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바뀌어도 사랑은 여전히.

짝사랑을 끝내는 법을 알려드립니다. 내가 사랑하는 바르셀로나의 조각들.

by Sophie




바르셀로나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시내로 또 한 번의 이사를 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바로 앞에 위치한 가정집이었다. 집을 나서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면 곧장 공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눈앞에 나타나는 곳이었다. 내 몸을 누이는 방 한 칸은 환풍구 용도의 통로로 창문이 나있어 대낮에도 해가 들지 않는 곳이었지만 이곳의 위치만큼은 바르셀로나에서 남은 두 달을 보내기엔 더없이 완벽한 곳이었다. 짐을 부릴 수 있는 공간과 내 몸을 누일 침대 하나. 그거면 충분한 나이였고 또 충분한 시절이었다.


이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투어를 시작한 일상은 쉴 새 없이 바빠졌다. 거의 매일 투어가 있었다. 명백한 출근이었지만 바르셀로나의 가이드로 출근을 한다는 건 이스탄불 가이드의 출근길만큼이나 믿을 수 없이 신나고 행복한 일이어서 나는 개의치 않았다. 많은 이들에게 일생 중 한 번의 방문으로 그칠 구엘저택과 구엘 공원이, 아름다운 까사 바뜨요와 까사 밀라가, 그라시아와 람블라스 거리 그리고 거리 곳곳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작고 아름다운 구도심의 광장들이, 가우디의 역작 사그라다파밀리아가 내 출근지였다.


비록 짝사랑에 가까웠지만 하루 또 하루가 지날 때마다 이 도시를 향한 사랑도 점점 커져만 갔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이 짝사랑을 즐기기로 결심했다. 잠시 스쳐가는 이들 중 하나일지라도,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기억 못 할 자신을 흠모하던 수많은 짝사랑 상대 중 하나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사랑할 수 있는 내 모든 마음을 다 바쳐 이 도시와 이곳에서의 매 순간을 깊이깊이 사랑하기로 했다. 그런 진실되고 열정적인 마음을 줄 수 있는 것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니까.





다행히도 여름이 다가오며 점점 낮이 길어지고 있었기에 퇴근 후에도 바르셀로나를 즐길 시간은 충분했다. 나는 바르셀로네타에서 가장 자주 시간을 보냈다. 사방이 바다인데도 수영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이스탄불과 달리 바르셀로나에는 도심 속 해변 바르셀로네타가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속옷 대신 비키니를 챙겨 입고 출근했다. 그리고 퇴근을 하자마자 바르셀로네타로 달려갔다. 투어 동안 뜨거운 뙤약볕으로부터 피부를 가려주던 스카프가 모래해변 위에 깔 돗자리로 역할을 바꾸면 나는 그 위에 종일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투어 가방을 내려놓고, 그위로 옷까지 훌훌 벗어던져버렸다. 그리고는 곧장 부드러운 모래 위를 맨발로 달려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나를 감싸던 차가운 바닷물의 감촉은, 물성으로 나를 껴안는 자유 그 자체였다.


나는 가만히 수면 아래 모래들이 잘그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잔잔한 수면 위에 둥둥 떠있기를 즐겼다. 장난기 가득한 파도가 밀려드는 날이면 그 리듬에 맞춰 춤추듯 수영도 했다. 원 없이 물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제야 뭍으로 올라와 스카프 위에 벌렁 드러누워 책을 펼치거나 가만히 눈을 감고 짧은 오수를 즐기며 천천히 바람과 햇살이 몸을 말려줄 때까지 가만히 몸을 맡겼다.


몸에 남은 소금기와 발에 붙은 모래를 손으로 슥슥 털어버리면 그만일 정도로 완전히 몸이 마르면 대충 몸을 털고선 다시 옷을 챙겨 입었다. 집으로 가는 길 타파스 몇 개와 틴토 데 베라노 한 잔으로 가벼운 저녁을 해결하고 집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캄캄한 어둠 속에 침대에 누워 내가 오늘 살아낸 하루를 다시 음미했다. 오늘도 완벽한 하루였다고, 내려갈 줄 모르는 입꼬리와 함께 잠드는 시절이었다.





