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다람살라 맥그로드 간즈에서 명상을-
세계여행의 네 번째 나라는 '인도'이다. 인도 여행은 델리에서 1박, 리시케시에서 14박을 머무르고 현재 다람살라 맥그로드 간즈(맥간)에 있다. 원래는 1주일만 머무르려 했지만 숙소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3박을 연장하였다. 리시케시도 참 평화롭다고 생각했는데 맥간도 세상 평화로운 도시다. 큰 차이점은 '고기'와 '한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치앙마이에 '무료요가'수업이 있다면 맥간에는 '무료명상'수업이 있다. 'Tushita meditation center'라고 하는 곳에서 월-토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수업을 진행한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아침 일찍 가보기로 했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더니 아무도 없었다.
들어가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것은 금색빛 천으로 감싸져 있는 불상이다. 안에 어떤 불상이 있는지 궁금하지만 상상만 할 뿐이다. 바닥에는 탁한 자주색빛 매트가 깔려있고 그 위로는 같은 자주색빛, 진한 파란색, 진한 노란색의 방석이 불규칙 적으로 놓여있다. 우측 벽에는 큰 창문이 있고 너무 강하지 않은 햇볕이 들어온다. 경건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공간이기 때문일까?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먼지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만나니 오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집에서 이런 먼지를 봤다면 눈을 찡그리며 바로 창문을 열고 환기시키기 바빴을 터인데 이곳은 먼지조차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누구 한 명 떠드는 사람 없이 조용히 들어와서 방석에 자리를 잡는다. 불규칙적으로 놓여있는 방석을 일부러 크게 옮기지 않는다. 자유롭게 본인이 원하는 자리, 원하는 방석에 자리를 잡는다.
명상이 시작되면 각자 나름의 자세를 잡는다. 앉아 있는 자세는 다 비슷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손의 위치와 모양이다.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 편안하다고 느끼는 자세를 취해본다. 눈을 지긋히 감는다. 눈을 감고 있으니 안 그래도 예민한 청각이 더 예민해진다. 명상을 하는 동안 들리는 소리는 선생님의 말씀 소리가 중심이 되고 밖에서 들리는 새소리, 한 번씩 몸을 고쳐 앉는 듯하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 조용히 기침하는 소리가 주위에 섞여있다.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는 소리에 집중을 하게 된다.
문득 이 작은 공간에 20-3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앉아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조용한 순간이다.
사람이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온갖 자극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명상을 하는 순간만큼은 이런 자극에서 잠시 벗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요가'는 신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을 함께 챙길 수 있는 운동이라면 '명상'은 오로지 정신적인 건강을 위한 마음 운동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마음 운동이 또 하나가 있는데 바로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이다.
부끄럽지만 2023년 나의 일기장 첫 장에 써져 있는 글을 가져와 봤다.
'육체적인 운동 후 몸이 개운해지는 것처럼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 감정을 글로 써내라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일기장에 써 내려가는 글쓰기와 이렇게 다른 이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쓰는 글쓰기는 조금 다르다. 마음이 극도로 힘들었던 시절에는 이런 공간에 글을 쓸 힘조차도 없었다. 내 일기장은 나의 감정을 쏟아내는 '감정 쓰레기통' 같은 느낌이 강했다.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글로 써 내려가며 감정을 표출하고 해소한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일기장의 내용은 세상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를 하니 문득 사춘기 시절에 엄마 욕을 일기장에 썼던 것이 기억난다. 일기장에 쓴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가 몰래 내 일기장을 읽었는지 "내가 니가 쓴 일기장에 엄마욕 있는 거 모를 줄 알아?!"라고 소리치며 화를 낸 순간이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 뒤로 마음 편하게 일기를 쓰기 힘들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누군가 내 일기장을 훔쳐볼까 두려워 꽁꽁 숨겨 논다. 그때는 엄마가 너무 미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도 참 딸의 일기장을 이해해 주기 힘들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구나'하고 조금 이해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자식을 낳게 된다면,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겠지만 자식의 일기장을 봤는데 내 욕이 써져 있다면 나는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나에게 직접 이렇게 욕할 수 있는데 속으로 삭이느라 정말 고생 많았겠구나. 정말 착한 아이구나'하고. 그리고 그날 내 자식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먹이며 사랑한다고 말해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그 당시에 상처받은 사춘기 시절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해주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맞나 보다. 이런 내용을 쓰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면.
몸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꾸준히 운동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잠을 잘 자면 된다.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치료가 필요하다면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해야 하고 '마음운동'또한 꾸준히 해야만 한다. 일단 마음이 아픈 사람이 이를 인지하고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오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칭찬할 일이다. 이마저도 쉽지 않기에. 하지만 약만 먹는다고 낫기는 힘든 것 같다. 아니, 약을 먹으면 당장 죽지는 않겠지만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신체적인 질병이 있는 사람들도 약을 복용하며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처럼 '마음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건강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마음운동'을 하고 있다. 일기장에 일기도 매일 쓰고 블로그에 하루의 추억도 기록하고 브런치에는 조금 더 정리된 글을 써내려 가면서 나의 상처를 드러내고 나를 이해하고 위로를 해준다. 물론 타인의 위로도 큰 도움이 되지만 아무리 타인에게 내 상처를 말해도 결국 내 상처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기에 나 스스로 내가 왜 상처를 받았는지를 생각해 보고 자신이 직접 위로를 해주어야 한다. 아주 진부한 말인 줄 알았으나 이것을 많이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이러한 '마음운동'을 통해 내 안의 깨진 유리벽을 녹여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단단해지기를 바란다.
눈을 감고 명상을 하고 있으면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볕으로 인해 앞이 깜깜하지 않고 주황빛이 보인다. 명상이 끝나는 것을 알리는 싱잉볼 소리가 들린다. 마치 노을 지는 잔잔한 바다 위에 물방울이 뚝 떨어지면서 생기는 파동이 상상되면서 눈을 뜨게 된다. 내 마음의 유리벽 색은 노을빛을 머금은 바다색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