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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경 Feb 05. 2024

요즘 사는 이야기

1. 사촌 누나 결혼식에서 절연한 아버지를 만났다.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동생은 "어쩔 거야. 아빠 오랜만에 보잖아." 라며 멋쩍게 물었다. 나는 좋은 날에 뭔 일 있겠냐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많이 고민하고 있었다. 절연한 지 2년이 넘어가면서, 종종 꿈에 아버지가 나왔다. 나는 꿈 내용도 기억 못 한 채 가슴이 비정상적으로 뛰거나 눈물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아무 잘못 없다고 생각하면서 사실은 잘못을 빌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식장에서 만난 아버지는 참으로... 왜소하고 말려있었다. 내가 무서워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서있던 그는 나를 보고 웃었다. "오! 김일경이!" 하며 악수를 청하는 아버지. 나도 멋쩍게 악수를 하며 어깨를 감쌌다. 사회생활을 한 덕에 너스레는 자신 있었다.

그러나 대화는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너무 오래됐다. 뭘 잘못했는지, 누가 어떤 상처가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 그런 관계는 씁쓸한 무언가만이 남는다. 정확히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게 맞겠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아버지도 그런 것 같았다.

반주를 한 아버지를 집에 모셔다 주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얼마 간 조용히 차를 타더니 근처 역에 내려 달라고 했다. 집이 먼데 뭐 하러 그러냐는 것이었다. 그 고집 꺾을 자신이 없어서 조심히 가라는 말과 함께 아버지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나는 후련하면서, 다시 답답해진 채로 운전을 이어갔다.


2. 요즘 여자친구의 많은 덕을 보고 있다. 종종 점심에 먹으라고 도시락도 싸주고, 아플 땐 본인의 목도리를 매어주기도 한다. 내가 힘들면 쉬게 해 주고, 좋은 게 있으면 나누려고 한다. 이런 사람이 없다. 그렇게 사이가 좋은 나와 그녀지만, 종종 싸울 때면 그녀는 늘 눈물을 보이곤 한다. 그럼 나는 울컥 화가 더 난다. 눈물에 위로를 못하는 내가 더 미워서 화가 나곤 한다. 그리고 또 좋게 넘어간다.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다시 헤헤실실하게 된다. 

최근에 좋은 음식을 먹은 날, 참으로 좋은 얼굴을 보여주던 그녀가 어렵게 입을 뗐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긴 그렇지만... 내가 싸운 날 상처를 준 것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본인의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친구라 그런지, 그런 이야기를 좋은 시간에,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는 걸 보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책임져야 할 관계의 무게를 기분 좋게 느꼈고, 고맙고, 미안했다.


3. 직장에서 책임의 무게가 깊어짐을 느낀다. 주니어를 벗어나기 시작한 나에게 기대를 걸어주는 회사에게 감사를 느끼는 요즘이다. 덕분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실패는 없다, 성공만 있다, 이 회사는 내가 꼭 성공시키리라, 나는 부자가 될 거다. 곱씹고 또 씹어서 내 피에 겹겹이 흡수한다. 요즘같이 뜨거운 삶을 살았던 게 아마... 대학교 때 연극 연출을 할 때가 아니었나 싶다. 요즘은 그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인정해 주고, 믿어준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 삶이 값지다는 것은 지금과 대학생 때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놓고 싶은 순간을 느낀 자만이 값진 것을 쥐고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것 같다. 아, 정말 열심히, 잘살아야겠다. 몰입에서 오는 흥분에 행복한 요즘이다.


4. 요즘은 측근이든, SNS든 내 성공에 대한 갈망을 오버하다시피 표현하고 있다. 잘되도 그만, 안되면 웃음거리인 이 짓거리를 하는 이유는, 이제 그런 작은 가십이 내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확인하는 반증이었다. 요즘은 하나의 목표를 가졌다. 나와 10분 이상 이야기 하는 사람이 절대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목표. 적어도 나랑 말하는 순간만큼은. 좋은 영향을 나누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내 영향을 나눌 수 있도록 내 모든 걸 토하고 싶다. 영원히 토하고 싶다.


2024는 이상하다 싶을 만큼 많은 생각도, 상황도 변하고 있다. 이런 거 보면 사주가 진짜 있는가 싶다. 후회도 많고, 감사도 많고, 야망도 많다. 이 벅차오르는 모든 것들을 다 보여주고, 징글징글하게 물고 뜯고, 백배로 돌려줄 테다. 아, 나는 갚을 게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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