그 시절 아침마다 나는 아주 작고 귀여운 사치를 즐겼다. 바르셀로나에서 유명한 초콜라티에 '부보 Bubo'의 초콜릿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는데, 마카다미아를 바닐라빈 페이스트와 초콜릿이 감싸고 있는 그 고급스러운 초콜릿은 이백그람이 채 안 되는 한 통이 무려 이만 원쯤 했고, (2025년 12월 현재는 18유로, 한화로 약 삼만천 원이다.), 그 시절의 나에겐 이만 원짜리 초콜릿은 너무나 큰 사치였기에 큰맘 먹고 한 통을 산 나는 하루에 딱 한 개만 먹기로 스스로와 약속을 했었더랬다.


매일 아침 그 까만 뚜껑을 열어 동그란 초콜릿을 입에 쏙 집어넣고선 방을 나서는 게 나만의 출근 루틴이자 즐거운 하루를 위한 작은 의식이었다. 쌉쌀한 코코아 파우더가 혀 위에서 녹으며 바닐라빈의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우다 거슬거슬한 마카다미아의 표면이 느껴지면 오독, 하고 깨물어 견과류의 왕의 위엄을 느끼는 몇 분 남짓한 시간이 주던 즐거움은 그 시절 내 일상 속 조그맣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이었다.


여전히 체코 우리 집 선반엔 같은 초콜릿이 있고, 이젠 원한다면 바르셀로나에서 열 통쯤 주문할 수도 있고 그 열 통을 하루 만에 몽땅 끝내버려도 괜찮은 어른(?)이 되었지만 그 시절 바르셀로나에서 출근길에 먹던 한 알이 주던 기쁨은 열 통을 모두 먹는대도 얻을 수 없음을 안다. 그 기억의 조각이 더욱 애틋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테다.


지금 우리집 선반에도 부보가 있다. 이건 바르셀로나에서 인연을 맺은 친구가 최근에 프라하로 신혼 여행을 오는 길 선물해주었다. 그 마음이 귀해서 더욱 아껴먹을 예정.



짝사랑을 끝내는 법은 간단하다. 상대를 향한 몫으로 주어진 내 마음속 사랑의 용량을 모두 써버리는 것이다.* 사실 삶 자체가 그렇다. 나의 동의도, 사전 예고도 없이 내 삶에 걸어 들어온 것들이 다시 사전 예고 없이 내 삶에서 걸어 나갈 때 그 상실의 허탈함과 고통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건 적어도 내 삶에 그들이 존재하는 동안은 내가 진심과 최선을 다했다는 확신뿐이다.


바르셀로나에 가지 않았다면 나는 남은 평생을 그 절절한 사랑이 튀르키예를 향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살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바르셀로나에 오고 나서야 사실은 그 크고도 진지한 사랑의 커다란 부분이 내 직업을 향한 사랑이었음을 깨달았다. 도시가 바뀌어도, 장소가 바뀌어도, 여전히 내가 이 일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걸 확실히 알아버린 것이다. 비로소 다음 여정지가 어디가 되었든 내가 사랑하는 나의 직업으로, 가이드의 시선으로, 그곳을 힘껏 사랑해 볼 자신이 생겼다.


약속한 삼 개월이 지났다. 세 달간의 짝사랑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다. 처음부터 끝이 정해져 있었던 만남이었고, 정말이지 매일을 원 없이 사랑했던지라 이별은 꽤나 덤덤하게 찾아왔다. 후회 없이 사랑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후련함이었다.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내 마음 안에는 촘촘하게 엮어낸 삼 개월치의 반짝이는 추억들과 내 일에 대한 확신이 그 어떤 기념품보다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앞으로도 언제나 나는 이곳을 그리워할 것이다. 작고 어두운 방에서도 행복했던 그 시절의 나를, 내 삶을 충만하게 채워주던 그 시절만의 행복을, 그 시절을 가능하게 해 주었던 이 도시가 내게 보여준 모든 아름다움과 친절들은 언제고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줄 것이다. 한때 내 마음을 온통 빼앗아갔던 아름다운 도시여,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바르셀로나에 돌아가고 싶은 이유들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세 손가락 안에 맛있는 음식들을 꼽을 거다. 큰 일 났다. 배가 고픈 것 같다.

*만약의 만약을 위해, 오역을 방지하고 의도를 명확히 하기 위해 글을 남긴다. 이 글에서는 의도적으로 하나의 도시를 사랑의 대상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을 향한 사랑에 대해 얘기한다면 그 누구도 자신의 감정을 내세워 상대의 삶에 허락없이 출현하거나 마음에 응할 것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내 마음은 언제나 나만의 것이듯 그것을 받을지 말지도 상대의 선택이다. 누군가에게 공포스러운 대상이 되거나 범죄자가 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