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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정 Jul 14. 2020

거실이 생겼습니다

거실이 생겼다. 그동안 살았던 집에는 '거실'이라고 부를만한 공간이 없었다. 현관과 주방을 지나는 곳을 포함한 구역(?)을 대강 거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작은 밥상 하나 펴기도 어려운 비좁은 공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바닥에 앉아서 쓰는 작은 접이식 테이블을 침대 옆에 펼쳐두고, 밥상이자 책상으로 쓰고 있었다. 침대에서 내려오면 거실이었고, 상을 펴면 부엌이 됐다. 너비가 80cm인 그 작은 테이블을 두고도 여러 친구들을 초대해 상을 차려낼 수 있었고,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거실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공간이 생긴다면 나는 아주 아주 아주 커다란 테이블을 거실 한복판에 두고 싶었다. 넓고 좋은 카페에 가면 한편에 꼭 있는 6인용 테이블. 성인 6명은 넉넉하게 앉을 수 있는 그런 테이블을 거실 한복판에 두고 밥도 먹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친구들도 초대하고 싶었다.  


Photo by Stefan Vladimirov on Unsplash


거실이긴 하지만 6인용 테이블과 소파가 동시에 들어갈 공간은 없기 때문에, 소파는 과감히 포기했다. 소파와 TV는 한국인 거실의 필수품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애초에 TV가 없었으니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소파는 조금 아쉽기는 했다. 나는 퇴근 후 침대로 직행하기 전에 떡가래처럼 흐물흐물 1인용 접이식 베드 소파에 누워있다가 씻고 침대에 드는 생활을 했는데, 그 삶을 포기하고 오직 커다란 테이블을 향해서만 달려가기로 했다.  


이사를 가면서 사기로 결심한 단 하나의 가구, 6인용 식탁은 도대체 어디서 살 것인가. 애초에 내 마음속에는 정답이 있었다. 전 직장 동료 집에서 본 M 브랜드의 6인용 식탁. 어느 곳 하나 특별히 멋을 부리지 않은 정직한 직사각형의 나무로 만든 테이블이다.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가격이었다. 50만 원보다는 100만 원에 가까운 가격. 이걸 대체할만한 '가성비' 템은 없을까. 특징이랄게 없는 테이블이니까, 그냥 네모 반듯한 원목 식탁을 찾으면 될 것 같았다. 거짓말이 아니라 적어도 두 달은 이 식탁을 대체할 수 있는 식탁을 찾기 위해 인터넷 세상을 헤매고, 이케아 매장을 헤매었다. 하지만, 거의 똑같은 제품을 찾아도 다리 모양이 직각이 아니거나, 약간의 무늬가 들어 있다거나, 테이블 모서리가 약간 둥글다거나, 조금씩의 차이가 있었다. 완전히 정답과 같은 테이블은 정답뿐이었다. 그리고 정답이 아닌 제품들이 더 싼 것도 아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보여서 가성비 템인 줄 알았던 식탁들도 다 100만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대체할 제품을 찾느니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제품을 사는 게 시간 낭비를 줄여준다는 걸 이번에도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서 깨달았다.

 

출처 : https://www.muji.com/


의자도 같은 브랜드에서 사고 싶었지만, 그건 도저히 예산에 맞출 수 없었다. 의자는 꼭 그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예쁜 게 많았다. 그렇게 배송 온 테이블이 거실에 꽉 찼을 때, 나는 너무 기뻐서 출근길에도 거실 사진을 찍고, 퇴근길에도 거실 사진을 찍었다. 빛이 가득 차면 찬대로,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내 마음에 들었다. 내가 꿈꿔온 거실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 테이블에서 나는 바랐던 대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아이패드로 영상을 보고, 글을 쓰고, 친구들과 맥주를 마신다. 오랫동안 바라 왔던 일들을 하기 위해서 때론 하나의 물건이 필요하다. 이 6인용 식탁이 혼자 사는 내게 필요했던 것처럼.


@around_jun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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