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인종차별이 심한가요?

by 정현정

호주의 인종차별에 대해 묻는다면, 당연히 잘 모른다. 그곳에서 10년을 살아도 조심스럽게 말하는 주제인데, 겨우 열흘 남짓 머물렀던 내가 어떻게 알겠나. 더군다나 나는 관광객들이 많은 중심지에 있었고, 대부분 관광객을 상대하는 사람들만 만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불편해졌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 유명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 가는데, 그곳에서 공연도 보고 싶었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페라를 본다니, 좋은 생각 아닌가? 오페라 하우스 홈페이지에 가서 공연 일정을 살폈다. 그중에 일정에 맞추어 볼 수 있는 공연은 단 하나뿐이었다. <GREAT OPERA HITS> 유명 오페라 아리아만 따서 짧게 들려주는 다이제스트 같은 공연이다. 아마 오페라 하우스를 경험하고 싶은 관광객들을 위해 마련된 짧은 공연인 것 같다. 오페라 하우스 홈페이지보다 액티비티 예약 앱 클룩 KLOOK 에서 예약하는 게 더 편하고 저렴해서, 그곳에서 예약을 마쳤다.


석양이 내려앉는 오페라 하우스는 아름다웠다. 전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우리도 몇 장의 사진을 남기고, 공연을 보러 들어갔다. 본다이 비치에서 바로 이동한 우리는 오페라에 걸맞은 격식 있는 옷차림이 아니었는데, 입장하는 사람들을 보니 우리는 그나마 잘 차려입은 편이었다.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은 진행자가 나와서 스탠딩 코미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유명한 오페라 곡들을 하나씩 소개하고, 성악가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형식이었다. 진행자는 나오자마자 '나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긴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모인 곳이죠. 정말 모든 나라가 있다니까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오신 분?"


객석이 잠잠했다.


"이상한 일이네요. 보통은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농담이라는 걸 알리는 제스처였다.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그는 다시 미국에서 오신 분? 영국에서 오신 분? 질문을 하며 그 나라에 온 사람들을 손을 들게 하며 관련된 농담을 한 마디씩 던졌다. 도널드 트럼프, 브렉시트 등에 관련된 농담에 웃음소리는 점점 커졌다. 유럽의 온갖 나라들이 다 나왔다. 커지는 웃음소리와 잘 이해되지 않는 농담 사이에서 나는 웃음이 나지 않았다. 그가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농담을 던진 우즈베키스탄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진 않을까 신경이 쓰였고, 그가 왔으리라 생각하는 '나라'에 포함되지 않은 아시아 사람들 중 하나로 즐겁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연은 이어졌고, 한 번쯤은 들어본 유명한 오페라 곡들을 오페라 하우스에서 모아 듣는 경험은 나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무대에 등장한 성악가들의 상당수는 아시아인들이었다.




시드니 공항에서는 오며 가며 랜덤 짐 검사 대상으로 두 번이나 선정되었다. 검색대를 통과한 후, 몸과 짐을 다시 한번 체크하는 일이다. 첫 번째 대상이 되었을 때는 당황스럽긴 했어도 랜덤이라고 설명해주어 별 불만이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도 짐 검사 대상이라면 낮은 확률이지만 그럴 수도 있다.


두 번째 짐 검사를 할 때의 일이다. 검색대를 통과해 나가고 있는데, 공항 남자 직원이 웃으며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날 불러 세웠다. 첫 번째 만났던 시드니 공항 직원과의 태도와도 달랐고, 이건 전 세계 어디에서도 '정중한' 태도로 보기는 어려웠다. 설마 날 저렇게 부르는 건가. 그가 짐 검사 담당이라는 것도 몰랐던 나는 그에게 다가가 나를 부른 거냐고 물었다. 그는 별 설명도 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너 영어 잘하는구나." 내가 영어를 잘 못한다고 뉘앙스까지 모르겠는가. 내가 미드를 봐도 그 사람보단 더... 비아냥대며 영어를 칭찬하는 그 앞에 짐을 내려놓으며 가방을 열었다. 내 옆에 다가온 K에게 입국할 때도 했던 검사라고 설명해주는 참이었는데, 그가 끼어들어 K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냐고 물었다.


"너 영어 엄청 잘하잖아. 나한테 왜 부르냐고 따지기까지 했잖아. 영어로 설명해줘 봐. 친구랑 무슨 이야기한 거야?"


계속 웃으며 비아냥대는 그에게 K와 한 이야기를 그대로 해줬다.


"올 때도 이 검사를 했거든. 두 번째 검사라고 설명하고 있었어."

"아, 정말? 왜 그런지 알아? 네가 너무 예뻐서야."


이건 뭐지... 그렇지 않아도 기분 나쁜데 성희롱까지... 나의 열 받은 얼굴을 읽는지 못 읽는지 그는 설렁설렁 내 짐을 들춰 보더니 가도 좋다고 했다. 그때부터 내가 오며 가며 계속 짐 검사를 하게 되는 게 정말 랜덤인지, 아무렇게나 불러도 되는 만만한 동양인 여자여서인지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씩씩대며 직원을 지나쳐 걷다 다시 뒤를 돌아보니 그는 다음 짐 검사 대상으로 나보다 더 작고 아이까지 품에 안은 동양인 여성을 부르고 있었다.




두 번째로 만난 공항 직원이 유별나게 무례한 사람이었을 뿐, 모든 과정은 정말 랜덤인 걸까. 오페라 공연 진행자의 농담은 사실 우리나라 TV 예능 진행자들의 무례한 농담보다 불쾌한 수준은 아니었으니 괜찮은 걸까. 호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호주의 날씨만큼이나 따뜻하고 다정했지만, 아직 저 불편한 감정들이 개운하지 않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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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_jun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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