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코스트에 도착했다. B의 차를 타고 어디로 가든 바다가 나왔다. 여기서 내려서 둘러봐도, 저기서 내려서 둘러봐도, 하늘은 맑고 바다는 푸르렀다. 시드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기도 개, 저기도 개, 정말이지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크고 작은 개들이 사람들과 함께 해변을 걷고, 뛰었다. 시드니에서도 예쁜 개들을 많이 만났지만, 골드코스트의 해변가 공원은 그야말로 개 반, 사람 반이었다. 남의 개만 보면 몸이 반응하는 나는 다가가 개를 만져도 되냐고 물어볼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May I...? Can I...? 그러다 더 이상은 못 참을 것 같을 때, 비장하게 말했다.
"개 만져봐도 되냐고 물어볼래."
"그걸 누가 물어봐? 괜찮아. 가서 인사하고 만져봐."
골드코스트에서 강아지 찰리를 키우고 있는 B는 호주에서는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는 개 주인에게 다가가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고, 개 이름은 뭔지, 몇 살인지 묻고는 개를 어루만졌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의 나의 개에 대한 접근 방식은 무척 수상쩍었다. 오직 남의 개를 만지겠다는 욕망 하나로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스몰 토크는 건너뛰었다. 다짜고짜 '내가 댁의 개를 만져도 되느냐'는 본론을 먼저 꺼냈다. 물론 나름의 애절하고 공손한 눈빛과 당신의 개가 귀여워 죽겠다는 신음을 동반했지만, 내 입장에서나 그렇지 상대방에는 욕망에 가득 찬 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거다. 개를 만지다가 이름이 뭔지 몇 살인지 물을 때도 있었지만, 개 주인과의 스몰 토크는 정말 제한적이었다. ‘인간을 경계하고 개만을 믿는다’가 서울에서의 생활 방식이었다면 골드코스트에서는 누구에게나 인사를 건네면서 스몰토크가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호주에 가자마자 스몰토크의 최강자가 되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나는 친근하게 스몰토크를 시작하는 B 옆에 바짝 붙어 러블리! 큐트! 등의 감탄사를 남발하며 개들을 어루만졌다. 호주인들은 멈춰 서서 인사를 건네는 사람에게 호의적이었고, 누구와도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개들은 주인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순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개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몸을 맡겨왔다.
B의 강아지, 찰리도 만났다. 찰리는 한번 버림받은 상처가 있는 아이인데, B의 융단 폭격 같은 사랑에 마음의 문을 열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강아지와 함께 갈 수 있는 해변에 가서 찰리가 지칠 때까지 바다에서 뛰고, 걷고, 공을 던졌다. 해변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의 개와 산책을 하거나 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는데, 주인과 개가 얼마나 닮았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우아하게 팔다리가 긴 여자는 긴 털을 늘어뜨린 황금빛 개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고, 온몸이 근육질인 남자는 커다란 불독 두 마리와 달리기를 했다. 한참을 바닷가에서 뛴 찰리를 씻기고 맡기기 위해 B가 가족처럼 지내는 '오마'(네덜란드어로 '할머니'라는 뜻이라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이민 온 오마는 우리의 할머니가 될 법한 나이의 다정한 분이다. 그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보다 ‘오마’라고 부르는 걸 더 좋아한다.)의 집에 갔다. 그 집의 마당에 들어서자, 나무 담장 아래 수상쩍은 아이가 있었는데... 쓰다듬을 받고 싶어서 담장과 땅 사이에 홈을 파서 머리를 집어넣는 옆집 강아지였다. 우리가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인기척을 느낀 강아지는 그 틈으로 커다란 검은 머리를 집어넣어 낑낑거렸다. 아이고 이렇게까지... 까만 아이의 머리를 한참 어루만졌다. (이건 주인의 동의도 무엇도 없었지만, 강아지 자신의 요구가 있었다.) 손은 침범벅이 되었고, 홈은 아주 조금 더 벌어졌다.
계속 강아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강아지를 만진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글을 시작했다는 걸 이제 다들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골드코스트에 가서 강아지를 만진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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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강아지 찰리와 B가 좋아하는 골드코스트의 저 해변은 The Spit 이다.
- 주소 : Seaworld Drive Main Beach QLD 4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