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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정 Nov 30. 2020

호텔 여행자, 캠핑을 가다

지난여름, 캠핑을 다녀왔다. 내가 캠핑을 하다니... 주변 지인들도 놀랐지만, 과거의 내가 알게 된다면 제일 놀랐을 것이다. 캠핑에 관한 안 좋은 추억... 이란 것도 없다. 나는 잠은 집에서, 아니면 호텔에서 자야 한다는 무조건 몸 편한 여행을 추구하는 여행자인데... 캠핑은 그냥 밖에서 자는 거잖아? (캠퍼 여러분 죄송합니다...) 내 인생에 들어올 이유가 없어 보였던 캠핑이란 단어가 찾아온 이유는 이러하다.


코로나 19로 도저히 어디론가 떠날 수 없어진 시대에 캠핑이 유행을 하기 시작하고, 무수히 많은 여행을 함께 다닌 나의 여행 메이트 N이 초보 캠퍼가 되었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새로운 도전을 겁내지 않고, 무엇보다 사막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몽골 여행을 내게 권하던 N이 캠핑을 하기 시작한 건 놀랍지 않았다. N은 캠핑에 조금씩 자신감이 붙고 나서, 나에게도 함께 갈 것을 권유했다. 캠핑이라니 친구야... 왜 돈 내고 시간 들여서 밖에서 자는 고생을 하는 거야? 우리에겐 호텔과 리조트가 있는데... 몇 번쯤 거절하다 인생과 삶에 대한 고찰이 시작됐다.


이렇게 벌써 해보지도 않고 새로운 경험을 거부하다가는 정말 편협한 인간이 될지도 몰라. 할까 말까 할 때는 우선 해보라는 말도 있잖아. 그리고 이제 집에만 있는 것도 지겨울 때가 됐어...


코로나 19로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외출을 조심하게 되면서 집에만 있게 된 지 몇 주가 흐른 차였다. 역시 재택근무 중이었던 N과 함께 캠핑을 가기로 결정하고, 나처럼 단 한 번도 캠핑을 가본 적 없는 S가 합류했다. 여기까진 모든 게 순조로웠다. 출발하기 전까지는... 캠핑을 가기로 한 주에 N은 갑작스러운 소식을 알렸다. 어머니 생신을 잊었다며, 캠핑에 합류하지 못한다는 소식.


”캠핑 장비는 네가 다 가지고 있는데? 캠핑 지식(?)도 너만 있는데? 우린 그냥... 몸만 가려고 했는데?”


N은 우릴 캠핑의 세계에 초대해 놓고 홀연히 사라졌다. S와 나는 덩그러니 남아 정신을 추슬렸다. 우린 오지에 가는 게 아니야. 한국말이 통하는 강원도 캠핑장에 가는 거라고.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중국 오지도, 남미도 다녀왔는데 겁내지 말자. (오지는 다른 선택권이 없어서 그렇게 잔 거지만 여긴 한국인데?라는 마음의 소리는 무시하자.) N이 꼼꼼하게 챙겨준 캠핑 용품을 S의 차에 모두 싣고, 우리는 떠났다. 낙천적이고 도전적인 S는 즐거운 마음으로,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캠핑장은 강원도 영월의 산속 마을에 있었다. 굽이 굽이 시골길을 따라가다 보면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풍광의 캠핑장이 드러난다. 비장한 마음으로 요란스럽게 출발했지만, 사실 캠핑장에서 빌린 곳은 이미 다 텐트가 쳐져 있는 ‘다차 사이트’여서 우리가 할 일은 고기 구워 먹고 자는 일 밖에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캠핑 전문가가 처음 가는 사람은 무조건 좋아할 거라고 조언해준 해먹을 빌렸다. 오랜만에 나간 교외에서, 공기 좋고 햇살 좋은 숲 속에서, 나무 사이 해먹에 누워 있는 게 싫을 수가 없었다. 누워서 졸았다가, 책을 읽었다가 하며 자연스럽게 캠핑장에 녹아들었다.



저녁 먹을 때가 되어 N이 꼼꼼하게 챙겨준 캠핑 도구들을 꺼내자 그제야 소풍이 아니라 캠핑 비슷한 게 되어 갔다. 가지도 굽고, 캠핑에는 목살이 최고라는 말에 사 온 목살도 굽고... 야외에서 고기를 굽고 와인을 마시는 건 싫을 수가 없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추천받은 ‘불멍’을 하기 위해 장작을 사 왔다. ‘불보며 멍 때리기’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했는데 정말 장작이 타는 걸 보니 멍하게 앉아 있게 됐다. 해먹에 누워 있는 거 좋아하고, 밖에서 고기랑 와인 마시는 거 좋아하고, 불멍 좋아하고... 아, 나 캠핑 좋아하네.



잠은 N이 빌려준 토퍼 위에서 잤다. 나는 집에서 이불 세트를 다 들고 왔기 때문에, 사방이 텐트 천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내 방에서 자는 것과 똑같은 구성이 됐다. S는 오늘을 위해 침낭을 사서, 좀 더 그럴듯한 캠퍼처럼 보였다. 다들 그 딱딱한 데서 잠 못 잘 나를 걱정했지만... 푹 잘 잤다. 일어나서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사온 드립백에 커피를 내려 마시고, 샐러드를 먹었다. 1박 2일 동안 서있는 시간 보단 앉아 있는 시간이, 앉아 있는 시간보다는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진짜' 캠퍼들은 달랐다. 하루 종일 분주해 보였다. 텐트를 설치하고 다시 해체하는 데에만 몇 시간이 걸렸다. 텐트를 설치하고, 가져온 물품을 정리하고, 화려한 식사를 차려내고, 또 다른 요리를 하고... 그 모든 일과가 촘촘하게 짜여 있어서 새삼 캠핑이 얼마나 성실한 사람들의 취미인지 알게 됐다. 캠퍼라기보다는 일회성 캠핑 체험자인 우리는 아침에도 해먹에 누워 있었는데... (변명하자면... 누워 있을 수 있는데 왜 앉아 있어야 합니까....)


다녀오고 나서 N과의 ‘제대로 된’(?) 캠핑을 한번 더 가기로 했으나, 그건 내년으로 미뤄졌다. 아직도 내 마음은 캠핑보다는 언제든 정돈되어 있는 침대에 뛰어들 수 있는 호텔이지만, 여행지를 선택하기 어려운 요즘 같은 시대에는 여행 방법을 바꿔 보는 것도 새로운 옵션이 된다.   



Info.

새막골 캠핑장 (지금은 동계 휴장 중, 3월 오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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