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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경 Apr 19. 2024

지도 없이 집으로

야근을 한 탓에 헬스장을 못 간 나는 유산소라도 하고자 집 근처 역보다 두 정거장 전에 지하철에서 내렸다. 개찰구를 빠져나오니 네이버 지도를 안 보고 집에 가보자는 욕구가 들었다(갑자기). 어차피 집으로 가는 방향은 알고, 이 동네에서 10년은 살았으니 가다 보면 얼추 도착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만약 길을 잃어 돌아가면 운동을 더해서 좋다는 생각도 이 이상한 욕구의 당위성을 높여주었다. 아무튼 그렇게 지상으로 나와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조깅을 시작했다.


계속 뛰다 보니 내가 모르는 우리 동네가 이리도 많은가 싶었다. 설상가상으로 나침반 삼았던 높은 건물도 잘 보이지 않았다. 새삼 내가 길치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도 방향은 명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계속 뛰었다. 길이 막히면 옆으로 갔고, 아니다 싶으면 돌아서 갔다. 그렇게 길을 걸을수록 낯이 익는 길과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헤매는 수는 줄어들고, 발걸음도 더 빨라졌다.


모쪼록 지하철 타고 왔으면 10분이면 도착했을 거리를 한 시간을 넘게 걸려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네이버지도의 힘은 위대했다. 많이 늦었지만, 길치인 내가 지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집에 도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집이라는 '목표'와 '방향'을 알고 있었다는 것. 헤매는 동안 나는 내 집을 계속 떠올리고 있었고, 집을 찾기 위해 한 방향으로 걸었다. 내가 한 것은 그게 전부였다.


사실 머나먼 곳에 있는 것 같은 꿈이나 목표를 이루는 것도 오늘 내가 겪은 경험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지금 명확한 꿈(목표)이 있는가 묻는다면 글쎄, 대략적으론 있겠으나 떠올린 집처럼 그리 선명하진 않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스스로 세운 꿈이 명확하게 설득되지 않았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난 명확한 꿈을 그리지 못하니 계속 길을 잃어야 하는가 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집에 가까워지면서 만났던 낯익은 길과 건물을 떠올렸고, 먼 곳에 있는 내 꿈도 이루기 위해 행하는 방향 속에서 선명히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도착하기 위해 '방향'이라는 단순한 요소를 사용한 것처럼, 내 꿈을 이루기 위한 요소도 지금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다.

1. 책을 읽자.

2. 운동을 하자.

3. 배려하자.

4. 재밌게 일하자.

5. 본질을 따지자.


아마 위 요소들을 인지하고 꾸준하게 뛰면 명확한 꿈에 관해 정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뛰는 중간에 길을 바꿔야 할 때도, 돌아서 가야 할 때도 있겠지만, '방향'만 생각하면 '집'에 도착한다. 아무튼 방향을 잃지 않고 꾸준히 달렸으면 하는 바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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