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권리가 되어버린 무상의료 현장
교도소? 복지시설? 교정시설의 모호해진 정체성
오늘도 어김없이 비상벨이 눌린다. 수시로 비상벨을 누르는 수용자인데 또 쓸데없는 요구사항을 이야기하거나 태클을 걸려고 하는 모양이다.
"주임님, 제가 밤에 잠을 잘 못 자 가지고, 수면제 좀 주세요. 저번에 먹던 수면제가 너무 약해서 더 센 걸로 처방 좀 해주세요. 진통제도 더 처방해 주시고요. 그리고 제가 갑자기 혈압이 올라서 혈압을 재고 싶은데 혈압계 좀 가져와 주세요."
"아니, 제가 의사입니까? 저한테 약처방을 해달라고 하면 어떡합니까. 본인이 신청하면 의료과에서 판단해서 처방해 줄 겁니다. 그리고 본인 아프다 해서 진료도 보게 해 주고 약도 주고 있는데 뭐가 그리 불만입니까? 그리고 혈압은 아까 쟀다면서 하루에 수시로 잽니까?"
"아니, 내가 아프다는데 교도관이면 해줘야 하는 거 아냐? 내가 아파서 문제 생기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당신 이름 내가 기억할 거야. 어떻게 되나 봐 봐."
"이 사람이 어디서 반말이야. 마음대로 하세요. 저는 절차대로 합니다."
이 대화는 교도소에서 아주 정말 흔하게 이뤄지는 수용자, 교도관 간의 대화이다. 교도소, 구치소에서는 의료가 무료로 제공되다 보니 갖가지 약들을 요구하고 수시로 의료과장 면담을 요청하며 진료를 보게 해 달라는 수용자들이 넘쳐난다.
나는 이것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투약과 진료가 무상으로 제공되다 보니 구치소, 교도소에서 제공되는 의료혜택이 수용자에게 너무나 당연한 권리가 되어버렸고 그것이 너무 지나쳐 사소한 것도 자신의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으면 진상을 피운다. 수용자들의 진상은 대부분 이러한 사소한 의료처우의 불만으로부터 시작된다. 무상이라고 하여 수용자들이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그 무상이라는 혜택이 과도해져 더 이상 이곳은 교도소가 아닌 요양시설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먹지도 않으면서 투약신청하여 버려지는 약들도 수 없이 많고, 담장 밖이었으면 병원에 가지도 않을 가벼운 증상으로도 진료를 보게 해달라고 떼쓰는 현상은 아주 흔하다. 교도관들은 이러한 문제로 매일같이 시달리고 있다. 이것이 다 의료처우가 무료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수용자들의 약으로 낭비되는 세금만 해도 엄청날 것이다.
이렇게 국민들의 세금은 수용자들의 건강과 복지향상에 아낌없이 쓰이고 있다. 수용자들은 여기서 3끼 꼬박꼬박 주는 규칙적인 식사와 매일 주어지는 운동시간과 사소한 질환에도 무료로 제공되는 의료혜택으로 무척이나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수용자들은 전립선약, 피부과약, 수면제, 각종 진통제 등 긴급하지 않은 본인의 지병이나 질환을 위해 무상의료혜택을 마음껏 이용하고 이는 결국엔 교도소, 구치소 내 의료과의 업무과중으로 이어지며 과다한 약제비용으로 인한 국민세금의 낭비로 이어진다.
심지어는 수용자가 심각한 질병에 걸려 외부병원에 나가 진료하거나 입원할 경우에는 국가가 그 막대한 비용을 대신 지불하기도 한다. 참고로 수용자가 외부병원에 입원할 경우엔 보안상 문제로 무조건 1인실을 써야 하므로 입원비용이 매우 비싸다. 우연히 병원비 영수증을 본 적이 있는데 몇백 단위는 가볍게 넘어간다.
물론 무상의료 혜택이 소수의 필요한 수용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이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적인 수용자들에게는 무차별적인 무상의료가 아닌 소정의 비용부담을 지워 투약이나 진료의 남발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는 죄짓고 들어온 사람들이 있는 교도소이지 무상의료를 제공하는 복지시설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나라 교정시설은 그 정체성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