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살았던 그 어떤 나라도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진 않았는데
너와 처음 만난 게 2013년. 고백하건대 난 체코에 오기 전에 체코란 나라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어. 새로 만난 친구가 체코에서 왔다길래 그냥 유럽 어디쯤 붙어있나 보다 하고서는 심지어 지도에서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었지. 이유는 모르겠어. 그냥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 같아.
체코에서 왔다는 그 친구와 친해지면서 내게 너는 그저 '내 친구의 나라'같은 존재가 되었지. 그때 내 관심사는 오롯이 남미와 중동에 집중되어 있을 때라 여전히 너를 알아볼 생각 따윈 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로부터 딱 4년 만에 여기에 살아보겠다고, 그것도 내 회사를 차려보겠다고 다시 돌아오게 된 거야. '지인' 정도로 정의할 수 있는, 그냥 가끔 만나면 반가운 그런 상대와 갑자기 살을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느낌이 이런 걸까? 그래도 나는 그동안 어디서든 잘 살아남았으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참 어렵다. 당최 맘을 열어주지 않는 네가 너무 어려워.
우리가 이렇게나 서먹한 관계였다고? 그래도 우리 매년 한 번은 보던 사이였잖아. 이렇게 혼자 되물을 정도로 우리 사이의 이 거리감이 낯설어. 너의 언어는 너무 어렵고, 그동안 살아왔던 세계들보다 이곳에선 모든 것의 온도가 몇 도쯤은 더 낮은 듯했어. 변온동물의 서늘한 살갗에 닿을 때처럼 내 뺨에 닿는 바람도, 사람들의 온도도, 모든 것이 조금씩은 더 차가웠지.
봉투 필요하세요? 멤버십 카드 있으세요? 너무너무 쉬운 말이겠지만 나는 아직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밖에 못하는 이방인이야. 못 알아들은 내가 한 번 더 되물으면 계산대의 직원은 눈알을 굴리며 한숨을 푹 쉬어. 나 그렇게 쉽게 기죽는 사람이 아닌데 여기 오고선 감자칩 하나 사러 마트에 가는 데도 긴장을 할 때가 있더라.
내게 사람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아니? 누군가와 주고받는 사소한 인사, 작은 농담, 웃음, 배려. 이런 것들을 주고받을 때 나는 살아있음을 느끼고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 나라, 내 가족과 멀리 떨어진 곳에 혼자 서있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하는 순간들이었지. 그런데 여기선 도대체 그 욕구를 어디서 충족시켜야 할지를 모르겠어.
오죽하면 중동에서 드잡이 하던 순간들이 그리워질 지경이야. 적어도 사람 사는 곳이란 건 느낄 수 있잖아. 그 안에 나도 있는 거잖아. 그런데 체코에서 내 자리는 프레드릭 베크만의 '우리와 당신들'의 그 '당신들'로 규정되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 솔직히 나도 네가 전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야. 가을로 들어서자마자 하루가 머다 하고 주룩주룩 내리는 비도, 으슬으슬하게 몸을 파고드는 추위도, 채소라곤 튀기고 굽고 삶고 으깬 각양각색의 감자(이 탄수화물 덩어리를 과연 채소라고 불러야 할까?)가 전부인 단조롭고 제한적인 식문화도 이골이 날 것 같아.
그동안 바다 없는 나라엔 살아본 적이 없는데 여기선 국내는 고사하고 국경을 넘어간대도 반경 400km 이내에 바다라곤 찾아볼 수가 없어. 신선한 해산물이 너무나 그리워. 피부 위에 하얗게 말라붙던 소금기가 그리워. 바다로 나가는 길은 너무 멀어서 나는 마음의 안식처를 잃은 듯 막막하기만 해.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해 마지않는, 애틋해 마지않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차라리 바르셀로나에게 쏟아부었던 짝사랑이 더 쉬웠던 것만 같아.
하지만 나는 내가 내린 결정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거든. 비록 차가운 너일지라도 내가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곳이니까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거야. 너를 더 알아가고, 너를 더 살피고, 너를 이해하고, 이곳에 살아가는 너의 사람들 속에 섞여들 수 있게 노력할게. 시간과 마음을 들여서 애정을 키워볼게. 그러니 나를 좀 받아줘. 아직은 모든 게 처음이라 미숙하고 무지하지만 조금만 따뜻하게 웃어주고, 조금만 너그럽게 이해해 주면 안 될까?
2017년. 너를 사랑해보고 싶은 이방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