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걸 하려니 달리 방법이 없대서 시작은 했는데, 괜찮을까.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일 년 반 만에 나는 다시 백수가 되었다. 바르셀로나에 올 때부터 이미 회사와 퇴사 시점을 협의한 상태였다. 첫 출근날부터 사랑에 빠져버린 직업이었지만 회사의 근무 환경과 급여는 먼 미래를 내다보기엔 회의적이었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수밖에 없으니 어쩌면 피고용인으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인 셈이었다.
그동안 가이드로 내가 회사에서 해야 할 일은 투어를 잘 해내는 게 전부였다. 투어를 준비하고, 손님들을 살피고 현장에서 생길 수 있는 갖가지 상황에 대비하는 것으로 내 몫을 다하면 되었다.
그런데 회사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나니 그제야 이방인으로 타국에서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과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회사에 일자리를 구하는 일이 비자와 주거 문제를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같은 직종에서 구인을 하는 회사도 많지 않았거니와 더 나은 근무 환경이 제공된다는 확신 또한 없어 선뜻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가이드 일이 하고 싶었고, 여전히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고 싶었다. 이렇게나 좋아하는 일을 찾았는데 현실과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일도 잘 알고 있으면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생각하지 못했다니. 겨우 일 년 반의 사회생활을 갓 끝낸 사회 초년생답게 너무나 안일했던 태도가 아닌가.
중동 유학 시절을 함께했던 체코 친구가 말했다. "그러면 혹시 체코는 어때? 한국인들도 꽤 많이 오는 것 같고, 여기라면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어. 사람들은 거의 프라하만 왔다 가고 기껏해야 체스키크룸로프 정도 다녀가는 게 전부지만 체코에 아름다운 곳들이 정말 많거든. 아직 알려지지 않은 그런 장소들을 다니면서 취재해서 가이드북을 써보는 건?"
어차피 퇴사 후에 한국으로 바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기에 우선 와서 맘 편히 머물며 생각해 보라는 그의 제안에 마음이 기울었다. 지금 가진 통장 잔고로는 유럽의 어느 곳이든 숙박비를 내다간 얼마 버티지도 못할 게 뻔했다. 마침 바르셀로나에서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로 가는 저가항공편이 알맞은 날짜에 적당한 금액으로 올라와 있었다. 그날 밤 나는 20킬로 수하물 하나를 추가한 브라티슬라바행 비행기표 한 장을 예매했다.
체코에 세 달쯤 머물면서 부지런히 이 나라의 구석구석을 여행했다. 꼼꼼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사진과 글로 기록을 남기는데 꽤 공을 들였지만 문제는 출판을 문의한 어떤 출판사에서도 긍정적인 답변이 들려오지 않는단 사실이었다. 더불어 설령 출판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일이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무엇보다 투어가 너무 그리웠다. 매일 아침 같은 장소에서 들뜬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는 매일 다른 얼굴들을 마주 보는 그 활기찬 아침이 그리웠다. 원테이크 영화처럼 투어가 처음 시작되면 어떤 변수를 맞닥뜨리더라도 반드시 끝을 내야만 하는 업무가 주는 긴장감이 그리웠다. 도시의 거대한 면적을 전부 일터 삼아 누비던 그 일상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그러면 하고 싶은 걸 해. 돈, 시간, 현실성 무엇과도 타협하지 말고 너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해. 그 일이 지금의 너를 그 어떤 것보다 더 행복하게 만든다면, 그 일을 하는 게 가능하게 만드는 법을 찾자. 그냥 아예 여행사를 차리는 거야. 장소는 어디래도 괜찮다면 체코에서 일단 시작해 봐. 여기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으니까. 스스로의 고용주가 돼서 네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 투어를 직접 만들어봐."
친구의 말을 들으며 상상만 했을 뿐인데 머리까지 짜릿한 전류가 돌았다. 생각만으로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하고 싶은 일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주는 현실적 해결책을 찾아야 할 순간이었다. 밤새 정보를 수집하고 인터넷을 뒤지다 막다른 골목을 만나면 친구가 관공서로, 관련 기간으로 낮 동안 전화를 걸었다. 가능성이 보였다.
가을이 시작될 때쯤 한국으로 갔다. 부모님께 계획을 알리고, 내년 봄 체코로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하며 준비에 착수했다. 투어에 필요한 송수신기와 공부에 필요한 책들을 사고 체코로 돌아가는 편도행 비행기까지 끊고 나니 잔고에는 딱 350만 원이 남았다. 길어봤자 7개월 정도 버틸 수 있는 돈이었다. (저 돈으로 7개월을 버티고 실패했을 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값은 어쩔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대책없다 그때의 나.) 해볼 만했다. 적어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았다.
체코의 봄날치곤 유난히 햇살이 따사로웠던 2017년 4월의 어느 날. 따끈한 도장이 찍힌 사업자 등록증을 손에 받아 들고 나는 함박웃음을 머금고 관공서를 나왔다. 가이드가 하고 싶어서, 사업자가 되어버린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