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코스트 B의 사정
시드니에서 골드코스트로 향했다. 골드코스트는 우리가 여행을 떠난 이유이자 동기인 B가 사는 곳이다. 우리 셋은 고등학교에서 만났다. B는 나에게 무척이나 다정한 친구였는데, 나중에 K, S, L, 그 누구를 만나도 너나 할 것 없이 B는 자기에게 정말 다정했다고 회상했다. 나와 K는 호주로 가는 중에도 B가 아무래도 날 더 좋아했던 것 같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우리 셋은 B가 호주로 떠난 후, 서울에서 딱 한번 함께 만났다. 다정함 발전소 같은 B에게 따뜻하고 느긋한 나라 호주, 특히 골드코스트는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갓 스무 살을 넘기고,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해외로 떠났다.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 교환 학생 등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돌아온 이들은 누구나 다시 그곳에 돌아가서 사는 삶을 잠시나마 꿈꾸곤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캐나다 밴쿠버에 1년 머물렀는데, 마음 한편에선 항상 밴쿠버로 돌아가는 꿈을 꿨다. 서른이 되는 해, 회사를 그만두고 밴쿠버로 갈까 고민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밴쿠버에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스무 살의 걱정 없던 시절로 회귀하고 싶었던 욕심도 섞여 있지 않았나 싶다. 나처럼 다시 어학연수를 하던 곳으로 돌아가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정말 그렇게 한 사람은 주위에 B 밖에 없다.
B는 골드코스트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며 머물렀고,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골드코스트로 돌아가기 위해 돈을 모았다. 채찍과 당근으로 일상을 반복하는 직장생활은 그런 목표를 잊게 하기 마련인데, B는 그걸 잊지 않았다. 정말 골드코스트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다시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 간호사가 되었다. 그전 B의 한국에서의 직업은 여행사 직원이었다. 이렇게 몇 줄로 끝낼 수 있는 간단한 소개지만, 30대의 B가 20대에 처음 만난 골드코스트에 돌아가기 위해 이 모든 걸 얼마나 치열하게 해냈는지 생각하면 경외감이 든다. B는 호주에서 30대를 맞이했다.
골드코스트 공항은 작았다. 중소 도시의 시외버스 터미널 만했다. B가 WELCOME이라고 적힌 파란색 풍선을 들고 서있었다. 골드코스트의 서퍼(그때까진 실제로 본 적 없음)처럼 구릿빛의 피부를 가진 B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10시간의 거리를 두고 있는 우리가, 드디어 만났다. 동화처럼 맑은 하늘과 B가 들고 온 풍선은 잘 어울렸다. 그리고, B는 차에 우리를 태우자마자 포스트잇 몇 장을 보여줬다. 빼곡하게 적힌 건 우리가 골드코스트에 머무는 동안 해야 할 일들, 가야 할 곳들이었다. 아, B의 신조가 무엇이던가.
잠은 죽어서 자자
B는 간호사로서 야간 근무가 있는 날에는 밤을 새워서 일하고, 아침에 집에 들러 간단히 씻고 바로 나와 골드코스트 호텔 로비에 7시에 도착해 우리를 기다렸다. 피곤한 일이라고는 노는 일 밖에 없는 관광객인 나와 K는 B보다 늦는 염치없는 짓을 하지 않기 위해 허둥지둥 나가곤 했다. B는 몇 번 밤을 새우면서도 우리를 아침에 픽업하고, 하루 종일 운전을 하고, 저녁을 함께 먹지 못하는 날에는 적절한 로컬 식당까지 알려줬다. 이 정도면 우리가 B는 우리만 좋아해, 우리에게만 다정해 라고 착각할 만하지도 않은가? 차 뒷좌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 B에게 일정이 너무 힘든 것 같다고 불평해도 웃으며 운전하는 B 덕에 우리는 마음껏 골드코스트를 탐험했다. 오래된 우정이 참된 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어떤 사람은 우정을 이렇게 오랫동안 건강하게 보살핀다. 그걸 골드코스트의 B에게서 배웠다. '잠이 부족한 거 같아...' 투덜 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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