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호텔이 좋아

by 정현정

드디어 둘이 쓰기로 하고 혼자 쓰던 호주 여행기에 K가 합류했다. K가 합류하자마자 여행기 쓰는 속도가 느려졌다. 남이 여행기를 대신 써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편안히 K의 글을 음미하며 우리의 여행을 추억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이렇게 손을 놓고 있으면 K도 얼마 안 가 손을 놓을 거고, 우리의 여행기는 영원히 완성될 수 없다. 올해 안에는 끝나겠지, 란 느슨한 다짐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더 이어가 본다. 오늘은 우리가 묵은 호텔 이야기다.




호텔 예약은 나눠서 했다. K는 시드니, 나는 골드코스트를 책임졌다. 시드니는 생각보다 호텔비가 비쌌다. K는 여행 블로거 친구가 추천한 두 곳을 예약했다. 첫 번째 호텔은 빌딩 숲 한가운데 위치한 아모라 호텔 제이미슨 시드니다. 오페라 하우스까지 걸어갈 수 있지만, 지친 몸으로는 조금 망설이게 되는 '시드니 중심 업무 지구'에 위치해 있다. 아모라 호텔 제이미슨 시드니는 딱히 흠잡을 데가 없는 모범생 같다. 입구의 도어맨들은 친절하고, 프런트의 업무처리는 사무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군더더기가 없다. 호텔 방은 모든 게 잘 정돈되어 있고, 창 밖으로는 시드니의 건물 숲 그리고 바다가 보인다. 건물 숲 사이에 있는 덕분에, 야경이 화려하다. 욕실에도 창문이 설치되어 있어, 원한다면 야경을 바라보며 입욕을 즐기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호텔 문을 열고 나서면, 작은 공원이 있고 우리가 좋아했던 시드니의 천문대까지 오를 수 있다. 게다가 우린 시드니 최고의 카페를 호텔 앞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이 호텔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PG_Jamison_Executive_Suite-Contemporary_Bathroom.jpg 아모라 호텔 제이미슨 시드니
PG_Jamison_Deluxe_Twin_Double_Double5.jpg 아모라 호텔 제이미슨 시드니


두 번째 호텔은 내가 고른 골드코스트의 보코 골드코스트다. 우선 내가 예약했으니, 변명을 하자면... 가격이 저렴했고 사진이 괜찮았다. 3박에 30만 원이면, 시드니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가격이다. 위치도 괜찮고, 디자인도 괜찮아 보였는데, 가격까지 저렴했다. 나는 큰 고민 없이 3박을 예약했다. 아래 사진을 보라. 감각적이고, 디자인도 예쁘다. 피콕블루에 쨍한 옐로가 메인 컬러다.


202068130.jpg 보코 골드코스트
174623307.jpg 보코 골드코스트


세련된 디자인의 프런트에서 체크인을 하고, 방에 올라왔다. 직원들은 친절했고, 위 사진에 있는 투명한 과자 통에서 귀여운 노란색 쿠키도 꺼내 줬다. 귀엽고 아기자기하다는 느낌이었다. 룸에 들어가니 예약할 때의 사진과 아주 다르다고 할 순 없는데, 뭔가 달랐다. 실제 방과 욕실에서는... 그러니까... 포토샵으로는 지워버린 세월의 냄새와 흔적이 있었다. '도대체 언제 지어진 호텔이야...' 욕실은 골드코스트의 흥망성쇠(?)의 세월을 간직한 채 구석구석이 깨져 있었고, 방안의 기물들도 하나같이 낡아있었다. 그 위에 예쁜 피콕블루와 옐로 색의 장식품들이 태연한 척 놓여 있지만, 세월의 흔적을 덮을 순 없었다. '오래된 호텔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나의 선택에 아직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어메니티가 없었다. 배쓰 타월에, 배스 로브에, 슬리퍼까지...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정말이지 침대 두 개와 우리 둘과 캐리어 두 개만이 남겨져 있었다.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요청하면 요청한 대로 다 가져다주긴 했다. 다 있으면서 왜 가져다 놓질 않았지...? 심각한 경영난으로 어떻게든 경비를 절감하고 있는 걸까. 이 아름다운 도시의 낡은 호텔을 이해하려 애써봤지만, 새로 가져다 놓은 수건에서 긴 금색 머리카락을 발견했을 때는 낙담했다. 낡은 호텔을 팬시한 디자인으로 가리려는 노력만큼,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저녁에 병맥주를 마시려고 오프너를 빌리러 프런트에 가니, "이 호텔에 오프너는 단 하나뿐이라 빌려줄 순 없다. 직원이 들고 올라가서 너희의 맥주병을 따주겠다."라고 했을 때, 호텔의 경영난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아니, 그렇다면 괜찮습니다. 단 하나뿐인 오프너를 간직하십시오... K는 멋지게 숟가락으로 맥주병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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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T 시드니 공식 인스타그램


다시, 시드니로 돌아와 보자. K가 예약한 두 번째 호텔은 QT 시드니다. 이색적인 디자인의 부티크 호텔이고, 위치가 좋다. 온갖 쇼핑몰들이 모여 있는 시내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건물의 일부 층을 호텔로 쓰고 있고, 프런트는 몇 층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QT 시드니는 눈에 띄는 도어맨들을 건물 입구에 세워 두었다. 위 사진과 같은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나의 짐을 받아주고, 엘리베이터까지 안내해 주었는데... 의심이 많은 나는 불안했다. 이들은 든 건 없지만 사이즈는 큰 나와 K의 캐리어를 노리는 어둠의 세력은 아닐까? 정말 호텔 직원들일까? 어두침침한 복도를 지나, 프런트에 도착해 한참을 기다린 후 체크인이 가능했다. 꽤 긴 시간이 흐른 후 룸에 올라갔는데, 한참 전에 갈취당한 건네 준 우리의 캐리어들이 방안에 없었다. 프런트에 전화를 걸었다. 확인하고 연락을 주겠다더니 연락이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고, 한번 더 전화를 걸어 다른 직원과 통화한 후에야 이 복잡하고 어두운 건물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었을 캐리어 두 개가 룸에 도착했다. 방 안은 어두웠고, 감각적이었다. 그 어떤 소품 하나도 뻔한 게 없었다. 모든 게 "나는 다른 호텔과 달라!"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짐을 정중하고 안전하게 전달받고 싶다는 뻔한 기대가 무너지면 소품이 색다른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한 번쯤 특별한 세계를 경험하고 싶은, 디자인 호텔을 선호하는 호텔 여행자들에게는 추천한다. 우선 그 어떤 호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유니폼을 입은 직원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고,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다.


26198145.jpg QT 시드니


시드니에서의 K의 선택은 대체로 훌륭했고, 골드코스트에서의 나의 선택은 아쉬웠지만 우리 둘 다 큰 불평은 하지 않았다. 호텔 역시 도착하기 전에는 온전히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여행지이니까. (물론 그 둘 사이에 10만 원이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아, 그리고 골드코스트의 B는 바이런 베이 여행에서의 숙소를 담당했는데, 그 숙소가 얼마나 훌륭했는지에 대해서는 크리스 햄스워스의 고향, 바이런 베이 여행 이야기에서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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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_june_



Amora Hotel Jamison Sydney 11 Jamison Street, 센트럴 비즈니스 디스트릭트 / 1박 20만 원 정도

QT 시드니 49 Market Street, 센트럴 비즈니스 디스트릭트 / 1박 20만 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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