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호주 바이런 베이 여행기

by 정현정

현지에 사는 친구를 만나서 누릴 수 있는 한 가지 특권은 골드코스트를 벗어나서 작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침부터 B의 차에 짐을 싣고 바이런 베이로 떠났다. 골드코스트와는 아쉽지만 안녕이다. 바이런 베이에 대해서는 'B가 숙소를 예약한 곳'으로만 알고 아는 것 없이 떠났는데, 검색해보니 꽤 유명한 곳이었다. '토르'의 크리스 햄스워스가 고가의 저택을 짓고 맷 데이먼과 휴가를 즐기는 곳이라고도 하고, 포카리 스웨트 광고를 찍은 유명한 등대가 있는 곳이라고도 했다. 크리스 햄스워스가 90여 억 원의 돈을 들여 어마어마한 저택을 짓고 있다는 뉴스는 쉽게 검색 가능했다. 1만 평이 넘는 집이라니, 텍스트로는 상상이 안됐다. 그 안에서 가족을 만나려면... 전화를 해야 하나? 20평 미만에서 살아가는 서울 시민의 상상력으로는 그 정도의 의문만 남았다. 바이런 베이에서 찍었다는 포카리 스웨트 광고도 찾아보았다. 바이런 베이를 소개하는 거의 모든 블로그가 '포카리 스웨트 광고를 찍은 곳으로 유명한데요.'라고 시작하고 있지만 어떤 영상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려웠다.


ⓒ heyjune



바이런 베이는 드라마 세트장처럼 예쁘다. 길 옆에 늘어선 작은 가게들이 모두 예쁘게 꾸며져 있고, 컨셉이 뚜렷하다. 유명인이 어슬렁 거리면 크리스 햄스워스만큼의 대스타가 아니어도 눈에 띌만한 작은 동네다. B도 골드 코스트 집을 떠나오니, 이제 정말 셋이 즐기는 여행이 된 기분이었다. 여전히 B와 B의 빨간 자동차에 기대긴 했지만 우리는 동네를 걷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그 유명한 등대에 올랐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근처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 안에서는 작은 전시도 하고 있었고, 작게나마 아시아의 언어들로 만들어진 책들이 있는 서가가 있었다. 내가 다룰 수 있는 언어를 타지의 도서관에서 만나는 일은 언제나 좋다. 마트에 가서 숙소에서 먹을 간식과 안주거리를 샀다. 낯선 식재료를 고르는 건 즐거운 일. 내가 좋아하는 청포도는 빼놓지 않았다. 술이 비싼 곳이라 밀리리터당 가격을 계산해 신중하게 맥주를 골랐다. 그래도 결국 예쁜 맥주를 샀다. 우리는 시간이 많았고, 얼마든지 무용하게 보낼 참이었다. 무용한 대화들은 자연스럽게 흘렀고, 우리는 셋이라서 종종 1:2로 편이 나뉘었다.


"여기 걸어 올라와도 좋을 뻔했다, 그치."

"아니, 여길 어떻게 걸어 올라와. 차 있는데 차 타야지."

"여기 원래 산책 코스야. 사람들은 뛰어서도 올라온다고."

"여기 사람들은 뛰는 걸 너무 좋아해."

"J는 저기쯤에서 포기할걸."

"K 너도 1/3쯤에서 울면서 내려올걸?"

"다음엔 J만 빼고 걸어가자."

"그래, 나 혼자 맥주 마시면서 기다릴게."


ⓒ heyjune



B가 예약한 숙소는 너무 아름다워서, 보는 내내 감탄했다. 아무렇게나 장을 봐온 과일과 과자들을 펼쳐놓아도 킨포크의 한 페이지 같았다. 그곳에서 와인과 맥주를 마셨다. 저녁에는 다시 시내로 나가 타코를 먹고 칵테일을 마셨다. 바이런 베이의 사람들은 돗자리도 무엇도 없이 잔디밭에 그냥 멍하니 앉아 명상을 하다 바다를 바라봤다. 뭔가 펼친다 싶으면 그 위에서 요가를 했다. 길을 가다 비가 오면 우산이란 걸 본 적도 없는 사람들처럼 그냥 비를 맞았다. 우리도 얼마간의 비를 맞고 가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다.



ⓒ heyjune


숙소에 돌아와 우리는 나란히 누웠다. B는 이렇게 모국어로 떠들 수 있는 친구와 가족들이 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게 가끔 슬프다고 했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고. K는 부산으로 이사 가게 되어 서울의 망원동과 친구들을 만날 수 없게 되어 슬퍼했다. 내가 B였으면 부산 가지고는 말도 꺼내지 말라고 했을 텐데, B와 K는 서로를 위로했다. 나는 서울 외곽으로 이사 가게 되어 동네 친구들을 잃고 친구들을 만나기 조금 번거로워졌지만 입을 다물었다. 바이런 베이에 대해 누가 묻는다면 나는 또 크리스 햄스워스의 대저택이나 포카리 스웨트의 등대 이야기를 꺼내겠지만, 바이런 베이는 그보다 우리가 선처럼 가만히 누워* 시간을 포갰던 곳이다.



* 요조(Yozoh)의 곡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에서 따왔습니다.

* 바이런 베이 숙소 Satara Byron Bay https://www.satarabyronbay.com.au/

53-59 Broken Head Road, Byron Bay, NSW 2481 / +61 407 330 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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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_jun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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