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 공무원의 비애
일하기도 싫고, 일할 능력도 없는 말년
교도소, 구치소의 현장은 말 그대로 동물의 왕국이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정글과도 같다. 당연히 정글에서는 사건사고가 많다. 실제로 정글에서는 어떠한 사건사고도 그 누구의 개입 없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생태계를 유지해 나가지만 감빵에서는 교도관의 개입 없이는 금세 무법지대가 될 것이다.
교도소에서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에 있는 교도관들은 사건사고의 진상을 규명하여 규율위반 해당사항이 있는지 조사하고 신상필벌에 맞게 처리해야 한다. 교도관이 수용자들의 난동을 제압할 때도, 수용자들을 독거실(독방)에 집어넣을 때도 아무런 절차 없이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은 영화 '범죄도시'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범죄자를 통쾌하게 제압하는 모습을 기대할지 모르겠지만 현실과는 매우 다르다. 물론 영화에서라도 대리만족을 해서 좋긴 하지만 영화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아무튼 우리나라처럼 범죄자 인권에 관대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수용자들의 규율위반 행위가 있을 때 교도관이 수용자의 처우를 제한하거나 물리력으로 제압하기 위해서는 절차라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곧 기초조사를 통하여 사건의 대략적인 내용과 함께 해당 사건에서 수용자가 어떤 조항을 위반했는지에 대해 작성하여 과장 소장에게 결재를 올리는 것이다.
얼핏 보면 매우 간단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일부의 말년 공무원들은 이 절차를 가장 두려워한다. 이런 유형의 대다수는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퇴직 직전의 6급 계장님들이다. 30년 이상 공무원 생활을 하는 동안 시대가 급격하게 변하면서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어떤 업무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는데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사건 개요조차 글로 옮기기 힘든 처참한 문장력과 군데군데 눈에 띄는 맞춤법 오류들... 게다가 이렇게 불완전한 결과물을 가지고 과장, 소장에게까지 결재를 하러 가는 과정들은 말년인 그들에게 매우 고역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6급 말년 계장님들은 "퇴직도 얼마 남지 않은 마당에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라는 귀차니즘 마인드로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처리하지 않고 덮어버리는 미봉책을 택한다. 사실 귀찮음보다도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당 사건의 증거와 목격자, 참고인들의 진술을 확보하여 사건의 기본적인 개요를 파악하고 어떤 조항에 의거하여 어떤 처벌을 내릴 것인가에 대한 판단조차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말로는 30년 경력의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라고 후배들에게 한껏 무용담을 늘어놓았지만 사소한 사건사고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고를 친 수용자를 처벌하고 싶어도 그 행정적인 절차들이 두렵고 까다로워 망설여지는 것이다. 예전처럼 말빨과 권위로 수용자를 찍어 누르던 시대는 지났고 요즘 수용자들은 매우 영악하다. 수용자를 제대로 처벌하려면 확실한 조사를 통해 교도관의 물리적 제압이나 수용자에게 제공하는 불이익을 정당화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야 한다.
말년 공무원은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진다. 결국 대충 수용자에게 커피를 타주면서 "다음부터 그러지 마라"라는 훈계와 함께 얼버무리면서 마무리하는 쪽을 택한다. 대충 덮어버리는 것이 습관이 되다 보니 정식으로 수용자들의 신상필벌을 처리하는 일련의 절차들이 굉장히 귀찮고 불필요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혹여나 일을 잘못 처리하여 수용자들에게 고소고발을 당하거나 징계를 받게 된다면 30년 이상 쌓아 올린 연금에 흠집이 날 수도 있기 때문에 일 하지 않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국민들이 좋지 않게 생각하는 무능한 보신주의 공무원의 전형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교도소, 구치소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현장의 하급 교도관들은 이러한 말년 계장님들 때문에 매우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처벌하고자 하는 하급 공무원과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상급 공무원과의 피 튀기는 설전이 오고 가기도 한다. 기껏 해당 수용자를 처벌하기 위해 상급자에게 데려갔는데 상급자가 커피를 타주고 타일러서 되돌려 보내는 경우에는 무기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모든 사건 사고를 융통성 없이 FM대로 처리하려면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근무하기 매우 힘들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채찍보다는 당근으로 회유를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정말 수용자를 처벌해야 할 상황에서 나 하나 편하자고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그것이 나쁜 선례가 되어 교도소의 질서는 무너지고 만다. 일하기도 싫고 일할 능력도 없는 일부 말년 공무원들의 불편한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