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짠 Mar 21. 2024

빛이 이어져 윤슬이 된다.

"나는 너무 작고 항상 추위를 탄다. 하지만 친족들은 마치 태양인 양 나를 보고 있다. 내 부모님과 외조부모님 그리고 외외증조할머니, 그 분들 모두가 나를 지켜보기 위해 모였다. 그분들은 내가 태양인 양, 그분들이 그떄껏 평생 추위를 탔던 양 나를 보고 있다.


나는 태양이다. 하지만 그분들은 행성이 아니다.

그분들은 우주다."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31쪽



큰 누나를 보내기 하루 전날,

아버지와 작은 누나와 나는 큰 누나를 내려다 보았다.

아버지는 큰 누나가 태양인 양, 아버지가 그때껏 평생 추위를 탔던 양 큰 누나를 보았을 것이고, 큰 누나는 내가 태어났을 때 마치 태양인 양 나를 내려다 보았을 것이다.


작은 누나와 나는 우주의 일부가 사라진 것이고, 아버지에게는 태양이 사라진 것이다.



장례를 마치고, 다음 날 아내와 선호와 함께 과천 국립과학관으로 갔다.

오랜만에 과학관에 간 선호는 신이 나서 공룡 화석이 가득한 자연사 전시실로 향했다.

나는 선호와 잠시 떨어져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보았고, 돌을 보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인류의 역사, 자연사, 우주를 생각하니 우리 모두 그저 한 순간을, 한 점을 영위하다 가는 존재들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그 점을 무한히 확대하면 세상의 모든 기쁨과 슬픔이 있고, 그 점을 무한히 축소하면 점점이 모여 우주가 된다.


이따금씩 큰 누나가 생각나서 말을 잃었다.

아버지가 생각나 전화를 드리려던 차에 아버지께서 전화를 주셨다.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시려고 연락하셨다고 했다. 어제는 잘 주무셨는지 여쭈었다. 아버지는 큰 누나 방에 두세번씩 왔다갔다 하셨다고 했다.



엄마와 함께 갔던 마지막 여행지에 가고 싶었다.

모든 종교도 화해할 것만 같은, 세상의 끝에 온 듯한 차분하고 처연한 분위기가 그리워 마라도로 향했다.


마라도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선착장 근처에 안내판-엄마랑 둘이 사진을 찍었던-도 사라졌고, 너무 많은 상업시설이 생겼다. 왠지 모르게 고향이 변해버린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마라도 성당은 그대로였다.

가녀린 삼각대에 의지해 엄마랑 함께 사진을 찍었던 그곳에서 아내가 나와 선호를 찍어주었다.

함께 바다를 보았고, 그것이 위로가 되었다.



"삶은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다. 그저 숨 쉬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평범한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다."

<모든 삶은 흐른다> 180쪽



제주의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태양 빛이 산산이 부서져 바다 위로 내려앉았다.


칠흙 같은 바다의 색도, 누군가의 태양 빛이 쏟아져 내리는 날에는 눈부신 윤슬로 밝게 빛난다.


과학관에서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서, 아버지와 나 사이의 점이 큰 누나가 남겨준 윤슬로 이어졌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이전글 기억과 실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