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임원이 되고 사용자의 자리까지 넘 볼 호랑이 새끼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근로자의 직책은 레벨업이 됐는데 근로자의 능력이 레벨업을 하지 못한 경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중이다.
(주)멍멍간식 근로자 김녁살 씨는 3개의 면접 관문을 거쳐 본인의 능력을 여러 차례 검증받았고 지난 3년간 최우수 성과를 냈다. 이에 사장님(바로 당신)은 신이 나서 전 직원을 불러놓고 김녁살 씨에게 당장 내일부터 '팀장'을 시키기로 한다.
근로자 김녁살 씨가 상품 기획팀의 대리로 지낸 3년 동안 김녁살 씨는 매월 다른 상품을 기획했고, 상품의 85% 이상이 업계 매출 신기록을 내며 초대박을 쳤다. 김녁살 씨의 강점은 누가 뭐래도 견주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반려견 시장의 간식 문화를 파악하여 딱 필요한 간식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 외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갑자기 팀원 5명을 거느리고 그들을 관리도 하고, 매출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어제까지 같은 직급 동료였던 오지디 형님은 김녁살 씨가 정치질을 한다며 뒤에서 수군대고 동료들과 함께 근태를 엉망으로 하고 있다. 김녁살 씨가 직접 상품 개발을 하지 않으니 매출은 뚝뚝 떨어진다.
이런 상황은 과연 김녁살 씨의 잘못일까?
아마 당신도 속으로는 김녁살 씨를 손가락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쟤는 대리일 땐 잘했는데, 팀장으로서는 영 별로네."라는 비난 섞인 평가도 뒤따른다. 단언컨대 이는 김녁살 씨의 잘못이 아니라 사용자/고용주와 김녁살 씨의 전 팀장과 현재 그의 보스 모두의 잘못이다.
왜냐하면, 김녁살 씨에게 단 한 번도 팀장으로서 기대하는 일의 방식과 수준, 목표에 대해서 아무도 가르쳐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팀장으로서 평가받을 수 있는 '기준'이 한 번이라도 공론화되었거나 '목표 설정'의 자리가 있었는가? 팀장이니 이제 그 정도는 알아서 해야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능력 없고 현실 파악 못하는 한심한 꼰대일 뿐이다.
이런 경우에는 팀장이니까 당연히 알아서 하라고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팀장으로서 해내야 하는 목표를 팀장 위의 리더가 (혹은 인사팀이) 함께 설정하고, 팀장으로 지내며 가장 어려워하는 이슈가 무엇인지 파악해서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근로자 개인이 승진하는 경우가 아니라 회사가 갑자기 성장하는 경우가 있다. (주)냥냥펀치는 바이럴로 유명세를 타면서 외부 투자를 많이 받게 되었고 공격적으로 사업을 팽창하며 지주사 루이비냥을 설립하게 되었다.
냥냥펀치의 디자인 실장이었던 김복냥 실장은 냥냥펀치의 메인 사업인 고양이 인형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것뿐 아니라 외부 디자이너를 영입하고 고양이 디자인 플랫폼을 확장하는 일까지 맡게 되었다. 원래 냥냥펀치에서 하던 디자인 업무의 직무 적합성(job-fit)이 100점짜리 일이었다면 루이비냥의 디자인 업무의 직무 적합성은 200점짜리가 된 것이다.
직무 적합성에 점수를 매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를테면, 김복냥 실장은 냥냥펀치의 디자이너로서 하나의 고양이 인형 라인을 만드는데 얼만큼의 숙련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본다거나 얼마나 트렌드를 잘 읽어내고 벤치마킹을 잘하는지, 마케팅 부서와 공장 생산라인과는 얼만큼 잘 소통하는지 등 평가 항목을 설계해서 점수화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김복냥 실장이 일을 완벽하게 해낸다는 가정하에 100점짜리 일이었던 디자인 업무가 200점짜리가 된 것이다. 그런데 김복냥 실장이 200점짜리 일을 소화해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김복냥 실장의 디자인 창의력은 뛰어나지만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떨어져서 사내에서는 같은 조직원들끼리 겨우 이해를 해주는 정도이고, 타사의 디자이너나 프리랜서 디자이너와 불통먹통이라면? 디자인 트렌드는 잘 알지만, 디자인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하다면? 그리고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래서 이 사람과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을 모색할 수 없다면, 이 역시 헤어짐의 이유는 될 수 있다.
하지만, 김복냥 실장에게 200점짜리 새로운 과업을 떠넘기기 전에 김복냥 실장과 나(사용자/고용주)의 커뮤니케이션은 과연 200점 짜리였는지 되짚어 봐야 한다는 것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승진을 하지 않아도, 회사가 바뀌지 않아도 '직무 적합성(job-fit)'이 영 맞지 않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이 사람은 정말로 태생 자체가 글러먹은 '별로인 사람'인 걸까? 사용자/고용주에게는 이 사람을 해고하기 위해 갈 때까지 간 상황(=노동법 상으로 리스크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해야 하는 상황) 제대로 평가할 시간이 없었을까?
돌이켜보면 무려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채용 시점에 이 사람이 정말로 이 일에 적합한지 질문하고, 경험이 진짜인지 검증하고, 실제로 우리 조직에 어울릴 만한 사람인지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었다. 혹시 '딱 보면 아는' 그 대단한 눈으로 아주 짧은 시간에 '괜찮은 사람'이라고 채용 해버 리진 않았는가?
채용을 하고 나서도 수습 3개월이라는 시간이 분명 있었다. 3개월 동안 이 직무와 우리 조직에 맞는 사람을 제대로 채용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채용한 사람을 회사에 법적 리스크 없이 내보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만일 '내 사람 잘 보는 눈'만 믿고 채용을 대충 했다거나, 수습이라는 기간을 어영부영 보내 놓고 직무 적합성(job-fit)이 맞지 않으니 내보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면, 사용자/고용주 스스로의 리더십과 자격을 진지하게 전면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정말로 정말로 운이 더럽게 나빠서 직무 적합성(job-fit)이 꼭 맞는 악한 사람을 채용한 경우도 있을 수 있고, 근로자 개인의 사정이나 회사 환경 때문에 오랫동안 그의 성과를 담보하거나 기대할 수 없어 꼭 이별 통보를 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아름다운 이별이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마지막 모습이 굳이 더러울 필요는 없다. 마음이 다 식지 않았다면 관계를 회복할 수도 있고, 서로 합의 하에 웃으며 안녕(bye) 할 수도 있다. 서로 잘 헤어지는 방법은 다음 글에서 다루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