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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진 Sep 05. 2021

아름다움의 진짜 얼굴을 찾아가는 일 - 영화 <시>

자신의 것이 아닌 시대를 밝히는 시

영화 <시> 스틸컷

시는 예술 표현 중 가장 간결한 형태의 장르다. 여타 장르와 동일한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시는 그것을 가장 절제되고 순수한 형태로 함축시킨다.


측정할 수 없는 갖가지 희로애락이 녹아든 사람의 인생은 그 함축성에 있어 시와 닮아있지만, 살면서 마주하는 세상의 부조리는 끊임없이 순수성을 짓밟으며 삶이라는 시를 모욕한다. 시낭송 모임에서 만난 박 형사의 음담패설이 시를 모욕하는 것 같다는 미자의 말처럼. 


합의금으로 사건을 무마하려는 가해자 부모들 사이에 물과 기름처럼 섞인 미자는, 손자의 범죄 사실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는다. 비윤리적 담합의 현장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밀려드는 개인적 고난 속에서 시를 쓰려 애쓰는 미자라는 인물은 삶에서 자꾸만 증발하려는 고결함과 아름다움을 붙잡는 인간의 모습을 대변한다. 시를 쓰기는커녕 읽는 것조차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때와 장소에서 미자는 연필과 노트를 꺼내 든다. 꽃나무 앞에 멈추어 서고, 깎던 사과를 골몰히 들여다보지만 시의 영감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건 양심의 질문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부터다. 이때부터 펼쳐지는 세상은 역설적이게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의 풍경 속에 촘촘히 심긴 비이성적 광경을 들여다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그 잔인한 굴레를 통과하며 미자는 어렵게 어렵게 시를 한 편 완성한다.  


“시를 쓴 사람은 양미자 씨 밖에 없네요.” 


극 중 김용택 시인은 시상은 찾아다니며 구걸해야 하는 것이란 말을 한다. 그는 ‘시가 죽어가는’ 시대지만 계속해서 시를 쓴다. 시인은 영화 말미에 이런 말도 한다. 시를 쓰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시를 쓰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마을회관의 시 쓰기 수업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등록한 인기 수업이었지만 결국 시를 쓴 사람은 미자 한 명뿐이었다. “시를 쓴 사람은 양미자 씨 밖에 없네요.”라는 시인의 대사는 이창동 감독이 우리에게 비추는 거울 같다. ‘세상의 끔찍함에 손가락질할 줄은 알지만, 그래서 어떻게 살고 있나요?’ 시를 쓰려는 마음. 추악한 시대일수록 잊히기 쉽지만 그래서 더욱 필요하고 의식적으로 가꾸어야 하는 가치. 의무가 아닌 도리. 



시의 시대가 아니라고들 한다.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말하듯 지금이 시의 시대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하지만 진정한 시의 시대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했던가? 내가 생각하는 시의 정체성은 자신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음에도 변방에서 띄우는 작은 빛이다. 바람이 불면 휘청이지만 그러면서도 불꽃의 몸집을 키우는 촛불 같은 자아.


역경 속에서도 꾸역꾸역 탐미를 향한 끈을 놓지 않았던 미자는 곧 타락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도리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녀의 시가 완성되는 곳은 별안간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의 추함을 인정함으로써 도달하는 진정한 아름다움의 세계였다. 삶의 비참을 마주하기를 택하고 끝내 그 일부가 되어버린 미자의 몸부림처럼, 시는 처절한 안타까움 속에서 늘 존재했던 것이다. 아름다움의 진짜 얼굴을 발견하는 자만이 시를 쓸 수 있다. 잊힌 양심을 향해 뻗는 손, 삶과 예술의 본질을 묻는 질문, 진실된 마음가짐, 사람의 도리, 시. 그렇기 때문에 ‘시가 죽어가는 시대의 시’의 또 다른 이름은 ‘자신의 것이 아닌 시대를 밝히는 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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