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밀라 Apr 30. 2021

밥은 안 먹고 우유만 먹는 아이

밥은 한 끼, 우유는 하루 1리터 이상

32개월 우리 아이.

정말 밥을 안 먹어서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어쩜 안 먹어도 이렇게 안 먹을 수가 있니?


우리 집 아이가 먹는 밥은 어린이집에서 먹고 오는 오전 간식, 점심, 오후 간식이 전부.

뭐든 먹으니 다행이라 생각하다가도 그게 우유라 나는 걱정이 많다.


의사 선생님도, 아이 한 명 키운 엄마들 모두 입 모아 하는 말.

"우유는 이제 간식이라 500ml 이상 먹으면 안돼요. 줄여야 합니다."


'하지만 넌 신생아처럼 엄청난 양의 우유를 먹고 있지. 아오. 대박아.'

대박이의 1일 평균 우유 섭취량은 190ml 6팩. 즉 1,140ml. 1리터 이상!

오 신이시여.




퇴근 후 집에 데리고 와서 저녁밥을 함께 먹자 하면 하는 말.


"엄마, 밥 안 먹을래요."


정말 속을 뒤집는 마법 같은 한마디.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정확하게 말해서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너의 말.


"대박아, 저녁밥 먹어야 해. 엄마도 아빠도 밥을 먹는걸?"

"엄마 밥 안 먹을래요, 우유 먹을 거야."


이렇게 확고한 아이에게 억지로 밥을 먹이면 집이 아주 눈물바다.

난 먹기 싫다는 애를 어르고 달래 가며 먹일 열정이 없다.


'음... 그래. 먹지 마. 배고프면 먹겠지.'

난 늘 그렇게 생각하며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는다.


우리 부부가 저녁 다 먹고 나면 아이의 몫은 치우지 않고 10분 정도 더 놓아둔다.

그 10분 안에 와서도 먹지 않으면 아이는 정말 저녁을 안 먹는 것이기에 깔끔하게 정리.

어느 날은 와서 맛있게 다 먹고 어느 날은 패스.

넌 언제가 되면 밥을 잘 먹을까?


일자별로 하루는 밥만, 하루는 무김치만, 하루는 장조림만 먹는 너를 보면서

편식은 아닌데 편식같이 밥을 먹는구나 싶다.

한 끼 저녁만 놓고 보면 명백한 편식인데, 이걸 일주일, 한 달로 놓고 보면 나름 골고루 먹고 있으니.

이 엄마는 한마디 하고 싶다가도 아직 네가 이해 못할 거라 생각하며 오늘도 한마디를 속으로 삼킨다.


너와 앉아서 함께하는 저녁시간에는 잠깐 사이에 수만 가지 생각이 오가는 경험을 한다.

하루는 오로지 밥만 먹는 너를 보면서 '저러면 탄수화물만 먹어서 안 좋을 것 같은데....' 생각하고

하루는 무김치만 먹는 너를 보면서 '저렇게 먹으면 정말 짤 텐데...' 하고 생각하고

어느 날은 딱히 너만을 위한 반찬이 없는 밥상을 보며 '난 계모인 건가....'하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는 너를 보며 '하나라도 어찌 먹여봐야지....'하고 노력하다가도 격렬히 거부하는 너를 보며 그냥 둬버리는 내 모습에 '내가 포기가 빠른 건가... 아님 잘하고 있는 건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너를 바라만 본다.







그런 네가 요즘은 부쩍 키가 컸어. 다리도 길어지고 허리도 길어지고 팔도 길어지고.

불과 세 달 전에 110사이즈 내의가 커서 헐렁헐렁했는데 지금은 팔 길이도, 다리 길이도 딱 보기 좋게 맞다.

먹는 것도 없는데 대체 넌 뭘 먹고 자란 거니.

그런 아마도 [우유] 일테지.


요즘 저녁에 안 먹어도 너무 안 먹더라니, 새벽에 깨서 우유를 찾기 시작하는 대박이.

처음엔 나도 피곤하고 빨리 재워야겠다는 생각에 우유 1팩을 먹여서 재웠다.

근데 생각해보니 이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우유는 안 먹이고 물로 대체해서 먹이고 재워야겠다 결심한 첫날.


그날 새벽도 어김없이 우유를 찾아 깬 대박이.

"엉엉엉. 엄마, 대박이 우유 주세요."

"대박아, 밤에 우유 먹으면 안 돼. 대신에 물 먹고 자자."

"싫어요! 싫어! 우유 주세요! 우유 먹고 싶단 말이에요!"

"그래도 안돼. 자다가 일어나서 우유 먹으면 안 돼요. 내일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줄게요."

"싫어요, 우유 먹을 거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대박이를 계속 설득했지만 울고 떼쓰기만 하는 너.

10분 넘는 실랑이 끝에 나는 그냥 자려고 누웠다.


나는 대박이에게 그만 울라 했고 단호한 내 말에 대박이는 울음을 그치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물 주세요."

"응? 물 먹을 거야? 그래, 우리 물 먹고 잘까?"

"네, 물 주세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물을 떠다 줬더니 쭉쭉 잘 마시는 대박이.

10분을 넘게 울었으니 목이 마를 법도 하지.

아이가 물을 다 마신 것 같아서 컵 받아서 한쪽에 가져다 놓으려는데 들리는 목소리.


"엄마 이제 물 먹었으니까 우유 주세요."


우와. 대박.

너 천재니. 쪼그만 게 어떻게 이렇게 말할 생각을 했을까?

내가 우유는 안되고 물먹으라고만 하니 우선 물을 먹고서 우유를 달라는 너.


너의 표현에 이 엄마는 졌다.

엄마가 권했던 물을 먹고서 본인이 원하는 우유를 달라는 너.

협상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우유를 주지 않기로 결심한 첫날, 결국 너에게 다시 우유를 주고 말았지만 새삼 많이 자란 너의 모습을 보며 남편과 함께 웃고 대견해서 너의 머리를 잔뜩 쓰다듬고 사랑한다 말했다.






우유를 1리터씩 마시는 대박이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래서 내 친구의 조언으로 우유팩 용량 190ml에서 110ml로 줄였다.

처음엔 원래 먹던 양의 절반 정도로 용량이 바뀌니 단번에 2팩씩 쭉쭉 마시던 네가 이젠 한팩씩 먹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6팩 정도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렇게 조절하다 보면 어느 순간 또 달라지겠지.


"그래도 우유만 먹어요."라고 고민하는 게 행복한 고민이라는 걸 안다.

엄마는 네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 주는 것만으로도 매일매일이 감사하단다.

사랑해 대박아.

하지만 단백질 보충을 위해 고기는 조금 먹자꾸나.




작가의 이전글 의미 있는삶을 살고 싶다면 어떻게해야 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