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하지 않는 서퍼의 파라다이스

by 정현정

호주에 머물면서 느낀 건 사람들이 참 건강해 보인다는 거였다. 해변가를 따라 난 트래킹 코스에는 뛰는 사람이 걷는 사람보다 많았고, 시내 아스팔트 위에서도 누군가는 뛰고 있었다. 공원 한가운데서는 난데없이 누군가가 나타나 푸시업을 시작했다. 버젓이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식당에서도 굳이 서서 먹는(야외 테라스였다) 호주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도 (앞으로는) 건강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운대에 사는 K는 자기도 해변을 따라 조깅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나? 나는 한강변도, 해변도 없는 곳에 사니까 좀 더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우선 나는 K의 결심을 응원하기로 했다. 시드니에서도 그랬지만, 골드코스트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우리는 이 해변에서 저 해변으로 이동하며 골드코스트를 탐험했는데, 바다에 뛰어드는 수많은 서퍼들을 만났다. 그들은 서핑 보드 위에서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도 끊임없이 바다를 향해 팔을 저어 갔다. 다정한 B는 우리가 호주를 향하기 전, 서핑을 배우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분명하게 나의 의사를 밝혔다. "아니."


나는 작년에 무려 발리에서 서핑을 배웠다.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서핑스쿨의 원데이 클래스였다. 한 시간 안에 서핑 보드 위에 서게 한다, 는 원대한 목표 아래 한국식 스파르타 훈련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의 머리는 효율성의 극치인 한국식 교육을 원했으나, 나의 몸은 머리를 따르지 못했다. "누나, 일어나요!" 나의 선생님인 발리 청년은 파도가 올 때마다 나에게 (한국어로) 서핑보드 위에 서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몸을 일으켰을 땐... 이미 모든 게 다 끝나 있었다. 뒤집어지고, 떠밀려 가고, 다시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가고, 다시 뒤집어지고, 떠밀려 가고... 나는 바닷물을 원 없이 마셨다. 발리의 바닷물은... 역시 짰다. 모두가 실패했다면 이 서핑스쿨의 교수법에 의문을 품었을 텐데, 일어나라는 말에 정말 일어나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혹독한 발리 원데이 클래스 이후로 나는 서핑에 대한 미련을 빠르게 접었다. 운동장에 있는 평형대 위에서도 잘 못 서는 사람이 파도 위 서핑 보드 위에 설 수 있을까? 여러분도 서핑을 배우기 전에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길 바란다.


스펀지처럼 바닷물을 흡수하던 내가 발리에 이어 서퍼들의 천국, 골드코스트에 왔다. 해변 어디에서나 눈을 돌리기만 하면 바다로 뛰어드는 서퍼들을 볼 수 있는 곳. 어딘가에선 초보자들이 "일어나요!" 소리를 들으며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간 해변에서는 거의 대부분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여유롭게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나와 K, 그리고 B는 맥주에 피시 앤 칩스를 먹으며 바다와 파도에 올라타는 서퍼들을 구경했다. "지금 봤어? 저 사람 파도 완전 높이 탔어." 웬만한 운동 경기를 보는 것보다 흥미로웠다. 야외 테라스에서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서퍼들을 보고 있노라니, 고종의 일화가 생각났다. 서양인들이 테니스 치는 모습을 보던 고종이 ‘저 힘든 일을 하인을 시키지 않고...’라고 딱해했다는 일화. (절대 내가 운동신경이 둔하고 서핑 배우기에 실패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골드코스트에 간다면 당신이 서핑을 할 수 있든 없든 꼭 해변의 펍에 앉아 서퍼스 파라다이스를 경험해 보길 바란다. 날씨는 완벽하고,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는 아름답고, 그걸 타는 서퍼들의 움직임은 더 아름답다. 호주 맥주는 비싸서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피시 앤 칩스는 맛이 없기 대단히 어렵다. 우리 셋은 눈으로 파도를 탔다. 서핑하지 않는 서퍼들의 시간이었다.


K가 맥주잔을 들어주었다 © heyjune


+

@around_june_



Burleigh Pavilion

주소 : 43 Goodwin Terrace, Burleigh Heads QLD 4220

전화번호 : +61 7 5661 9050

keyword
이전 07화뻔한 호텔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