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예뻐요."
처음 하는 오일페인팅에 푹 빠져 캔버스에 코를 맞대고 있다시피 했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살짝 뒤로 끌며 중간 정도 완성한 그림을 멀찌감치 들어 보이셨다.
"별로라는 말이 아니고요. 이렇게 말하면 보통 잘 못 그렸다는 의미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원래 이런 그림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는 거거든요."
나무의 이파리를 하나하나 찍느라 정신없던 나도 그제야 시선을 옮겼다. 멀리서 보니 푹푹 퍼서 한 덩이씩 얹어 둔 물감이 제법 그럴싸한 나무가 되어있었다. 가까이서 하나하나의 질감을 살피는 것도 좋다. 하지만 내가 그리는 건 추상이 아닌 풍경화니까. 이제야 좀 초점이 맞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시 구절이 오래 인기다. 그 구절을 들으면 머쓱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니. 나는 아직 덜 자세히, 덜 오래 본 걸까. 아니,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분명 나의 엉망인 부분들을 발견하고 더욱 질려버릴 것 같다. 나는 항상 울타리 안에서 안심한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부러 다른 이를 자세히, 오래 바라보지 않는 것이 나에겐 애정표현일 때가 있다. 상대가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나름으로 그가 내게, 나 또한 그에게 아름다울 수 있는 거리를 찾는다. 그렇게 유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썬캐쳐를 만들 때 어떤 도안을 할지 무척이나 고민했던 것과 달리, 오일페인팅으로 그리고 싶은 이미지를 고르는 건 쉬웠다. 폐건물에 피어난 봄. 작년 4월 로케이션 헌팅을 다니다가 정말 기이한 공간에 간 적이 있다. 외국어로 덕지덕지 낙서가 쓰여 있는 폐차 수천 대가 잔뜩 들어선 폐건물. 조금 오버해서, 당장 총소리가 들려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무서운 공간이었다. 다행히 볕이 좋은 맑은 날이었고 건물을 나오니 긴장이 금방 풀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는데 한쪽에 이파리가 푸릇푸릇 돗아난 나무 한 그루가 따뜻한 볕을 받고 있었다. 이렇게 낡고 무서운 건물에 저렇게 예쁜 생명이 빛을 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져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 색감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걸 그리고 싶었다.
색은 여러 물감을 섞어서 만든다. 빨강과 파랑을 섞으면 보라, 검정과 흰색을 섞으면 회색. 이렇게 단순하게 알고 있는 색상 조합보다 훨씬 오묘한 작업이었다. 폐건물의 낡은 벽 색깔은 너무 밝은 노란색이 아닌, 그렇다고 그저 칙칙하기만 한 회색도 아닌 그 중간이다. 나뭇잎도 갓 난 어린잎의 눈부신 연두부터 제법 굳은살이 박힌 것 같은 짙은 초록까지 다양하다. 그 색을 하나하나 만드는 과정이 무척 재미있었다. 각 물감의 섞는 비율을 조금만 달리 해도 다른 느낌이 되어 버려서 다시 더하고 섞기를 반복했다. 딱 마음에 드는 색이 나왔을 때는 마음이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물감을 너무 많이 쓰는 건 아닐까 싶어 마음이 불편했다. 원하는 색이 분명하게 있어서 오래 걸리시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며, 나무기둥의 거친 고동색을 만드는 걸 도와주셨다. 검은색과 붉은색에 초록색을 조금 더 섞으니 오래됐지만 물기를 많이 머금고 있는 것 같은 나무의 색이 만들어졌다. 시간 상 모든 색을 꼭 마음에 들게 만들 수는 없었다. 하늘은 적당히 하늘색으로 타협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직접 물감을 잔뜩 사서 하나하나 마음에 꼭 드는 색을 마음껏 만들어 그리고 싶다. 적당히 하고 멈추는 건 여전히 참 어려운 일이다.
유화의 특성상 물감이 다 마르려면 한 달 정도 통풍이 잘 되는 곳에 그림을 두어야 한다. 자취방에는 둘 수 없어서 본가로 가져갔는데, 엄마가 그림을 마음에 들어하셔서 선물했다. 엄마는 거실에 있는 작은 이젤에 엄마의 그림을 치우고 내가 그린 그림을 올려두었다. 저층이라 어둑한 우리 집 거실에 작은 봄이 자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