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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정 Jun 05. 2020

도배는 삼세번

인테리어가 드디어 끝났다. 이사를... 무사히 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실패했다. (지난 험난한 이삿날은 책 '혼자 살기 시작했습니다'이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손수건 지참 필수...) 이번 이사는 아침 10시에 올 테니 이삿짐을 빼 달라고 한 다음 세입자가 오후 3시가 넘어서 까지 오지 않고, 보증금도 보내지 않아 부동산에서 사장님과 점심을 먹고, 집주인과 둘이 손을 잡고(정말 잡고) 농협에 앉아서 입금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간략히 정리하겠다. 길게 이야기하자면 부동산 사장님과 너무나 오래 함께 있었던 나머지 부동산 중개사 시험 권유 및 전업 권유를 받았던 일까지 있지만...


왜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까...?


인테리어 공사가 거의 마무리될 즈음, 공사 현장에 들렀다. 공사 현장에 매일 가서 체크하는 게 좋다고들 하지만, 공사 현장과 우리 집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퇴근 후 한 시간도 넘는 거리를 오가는 게 힘들어서 주중에는 가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마무리가 다 된 집을 보니 성취감이 몰려왔다. 거의 모든 부분이 사랑스러웠다. 단 한 군데만 빼고. 도배가 울퉁불퉁 제멋대로 되어 있었다. 어설프게 붙인 핸드폰 액정 필름처럼 벽지가 제멋대로 떠있었다. 인테리어 실장님은 실크 벽지라 마르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말하면서도, 현관 쪽은 상태가 심하니 도배를 다시 해주겠다고 하셨다. 현관만 문제가 아닌 것 같았지만, 실장님 설명대로 실크 벽지라 그렇겠거니... 생각했다. 실크 벽지란 신비롭군... 시간이 지나면 벽에 착 달라붙는 건가?


이삿날, 우여곡절 끝에 내가 제일 늦게 도착한 현장에서 벽지를 제일 먼저 확인했다. 아직도 공기가 한껏 안에 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까... 싶었지만 이삿짐을 정리하는 게 먼저였다. 드디어, 이사를 왔다! 다음날 아침, 아직 식탁이 배송되지 않아 앉은뱅이책상((구)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거실에 앉아 멍하니 아침을 먹는데 눈엔 오직 한 지점, 도배가 들떠 쭈글쭈글한 거실 벽지가 눈에 들어왔다. 실크 벽지... 주문을 걸듯 중얼거리며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거실을 지날 때마다, 거실에 앉아 있을 때마다 벽지만 눈에 들어왔다. 한 군데면 위에 뭘 가리기라도 했을 텐데, 현관에선 현관 벽지, 안방은 안방 벽지, 여러 군데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도배를 다시 했던 현관 쪽도 정말 다시 했는지 의심스럽게 비슷한 모양으로 들떠 있었다. 과연, 실크 벽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적을 행할 것인가... 인테리어 실장님은 조금 기다려 보자고 했다. 내가 고른 도배지가 원래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더하며. (아니, 그런 얘긴 벽지 고를 때 말씀해주셨어야죠!)


내 눈엔 너만 보여...  출처 : SBS 뉴스  https://news.sbs.co.kr

 

이게 과연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인지 도배 하자에 대해 검색해봤다. 모두 입을 모아 잔금을 지불하기 전에 얼른 도배를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동네 맘 카페에도 인테리어 하자 보수를 한 경험담이 여럿 올라와 있었는데, 본인이 요청했을 땐 업체에서 꿈쩍도 하지 않다가 남편이 항의하니 다시 해줬다는 경험담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글을 한번 읽고 나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설마, 내가 여자 혼자라서 대강 미루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회사 동료들에게 고민을 상담하자 내가 항의를 너무 미약하게(?) 해서 해줄 생각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동안 동지의식으로 함께 일을 해온 실장님과 싫은 소리 없이 좋은 관계로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과 정말 내가 만만해서 이러나 울컥하는 마음 사이에서 속앓이를 하며 시간이 흘렀다.


이 벽을 처음으로 되돌리고 싶어...

  

일주일 정도가 지나도 실크 벽지의 매직은 나타나지 않았다. 매일매일 내 눈에는 잘못 도배된 벽지만 보였다. 구석구석 사진을 찍었다. 여긴 찢어져 있고, 여긴 들떠 있고, 여긴... 최대한 사진을 많이 찍은 후에 실장님께 메일로 보낸 후, 상의드렸다. 시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으니 하자 보수를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실장님은 사장님과 상의하고 주말에 도배가 가능할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동안 지켜보자고 미룬 것에 비하면 선선한 대답이었다.


세 번째 도배가 결정됐다. 드디어 완벽한 도배를 할 수 있을까. 이미 다 가구가 들어찬 집에서 아침부터 도배를 시작했다. 사장님, 도배 사장님 두 분, 나 넷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배를 함께 했다. 나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함께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배 과정을 지켜봤다. 세 번에 걸친 도배가 끝났다. 이것으로 완벽한 도배가 마무리되었다, 는 해피엔딩으로 마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세 번째 도배 후에도 현관 쪽은 울퉁불퉁하고, 거실에는 찢긴 부분이 있다. 이번에 다른 부분이 있다면, 고생스러운 도배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 보고나니 전보다는 너그럽게 포기하게(..) 됐다는 점이다. 남들은 도배 한 번에도 깔끔하게 잘 끝나던데... 우리 집은 도배 사장님 말대로 본 판(?)이 안 좋아서인지 인테리어 실장님 말대로 벽지 탓인지 아니면 그냥 완벽한 인테리어란 없어서 하나의 하자는 있어야 하는 게 인생의 이치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젠 도배가 잘못된 부분과 눈이 마주치면 내가 먼저 눈을 돌리는 방식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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