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말고 가이드로 다시 돌아온 여기, 바르셀로나.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니 사랑할 수 밖에.

by Sophie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삼 년 만에 돌아온 이곳. 배낭여행자로 커다란 배낭을 메고 왔던 그때와 다르게 내 옆엔 커다란 캐리어 두 개가 함께였다.


후각이 먼저 익숙했던 공기의 냄새를 기억해 냈다. 우연히도 삼 년 전 여행자로 첫발을 디뎠던 그때와 같은 계절에 바르셀로나에 돌아오게 된 것이다.

비행기를 탈 때까지만 해도 이스탄불과의 이별이 받아들이기 힘들어 세기말 사랑이라도 끝내듯 눈물 바람으로 영화 한 편을 찍었는데 어라? 더 이상 나올 눈물도 없을 만큼 울고 나서였을까, 네시간만에 도착한 이 익숙하고도 낯선 도시에 대한 기대감에 가슴이 속절없이 두근거린다.

아무렴. 감정이든 인연이든 모든 것은 주어졌을 때 충실해야 하는 법. 이별로 아팠던 마음까지 잊게 만드는 다정한 바르셀로나의 봄햇살 아래에서 나는 남은 마음을 다시 돌아온 이 도시에 홀라당 다 넘겨주고 말았다.



회사에서 잡아준 숙소로 갔다. 바르셀로나 북쪽에 위치한 외곽이었는데 출근지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렸다. 새로운 집을 찾을 때까지 당분간 머물 곳이었고, 호스트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커플이었다. 그들에게 스페인어를 배울 수 있겠다 싶었다.


그 지역이 이민자, 특히 아프리카와 아랍계 이민자들이 많아 현지인들에겐 비선호 지역인 건 친구와 얘기를 하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그 말을 들은 내가 반색하며 '아! 어쩐지 편하더라!!'라며 예상치도 못했던 반응을 보이는 바람에 친구를 폭소시켰더랬다. 첫 해외살이를 중동에서 시작한 내겐 실제로 그 지역의 비선호 조건들이 외려 익숙함과 친근함의 요소였으니 적응이 쉬울 수밖에.

잘되는 놈은 엎어져도 떡함지 앞이라고, 처음 짐을 푼 곳이 고향처럼 마음 푸근해지는 곳이라니. 내가 바로 그 잘 될 놈이었잖아?


처음 짐을 풀었던 아르헨티나 커플네 집. 머무는 동안 저녁도 함께 먹으며 스페인어를 배웠는데 미안하게도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



그렇게 도시의 외곽, 조금은 주머니 사정이 빠듯하고 조금은 소외된 바르셀로나의 가장자리에서 나의 바르셀로나 살이가 시작되었다. 투어를 준비하면서 나는 매일 도심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비로소 사람들이 '바르셀로나'라고 부르는 중심지에 열차가 나를 내려놓으면 그때부터 나는 게걸스럽게 도시를 탐닉했다.


바르셀로나는 아름다웠다. 철저히 심미적 욕구에 충실한 아르누보로 치장된 도시답게 눈 닿는 곳마다 감탄이 흘러나왔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자 애쓴 인공의 구조물들도, 그 구조물을 이루는 사소한 부품 하나에도 깃들어 있는 누군가의 집념도, 그 인공물 위를 드리우는 플라타너스 나무의 흔들림도, 그 사이로 비추는 찬란한 햇살도, 햇살만큼 빛나는 얼굴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활기도, 신선하기 그지없는 과일과 채소의 오색찬란한 빛깔도, 그 풍부한 식재료로 만들어낸 감탄을 멈출 수 없는 음식들까지. 정말이지 모든 것들이 아름답고, 아름다웠으며, 아름다웠다.


가이드의 개인적 경험과 깨달음은 곧 투어의 깊이로 이어진다. 따라서 좋은 투어를 위해서 가이드는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경험하고 맛보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러면 특히나 새 근무지로 막 옮겨온 가이드에겐 새도시를 최대로 탐닉하는 일은 의무이자 미덕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기꺼이 경험하고 탐닉하는 일이 미덕인 직업이라니, 이러니 이 일을 사랑할 수밖에.)

여전히 바르셀로나에서 최애를 꼽으라면 먼저 떠오르는 곳, 까사 바뜨요.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한 존재들은 언제나 더 빛난다. 바르셀로나도 그렇다.


가우디의 손길이 곳곳에 닿아있는 이 놀라운 도시를, 수많은 예술가를 매혹시키고 또 머무르게 했던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나는 매일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고 어루만졌다. 앞으로 당분간 매일마다 만나게 될 감동의 주체들은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보고 또 보아도 부족했다. 매번 마치 처음 본 것처럼 도시의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모든 것들에 감동하고 감탄했다. 그 감동을 꼼꼼히 기록한 후 집으로 돌아와 투어 속 멘트로, 설명 끝에 가리킬 손 끝 시선의 종착지로 옮겨 담았다. 사장님이 써주신 스크립트 위에 나의 시선과 색깔을 조금씩 덧입혔다. 그들의 하루를 기꺼이 내게 맡겨보기로 한 손님들에게 기필코 이 감동을 선사하고 싶었다.


투어를 개시하고 한 달 반. 국내 여행 상품 플랫폼 사이트 바르셀로나 페이지에서 내가 진행하는 우리 회사의 가우디 투어가 1위를 했다.



p.s. 바르셀로나를 여행해 본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바르셀로네타 해변가에 커다란 보자기 위에 짝퉁 명품들을 늘어놓고 파는 아프리카계 상인들을. 그 커다란 보자기는 사실상 그들의 영업 비밀인데, 사실 보자기 네 모퉁이엔 노끈이 달려있어 끈을 휙 당기면 보자기는 커다란 보퉁이로 변신을 해서 빠른 도주를 가능하게 해 준다. 하얀 보자기를 제각각 어깨에 둘러멘 그들과 나는 매일 같은 지하철에 몸을 싣고 도시로 향했다. 나는 손님들과 함께 도시를 누볐고 그들은 호객과 흥정을 반복하다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단속반을 피해 도시를 누볐을 것이다. 그때의 출근길을 떠올리며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출퇴근 동지였던 그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뭘 하고 있을까. 강산도 한 번 바뀔 만큼의 시간이 거의 흘렀으니 그중 누군가는 당시 품었던 목표에, 그리던 삶의 형태에 가닿은 이들도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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